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 한 구간에 설치된 졸음운전 경고 플래카드 아래로 화물차가 달리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상상해보라. 당신이 만약 밤 10시쯤 퇴근해 다음 날 새벽 6시에 다시 출근한다면. 이 정도 연속휴식조차 취할 수 있는 날이 일주일에 한 번이라면,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면, 혹은 한 번도 없다면. 만약 일터에서 살다시피 한다면. 2~3시간 쪽잠을 자다가 일하기를 반복한다면, 거기에다가 낮밤마저 바뀌어 일한다면. 언제 쉬고 언제 일할지 직전에야 알 수 있다면. 항시 대기 상태로 일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면.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1년 365일 모든 날이 그렇다면.

그리고 그 일이 만약 운전이라면. 무거운 짐을 싣고 도로를 달리는 화물차 운행이라면. 트럭의 무게가 적게는 1t, 많게는 30t에 이른다면. 약속된 일정에 맞추기 위해 늘 시간에 쫓긴다면. 일정을 못 맞추면 다음번에 일감을 받지 못한다면. 그래서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않고 다른 차와 보행자 사이를 달리고 또 달려야 하는 일이라면. 당신은 당신과 타인의 안전을 해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여기,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의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상상해볼 수 있는 밑감이 있다. 바로 화물차의 DTG(Digital TachoGraph, 디지털 운행기록장치) 데이터다. 트럭이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달리고 멈췄는지, 화물차 운전자가 거쳐간 시간·공간·속도가 이 데이터에 모두 담겨 있다.

이 원그래프들은 각각 화물차 한 대의 한 달 치 DTG(디지털 운행기록장치) 기록을 시각화한 이미지들이다. 노란색과 빨간색은 주행시간, 검은색과 회색은 휴식 혹은 정차 시간이다. 동그라미 하나가 화물차 운전자 한 사람의 한 달 시간표라고도 볼 수 있다.데이터 자료:한국교통안전공단 /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VWL

교통안전법 제55조에 따라 화물차 등 사업용 차량은 DTG를 장착해야 한다. 수집된 운행기록 자료는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 교통정책을 연구하는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데이터 분석·시각화 전문가인 김승범 VWL 소장은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화물차 5만9296대의 한 달 치(2022년 4월) DTG 데이터를 제공받았다. 이 가운데 데이터 검수를 거친 3만7892대 DTG 샘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화물차 운전자들의 노동시간과 공간을 분석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간하는 〈물류브리프〉 11월호에 실린 연구 보고서 ‘화물차 운전시간 총량 제한이 필요한 이유’에 그 전반적 내용이 실렸다.

〈시사IN〉은 그 내용을 바탕으로 화물차 개별 상세 데이터를 추가로 살폈다. 더불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협조를 얻어 지난 10월13일부터 11월1일까지 화물차 기사 2만5000여 명에게 운행 형태와 휴식, 수면 시간 등에 관한 온라인 설문을 돌렸다. 화물차 기사 총 1433명이 답변을 남겼다. DTG 분석과 설문조사 응답으로 확인한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노동 형태는 화물차 기사들의 휴식, 수면, 건강, 그리고 모두의 안전을 심각히 위협하고 있었다.

‘2시간 운전 후 15분 휴식’ 법은 있지만

과로 운전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자동차 운전자가 음주 외 과로, 질병, 약물 등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해놓았다. 특히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화물차 운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과로 방지 규정이 존재한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 제21조 제23항은 화물차 운전자의 최소 휴게 시간을 명시해놓았다. ‘2시간 연속운전 후 15분 이상’이다. 애초 ‘4시간 연속운전 후 30분 이상’이었다가 지난해 3월 규정이 강화되었다. 이처럼 화물차 운전자의 과로 여부는 개인 사정이 아닌, 사회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위에 나타낸 원그래프는 각각 화물차 한 대의 한 달 치 DTG 기록을 시각화한 이미지다. 대부분이 지입(화물 차주가 운수회사에 개인 소유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받고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 형태로 운행되는 화물운송 시장 구조를 고려할 때, 동그라미 하나가 화물차 운전자 한 사람의 한 달 시간표라고도 볼 수 있다. 2022년 4월1일부터 4월30일까지 30일간 화물차(기사)의 주행과 휴식을 서로 다른 색으로 구분했다. 노란색과 빨간색은 주행시간, 검은색과 회색은 휴식 혹은 정차 시간이다.

노란색은 2시간 이하 주행, 빨간색은 2시간 초과 연속주행이다. 무채색 중 회색은 15분 이상 8시간 미만 정차(휴식)를 뜻한다. 휴식시간이 짧을수록 그래프에서의 튀어나온 정도도 짧아지도록 표현했다. 연속정차(연속휴식) 시간이 8시간을 넘는 경우 검은색으로 나타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일반 성인의 적정 수면 시간은 7~9시간이다. 그 중간값인 8시간을 ‘충분한 연속휴식’의 기준으로 두었다. 적어도 8시간 정차(휴식) 없이 이틀 이상 주행 기록이 이어진다면 그 화물차의 운전자는 사실상 퇴근 없이 일하는 ‘초(超)과로’ 노동자일 확률이 높다.

‘화물차 주행=화물 운전자의 노동’ ‘화물차 정차=화물 운전자의 휴식’으로 간주했지만 사실 완벽히 정확한 구분은 아니다. 앞선 동승 르포 기사(화물차가 달린다, 멈출 수 없어서)에서 보았듯, 차가 멈춰 있다고 기사들이 꼭 쉬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21 화물운송시장 동향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화물차 운전자의 상·하차 대기시간 등 운전 외 업무시간은 지난해 기준 평균 4.5시간이었다. 그래프에 보이는 주행시간(노란색과 빨간색)은 실제 노동시간 중 일부일 확률이 높다.

이런 전제를 염두에 두고 시간표들을 다시 보자. 법대로라면, 모든 운전자의 시간표에 빨간색이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정상적인 노동이라면, 빨간색과 노란색이 전체 동그라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수준 이하에 머물러야 한다. 정상적인 삶이라면, 무채색 영역이 어느 정도는 주기적으로 두껍게 반복되어야 한다. 동그라미로 나타낸 운전자들의 시간표가 만약 트럭 타이어라고 상상해본다면, 검은색과 회색 부분이 어느 정도는 규칙적이고 충분하게 분포돼 있어야, 타이어가 터지지 않고 안전하게 굴러갈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림 1〉의 운전자 A씨와 같은 패턴이다. 이 운전자는 서울과 경기도 북부를 하루 평균 4.8시간, 167.6㎞ 주행했다. 일주일 동안 일요일(3·10·17·24일) 한 번씩은 운행을 쉬었다(검은색). 매일 8시간 이상 휴식을 취했다. 운행과 운행 사이에 15분 이상의 규칙적인 휴게시간이 관찰된다. 장시간 연속주행을 나타내는 빨간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탄탄하게 굴러갈 수 있는 바퀴 모양이다.

하지만 화물차 3만7892대 DTG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이런 정상 패턴에서 벗어난 ‘과로’ 혹은 ‘초과로’ 운전자의 시간표를 수두룩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상진 교수는 〈물류브리프〉 연구 보고서에서 전체 DTG 샘플 가운데 운전시간이 긴 상위 5% 운전자들을 추려보았다. 이들은 월 240.4시간, 주당 60.1시간, 하루 8시간 운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평균 운전 외 업무시간(주로 상·하차 대기시간)인 4.5시간을 더하면 노동시간은 하루 12.5시간으로 늘어난다. 이런 과로 운전자들은 전체 데이터 샘플의 3.4%에 해당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2021년 전국에 등록된 사업용 화물차는 43만8331대이다. 3.4%를 이 규모에 대입해보면, 화물차 약 1만5000대가 제대로 쉬지 못한 과로 운전자에 의해 도로 위를 굴러가고 있다.

운전자 54.5% “하루 12시간 이상 운전”

대표적인 과로 유형 몇 가지를 살펴보자. 〈그림 2〉는 화물차 운전자 B씨의 한 달 시간표와 운행 동선이다. 하루 평균 10.9시간, 806.8㎞를 달렸다. B씨의 한 달 시간표에는 8시간 이상 정차 시간을 뜻하는 검은색 부분이 겨우 여덟 번 불규칙하고 가늘게 나타나 있다. 정차하자마자 잠든다고 가정해도 B씨는 적정 수면을 취한 날이 한 달 중 최대 여덟 번에 그친다. 게다가 30일간 단 하루도 운전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무휴무’ 노동자다. 2시간 초과 연속주행 비율도 높다. B씨는 이렇게 초(超)과로 상태로 한 달간 총 325시간 동안 2만4203㎞에 이르는 전국 도로 곳곳을 달렸다.

〈그림 3〉의 운전자 C씨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하루 평균 11.3시간 768.9㎞를 달리는 이 운전자의 시간표에도 검은색 막대가 겨우 일곱 번 등장한다. C씨 시간표의 검은색과 검은색 사이, 4월5~11일 상세 주행 기록을 살펴보았다. 4월5일 오전 6시께 주행을 시작한 C씨는 2~4시간 이상 연속운전과 정차를 반복하다가 닷새 뒤인 4월10일 오후 5시 이후 비로소 ‘퇴근’으로 볼 수 있는 기록(8시간 이상 연속정차)을 남겼다. 그사이 충북 단양, 경남 김해, 강원 동해, 경기 오산 등을 다닌 C씨는 아마 휴게소 등지에서 잠깐씩 쪽잠을 자며 차를 몰았을 것이다.

특수한 상황의 예외적 몇 사례일까? 화물차 기사 1433명 설문조사 결과(아래 그림 참조), 전체 응답자의 54.5%가 하루 운전시간이 12시간 이상이라고 답했다. 14시간 이상과 16시간 이상도 각각 27.2%와 9%나 된다. 하루 평균 운행 거리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자 31.4%가 600㎞ 이상, 8.7%가 800㎞ 이상이라고 답했다. 화물차 기사 10명 중 세 명은 매일 서울-광주(약 300㎞)를, 10명 중 한 명은 서울-부산(약 400㎞) 거리를 하루 두 번씩 왕복으로 운전하는 셈이다.

휴식과 휴일도 턱없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주 5일제가 정착했지만 화물차 운전자들은 22.3%만이 ‘주 2일 휴무’라고 답했다. 62.2%는 주 1회 휴무, 7.5%는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답했다. 휴식의 양도 적지만 불규칙성도 문제다. “운송 오더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름(연령대 50대·차종 트레일러).” “업계 특성상 정해진 휴무 날도 집에서 대기하며 쉬는 것도 전날 5~6시에 알기 때문에 여가생활을 하기가 힘들다(40대·덤프 16t).” “언제 쉴지 모름. 시키는 대로(60대·유조차 24t).” 화물차 기사 67.7%는 자신의 휴식시간과 주기에 대해 ‘부족하고 불규칙하다’고 느끼고 있다. ‘충분하고 규칙적’이라 느끼는 이들은 2.7%에 불과했다.

총 노동시간과 주행거리가 비교적 짧아도 문제는 남는다. 〈그림 4〉는 하루 평균 8.6시간, 511.5㎞를 운전하는 운전자 D씨의 한 달 시간표다. 운전자 B씨와 C씨에 비하면 노동강도가 양호해 보인다. 하지만 한 번 차를 몰기 시작하면 2시간 넘게 멈추지 않는 연속운행 빈도는 B·C씨 못지않게 잦다. D씨가 가장 길게 거의 쉬지 않고 운전한 시간은 4월5일 오전 5시43분부터 오후 4시41분까지다. 무려 11시간을 15분 이상 정차 없이 내내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를 오갔다.

‘2시간 운전 후 15분 이상 휴식’이 현실에서 불가능함은 화물차 기사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전체 응답자의 6%만이 그 규정을 ‘항상 지킨다’고 답했다. ‘자주 지킨다’는 20.6%, ‘거의 못 지킨다’와 ‘전혀 못 지킨다’는 각각 51.8%와 19.1%다. 평균 연속운행 시간을 물어보았을 때도 21.5%만이 ‘2시간 미만’이라 답했다. 77.4%가 ‘2시간 이상’, 17.5%가 ‘4시간 이상’이라 답했다. 한 번 달릴 때 6시간 이상 쭉 달린다는 응답자도 3.9% 나타났다.

“브레이크가 안 듣는 꿈을 꾼다”

왜 쉬지 못할까? 화물차 기사 대다수가 ‘낮은 운임’과 ‘시간 압박’을 거론했다. “적정운임이 보장되지 않고 지정한 시간 안에 탕 수(운송 건수)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30대·윙바디 25t).” “대기시간이 길어져서 상차하고 저녁도 대충 때우고 풀로 달려도 새벽에 도착(50대·카고 25t).”

차를 댈 장소가 없어 못 쉬는 경우도 많다. “길이 밀려 도저히 쉴 곳이 마땅치 않다(40대·트랙터 25t).” “휴게소 부족. 새벽에 잘 공간 없는데 태양광 시설이 잔뜩(40대·트레일러 25t).” 최근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태양광 패널 지붕이 많이 설치되고 있는데, 그런 곳에는 차체가 높은 화물차가 아예 진입하지 못한다.

기사들 서로가 서로의 휴식을 빼앗기도 한다. “배차 순번을 뒤차에게 따이지 않으려고(20대·카고 25t).” “하차 순번 때문에 뒤차에 추월당하지 않으려고(30대·25t 카고).” 혹은 제대로 된 휴식이 절실해서 휴식을 포기하는 역설이 발생하기도 한다. “잠잘 시간을 벌어야 해서 운행 중간에 쉬지 않는다(50대·트랙터 8.5t).” “휴게 시간을 지키려면 수면 시간이 부족하므로 지키기가 너무 어렵다(60대·탱크로리 2.24t).”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일반적인 삶도 화물차 기사들에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림 5〉의 운전자 E씨의 한 달 시간표는 일견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 달 중 휴무가 이틀뿐이고 가끔 장시간 연속주행도 관찰되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8시간 이상 연속정차(휴식)를 하고 있다.

다만 밤낮이 거꾸로다. 주행 기록을 살펴보면, E씨는 매일 오후 5시경 출근해 새벽 5시경 퇴근하는 걸로 추정된다. DTG 분석 결과 이런 심야 운행 노동자가 적지 않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심야노동은 자율신경계통의 리듬을 깨지게 만들어 과로사, 심혈관 질환 등의 위험을 크게 높인다”라고 말했다. 생체리듬이 깨지면 잘 시간이 주어져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지난해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이 대한수면의학회의 불면증 자가진단표를 활용해 화물운송 노동자들의 수면장애(불면증) 수준을 측정한 결과, 조사 대상자의 96.6%가 수면장애 증세를 보였다. 38.7%는 중증도 이상의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불면증. 브레이크가 안 듣는 꿈을 꿉니다.” 하루 16시간 이상,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8t 트럭을 몰며 한 달 200만~300만원 순수익을 올린다는 40대 화물차 기사는 앓고 있는 질병을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시간 줄이고 여가생활 하는 게 꿈입니다” “안전하게 운행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 집에서 잘 수 있고 정말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사람답게 사는 거요”…. ‘바라는 점’을 물었을 때 화물차 기사들이 적어낸 문장들이다.

과로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쉬는 게 싫은 사람도 없다. 그런데 무엇이 화물차 기사들을 멈추지 못하게 만드는 걸까? 이들의 고통과 걱정, 꿈과 소원은 화물차 기사 그들만의 사정일까? 화물차 기사들의 극한 과로로 인한 결과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로 향한다(〈시사IN〉 제793호에 ‘못 쉬는 화물차, 시민 안전 위협한다’와 ‘화물차 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기사가 이어집니다).

* 시사IN x VWL 특별기획 화물차를 쉬게 하라 - DTG 데이터로 본 365일 24시간의 노동https://truck.sisain.co.kr/

기자명 글 변진경·전혜원 기자 / 그래픽 VWL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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