‘한식구’라 생각해 한결 수월할 줄 알았는데 인터뷰 자체를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조직 안팎에서 괜한 구설에 오르기도 싫고, 딱히 뾰족한 수가 안 보이는 현재의 갑갑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듯했다. 한겨레의 고위 관계자는 거듭된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면서 “구름 잡는 이야기 외에 전할 게 없다. 다양한 생존 방안을 모색하고는 있지만 내놓을 게 없다”라고 토로했다.

언론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언론은 그래도 ‘방송 진출’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끈이라도 생겼지만 진보 언론 쪽은 현상 유지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모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십억 내지 수억원의 적자 살림이 불가피한 가운데,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는 20~40%에 달하는 임금 삭감과 수당 반납, 유급휴직 등을 통해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있다. 애초 조·중·동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낮은 임금을 받고 있던 직원들 처지에서는 이젠 그야말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5월23일 서울시청 앞 대한문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의 한 장면.

그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경향으로 보인다. 이영만 사장이 노조로부터 사실상 불신임을 당하며 지난 8월14일 사퇴를 해 경영이 공백 상태인 데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외국인 렌트하우스 ‘정동 상림원’ 분양 사업마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그래도 유기농 식품 유통·판매업체인 초록마을 매각을 통해 마련한 70억여 원으로 디지털 미디어, 실버 서비스 등 신규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경향은 “여력이 없다”라며 다른 건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모색은 하지만 내놓을 게 없다

생계상의 어려움과 앞날의 불투명함은 자연히 진보 언론으로서 정체성 유지에도 크나큰 위협이 된다. 사직과 이직 등 ‘이탈자’가 갑자기 늘어나는 분위기까지는 아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기사나 조직 내부 분위기에서 ‘침체’의 기운을 느끼기란 어렵지 않다.

김보협 언론노조 한겨레지부장은 “지면에 힘이 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많다. 개인들도 지쳐 있는 데다, 한 달에 20~30명이 휴직을 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까지 겹쳐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열정과 에너지, 활발한 토론이 잘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라고 전한다.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광고 매출의 급감이다. 촛불 정국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정기구독이 수만 부씩 늘어나고, 인터넷 사이트 방문자 수가 2~3배 폭증해도 전년 동기 대비 25~30% 정도가 줄어든 광고의 공백을 메울 수는 없었다. 특히 일간지의 경우 신문의 실제 구독료가 제작비의 3분의 1도 안 되는 비정상적인 구조에서 ‘광고 없는’ 구독 부수 증가는 고스란히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동현 경향 사원주주회장(광고마케팅국장)은 이와 관련해 “부수가 늘어난 만큼 광고도 붙어줘야 하는데 경제위기 등 여러 요인으로 잘 안 되고 있다. 조·중·동 등 큰 곳은 광고가 어느 정도 되니까 큰 위기 없이 살겠지만 경향과 한겨레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갑작스러운 구독 증가 등으로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본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비교하면 인터넷 언론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각각 ‘10만인 클럽’ ‘프레시앙’이라는 독특한 후원 구조를 운영하는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은 방문자 수의 증가가 수입 구조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매달 1만원 정도를 정기적으로 내는 회원이 오마이뉴스는 4800여 명, 프레시안은 2000여 명에 달하는데 두 매체 측은 이 덕분에 적자 폭을 상당히 줄이거나 약간의 흑자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프레시안)고 설명한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는 나아가 “광고 시장이 대폭 줄어든 현실에서 인터넷 언론은 이제 ‘유료 독자’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본다. 쇼핑몰, 출판, 학교 등 다양한 사업을 해봤지만 대부분 실패하거나 근본적인 방안이 못 되었다. 대기업의 눈치, 포털의 눈치, 심지어 대중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유료 독자가 중심이 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라며 단순히 하나의 생존수단이 아니라 ‘사활’이 걸린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정부의 조직적 개입 있었나

광고 매출의 급감과 관련해 진보 언론은 모두가 겪는 경제위기 외에도 ‘그 못지않은’ 또 하나의 강력한 ‘외풍’ 때문에 고통이 더욱더 크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가 그것이다.

이는 우선 수치상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 일간지 가운데 조·중·동의 중앙 부처 광고점유율은 2007년 36.1%에서 2008년 49.1%로 급증한 반면, 한겨레·경향은 23.2%에서 10.6%로 대폭 하락했다. 광고 건수로 봐도 조·중·동은 각각 27건, 13건, 31건이 증가했지만, 한겨레와 경향은 각각 9건, 2건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인터넷 언론은 상황이 더 열악해서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의 경우 2년째 0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매체 성향에 따른 차별임이 분명한 것은, 인터넷 언론 전체에서 부동의 1, 2위를 고수하는 매체는 0인 데 반해 뉴데일리, 데일리안, 아우어뉴스 등 10위권 밖의 보수 매체는 지난해 수천만원씩 광고를 수주했기 때문이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가장 영향력이 큰 인터넷 언론을 제치고 다른 곳에 광고를 주는 게 과연 대통령의 시장주의인가. 명백한 시장경제 질서 위반 아닌가”라고 꼬집는다.

그러나 수치상으로 드러난 하락폭은 오히려 작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진보 언론 측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사기업에까지 정권의 의도적·조직적 개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황이다.

뚜렷한 물증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서 쏟아지는 증언에 따르면 분명히 ‘실체’가 있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촛불의 퇴각과 함께 진보 언론의 위기도 깊어졌다. 지난해 한 집회에서 한겨레 기자가 연행되는 모습.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시사IN〉과 인터뷰에서 “소관 부처에서 어느 날 전화가 와서 한 진보 언론을 거명하며 ‘꼭 그 매체에 광고를 실어야 하냐’고 추궁하더라. 하지만 다른 일간지와 경제지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류형열 언론노조 경향신문 지부장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부장이 되기 직전 산업부에서 근무했는데, 정부 쪽에서 한 기업에 ‘경향신문에 집행한 광고 현황을 알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 또, 거대 조직의 임원이 술자리에서 ‘논조를 바꾸면 광고를 주겠다’고 얘기해 항의한 적도 있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 바 있다.

일부 진보 언론은 이 문제를 심층 취재해 상당 부분 사실관계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한 언론은 청와대 한 인사가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어떤 직·간접적인 ‘압력’을 넣었는지도 확인했고, 이에 공식적인 시정 조처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전면전’은 피하자?

그런데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다. 실상을 알아냈는데, 왜 정작 기사로는 나오지 않았던 것일까? ‘심층취재-이명박 정부의 비판언론 탄압 실상’이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가 실려도 벌써 실렸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와의 향후 관계 설정과 관련한, 진보 언론 측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진보 언론 관계자의 말이다.

“기사를 내보내면 이는 사실상 정권과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이 경우 앞으로 임기가 3년이 넘게 남았는데 계속 이전처럼 대결적 관계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광고도 완전 끝이라고 봐야 한다. 찔끔찔끔이지만 그나마 있던 광고조차 사라질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기업도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구나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바에 따르면 정권 측에서 광고 집행 등과 관련해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한다. 진보 언론으로서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좀 더 신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의 불안정성에서 벗어나 지지율을 회복하고 중도 실용과 화해·통합 노선을 강조하는 등 뭔가 ‘여유’를 찾아가는 분위기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 언론과도 조금이나마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없지 않다.

한 인터넷 진보 언론 기자는 “어떤 거래를 요구하면 어렵겠지만, 요즘 분위기를 보면 공기업 광고 같은 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라고 기대를 드러낸다. 이동현 경향 사원주주회장은 “사실 사퇴한 이영만 사장이 지난해 6월 선출된 데는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 회복에 대한 직원들의 바람이 크게 작용했다. 실제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광고 문제 같은 것은 서로 좀 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지난해 9월 창간 1주년을 맞아 진보 언론 관계자를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했다.

때마침 최근 삼성이 2007년 10월 ‘비자금 의혹’ 폭로 이후 무려 2년여 만에 한겨레와 경향에 광고를 실었다는 소식이다. 지난 9월8일자 신문에 국제기능올림픽 종합우승을 축하하는 전면 광고를 낸 것이다. 삼성 측은 이에 “국가적 경사라는 측면에서 ‘일회성’으로 낸 것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하지만, 한겨레와 경향에서는 삼성이 광고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17%로 워낙 컸기 때문에 긍정적인 신호로 읽는 분위기도 있다. 이렇듯 진보 언론은 ‘진보’적 정체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언론 기업’이기도 하다. 이 세계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다.

‘독립 언론’의 로망은 언제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이 정부든 대기업이든 진보 언론의 생존을 쥐고 흔드는 세력의 입김에서 벗어나, 진보 언론의 진정한 로망인 ‘독립 언론’을 향한 열망 또한 커져가는 게 사실이다. 물론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유료 독자 구조를 통해 이를 실현하겠다고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일 뿐이고, 수백억원대의 매출 규모와 광고 의존도가 80%를 넘는 일간지들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계산이 잘 안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중심이 되어 제안한 프레스 펀드 조성이라든가, 구독료 소득공제, 저소득층 신문 무료 지원, 신문원가와 구독료 차액 지원 같은 대안을 만약 지난 민주 정부 10년 사이에 추진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조·중·동의 반발이 거셌겠지만, 미디어 평론가 백병규씨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참조하면 완전히 절망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민주 정부와 진보 언론들은 조·중·동과 각을 세우는 데 급급했지 자사의 생존과 미디어 산업 발전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반면 보수 언론은 계속해서 방송 진출을 노리며 신문·방송 겸영 금지 해제 등에 대한 여론화에 힘썼는데, 지금 와서 봤을 때 과연 이걸 막는 것만이 상책이었나 싶다. 차라리 보도 전문 채널 같은 건 길을 터주면서 진보 언론도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을 보장받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제 지금 같은 ‘반동의 시기’에서는 어떤 대안을 내놓아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좋은 기회를 다 놓친 것이다.”

정치 권력과의 관계 신중해야

물론 이는 어떤 신문들처럼 ‘권력’에 붙어서 한몫 단단히 챙겼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보다는 미디어 산업 발전에 관한 사회 논의가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진보 언론들은 지난 10년 동안 권력과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지는 않았는지 냉철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보 언론이 곧 독립 언론은 아니다. 지나친 진영 논리, 일부 정치세력과 운동가들의 주장만을 뒤따라가는 보도 행태, 정권과 특정 언론의 유착, 진보 언론 기자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 참모로 들어가는 모습 등은 ‘고립’을 심화시키기에 충분했다”라고 비판하는 건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원치 않는 정권의 탄생이었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5년은 역으로 진보 언론에 많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 같다. 지금 또는 과거의 조·중·동과 ‘우리’는 정말 얼마나 다른가? 그들에게 가한 비판으로부터 ‘우리’는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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