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11월22일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단상 앞으로 굳은 표정을 한 유가족들이 줄지어 입장했다. 그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참사로 희생된 가족의 사진을 들고나온 유가족도 다수였다. 애써 덤덤하려 노력한 얼굴은 마이크를 손에 쥘 때부터 무너졌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식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목소리는 떨리고 공기는 무거워졌다.

11월22일 오전 11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사 이후 24일 만에 처음으로 희생자 유가족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다.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 모두 숨죽이며 유가족들의 말을 경청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직후, 한국 사회는 한 가지 조심스러운 합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 누구도 유가족의 슬픔을 섣불리 헤집지 말자는 원칙이다. 언론은 재난보도 준칙을 지키려 했고, 시민들은 줄 지어 애도했다. 애도의 또 다른 의미는 기다림이다. 유가족들이 언젠가 슬픔을 추스르고 목소리를 낼 때, 이들을 응원해주겠다는 기다림이다. 24일간의 기다림 끝에 유족들이 용기 내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민에게 꺼내놓았다. 말마디마다 끝 모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분노와 고통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참사를 예방하지 못하고, 참사 이후에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질책이 섞여 있었다.

〈시사IN〉은 이날 유족들의 말을 통해 정부 대응의 문제점과 향후 과제를 점검해보았다. 발언 내용은 당일 기자회견 발표와 11월22일 KBS 〈뉴스9〉에 출연한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저는 제 슬픔이 가장 슬픈 슬픔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렵게 유가족들을 연락해 만나보니… 다른 분들 슬픔이 제 슬픔보다 훨씬 더 깊었어요. 저희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몇 시에 갔는지, 어느 병원에 있었는지, 제대로 과정을 아는 분이 부모조차 없어요. … 공간을 만들어서 서로 위로하고 충분히 울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유족 몇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무런 지원 없이 무슨 비밀공작 하듯이 말입니다. 유족들이 모이면 안 되는 것입니까? 유족들이 무슨 반정부 세력이라도 됩니까?”

“이 세상 어느 부모가 내 자식 태어난 곳, 태어난 시간, 날짜, 태어난 순간을 모르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요. 보십시오. 이것이 저희 아들의 사망진단서라고 하네요. 사망 일시도 추정. (사망 장소는) 이태원 거리 노상. 사인은 미상. 이게 말이 되는 상황입니까. 무슨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 시신을 경기도 외곽으로 뿔뿔이 흩어놓으셨나요? 유가족끼리 만나지 못하도록 철저히 계산 속에 이뤄진 것은 아닐까요?”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정부는 유가족과 공무원을 1:1로 매칭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느낀 정부의 대응은 부족함이 많았다. 희생자의 사인이나 사망 시각을 ‘미상’으로 판명하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의 사후 지원 역시 충분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민변 윤복남 변호사는 “장례 지원 뒤 (연락이나 지원이) 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하신다. 마음에 맞게, 배려 있게 (유가족 지원이) 진행된 것은 아닌 듯하다”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공통적으로 희생자 유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와 달리 이번 이태원 참사는 희생자 각자의 빈소가 제각각 흩어져 있고, 정부 차원의 네트워킹 기회도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나마 연락이 닿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11월16일 민변에서 주선한 간담회가 처음이었다. ‘공간’을 달라는 것은 곧 아직 모이지 못한 유가족들도 함께 모이게 해달라는 요구다. 혼자 고립되어 있을 다른 유가족에게 최소한 함께 이야기 나누자는 제안이라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참사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이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종우 경희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유가족 기자회견 직후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난 피해를 겪은 분들에게 서로 울 수 있는 공간은 중요하다. 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과 만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론 아무 연락을 원치 않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분들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인정해줄 필요도 있다. 그러나 위기를 느끼는 순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그런 분들에게도 (정부 차원의) 최소한의 정성이 필요하다.”

이날 유가족이 정부에 제시한 ‘6가지 요구사항’에도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과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가 포함되어 있다. 유가족이 서로 소통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주고, 명단 공개를 원하는 유가족들에게는 온전한 추모가 가능한 사회적 추모시설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기존 정부 주도 분향소는 위패 없이 익명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만 이뤄졌다.

11월21일 꽃과 포스트잇 등으로 장식된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골목. ⓒ시사IN 신선영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무능한 정부에 아들을 뺏겼지만 엄마는 그저 눈물만 흘리는 무능하고 무지한 엄마는 되지 않겠노라고요. 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이 다시는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희생되지 않도록 철저히 밝혀달라고.”

“10·29 이태원 참사는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에 의한 간접 살인이었습니다. 오후 6시34분부터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112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들은 ‘특이사항 없음’으로 상황 종료했습니다.”

“만약 류미진 전 과장,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안부 장관, 국무총리의 자식들이 한 명이라도 그곳에서 ‘숨 쉬기 어렵다. 압사당할 것 같다. 살려달라. 통제해달라’고 울부짖었다면 과연 그 거리를 설렁탕 먹고 뒷짐 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갈 수 있었을까요?”

백종우 교수는 재난 피해 유가족들이 참사 초기 머릿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품는 단어가 ‘왜’라고 설명한다. 왜 내 가족은 참사에서 사망해야 했나. 왜 하필 그 참사는 내 가족에게 덮쳤나. 왜 참사는 발생했으며 정부는 참사를 막지 못했나. 이런 질문이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참사 유가족들도 ‘왜?’라는 질문을 정부에 던졌다. 왜 경찰은 초기 신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으며, 왜 시민들의 절규를 제때 알아듣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유족들이 이날 주장한 공식 요구사항에도 ‘성역 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 규명’과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 규명’이 포함되어 있다.

유가족들은 이날 진상 및 책임 규명의 범주로 ‘피해자들이 납득 가능한 수준’을 강조했다. 경찰 특수수사본부(특수본)가 진행 중인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 대상보다 더 폭넓은 수준이다. 참사 사흘 만에 조직된 경찰 특수본은 11월24일 현재 17명을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가족들이 주요 책임자로 지목하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총경(당시 서울청 상황관리관) 등이 포함되어 있으나, 아직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같은 윗선에 대한 소환조사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다. 특히 참사 당시 경찰기동대 요청이 있었는지 여부를 두고 이임재 전 서장과 김광호 청장 간의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 서장은 서울청에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고 주장하고, 김 청장은 경찰기동대를 요청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로선 유가족이 묻는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주체는 경찰 특수본뿐이다. 그러나 수사가 미진할수록, 경찰의 ‘자기 식구 수사’에 대한 불신이 쌓여갈수록 유족이 원하는 ‘철저한 진상규명’은 공염불이 된다. 특검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3일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제는 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아들의 장례식이 비엔나(빈)에서 28일날 있어서 저는 가야만 합니다. 저는 비엔나에 가서 일하겠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우리 외국인들(을 위해서)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습니다.”

“정부에서 내놓은 사과란 게 조계종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었나? 내가 사과를 들었었나? 우리 유가족들이 사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유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처음 사과가 늦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들을 모아놓고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해주세요).”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비롯해 더 이상 우리 아들딸들을 영정 사진도, 위패도 없는 불쌍한 영혼으로 만들지 말아주시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합니다. 누구누구 정치인, 누구누구 유명인 죽음 앞에 방송은 영정 사진과 애통함을 표하면서 왜 우리 아들은 안 되는 겁니까?”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발표는 참사 엿새 뒤인 11월4일에야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종 위령법회에 참석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과에 대한 진정성 문제가 불거졌고, 11월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유가족과 국민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는 말로 정부 공식 석상에서 추가로 사과했다.

문제는 대통령의 형식적 사과가 시기와 내용 모두 유가족에게 와닿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은 ‘진정한 사과’를 요구사항의 첫 번째로 꼽았다. 유가족들은 사과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근거로 ‘참사의 책임’을 명확히 해줄 것을 주장한다. ‘참사의 책임이 10월29일 밤 이태원을 찾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지자체·경찰에 있다는 것’을 정부의 사과에 명시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책임 있고 진정성 있는 정부의 사과가 곧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를 막아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붙어 있는 유가족의 포스트잇. ⓒ시사IN 신선영

참사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의 잇따른 실언은 그래서 더욱더 유가족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겼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가장 괘씸죄를 추가하고 싶은 (대상은) 행안부 장관의 말 바꾸기”라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0월30일에 남긴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발언을 꼬집어 비판했다. 참사 책임자가 대중이 쏟아내는 비판의 화살을 피할 경우, 피해는 애꿎은 희생자 유가족에게 돌아간다. 유가족들은 이 점을 명확히 하며 시민들에게도 부탁을 남겼다.

“악성 댓글이 제 가슴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왜 놀러 갔냐, 부모는 왜 잡지 못했냐’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이태원에 그러면 놀러 가지 공부하러 갑니까? 초등학생은 소풍을 가고, 중·고등학생은 수학여행을 가고, 대학생은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우리 어른들은 단풍놀이를 가고 모두 다 갈 자유가 있습니다. 왜 갔냐니, 왜 잡지 못했냐고요? 왜 다 큰 성인을 잡아야 합니까? 얼마든지 갈 수 있죠.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이런 일을 당하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유가족들의 6대 요구사항 마지막 항목도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이었다. 참사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정부 차원에서 2차 가해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는 무분별한 SNS 게시물, 악성댓글, 사진과 영상 유출, 미확인 정보와 억측 보도 등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1월23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를 비롯한 163개 재난·참사 피해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 시민사회가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시민 모니터링 지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시민사회단체들은 “2차 가해로 지적된 보도, 댓글, 콘텐츠에 대한 신속한 차단 및 삭제 등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며 심각한 가해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도 적극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역시 진즉 국가가 나섰어야 할 일이다.

유가족들이 공개 석상에 등장하며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장례 이후 국가의 지원에서 벗어나 있는 유가족, 다른 유가족과 교류하지 못한 유가족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 단원고 스쿨닥터로 일한 사단법인 마음건강센터 김은지 이사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현 시점을 일종의 ‘급성기’라고 진단한다. “초기에 많은 자원을 투입했어야 한다. 국가에서 장을 열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많이 모일 수 있게 해야 했다. 지금은 참사 초기인 ‘급성기’에 해당된다. 아직 적극적으로 심리 지원을 받지 못한 분들을 위해 심리적인 허들(행정절차 등)을 낮춰야 한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자식을 앞세우냐’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무기력과 우울감이 깊어질 수 있다.”

백종우 교수도 “생존자와 피해자 유가족을 위한 지원 체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 참사의 유가족이나 생존자가 각종 지원을 수용하도록 하려면 정부의 신뢰가 무척 중요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난에 대응하는 정보를 제공한 것처럼, 꾸준히 지속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알리고 부담 없이 지원받으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라며 정부의 적극적 재난 대응 소통을 강조했다.

세상 밖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알린 희생자 유가족들도 그렇게 말한다. 혼자 있지 말고 꼭 도움을 받으라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초 발언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 한 유가족은 급히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트라우마 센터에서 장례 치르고 바로 연락이 왔는데, (처음에는) 거부했다가 하루 이틀 더 지나다 보니까 트라우마가 심해져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 다른 유가족분들 중에 그런 것(심리 상담과 복약)을 아직 조치를 안 하셨거나 연락이 없었다면 (정부 지원) 전화를 하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찢어지는 마음이야 그렇지만 일단은 현실적으로 몸을 가누고 저희도 정신을 차려야지 고인이 된 저희 자식들도, 부모가 좀 더 괴로워하지 않고 잘 지내기를 아마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른 분들도 용기라도 좀 얻고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태원 참사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기자명 김동인·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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