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어떤 동네를 가더라도 커리를 파는 음식점을 볼 수 있다. ⓒ김세정 제공

백인을 제외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인종은 아시안이다. 한국에서 아시안이라고 말하면 한국·중국·일본 등을 떠올리겠지만 영국에서 아시안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온 사람들을 말한다. 2018년 영국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출신, 즉 본인이 인도에서 태어났거나 부모가 인도인인 사람은 영국 전체 인구의 2.5%인 140만명 정도다. 파키스탄 출신은 2%, 110만명에 달한다. 방글라데시 출신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이는 영국이 위 지역을 식민 지배했던 데서 연유한다. 대영제국은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인도를 직접 지배했다. 인도가 독립했을 때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으로 나뉘는데 서파키스탄이 오늘날의 파키스탄이다. 동파키스탄은 1971년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식민 지배 이전 영국인들이 동인도회사 등을 이용해 인도에 진출한 것은 1600년쯤이다. 이후 인도, 즉 무굴제국의 음식들은 영국인의 식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업 등의 이유로 인도에 살면서 현지 음식을 접할 수 있었고 인도에서 살다가 거기서 고용한 요리사를 데리고 귀국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홍차도 이 시기에 인도를 거쳐 등장한 것이다. 수많은 향신료들 역시 이 경로로 영국에 등장했다.

그중 커리(카레)는 인도와 영국의 식생활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커리는 인도의 대표선수 격인 음식이지만 영국의 어떤 동네를 가더라도 커리를 필두로 한 아시안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외국 문물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도 요리’가 유행했다. 그러다가 대중화하면서 점점 영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인도에서 살아보지 않은 다수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추어 변화하고 발전해 더욱 널리 사랑을 받게 되었다.

강황, 생강, 케첩 같은 아시아에서 온 재료와 그를 이용한 음식들, 특히 ‘인도식 커리’ 레시피는 1746년 출판된 요리책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 1810년에는 영국의 첫 번째 인도 식당인 ‘힌두스탄 커피하우스’가 런던에 생겼다. 1893년 발표된 아서 코난 도일의 〈해군 조약문(The Adventure of the Naval Treaty)〉에서 밤새 문제를 해결하고 온 홈스가 아침 8시에 먹는 음식은 심지어 커리로 양념한 닭요리다. 해당 부분의 묘사는 아래와 같다.

…테이블이 차려지고, 내가 종을 울리려는 참에 허드슨 부인이 차와 커피를 내왔다. 몇 분 후 그녀는 3인분의 식사를 가져왔고 우리는 식탁에 앉았다. 홈스는 엄청나게 배가 고픈 상태였고,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고 펠프스는 몹시 우울한 상태였다. “허드슨 부인은 이것 때문에 일어났네”라고 커리로 양념된 닭고기 요리의 뚜껑을 열며 홈스가 말했다. “부인의 요리는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스코틀랜드 여성답게 아침을 챙기지. 자네는 뭔가, 왓슨?” “햄과 계란.” 내가 대답했다. “좋아! 펠프스 씨, 자네는 뭘 먹나? 커리 양념의 새 요리인가 아니면 계란인가, 아니면 알아서 먹을 텐가?”

치킨 티카 마살라는 영국 제국주의 역사의 흔적이 담긴 음식이다. ⓒ김세정 제공

이민자가 발명했다는 설도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커리라고 말할 수 있는 ‘치킨 티카 마살라(Chicken Tikka Masala)’의 경우는 아예 영국에서 개발 내지 발전된 요리라는 주장이 대세다. 뼈 없는 닭고기와 진한 토마토소스를 주재료로 하는 부드럽고 새콤한 맛의 이 커리에 관해서는 런던에 많이 살던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1960년대쯤에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설과 글래스고의 한 파키스탄 출신 요리사가 발명했다는 설이 있다. 두 번째 설에 따르면 닭고기 커리가 뻑뻑하다는 손님들의 요청에 토마토수프 통조림을 이용해서 소스를 만들어 부어준 것이 치킨 티카 마살라의 시작이다. 즉 고기를 먹을 때 그레이비를 부어 먹는 영국인들의 취향 또는 습관을 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치킨 티카 마살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탄두리 치킨이 필요하다. ‘티카’라는 말이 조각이라는 뜻인 만큼 뼈와 껍질을 제거한 닭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먼저 소금과 레몬즙을 고루 입히고, ‘마살라’ 즉 양념에 버무려 반나절 이상 재워둔다. 마살라는 마늘·생강·고추·크림이나 요거트(요구르트)에 회향·월계수잎·후추·정향·계피·쿠민·고춧가루 등등을 넣고 갈아 만든 건조 양념 믹스인 가람 마살라를 섞어 만든다. 산성인 마살라에 재우는 동안 고기의 근육이 끊어져 부드럽게 되는 것이다. 맛이 배어드는 건 덤이다. 양념이 밴 고기를 꼬치에 꿰어 오븐(원래는 화덕 즉 ‘탄두르’)에 굽는다.

치킨을 마련해두는 사이 소스를 만든다. 프라이팬에 우선 양파와 생강·마늘·고수씨 가루·강황·고춧가루를 넣고 볶은 후 요거트를 조금씩 부어 섞는다. 여기에 토마토를 넣고 물러지면 육수와 소금을 조금 넣고 뚜껑을 덮어 약한 불에 15~20분 정도 끓인다. 입맛에 맞게 가람 마살라와 고수 잎 다진 것을 넣을 수도 있다. 완성된 소스에 준비된 고기를 섞은 다음 내놓는다.

치킨 티카 마살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영국의 국민 음식에 해당한다. 일견 외국 음식처럼 느껴지지만 본고장의 음식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변형·발전했고, 일상에 스며들어 한동안 먹지 않으면 생각나는 음식이다. 한국으로 치면 짜장면 격이랄까.

또한 영국의 제국주의를 포함한 역사 혹은 다문화적(multi-cultural)인 면을 볼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 이민자가 많은 런던 동부 지역, 즉 브릭레인이나 쇼디치, 파키스탄 이민자가 많은 버밍엄의 소위 볼티 트라이앵글 지역, 브래드퍼드, 인도 이민자가 많은 레스터 등이 ‘인도 음식점’으로 특별히 유명한 지역들이지만 앞서도 적었듯이 인도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은 영국의 어느 지역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마치 한국의 ‘중화반점’과 같다. 포장 위주의 간이음식점도, 고급 ‘요릿집’도 있다는 점 역시 유사하다 하겠다. 크고 작은 마켓에서는 병에 담긴 커리 소스나 레디 밀, 즉 데우기만 하면 되는 아시안 음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치킨 티카 마살라를 포함한 영국식 아시안 음식을 영국의 전통 음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커리는 코티지 내지 셰퍼드 파이와는 다른 것이다. 끝까지 짜장면 취급을 받는 음식이랄까. 큰 무리 없이 이방인과 섞여 살지만 끝까지 포함해주지는 않는 영국 사회의 속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기자명 김세정(변호사)·최은주(이학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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