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인도네시아의 한 팜유 농장에서 작업자들이 갓 수확한 팜나무 열매를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EPA
2022년 5월 인도네시아의 한 팜유 농장에서 작업자들이 갓 수확한 팜나무 열매를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EPA

팜유는 공기 같은 존재다.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분유, 마가린, 비누, 치약, 화장품 등 기름이 필요한 가공제품에 빠지지 않는 원료다. 팜나무가 자라지 않는 한국에서도 일상생활 곳곳에 팜유가 들어와 있다. 수입 팜유가 들어간 제품을 먹고 쓰지 않고서 우리는 하루도 버틸 수 없다.

2022년 4월 뉴스를 보자.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세계경제에 충격을 안겼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팜유, 해바라기씨유 등 식물성 기름 가격이 치솟으면서 자국 내 수요도 충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자국 내 팜유 가격 안정을 위해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이 수출 중단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후 팜유 값이 떨어진 데다 관련 업계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은 한 달 만에 재개됐다.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팜유 하나 때문에 자칫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식량 파동’이 일어날 뻔한 순간이었다. 팜유는 전 세계 식물성 기름 소비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필수재’다.

팜유는 팜나무에서 자란 열매를 압착해 추출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팜유와 야자유가 같은 기름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은 엄연히 다르다. 야자유는 우리가 익히 아는 코코넛 열매에서 추출한 기름이고, 팜유는 팜나무 열매로부터 얻는다. 코코넛과 달리 국내에서 팜나무 열매를 볼 일은 거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 기준’에도 둘은 명확히 구분돼 있다.

팜유가 우리 일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높은 경제성 때문이다. 해바라기씨, 유채 등과 비교해 약 4배 이상의 생산성을 보인다. 같은 면적에서 재배하더라도 더 많은 기름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도 잘 산화되지 않아 보관에도 유리하다. 발연점이 높아 튀긴 음식, 특히 라면 제조에 많이 쓰인다. 현대인의 기름진 식생활에 팜유가 큰 구실을 했다. 열매 껍질은 연료로 쓰이고 타고 남은 재는 비료가 된다. 싸고, 보관이 용이하고, 쓰임새가 다양하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팜유’다.

그 결과 팜유의 생산량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1970년만 해도 세계 팜유 생산량은 200만t 정도였으나 2020년에는 7600만t으로 40배 가까이 늘었다(그림 참조). 팜유가 잘 자라는 적도 부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각각 생산량의 59%, 25%를 차지한다. 이처럼 전 세계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팜유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2001~2015년 사이 대한민국 면적에 맞먹는 1000만ha가 팜유 플랜테이션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1초마다 열대우림 211㎡(약 64평)가 사라졌다. 물론 그 피해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집중됐다. 팜유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국내 언론에도 인도네시아 등의 환경파괴 논란이 잇따라 보도됐다.

팜유의 운명을 좌우하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기후위기 대응 때문이다. 유럽연합을 필두로, 팜유를 화석연료의 대체재 혹은 첨가제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팜유 소비량이 급증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 이른바 ‘바이오연료’다.

바이오연료는 식물, 동물 등 자연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말한다. 세세하게 들어가면 복잡한데, 팜나무 열매·콩·볏짚·나무·배설물·폐식용유 등이 일정한 처리 과정을 거쳐 열과 전기를 생산하는 원료가 되는 것이다. 자동차의 휘발유나 경유에 섞어 쓰거나 화력발전소에서 석유 대신 쓸 수 있다.

바이오연료용 팜유 수입량, 식품용보다 많아

경유와 휘발유 자동차에 쓰는 원료는 각각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이라 부른다. 화력발전소에서 쓰는 원료는 바이오중유다. 자동차 등 내연기관에 100% 바이오연료를 쓰기에는 에너지 효율 등에 기술적 한계가 있어서 일정 비율을 화석연료와 섞어 쓰고 있다. 바이오중유 발전소는 제주도에서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 바이오연료의 주된 사용처는 경유차와 화력발전소다. 경유차와 화력발전소에 쓰이는 주된 원료가 바로 팜유다. 바이오연료의 장점은 탄소 배출이 적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친환경 바이오연료 확대 방안’에 따르면, 바이오연료는 ‘석유제품과 화학적으로 유사하며, 기존 내연기관·인프라의 구조변경 없이 사용 가능한 친환경 연료’다.

국내에서는 2012년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를 시행하면서 바이오연료용 팜유 수입이 급증했다. 2015년 이후부터는 식품용 수입량을 넘어설 정도다. 현재 경유차의 경우 의무적으로 바이오디젤 연료 3.5%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가 주유소에서 구매하는 경유에 이미 팜유로 만든 연료가 3.5% 들어 있다는 이야기다. 2030년까지 바이오디젤 비율을 5%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환경부는 2021년 팜유 등 바이오연료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에 포함했다. 팜유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림청은 해외 농업·산림 자원 개발을 명분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 LX인터내셔널, 대상 등의 팜유 사업에 2020년까지 총 800억원 이상의 융자를 제공해왔다.

팜유는 정말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에너지원인가. 물론 바이오연료 자체가 화석연료에 비해 탄소와 오염물질 배출이 적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팜나무 농장을 짓기 위해 대규모 산림파괴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바이오연료 업계 등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농장 건설 과정에서 산림파괴가 일어나는 것은 맞지만, 이후 팜나무가 성장하면서 그만큼 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실제 탄소 배출량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탄소중립’ 이론이다. 언뜻 들어보면 그럴듯하지만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은 ‘이탄지(泥炭地)’에 있다. 이탄지는 나뭇잎 등 유기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못하고 퇴적된 늪지대로, 일반 산림에 비해 10배 이상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탄지를 가장 많이 품고 있는 나라다. 남한 면적보다 더 크다. 전 세계적 탄소 저감 노력에서 인도네시아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다.

열대림을 밀어내고 팜나무 농장을 건설하는 것은 이탄지가 품고 있던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다. 2018년 미국의 비영리단체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팜유는 온실 안의 코끼리(Palm oil is the elephant in the greenhouse)’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팜유 농장 개발로 2010년부터 매년 온실가스 약 5억t이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한국 연간 배출량의 70%에 해당하는 수치다.

‘토지이용변화(LUC)’라는 개념이 있다. 산림, 습지, 초지 같은 자연 지대가 농경지로 바뀌면서 발생하는 영향을 평가하는 잣대다. LUC를 고려하면 바이오연료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해진다. 2020년 영국 왕립학회 리포트 ‘바이오연료의 환경 지속가능성 리뷰(Environmental sustainability of biofuels: a review)’는 이탄지와 산림 지대에서 팜유로 만든 바이오디젤은 디젤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높을 수 있다고 밝혔다. LUC를 고려해 평가한 결과다. 팜유뿐만 아니다. 콩·유채·해바라기씨 등으로 만드는 바이오디젤 역시 화석연료 디젤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았다.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서 바이오연료의 가치에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하는 내용이다.

팜유 생산 과정에서 토지 강탈, 노동착취 같은 문제도 계속 불거졌다. 지역공동체와 팜유회사 간의 토지분쟁이 미해결된 사례가 인도네시아에서만 약 4000건이 쌓여 있다. 팜유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급여 미지급, 화학물질 살포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고발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2021년에는 국내 기업인 대상홀딩스가 지분 50%를 보유한 인도네시아 주식회사 신탕라야(PT Sintang Raya)가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국제 인권단체의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신탕라야가 팜유 농장을 세우면서 주민들과 협의 없이 땅을 수용했으며, 인도네시아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후속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시사IN〉 제735호 ‘ESG 외치던 대상, 국제단체가 인권침해 지적했다’ https://www.sisain.co.kr/45752 기사 참조).

산림의날인 3월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팜유 사용이 지구를 뜨겁게 하고 있다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김흥구

이처럼 팜유 생산지에서 환경과 인권 이슈가 계속 불거지자 팜유 업체는 ‘팜유 인증제’를 들고나왔다. 지속가능한 팜유를 생산하고 사용하겠다는 약속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속가능한 팜유생산 협의회(RSPO)’의 인증제다. 산림청 등 국내 정부 부처에서 RSPO 설명서를 제작해 배포하고,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팜유 사업에 투자하는 국내 기업이 RSPO 인증을 받았다며 홍보할 만큼 국제적으로 공신력이 높은 제도다.

그러나 최근 이런 팜유인증제도가 실은 '그린워싱(친환경인 척 가장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국내에서도 제기됐다. 공익법센터 어필과 사단법인 기후솔루션은 ‘미션 실패:친환경 팜유 인증으로 가릴 수 없는 산림파괴’라는 보고서를 통해 팜유인증제의 문제점을 공론화했다.

산림파괴 후에도 친환경 인증 가능?

우선 RSPO는 팜유업계의 ‘자발적’ 인증제다. 세계자연기금(WWF) 같은 환경단체가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5447개 회원 중 99%가 관련 기업이다.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인증 과정의 심사와 각종 감사 역시 RSPO가 지정한 감사기관을 통해 이루어진다. RSPO에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감사기관이 제대로 된 감사를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다.

RSPO 사무국은 위반 사항을 발견해도 회원 자격을 정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고서는 RSPO 사무국이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접수된 141개 진정 중 49%를 기각했다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RSPO는 2005년 이전에 발생한 일차림(primary forest) 및 고보전가치(HCV) 지역 파괴나 2018년 이전에 발생한 고탄소저장(HCS) 산림, 이탄지 파괴 여부와 상관 없이 인증을 발급한다.

2001~2015년 사이 대한민국 면적에 맞먹는 1000만㏊가 팜유 농장으로 바뀌었다. 위는 인도네시아 수불루살람의 숲이 팜유 농장으로 개간되고 있는 모습. ⓒEPA
2001~2015년 사이 대한민국 면적에 맞먹는 1000만㏊가 팜유 농장으로 바뀌었다. 위는 인도네시아 수불루살람의 숲이 팜유 농장으로 개간되고 있는 모습. ⓒEPA

특히 ‘개선 및 보상 절차(RaCP)’라는 조항은 눈속임에 가깝다. 인증을 받고자 하는 기업이 2005년 또는 2018년 이후에 보전 대상 지역을 파괴했어도 나중에 복구하겠다는 약속만 하면 인증을 획득할 수 있다. 사실상 ‘선(先)산림파괴 후(後)인증’ 제도다. 친환경 팜유 인증제가 ‘산림파괴 면죄부’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팜유의 ‘그린워싱’ 문제를 취재하던 중 의미심장한 뉴스가 들려왔다. 유럽의회가 4월19일 ‘산림 벌채 및 황폐화 연계 상품의 수출입에 관한 규정(EUDR)'을 통과시켰다는 내용이다. 법안은 팜유, 커피, 콩, 목재 등을 유럽 시장에 판매할 경우 해당 제품이 산림파괴를 통해 생산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도록 했다. 산림파괴를 막기 위한 세계 최초의 무역 조치다. 앞으로 관련 기업은 생산지 위치, 인권 보호, 부패방지법 등에 관한 정보를 포함한 ‘실사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벌금 등을 부과받게 된다.

유럽의 움직임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지난해 초 유럽연합은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을 발표하면서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환경 및 인권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기업에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요구하기로 했다. 이번에 발표된 산림 벌채 규제 조항은 그 후속조치라고 봐야 한다. 팜유, 목재 등을 수출하는 당사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반발하는 가운데 유럽연합이 산림 규제 조항을 끝내 통과시켰다. 미국에서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유럽과 유사한 ‘미국 산림법’ 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국내 기업이 팜유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데다 향후 이 조치가 팜원유뿐 아니라, 팜유를 사용해 만든 제품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규제 품목이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유럽연합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다. 바이오연료의 ‘그린워싱’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현실화한 가운데 한국은 아무런 대비책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월11일 한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수립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는 ‘바이오’라는 단어가 49차례나 언급된다. 2021년 7.5%에 불과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1.6%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한국 정부의 야심찬 계획에 말 많고 탈 많은 바이오연료가 자리잡고 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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