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한 감회가 남다를 텐데….
겉으로만 보면 ‘저자 동의 없이 교과서를 마음대로 고쳐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다. 하지만 판결문 속에 깔린 정신은 교과서 검인정 제도의 취지를 사법부가 잘 이해하고 방패막이 구실을 해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법원에 임의로 고친 교과서 내용을 제출했고, 교과부의 수정지시 사항도 제출했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재판부가 교과서 수정 파문의 심각성을 잘 아는 것으로 판단됐다. 교과서 내용은 저자의 학문적 성과와 교육적 고려에 따라 다뤄야지 그 밖의 다른 정치적 요인에 따라 바꾸면 안 된다는 검인정 제도의 취지를 재판부가 십분 인정하고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본다. 교과서 수정 지시 파문으로 다른 교과서 집필자들까지 본의 아니게 자기 검열을 하는 등 위축될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그분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본인도 모르게 수정된 교과서를 보고 저자로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몇 개는 단순한 표현의 차이도 있었지만 하도 급히 바꾸느라 문장 연결도 부자연스럽고, 내용도 조잡스러운 대목이 많았다. 내가 쓰지도 않은 내용에 내 이름을 달고 나온 교과서를 보고 불쾌한 기분을 넘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사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교과부를 상대로 수정지시 취소 처분을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번에 승소한 소송과 교과부 상대 행정소송은 본질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에는 출판사가 저자의 동의 없이 교과서를 수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판결을 받았는데, 나머지 행정소송은 교과부가 그렇게 정치적으로 교과서를 수정하라고 지시한 것도 부당하다는 판결을 구하는 것이니까 두 소송은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교과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문제의 교과서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한다.
사회 각계는 물론 역사학계, 법원에서까지 교과부의 일방적인 교과서 수정 지시가 부적절하다고 규정하지 않는가. 지금이라도 교과부는 검정제도의 취지로 돌아가 저자들과 상관 없이 고친 교과서를 저자 의견에 따라 재수정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해마다 교과서는 수정하는 관례가 있고, 법원 판결까지 나왔는데 뭘 주저하겠다는 것인가. 여전히 교과부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끌고 가려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