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법치(法治)를 말한다. 법치는 이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용훈 대법원장·김경한 법무장관·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는 물론 극우·보수 단체도 법치 확립을 외친다. 이명박 정부의 법치는 국민의 헌법적 자유와 권리 보호라기보다는 ‘공권력의 엄격한 시행’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권력의 구실이 확대되었지만 국가기관의 신뢰와 권위는 추락하고 있다. 〈시사IN〉 조사 결과 국가기관은 불신의 대상이었다. 신뢰도는 4~5점대(전혀 신뢰하지 않으면 0점, 매우 신뢰하면 10점)로 낮았다.
 

2009년 5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용산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이 용산 참사 수사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검찰을 불신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법원은 믿어왔다. 하지만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5.52점)와 대법원(5.35점)의 신뢰도는 낙제점이었다.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도는 60세 이상(5.91점), 대구·경북(5.99점), 학생(5.74점) 층에서만 약간 높은 신뢰를 보였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으로 법률과 양심 이외에 인사권자의 출세욕에 따라 판결이 영향받았다는 점이 법원 신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재판부의 성향에 의해 판결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국민을 더욱 실망스럽게 만들었다.

법원의 신뢰도는 지속으로 하락하는 형편이다. 한국행정학회 조사에 따르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1996년 70%에서 2003년 58%, 2007년에는 48%로 떨어졌다. 한 현직 판사는 “담당 판사를 석궁으로 테러한 사건과 신영철 대법관 파동을 거치면서 법원에 대한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법정에서 막말을 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법원에 비해 감사원·국가정보원·국세청·경찰·검찰 등 사정·권력기관의 신뢰도는 모두 4점대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법의 최고 집행기관인 검찰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국민 47.1%가 검찰을 불신한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 불신받는 조직은 경찰(46.2%), 국세청(41.9%), 국가정보원(36.8%) 순이었다. 검찰에 대한 신뢰는 한나라당 지지자(5.21점), 대구·경북(4.78점) 층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지만 수치의 차는 크지 않았다. 검찰은 민주당 지지자는 물론이고 자유선진당 지지자(3.79점)와 친박연대 지지자(3.25점)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강희락 경찰청장.

 

법원마저 신뢰도 추락하니…
검찰이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주요 기관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1위에는 시민단체(21.6%)가 꼽혔고, 검찰(3.2%)은 꼴찌였다. 검찰은 언론(8.5%), 종교단체(8.1%), 법원(8.0%), 국회(6.3%), 군대(3.4%)보다 낮은 신뢰도를 보였다.

선진국에서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2005년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미국인(1001명)을 상대로 ‘신뢰하는 자국의 공공기관과 조직을 꼽으라’는 질문(복수 응답)을 던졌다. 미국인의 경우 군대가 81%로 1위를 차지했고, 병원(80%)이 2위였다. 3위가 경찰·검찰(72%)이었다. 그 다음 교회(70%), 학교(69%) 등이 뒤를 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법의 날 기념식에서 “법치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기 전에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을 다루는 검찰의 신뢰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첫 번째 이유는 검찰의 공정성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불신의 시대를 바로잡아야 할 검찰의 잣대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총장에 내정됐다 낙마한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

검사들은 BBK 수사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불리한 증거는 거의 무시했고, KBS 사장 등 공기업 사장을 교체하기 위해 전방위 수사를 벌여 구속영장을 남발했다. 광우병 파동, 용산 참사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국면마다 검찰이 청와대 앞에 나서 정리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박연차 로비’ 수사에서 검찰은 죽은 권력 주변은 모두 죽이고, 산 권력 주변은 거의 건드리지도 못했다. ‘정치 검찰’이라는 단어가 부활했다.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은 “출세하려고 생사람을 잡는 검사들의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누가 검찰 말을 믿겠는가”라고 말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전체 사건의 1%도 안 되는 정치 사건 때문에 오해를 사고 있다. ‘주구’라고 불릴 만한 출세에 눈이 먼 검사 몇 명이 검찰을 불신의 수렁에 빠뜨린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참여정부에서 대선자금 수사 때는 검사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 검사 개개인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기보다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검사의 도덕성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하차한 데 이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스폰서와 거짓말 등 도덕성 문제로 낙마하면서 검찰 신뢰도가 크게 훼손됐다. 여기에 도덕성을 최우선 덕목으로 고르고 골랐다는 김준규 후보자조차 자고 나면 의혹이 하나씩 터져나온다. 1992년과 1997년 두 차례 위장전입, 5억원짜리 무기명 채권 증여 과정에서 세금을 한 푼도 안 낸 점, 배우자와 이중 소득공제로 소득세법 위반, 근무 시간에 미스코리아 대회 심사위원장으로 활약, 수천만원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해 매년 500만원씩 공제, 승마·요트 등 귀족 검사 논란 등…. 한 중견 건설업체 사장은 “검사들이 자기 돈으로 골프 치고 룸살롱 가는가? 다 우리같이 사업하는 사람 돈이다. 천성관 사태로 검사들의 스폰서비가 크게 오른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스폰서 도움 받는 검사는 극히 일부”

한 검사는 “청문회에서 부끄러운 처신은 물론이고 10초 후면 탄로 날 거짓말을 하는 총장 후보를 보면서 검사로서 정말 창피했다. 이제 사람들은 모든 검사들이 스폰서가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 부장검사는 “출세 지상주의에 젖은 일부 검사가 스폰서의 도움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신뢰도 또한 바닥이다. 최근 검찰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도 국민이 경찰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촛불 과잉 진압·용산 참사·장자연씨 수사·쌍용차 노동자 진압 등 사회적 고비마다 경찰은 인권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또 강남 한 파출소의 뇌물상납 관행에서 경찰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경찰 고위 간부는 “무릎 꿇린 노동자를 짓밟고 곤봉으로 때리는 현실에서 국민에게 신뢰받고 수사권을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경찰 수뇌부가 국민보다 청와대만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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