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우 감독(왼쪽)과 가수 이랑씨. ⓒ시사IN 신선영

 

‘밝고 희망찬’ 분위기는 어떤 모습이었어야 할까. 강상우 감독은 총연출을 수락했던 지난여름부터 지금까지 내내 ‘미래’라는 단어를 곱씹어보곤 한다. ‘높은 분들’이 생각하는 미래와 ‘내’가 고민했던 미래의 낙차와 간격에 대해서. 권력은 그 사이에 불쑥 끼어들어 검열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협의는 사라지고, 힘은 작동했다. “예산의 목줄을 쥔” 행정안전부에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하 재단)이 ‘알아서 엎드리면서’ 행안부와 재단은 한패가 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며 극우인사로부터 지목된 ‘제1광수’의 존재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2019)을 만든 강상우 감독은 지난 6월30일 재단으로부터 제43회 부마항쟁기념식 총연출을 제안받았다. “하고 싶거나,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일이라 고사하는 그에게 재단 관계자의 곡진한 설득이 이어졌다.

“부마민주항쟁 기념식도 다른 기념식과 마찬가지로 우려하시는 것처럼 어느 정도는 정형화된 틀이 가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통령실에서 기념식의 연출 방향에 대해 지시하거나 가이드를 내리지 않고 있으며 행정안전부 역시 재단의 행사 추진 과정에 특별한 지시나 개입을 내리지 않겠다는 지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통령실은 개입하지 않고 행안부-재단 간 중간보고를 통해 행사 당일 의전 문제 등만 상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43주년 부마항쟁기념식은 대통령실이나 행안부 등의 특별한 개입 없이 재단 주도로 준비될 예정입니다. 감독님께서 가지는 시각과 조언들이 기념식을 더 빛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 감독은 7월4일 총연출직을 승락했다. 연출을 맡으며 부마항쟁의 몰랐던 모습을 만났다. 유신독재의 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연대로 역사책에 기록된 부마항쟁의 ‘빛나는’ 모습 속에는 항쟁 이후 이야기가 가려져 있었다. 강 감독은 체포, 구금, 고문으로 이어진 항쟁 다음의 시간, 그리고 폭도라는 낙인과 무관심에 주목했다. 지금까지의 기념식이 부마항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번 기념식은 이를 잘 모르는 청년층에 알리는 것을 중점에 뒀다. 유신과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말 사이에 지워진 항쟁 참여자 개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섭외는 그러한 기획의도에 더할 나위없이 맞춤했다. 강 감독은 “이랑씨가 거절할 경우 대안이나 차선을 떠올리기 어려웠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2021)는 부마항쟁을 염두에 두고 쓴 노래가 아님에도, 1979년 당시 정치경제적 불평등과 이에 저항한 시민들이 일궈낸 항쟁의 상황을 놀라운 방식으로 환기시키는 노래였다. 해당 곡이 수록된 앨범은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상을 받았다. 8월4일 기념식 준비 회의에서 섭외가 공식 승인됐고, 8월9일 이랑씨도 이를 승낙했다. 재단 관계자는 8월19일 이랑씨에게 다음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약하고, 몫이 없는 사람들을 주목하면서 바로 지금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이랑님의 곡이 국가기념식에서 공연된다면 가장 공식적인 곳에서 가장 소외된 이야기를 전하는 귀중한 무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늑대가 나타났다’는 마치 부마민주항쟁의 당사자들이 겪었던 이야기인 것처럼 들리면서 동시에 현시대 사람들의 공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9월7일 행정안전부 담당자와 재단 실무진, 부산 및 창원시 관계자와 용역업체가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 해당 기획안은 다시 한 번 확정됐다. 상황이 갑자기 바뀐 것은 기념식에 VIP(윤석열 대통령) 참석 여부가 논의되면서부터였다. 강 감독은 재단 담당자로부터 ‘늑대가 나타났다’ 노랫말의 ‘늑대’가 VIP를 상징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부터, 기념식에 해당 가수를 제외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내용까지 전달 받았다. ‘외압’은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다. 재단 역시 당시까지는 그편에 서있었다. 9월22일 재단 담당자는 강 감독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낸다.

“행안부와 이랑님 출연건에 대해서는 더이상 협의를 하지 말라고 사무처장님이 말 해주셨습니다. 중간보고가 된 이상 밀고 가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행이 취소로 결정되는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9월24일 재단 관계자가 갑작스레 서울에 올라와 강 감독을 만났다. ‘늑대가 나타났다’를 기념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해당 입장은 9월26일 공식 통보됐다. 진현경 상임이사는 강 감독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예산의 목줄을 행안부에 맡기고 있다 보니, 저희가 그동안에도 저희 메시지를 관철할 수가 없었거든요. (이번에도) 행안부 윗선에서, 중간결재 라인에 있는 사람들한테 브레이크가 잡힌 것 같습니다. 연출의도가 행사를 통해 드러나야 하는데 이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 같아서 제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시사IN 신선영

재단은 ‘늑대가 나타났다’는 공연할 수 없지만, 총연출은 계속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강 감독은 해당 통보가 ‘불법 검열’임을 분명히 하고, 이랑씨가 출연하지 않을 경우 총연출직을 맡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10월16일 기념식은 두 사람을 도려낸채 강행됐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난 3개월간 준비 과정에서 논의됐던 콘셉트도 사라졌다. JTBC에서 관련 보도가 나간 다음날인 11월22일 행안부는 출연료 정산에 대해서는 재단과 논의 중이며, “검열은 없었다”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11월25일 강상우 감독과 가수 이랑씨를 시사IN 편집국에서 만났다.

행안부에서 내놓은 입장문은 어떻게 보셨나요. “중도사퇴한 공연 관계자와의 정산방식에 대해서는 논의 중”이라고 했는데, 연락 받으셨나요. 

이랑 : 아무 연락이 안 오네요. 행정안전부, 재단, 용역업체 어디에서도요. 출연료라도 바로 입금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입금을 안 하던데요. 
강상우 : 비용 부분을 포함해서 어느 곳도 어떤 대응도 하고 있지 않고요. 행안부 입장문은 해명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검열을 실토해주셔서 너무 좋습니다(행안부는 입장문에서 “행안부는 올해 제43주년 기념식이 미래세대와 부마항쟁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재단에 전달한 바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어떤 분이 행안부 입장문을 보고 SNS에 “사실은 때리지 않았습니다, 팼습니다” 같은 말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새로운 공연자를 섭외하는 비용을 두 분 인건비에서 뺀다는 통보도 받았잖아요. 

이랑 : 저를 대신해 무대에 선 공연자도 어떻게 보면 기분 정말 나쁠 것 같아요. 그분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무색무취로 평가한 거 아니에요? 
강상우 : 놀라운 대응이었습니다. 공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검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참여를 시킨 거잖아요. 제가 당사자라면 모욕적일 것 같아요.

공론화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거듭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강상우 : 처음에는 비용만 정산 받자 했어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이런 일로 뉴스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자체가 여러 가지로 피곤하죠.
이랑 : 어떤 분이 ‘이랑님 인생은 근현대사 그 자체’라고 그래요. 그치만 저는 아티스트지 역사적 인물로 살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거든요. ‘음악중심에는 안 나오는데 왜 자꾸 뉴스에 나오냐’고도 그러는데. 저도 음악중심 나가고 싶거든요. 안 나가고 싶어서 안 나가는 게 아니라 섭외가 안 오니까 안나가요.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공론화는 이미 결정한 거고. 밴드는 저 때문에 일을 못했는데 그에 대한 페이 지불도 못했고요. 우선은 밴드에 돈을 빨리 주고 싶고, 그리고 ‘검열했어요 죄송해요’ 아니면 ‘검열 의도는 아니었는데 검열이었나 봐요 죄송해요’라든지 뭐 하다 못해 그런 말이라도 들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가치 없어서 무시한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같은 말이요. 
강상우 : 행안부 만큼이나 재단 역시 검열에 동참했다는 것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책 마련 등 답이 있어야겠죠. 저희는 소송까지 가지 않기 위해 시간 여유를 충분히 드렸다고 생각해요. 검열이 벌어지든 말든 ‘우리는 기념식 해야겠다’고 하시기에 가만히 있었죠. 기념식 전에 부산국제영화제도 있었고, 얼마든지 단체들과 접촉해서 공론화 할 수 있었는데 기다렸어요. 또 10월에 여러 부마항쟁 관련 행사가 많이 있으니까 그걸 좀 정리하고 나면 자성의 시간을 가지면서 본인들이 어떤 행동을 저질렀는지 파악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셨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겠죠.

ⓒ시사IN 신선영

법률 자문은 언제 받으셨던 거예요?

강상우 : 사건이 벌어진 이후가 아니라 중간에 재단분께서 행안부 지시가 ‘재단 존립을 위협하는 지시’라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셔서 제가 물었어요. 검열이고, 불법이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검열로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럴 듯 한데?’ 싶었어요. 그래서 여러 측면에서 이게 검열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법률 자문을 구했어요.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이나 이랑씨가 처한 상황이 검열인지, 불법인지. 변호사, 영화계, 출판계 등 총 네 분한테 자문을 구했는데 아주 전형적인 불법이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전화도 녹음을 하면서 기록으로 남겼어요.  

기획안 및 회의록을 보면 애초 강상우 감독이 재단과 논의해 준비했던 공연은 ‘교환일기’가 메인 콘셉트였다. YH무역의 부당한 폐업 조치에 항의하다가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추락사한 김경숙씨의 1978~1979년 일기, 부산 삼화고무 노동자 추송례씨의 1979년 일기, 부산대학생으로 당시 부마항쟁 시위 상황을 상세히 일기에 기록했던 최진아씨의 일기가 배우와 자녀들의 입으로 낭독되고 이어서 이랑씨의 ‘늑대가 나타났다’ 노래가 공연된다. 낭독자들은 이랑씨와 함께 해당 노래를 합창할 예정이었다. 다음으로 항쟁 당시 구속돼 경찰 고문으로 허위 자백한 옥상렬씨와 황상윤씨의 사연이 영상 등으로 소개되고, 이랑씨가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라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부마항쟁 당사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이 모든 연출이 가리키는 주인공은 ‘부마항쟁’ 그 자체였다.

애초 기획했던 ‘교환일기’ 콘셉트는 연출할 수 없게 되었어요.  

강상우 :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작업은 안 하는 게 모두에게 이롭다라고 생각을 해서 처음에 거절을 했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된다고 하셔서 맡은 거거든요. 국가기념식이라는 장르는 사실 거의 대부분의 영화 작업 하는 사람들이 해볼 기회가 없는 거잖아요. 하지만 이 기념식은 일종의 논픽션 공연이기도 하고. 영상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고, 또 너무나 맞춤한 노래와 가수가 있었어요. 
이랑 : 섭외 과정에서 연출안을 받았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늑대가 나타났다’의 경우는 합창단이 있어야 하는데, 합창단까지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강 감독이 부마항쟁 당사자들과 시민, 활동가들이 함께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후렴 가사를 연습해서 하면 어떨까 했을 때 의미가 더 깊어졌어요. 
강상우 : 처음에 이랑님이 안 한다고 하면 어쩌지 했어요. 대안이, 차선이 없었어요.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곡 자체의 혁신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 노래를 부마항쟁기념식에 선곡하는 건 사실 그렇게 창의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적절한 맥락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놀랍거나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유튜브에 공개된 기념식 영상 밑에도 ‘무색 무취한, 정치색 없는 기념식 잘 봤습니다’ 이런 댓글이 달리고 있더라고요. 재단에서는 ‘늑대가 나타났다’를 이유로 들었지만,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는 노래도 부르지 못하게 되면서 사실상 두 곡 모두 검열 대상이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랑 : 제가 메일로 묻고 못 받은 답변이 있어요. 첫째가 곡 교체 이유를 설명해달라. 두 번째가 저는 곡 교체를 거절하니, 그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 답변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당일에 ‘기념식에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계속하게 돼요. 무대에 서서 (재단에서 요청했던) ‘상록수는 준비 안 해왔고 제가 준비한 거 그냥 하겠습니다'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 공연이 갑작스럽게 준비된 게 아니잖아요. 8월부터 밴드 멤버들을 포함해서 일정 등을 기념식에 맞춰서 조율해둔 상태였고요. 8~10월에 페스티벌 등 행사가 많기 때문에 그걸 조율하는 게 관건이었어요. 밴드 멤버가 제 무대만 하지 않거든요. 부산 내려가는 교통편이나 숙박 이런 것까지 조율을 다 마친 상황에서 통보 이후 그 어떤 설명 없이 저희를 배제하고 기념식을 치렀어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0월16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재단에서는 어떻게 대응했어야 할까요?

강상우 : 섭외 과정이나 논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재단이 어떤 악의에 차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어쨌든 행안부에서 예산을, 상임이사 표현에 따르면 “예산의 목줄을 쥐고 있는 행안부” 때문에 고민하실 수 있는 건 맞죠. 하지만 그 와중에 제가 여러 차례 법률 자문을 구해서 지금 재단이 요청한 상황이 그 지시를 수행할 경우 ‘재단도 불법 검열에 동참하는 가해자가 된다’라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저는 그때부터는 조직 자체가 적극적인 가해에 동참하기로 결심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계산을 하셨기를 바라요. 이건 제가 혼자 숨길 수 있는, 삭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공론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굉장히 불행한 사례이기 때문에 알려야 될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상식적인 분들이라면 이렇게 언론에 알려질 걸 감수하고 그 결정을 하셨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기념식에 오지 않았습니다만, VIP(윤석열 대통령) 참석 여부 논의 전까지만 해도 진행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 같아요.

강상우 : 제일 화가 나는 게 높으신 분들한테 질의 메일을 보내면 그분들은 절대 답변 안 하세요. 그리고 항상 제일 말단에 있는 담당자에게 답장을 하게 시켜요. 어쨌든 그들이 책임지기로 하고 섭외한 예술가들을 이런 식으로 버리고 나몰라라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재단 존재의의를 져버리는 방식으로 일을 하시는 거고요. 재단이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 행안부의 지시를 받아들인다는 건 굉장히 근시안적인 전략이었다고요. 좀 짜증 나는 건 이렇게 ‘옳은 말’만 하는 사람으로 제가 보여지는 게 어쨌든 제 행동의 반경을 좁히니까. 저는 지금 블랙큐 응원 같은 거 하고 싶은데, 뉴진스랑 카라도 곧 컴백하고요(웃음). 
이랑 : 기념식을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강상우 : 그쵸, 검열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이랑 : 위에서 이런 지시가 내려오면, ‘올해는 기념식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수는 없었을까요? 민주항쟁 관련 조직이잖아요. 부마항쟁 당사자들이 당시에 외쳤던 말들이 이런 부조리한 탄압에 저항하는 사람들이고, 그걸 계속 알리고 기념하고 사람들한테 기억하게 만드는 행사인데, 그 행사에서조차 이런 일이 생긴 거라면 의미가 없잖아요. ‘안 할게요’라고 할 수도 있는데 조직 자체가 검열에 가담한 거죠.

ⓒ시사IN 신선영

‘늑대가 VIP를 상징하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행안부 쪽에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셨어요. 이같은 해석에 대해서 창작자로서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이랑 : 작품은 사회에 던져진 순간 해석은 자유이니까, 자유롭게 해석한 거겠죠. 제 의도를 해석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한 건데. 어떤 왕자병이 아닐까? 왕자라는 말 쓰기 싫은데, 뭐라고 할까요 도끼병? 모든 게 왜 자기 얘기라고 생각하지?
강상우 : 자기가 불쾌해서라기보다 아랫사람들이 내가 모시는 ‘왕’이, ‘각하’가 불편할까봐 그런거죠. 침대에 쌀 한 톨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불편하잖아요. 미국은 보수 쪽이건 진보 쪽이건 자기를 조롱하는 행사에서도 그 앞에서는 웃고 동참하잖아요. 그게 권력이 있는 사람의 미덕 중 하나로 여겨지는데, 오히려 대통령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아랫사람들이 일을 한 거 아닐까요? 
이랑 : 대통령이 현장에 와서 4분 정도 노래를 듣고 앉아 있는 게, 어떻게 보면 되게 근사한 이미지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제가 그 앞에서 부르긴 싫지(웃음). ‘당신 들으라고 만든 노래는 아닙니다’라는 마음이지만, 수행할 수는 있죠. 
강상우 : 국가기념식이라는 장르의 컨벤션들이 있잖아요. 그 중 하나가 대통령이나 주빈들이 입장하면서 악수하고 맨 앞에 앉는 건데. 부마항쟁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양복 입고 와서 악수하는 게 오프닝인지 잘 이해가 안 돼서 처음에는 뒷자리로 빼달라고도 얘기했어요. 재단에서 처음에는 그것마저도 가능하다고 얘기했고요. 그런데 이랑씨 섭외가 확정되면서 오히려 ‘(주빈을) 맨 앞줄에 앉혀야지’ 싶더라고요. 이랑씨와 투샷을 잡으면 동시에 잡으면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았어요. 
이랑 : 국민은 누구나 평등하고 그냥 직업이 다른 것 뿐이잖아요. 나는 음악하고 너는 정치하고 이런 건데. 거기서 누가 누구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고 조심해야 하는 게 저는 진짜 웃긴 것 같아요.
강상우 : 이런 식으로 예스럽고 진부한 서사로 치달을 줄은 사실 예상 못했어요. 

검열때문에 부마항쟁 기념식이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라는 본질이 사라졌어요.

이랑 : 대통령을 비롯한 귀빈들은 사실 안 중요하죠. 부산 시민들이랑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게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그게 제일 안타까워요. 저는 높고 낮다라는 그 말 자체가 너무 싫지만 높은 사람이 왔다, 누가 앞에 앉았다 이런 것보다는 행사 자체를 부산 시민, 활동가, 당사자의 따님이 당시 일기를 다시 읽고 당시에 외쳤던 말과 맞아 떨어지는 가사를 다시 노래로 부르고, 이 과정을 같이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상민 장관이나 윤석열 대통령 앞에서 ‘내가 이 노래를 불러 본다’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죠. 근데 그걸 심기경호 하니까. 주객전도라고 생각해요. 저 말고도 원래 같이 무대하시기로 했던 분들 다 못 나온 거잖아요. 공론화를 한 얼굴이 저희 두 사람이니까 두 명이 검열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더 많은 관계자와 출연자, 시민들이 다 검열을 당한 거고요. 이번에 제 단독공연 준비하는데 밴드 친구들이 ‘힘드시겠어요’ ‘피곤하시겠어요’ 그래요. 그런데 그 사람들도 피해자에요. 검열때문에 돈도 못 받았고 그날 할 수 있는 다른 일 못 했잖아요. 그치만 내가 공론화 했으니까 돈 받아올게 이렇게 하는 거죠.

노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기념식 전체의 무드와 연출이 다 결합돼 있죠. 

이랑 : ‘왜 그랬냐’ ‘그냥 상록수 부르고 돈 받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근데 이 기획 안에서는 상록수를 부를 수 없어요. 제가 못 불러서 안 부른 게 아니잖아요. ‘노래 바꾸라고 하면 노래 바꿔야지 네가 뭔데’ 이런 사람도 있어요. 그런 반응이 좀 더 저를 화나게 해요. 이건 그냥 노래 한곡 단순히 바꿔 부르는 행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준비한 훌륭한 무대거든요. 저는 ‘행사’랑 ‘콘서트(공연)’를 좀 다르게 생각해요. “나 이번에 콘서트 한다”라고 말 할때랑 “나 오늘 행사 뛰러 가야 돼”가 달라요. 행사는 그야말로 영혼 없이 어디 지역 축제가서 제 노래를 부르든 다른 노래를 부르든 크게 상관이 없고, 저도 그냥 돈을 벌려고 하는 행사라는 게 있죠. 그런데 이번 기념식은 연출자와 상의를 통해 무대를 구성한 중요한 공연이잖아요. 단순히 ‘이 노래 불러주세요’ 해서 일주일 안에 연습하고 어떻게든 끝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행사가 아닌 거죠.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에 대한 질의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차’ 사태 때도 그랬지만, 검열 문제의 가장 큰 피해가 ‘알아서 기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이랑 : 사람들이 저한테 용기있다고 하는데, 뭐가 용기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피곤한 거죠. 용기가 있어서 한다기보다는. 제가 자궁경부암 걸려서 한동안 일 못한 적 있어서 SNS에 올려도 ‘용기있다’고 댓글이 달려요. 제 언니가 죽었어요라는 이야기에도요. 제가 하는 일은 “투쟁!” 이런 게 아니거든요. 얼마 전에 저희 아빠한테 카톡이 왔어요. ‘딸아’로 시작해(웃음). 어떤 때는 한 발짝 물러설줄 알아야 하고 화를 낼 필요가 없대요.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그 메시지 보낼 시간에 비타민이나 보내지.
강상우 : 대통령의 심기 문제를 떠나서, 제가 최대한 선의를 가지고 해석해보려고 노력했어요. 이 노래를 빼라고 결정한 사람이 정말 저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위대한 음악적 취향을 갖고 계시고, 정말 그분이 보시기에 제가 제시한 기념식 내용과 가수가 너무 구린 거예요, 그분 취향에. 저는 그런 가능성을 생각을 해 봤거든요. 이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서. 부마항쟁을 현재화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서로 다른 감식안과 취향을 가지고 협의를 할 수 있잖아요. 투명하고,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협의의 장안에서 갑론을박 한다면 저는 얼마든지 총연출자라는 직위를 내려놓고 이야기를 수렴할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여러 차례 그런 의견이 있으면 저랑 직접 연락을 하게 해달라는 말씀을 드렸는데도 지시를 내린 주체가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았고, 근거도 명확하게 이야기를 안 해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일의 목적이 부마항쟁 기념식을 잘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VIP를 위해서라고, 그게 이상민 장관이든 윤석열 대통령이든 누구든 간에 그렇게밖에 생각을 할 수 없죠. 
이랑 : 제가 재차 말씀드렸어요. 제 수상 경력이나 이런 거 잘 전달했냐고. 행정 처리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사람이 괜찮다’는 증거가 필요하니까. 어쨌든 저는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 수상자로서 자부심이 있어요. 평단에서도 인정하는 노래라고, 섭외를 할 때 증거가 필요하다면 이런 부분도 같이 소개해달라고 말씀을 드렸죠.

이랑씨는 스스로 ‘민중가수’로 칭하기도 해요. 그 단어의 의미를 새로 쓰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수의 의미를 우리가 자꾸 확장하고 바꿔나갈 필요가 있잖아요. 

이랑 : ‘늑대가 나타났다’는 시민들이 사용하라고 만든 곡이니까 “민중가요입니다”라고 할 수 있죠. 제가 활동하는 신이 인디니까 인디 가수입니다라고 할 때도 있고요. 페스티벌에서 “민중가수가 왔습니다” 했더니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아주 최근에 오래 알고 지낸 어떤 창작자가 조언을 해줬는데 집회 같은 데 가지 말라는 거예요. 멋이 없다고. 페스티벌도 가고, 집회도 가고, 시상식도 가고, 국가기념식도 가야 멋있는 거 아니에요? 활동 반경이 다양해야 멋있는 거죠.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사람이야말로 멋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강상우 : 르귄이 〈어둠의 왼손〉 서문에서 ‘SF는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묘사한다'라고 하거든요. 소설이 미래를 얘기한다고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데 어디까지나 현재를 이야기하는 거죠. 저는 ‘늑대가 나타났다’가 SF로서 가지는 미덕과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행안부에서 ‘밝고 미래지향적’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그 부분이야말로 제 화두였어요. 부마항쟁을 어떻게 기억해서 미래와 연결하고, 그걸 공연에 녹일지요. 권력 또는 VIP를 보위하기 위한 행안부의 검열 서사로만 이번 사건이 정리되고 끝나는 게 좀 아쉬워요. 저는 어떤 부분에서는 세대간 갈등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까 취향 얘기를 한 이유가 가사 문제가 정말 없었다고 가정했을 때, 순전히 음악 스타일적으로 이랑씨 노래에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도 생각해봤어요. 국가기념식 다운 게 뭘까요. 그리고 정부에 대항했던 시민들의 움직임을 국가 주체로 기억한다는 게 무엇일까요. 총연출인 저보다도 공무원의 취향이 더 중요했던 거예요. 아티스트는 물론이고요. 그래서 그 사람이 생각한 밝고, 희망차고, 미래 지향적인 것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게 제 생각보다 훌륭하다면 얼마든지 반영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대학내일〉 표지모델 같은 사람인 거죠. 
이랑 : 웃지 않는 표정으로 ‘늑대가 나타났다' 부르는 이랑이 나타나면 안 되는 거죠(웃음).

박근혜 정부는 보수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에게 정부기금 지원을 배제했다.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제정된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르면 국가기관 등은 ‘부당하게 예술인의 예술 활동을 방해하거나 지시·간섭하는 불공정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당시 블랙리스트 사건 변호를 담당했던 변호사와 함께 법률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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