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북한이 직면한 대내외적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처를 단시간 내에 집중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과가 있었는가? 무엇보다 김정일의 건강 이상으로 금이 간 ‘수령 영도체제’를 공고히 하는 대내적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지난 7월 말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1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도 보았듯이 북한 문제는 이제 미·중의 G2가 협의·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북한은 과거 10년 동안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라는 두 가지 통로를 활용한 생존전략을 북·미·중 3자 중심의 구도로 전환하면서 남북관계를 보조 수단으로 하려는 전략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12·1 조처를 전면 해제한 까닭
현정은 회장의 방북과 억류 근로자의 석방, 그리고 5개항 합의로 남북관계가 풀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다음 날 북한은 즉각 조의를 표명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 인사인 김기남 비서를 단장으로 한 고위급 ‘특사조의방문단’을 파견했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각별한 조의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남북관계의 국면 전환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사조문단 방문 기간 중에 쏠린 내외의 관심을 정부도 외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고위급 특사조문단의 서울 방문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작지 않다. 북한이 전술적 유연성을 보이는 것이든, 강경 공세 후 숨고르기이든 북한이 남북관계의 개선을 원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접촉과 대화가 활발해지는 양상을 보일 것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정부가 어떤 태도와 전략으로 임하는가이다. 앞으로도 북한은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우리 정부의 견해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북한이 회담 테이블에서 되묻기 전에 정부가 ‘이들 합의를 존중하고 남북이 협의하여 이행하자’는 입장을 밝혔으면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계속 우회하지 말고 정면 돌파하는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우리 정부 나름의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용주의 대북정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안한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고위급 대화’를 조건 없이 추진해 남북 간 제반 현안 문제를 협의하고 핵문제 해결의 진전 상황에 맞게 이행해나가도록 합의하는 것이다. 정부는 실용주의 대북정책의 진면목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북·미·중 3자 구도가 아니라 우리가 중심에 서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구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도 더 이상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