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전날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은 핼러윈을 맞아 “주민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참사 이틀 뒤인 10월31일에는 “저희는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해왔다.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라고 말했다.
참사 이틀 전 용산구는 주요 부서장을 대상으로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대책회의(대책회의)’를 열었다. 핼러윈 기간 용산구청 내 11개 부서를 3개 대책반으로 나눠 대비하기로 하고, 부서별 역할을 정했다. 대책회의에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과거 대책회의는 구청장이 주재했다. 지난해 성장현 당시 용산구청장은 ‘핼러윈데이 특별방역 관련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열고 용산경찰서장, 용산소방서장 등 20여 명과 ‘밀집지역 집중 순찰’ 등을 논의했다. 2020년엔 용산구청장과 용산경찰서장, 서울경찰청 관광경찰대장, 이태원119 안전센터장, 이태원역장을 포함한 40여 명이 함께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안전사고 예방’ 대책 등을 논의했다.
올해 열린 대책회의에는 부구청장, 12개 부서장 등 용산구청 직원들만 참석했다. 경찰과 용산구청의 엇박자는 매년 용산경찰서가 작성하는 ‘핼러윈 대비 치안대책보고서(보고서)’에서도 나타났다.
2020년 보고서(‘핼러윈데이’ 종합치안대책)는 “핼러윈데이 전·후 이태원 일대 대규모 인파의 운집이 예상됨에 따라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코로나19 지역감염 예방은 물론, 각종 안전사고 및 범죄 예방으로 안전한 치안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명시하고 용산구청과 합동 점검·비상연락 체계 구축 등을 계획했다.
지난해 보고서(핼러윈데이 생활안전 계획)에서 경찰은 핼러윈 기간 용산구청과 함께 인파 집중 시간대(오후 8시~자정) 집중 순찰 및 합동 점검을 계획했다. 2020년·2021년과 달리 올해 보고서(‘핼러윈데이’ 관련 질서유지 확보대책)에는 ‘구청’의 역할이 빠져 있었다.
올해 용산구 대책회의 결과, 용산구에서 ‘사건·사고, 질서유지 등’의 업무는 감사담당관이 맡았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공개한 ‘용산구청 주말근무수당 신청 내역’에는 참사 당일 감사담당관 한 명이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핼러윈 순찰 및 상황 근무’를 맡았다고 적혀 있다. 〈시사IN〉은 용산구청에 해당 공무원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물었지만, 용산구청은 답하지 않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전략적인 준비를 다 했다”라고 했지만, 용산구청에서는 참사 전이나 당일 한 명도 이태원 현장 답사를 하지 않았다(‘국민의힘 사고조사 및 안전대책특별위원회’ 조사 결과).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공무원 명단을 확보하고 용산구청이 당일 현장에 계획대로 공무원을 충분히 배치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앞서 ‘주말근무수당 신청 내역’과, 현장 근무 결과 보고 문건을 종합할 때, 그날 현장에 나간 공무원들은 핼러윈데이 옥외광고물 정비·노점 단속 6명, 주정차 단속 1명, 청소 관리 2명 등으로 추정된다.
“의령군 축제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참사 발생 이후 대응도 더뎠다. 참사 당일 박희영 구청장은 고향인 경남 의령군을 찾았다. 서울에 복귀한 뒤 오후 8시20분쯤 귀가하며 참사 현장 인근인 이태원 퀴논길을 지났다. 오후 9시 무렵 이태원 일대에는 6만명 넘는 인원이 모여 있었다.
박 구청장은 퀴논길을 걸어 집으로 간 뒤 오후 9시30분께 용산구 국회의원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이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인파가 많이 모이는데 걱정이 된다. 계속 신경 쓰고 있겠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구청장으로서 경찰이나 소방 등에 연락을 하는 식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밤 10시29분 소방청은 용산구에 사고 발생 사실을 통보했다. 용산구는 재난안전법에 따라 유관기관에 해당 사실을 알려야 했지만, 행정안전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상황을 보고받은 것도 소방청 최초 통보 후 20여 분이 지난 오후 10시51분이었다. 박희영 구청장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상인회) 관계자에게 문자를 받고 나서야 참사를 인지했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 말에 따르면, 용산구청 내 공식 보고 라인이 작동하지 않았다.
박희영 구청장의 말 바꾸기도 문제가 됐다. 의령군 방문이 비판받자 용산구청은 “자매도시인 의령군 축제에 초청 공문을 받아 다녀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의령군 축제행사 공문을 보면, 개막식은 참사 하루 전인 10월28일 열렸다. 박 구청장이 의령을 방문한 건 다음 날인 10월29일이었는데 이 축제에는 가지 않았다. 박희영 구청장은 “행사에 참여했다고 한 적 없다. ‘면담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지역축제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용산구는 참사 당일 오후 11시부터 긴급상황실을 설치하고 간부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했지만, 이후 박 구청장이 그 시각 참사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참사 직후 당일 자정까지 출근해 야간근무를 등록한 공무원도 11명뿐이다(주말근무수당 신청 내역).
11월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한 박희영 구청장은 참사에 무한 책임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그게 어떤 책임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박 구청장은 “여러 가지 지금 큰 희생이 난 것에 대한 마음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경찰 특수본은 참사 전후 부실 대응과 관련해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부구청장, 안전건설교통국장, 안전재난과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 ㄱ씨는 11월2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치인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진정성 있게 생각한다면 솔직해져라. 제대로 된 조사와 제대로 된 사과. 우리 아이들에게 사과하라. 책임 있는 자들은 책임지고 대통령은 진실성 있는 공개 사과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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