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물이 수돗물보다 탁하다니…
  • 김은남 기자
  • 호수 101
  • 승인 2009.08.1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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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체험 ‘끊고 살아보기’ 8탄 -페트병 생수 ② 생수 대신 뭘 마시지?
지난주 첫 기사가 나간 뒤 몇몇 독자가 이런 질문을 주셨다. “그래서 대안이 뭔데?” 내 고민도 그거다. 그런데 머리 굴려봐야 방법이 없다. 수돗물을 마실밖에. 아, 수돗물. 잠시 고민에 빠진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생수는 아니다’ 결단을 내렸건만, 수돗물을 마시려니 왜 이렇게 심란해지는 거지? 돌아보니 나만이 아니다. 서울시가 최근 조사한 걸 보니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수돗물을 못 마시겠다는 사람이 가장 많다. 그 다음이 ‘물탱크나 낡은 수도관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냄새 등 물맛이 없어서’다. 이거 완전 내 마음이잖아?

그래서 결심했다. 수돗물을 과연 믿어도 되는 건지 직접 알아보기로. 그 결과 내린 결론이 이렇다. 수돗물에 관한 한 서울시민인 나는 복받은 편이다. 우선 수돗물 수질검사 정보를 인터넷(arisu.seoul.go.kr)에서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다. 서울시내 6개 정수센터 중 우리 집과 가까운 영등포정수센터를 클릭하니 바로 두 시간 전 수질검사 정보가 화면에 뜬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국내 수돗물 기준은 생수보다 더 엄격하다”라고 말한다. 생수는 47개 기준만 통과하면 되지만 수돗물은 염소 기준치 등이 추가돼 57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서울은 이 기준이 더 까다로워 145개다). 환경부나 서울시 공무원 아닌 환경운동가가 이런 얘기를 하니 좀 새롭다.

단, 지방 몇 곳은 사정이 다르다. 지난봄 미국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다. 시판되는 분유 대부분에서 로켓 연료로 사용된다는 퍼크로레이트라는 물질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그때 재미 병리학자인 황윤엽씨가 포스팅한 글을 보고, 나는 수돗물에서도 이 성분이 검출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부 정책포털(korea.kr)에서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고는 더 놀랐다. 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 퍼크로레이트가 상당히 높은 농도로 검출됐기 때문이다. 황윤엽씨 말마따나, 좋은 수돗물 마시려면 시민들이 깨어 자기 동네 단체장을 밀착 감시·견제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받아본 수돗물 수질검사 결과는 양호한 편이었다.
수돗물 수질, 지역 간 편차 있어

다음 문제는 수도관이다. 수돗물이 아무리 깨끗하면 뭐 하나? 수도관이 낡으면 허사다. 더구나 우리 집은 지은 지 20년 된 아파트. 고민하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무료 수질검사를 해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백건대 기자라는 족속은 실용 정보에 취약하다). 홈페이지(water.seoul.go.kr)에 나와 있는 관할 사업본부에 전화를 걸어 수질검사를 신청하니 사흘 뒤 퇴근시간에 맞춰 검사원이 왔다. 우리 집과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사는 어머니 집 검사를 함께 했다. 검사 자체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수도꼭지에서 받은 수돗물에 특정 시료를 넣을 때마다 색깔이 변했다. 레몬빛으로 변한 건 철 성분, 연분홍색은 잔류 염소량, 초록색은 산도를 측정하는 거란다. 검출된 성분이 모두 기준치 이하다.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수도관 상태가 양호하다”라고 검사원이 말했다.

그때 눈에 띈 게 어머니 집 정수기. 호기심이 생겨 정수기 물도 검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비공식으로 해주겠단다. 자칫하면 정수기 업체에서 항의가 들어온다고. 검사 결과, 이럴 수가. 염소량이나 산도는 괜찮은데 문제는 탁도다. 정수기 물 탁도가 0.44NTU로 수돗물(0.30NTU)보다 오히려 높게 나왔다. 기준치(0.5NTU) 아래라지만 찜찜하다. 필터를 오랫동안 교체하지 않았거나 정수기 내부를 청소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검사원이 설명한다. 이유가 무엇이건 허탈한 건 허탈한 거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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