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훈(왼쪽)·홍은택(오른쪽) 카카오 각자대표가 2022년 10월19일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년 10월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은 전 국민이 피해를 본 사상 초유의 서비스 장애였다. 무려 3만2000여 대에 달하는 서버가 한꺼번에 중단됐고, 이후로는 기나긴 장애 복구의 시간이 이어졌다. 당초 카카오는 전원이 복구되기만 하면 2시간 이내에 서비스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 서비스들이 모두 정상화되는 데에는 일주일 가까이 소요됐다. 이 사태로 카카오 김범수 전 이사회 의장, SK C&C 최태원 회장, 네이버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모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섰다. 주요 논점은 카카오 장애 복구의 원인과 책임이었다. 지루한 질의 공방에서 김범수 전 의장은 사과의 뜻을 전하고 피해보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그가 ‘만전’을 기한 보상책은 얄팍한 수준이었다. 카카오 대리 유료 멤버십을 구매해 콜을 받는 대리 기사들은 ‘보상 포인트’로 4290원이 책정됐다. 카카오T 택시 프로 멤버십에 가입한 기사들이 받은 포인트는 7550원이었다. 가장 오랜 시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 다음 프리미엄 메일 이용자에게는 15일 치 서비스 무료 이용권이 지급됐다.

카카오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조건으로 대리 기사, 택시 기사들에게 월정액 유료 프로그램 가입을 권장한다. 멤버십에 가입할 경우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프로그램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경우 멤버십 가입비와 별도로 운행 수수료도 카카오가 가져간다. 사실상 카카오가 대리 기사와 택시 기사에게 각각 ‘보상’한다는 4290원과 7550원은 그들이 한 사람의 플랫폼 노동자로부터 챙겨가는 하루치 수수료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택시 기사나 대리 기사뿐만이 아니다. 카카오 배달을 통해 주문받는 소상공인이나 카카오톡 채널을 이용해 고객과 소통하는 소상공인들에 대한 보상 처우 결정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플랫폼이 중단되면서 생긴 피해 사례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책은 여전히 요원한 가운데, 2022년 11월24일 오전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는 페이스북에 포스팅 하나를 게시했다. 카카오가 매년 주최하는 ‘이프 카카오(if kakao)’ 콘퍼런스에서 카카오의 실책과 향후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2018년부터 이어져온 이프 카카오 콘퍼런스는 ‘카카오가 이렇게 한다면’이라는 뜻을 담아 미래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러나 이프 카카오 2022에서는 새로운 세션이 추가됐다. ‘만약 카카오가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의미를 담아 카카오에서 서비스 복구가 지연된 배경을 설명했다. ‘1015 장애 회고’라는 이름으로 준비된 발표들은 서비스 연속성을 위해 어떻게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는지 소개하는 기술 발표로 이루어졌다. 남궁훈 전 대표는 자신의 SNS에서 이 세션을 소개하는 포스팅에 ‘업계의 공동 성장’이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썼다.

“제가 알기로 우리와 같은 규모의 기업이 이러한 치부를 공개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중략) 하지만 ‘이프 카카오’의 취지가 업계와 함께 공동의 성장을 추구하는 데 주안점이 있는 만큼 그 공동의 성장을 향한 마음에는 두 가지 의역을 공존시키며, 두 가지 모두를 담아낼 때 우리의 진심이 더 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2022년 이프 카카오 행사는 업계의 공동 성장에 더욱 방점을 두어 카카오가 업계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시 새기는 기회로 삼고, 우리의 노력이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IT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행사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IT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누구나 서비스 장애의 가능성을 떠안고 산다. 그게 카카오나 네이버가 아니라 구글, 메타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기술적 이슈로 발생하는 것이든, 아니면 엔지니어가 작업 중에 실수한 휴먼 에러(Human error)이든, 아니면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때문이든 서비스 장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이번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서비스의 대규모 중단 사태 역시 그중 하나다. 그 피해 규모가 유례없이 큰 수준이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서비스 장애 자체에 대해선 그다지 논의하고 싶지 않다. 구체적으로 시스템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외부인보다 내부인이 훨씬 잘 알 것이고, 그로 인한 책임감과 괴로움도 결국 내부 인원의 몫이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서비스 장애가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태도다. 기업이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수습하는 태도에서 그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자세와 가치관이 드러난다. 남궁훈 전 대표는 한결같이 ‘공동 성장’이라 썼지만, 그의 포스팅에서 가시화된 대상은 IT 업계에 한정됐다. 카카오가 뿌리내리고 있는 수많은 산업과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는 누락되어 있다. 택시 기사, 대리 기사, 자영업자 등 카카오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 대한 논의는 배제된 것이다.

‘만약 카카오가 독식하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소란스러웠던 대규모 장애 이후 카카오가 만든 회고의 자리가 고작 이프 카카오였다는 사실은 솔직히 실망스럽다. 남궁훈 전 대표는 잘못된 서비스 설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다중화 시스템을 ‘치부’라 말했지만, 사실 이는 IT 업계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물론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보다는 4290원과 7550원, 그리고 소상공인들에게 아직 제대로 책정되지도 않은 보상이 카카오가 말하지 않는 진짜 치부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른 if를 묻고 있다. ‘만약 카카오가 다중화를 제대로 설계했다면’이 아니라 ‘만약 카카오가 독식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말이다. 2022년 5월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대리운전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결정했으며, 카카오 모빌리티와 티맵 모빌리티에 대한 사업 확장 제재를 권고한 바 있다. 대기업이 선진적인 기술력을 무기 삼아 돌격할 때, 속수무책 당하는 건 중소기업뿐만이 아니라 그 아래 계약된 개별 노동자들이기도 하다. 플랫폼은 이용자들에게는 일상의 편리를 돕는 순풍이지만, 해당 산업이나 생태계에는 파괴적으로 몰아치는 폭풍이다. 공동 성장은 IT 업계가 아니라 그들이 침투한 생태계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플랫폼 노동자가 된 모든 이들을 향한 단어여야 한다.

기자명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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