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기사 김원식씨는 상·하차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하루 23시간 이상을 차 안에서 보낸다. ⓒ시사IN 이명익

“어디세요? 얼마나 걸리세요?” 벌써 열 번째 걸려오는 재촉 전화였다. “호법, 호법이요. 금방 가요.” 10월18일 새벽 0시10분, 화물차는 다음 상차지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인 경기도 광주시 서브(SUB)터미널까지 남은 시간은 약 20분. 그곳에서 간선 상차를 기다리는 물류센터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전화를 걸어왔다. “기사님 빨리 좀 올 수 없어요? 다들 기다리잖아요.” 화물차 기사 김원식씨(60)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스피커폰에 대고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갈게요. 뒤도 안 돌아보고 갈게요.” 속도 계기판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짜증과 원망이 담긴 재촉 전화를 10여 차례 받고 끊는 중간중간 김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봐요, 이러니 사고가 안 나겠어요? 이러니까 밟게 되는 거예요. 신호고 뭐고 다 까고요. 사고 나면 책임은 내가 독박 쓰고요.” 과속방지턱을 넘는 25t 트럭의 충격음이 ‘덜컹’ 한밤중 도로 위에 울려 퍼졌다.

일정이 늦어진 건 김씨 탓이 아니다. 김씨가 이날 화물차에 시동을 걸고 일을 시작한 시각은 12시간 전인 10월17일 정오께. 운송 주선업체(화주의 일감을 받아 일정한 수수료를 떼고 화물차 기사들에게 연결해주는 업체)에서 배차 일정을 하나둘 띄우기 시작했다. 김씨의 첫 운행 일정은 경기도 이천시 한 물류센터에서 짐을 실어(상차) 30분 거리의 허브터미널에서 짐을 내리는(하차) 것이다. 그 뒤 경기도 광주에서 군포, 군포에서 충북 옥천을 오가며 화물 상·하차를 완료해야 한다. 두 일정 각각 오후 4시, 오후 10시30분까지 와달라는 요청이 떨어졌다. 김씨는 낮 12시40분에 일찌감치 군포물류복합단지 주차장에서 차를 빼, 오후 2시부터 첫 상차지에서 대기를 시작했다.

오후 4시, 약속한 시간이 되었지만 상차는 시작되지 않았다. 김씨는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것 말고는 자리를 비우지 않고 차 안에서 계속 대기해야 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상차 작업 아르바이트생들도 주차장 여기저기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에서 익일 배송을 약속한 상품들이 컨베이어벨트를 다 돌고 박스에 포장되어 나오길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6시15분, 드디어 짐칸에 택배 상자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김씨는 백미러나 후방카메라 모니터를 살피며 작업 속도를 가늠했다. 주차장 너머 해가 서산으로 지고, 차량 내 DMB 화면에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 〈6시 내고향〉 〈우리말 겨루기〉 〈내 눈에 콩깍지〉가 차례차례 흘러갔다. 9시 뉴스 여덟 꼭지가 지나가고 나서야, 상차 작업자 한 명이 운전석 유리창을 두드렸다. “이제 차 빼도 돼요.”

김씨는 짐을 싣고 45분 남짓 달려 하차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또 ‘하차 대기’가 시작됐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다음 상차 터미널 직원과 주선업체 직원들에게서 번갈아 재촉 전화가 왔다. “아직 출발 안 했다고? 10시30분까지 오라고 했잖아요!” “아니 여기 하차가 다 안 끝났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이에요?” 실랑이가 오가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겨우 하차가 끝나고 다음 상차지로 출발한 시각은 밤 12시께. 상·하차 대기에 쓴 시간만 약 9시간이다. 이제 겨우 ‘한 탕(건)’을 끝냈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일이 이튿날 오전까지 아직 네 건이나 더 남았다. 24시간 동안 경기도 군포에서 이천으로, 이천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군포로, 군포에서 충북 옥천으로, 옥천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군포로, 군포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다시 군포로 오가며 짐을 싣고 내리고 샤시(트레일러에서 컨테이너를 적재하는 후미 부분)를 연결하고 끊기를 반복해야 한다. 보통 낮 1시에 시작한 운행은 이튿날 정오가 넘어서야 한 바퀴를 끝낸다. 그리고 2~3시간 뒤 다시 그다음 날의 한 바퀴가 시작된다. 김씨의 하루 총 평균 주행거리는 300~400㎞로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상·하차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하루 (화장실 오가는 시간 정도를 뺀) 23시간 이상을 차 안에서 보낸다.

김씨는 매일을 이렇게 산다. 그의 최근 한 달 운행과 정차 기록을 하나의 원 안에 나타냈을 때, 원 모양은 울퉁불퉁 불규칙하고 위태롭다(위 〈그림1〉, 자세한 설명은 '요일도 밤낮도 없는 24시간 365일의 노동' 기사 참조). 제대로 수면을 취한 것은 일주일에 한 번꼴이다. 보통 토요일 오후에 집에 들어가 일요일 오후에 나온다. 평일엔 차에서 쪽잠을 자는데 2시간 반 이상 잠든 기억이 없다. “한마디로 토끼예요, 토끼.”

그를 쫓는 것은 시간이다. 화물차 기사 스스로 예측하고 재단할 수 없는 ‘화물’의 타임라인이다. 화주와 주선업체의 사정, 도로 상황과 상·하차 대기시간, 물동량의 많고 적음과 물류 경기의 오르내림을, 화물차 바퀴를 굴려 맞춰야 한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김씨가 바꿀 수 있는 건 차량 주행속도뿐이다. 때로는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쉬는 시간을 포기한다. 화물 차량의 과속, 기사들의 과로와 졸음운전이 바로 이런 구조에서 발생한다.

차량 시동 끄고 눈 붙인 건 하루 1시간뿐

김씨는 35년 넘게 화물운송에 종사해왔다. 20대 때 오토바이 가스 배달이 처음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제과회사 트럭을 몰고 경기장 선수단들에게 간식을 배달했다. 레미콘 트럭을 15년, 덤프 트레일러를 10년간 몰았다. 덤프 트레일러를 몰던 때는 사흘을 내리 쉬지 않고 달리기도 했다. 사람이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양쪽 귀 뒤에서 진물이 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는 택배 간선 25t 트레일러(추레라)를 몰고 있다. 주로 주선업체를 통해 대기업 택배회사의 일감을 받아 수도권과 충청 지역을 누빈다. 여기저기 허브·서브 터미널을 오가며 택배 물량들을 대량으로 옮겨주면 그것들을 1~4t 지선 택배차들이 나눠 담고 가정과 사업장에 배송해준다. 택배가 언제 오나 궁금해 ‘배송 조회’를 눌렀을 때 자주 목격하는 각종 터미널·물류센터 명칭들이 바로 그의 트럭이 오가는 출발지와 목적지다.

10월17일 밤 10시께, 김씨는 ‘하차 대기’ 중에 제대로 된 첫 식사를 준비했다. 화물차 내부에 설치된 냉동고에서 꽁꽁 언 밥 덩어리를 꺼내 가스버너 불 위에 올렸다. 물을 조금 붓고 끓이면 그럭저럭 따뜻한 식사가 완성된다. 그의 트럭은 그의 생계 수단이자 부엌이자 식당이자 침실이다. 햇반 한 상자, 컵라면, 숟가락, 젓가락, 칫솔·치약, 겨울옷과 여름옷, 침낭, 에프킬라 따위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자는”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당뇨가 생겼다. 차 한구석에는 혈당 측정기와 인슐린 주사기도 놓여 있다. 김씨는 상·하차를 기다리는 화물차 안에서 하루 두 번씩 배에 인슐린 주삿바늘을 꽂는다.

김씨가 차량 시동을 끄고 눈을 붙인 건 〈시사IN〉 기자가 동행한 24시간 가운데 단 1시간 정도뿐이었다. 10월18일 새벽 3시경, 경기도 군포에서 연결한 샤시를 끌고 충북 옥천 허브터미널로 향하던 중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호두휴게소에 들러 잠시 쪽잠을 잤다. 그나마 휴게소에 주차할 자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야간 운행 시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잠이 쏟아질 때 휴게소나 졸음쉼터를 찾아도 주차할 공간이 없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땐 위험하지만 고속도로 갓길이나 국도변에 차를 세워놓고 눈을 붙이기도 한다.

김씨는 알람도 없이 1시간 뒤 일어났다. 다시 눈을 비비며 운전대를 잡았다. 수시로 창문을 내려 찬바람을 들이켜고 가을 날씨에도 에어컨을 켜서 잠을 쫓았다. 김씨도 이렇게 졸음이 쏟아질 때면 겁이 난다. “이러다가 사고 나는 거죠….”

종종 동료 화물차 기사의 부고를 듣는다. 몇 달 전엔 같은 25t 트레일러를 모는 동료 기사 한 명이 탱크로리 유조차 뒤를 받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앞서가던 탱크로리 기사가 주행 중 갑자기 뇌경색이 와서 도로 위에 멈췄는데 그걸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추돌했다고 들었다. 예전 덤프트럭을 몰 때 친해진 한 동료는 졸음운전 끝에 앞선 화물차에 실린 H빔이 운전석 앞을 뚫고 들어와 세상을 떠났다. 화물차 운전자 서로가 서로를 위협하는 형국이다.

“돈은 벌어야 하고, 일 한 탕이라도 더 하려고 기를 쓰다가 죽는 거지”라고 안타까워하면서도 김씨 역시 쉬지 않고 일한다. 규칙적인 수면 없이 시간을 쪼개며 도로 위에서 ‘월화수목금금금’을 보내다 보면 날짜 감각이 흐트러질 때가 많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와서 차가 휘청거리는 날도 화물차를 몰았다. 이런 극한 과로는 김씨뿐 아니라 화물차 기사 전반이 겪고 있는 문제다. 그리고 이는 화물운송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 모두의 안전과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왜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할까? 하루 운송 건수를 좀 줄이면 안 될까? 김씨는 “운반비가 안 맞으니 일을 더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먹고살 만큼 돈을 주면서 쉬라고 해야 쉬는 거지, 누군 안 쉬고 싶어서 안 쉬겠어요?”

김원식씨가 10월18일 새벽 천안호두휴게소에 들러 잠시 쪽잠을 잤다.ⓒ시사IN 이명익

‘벌칙 게임’ 같은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따져보자. 10월17일, 9시간 상·하차 대기를 포함해 낮 2시부터 밤 12시까지 경기 군포-이천-광주를 오가며 짐을 옮기고 나서 김씨가 받은 운임료는 17만원이다. 경기 군포에서 충북 옥천을 오간 두 번째 일감은 거리가 좀 돼서 21만원이지만 그중 절반이 기름값으로 나간다. 어떨 땐 옥천이나 대전까지 갔다가 수원·군포까지 ‘빈 통’으로 오기도 한다. 그럴 경우는 계산해보면 남는 돈이 6만원 남짓이다. 단순 시급으로만 계산해봐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

‘이거 벌려고 이 고생을 하나’ 싶어 일을 조금 쉬거나 줄일라치면 바로 생계가 위태로워진다. “나가는 돈은 똑같은데, 들어오는 돈은 쉬는 만큼 탁탁 깎이기 때문”이다. 트럭 할부금이 한 달에 314만원씩 나간다. 할부가 두 달 밀리면 바로 신용불량자가 된다. 여기에 지입료, 보험료, 유류비, 수리비, 통행료 등 한 달 매출의 70% 이상이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물가가 오르면서 지출액은 함께 늘어나는데 화주가 책정하는 운임료는 제자리걸음이다. 주선업체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정확히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

오래 일했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운 좋게 ‘알짜 일감(짧은 거리를 오가며 한 번에 두 건씩 상·하차가 가능한 일)’을 배차받기만 바랄 수밖에 없다. 먼 거리를 이동해 빈 차로 돌아와야 하는 ‘개털 일감’이 안 걸리길 기도할 뿐이다. 기사들 간 서로 좋은 일감을 따내려고, 먼저 상·하차 순서를 배정받으려고 눈치 보고 이간질하며 갈등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언제 일감이 부족해질지 모르니 일단 배차를 받으면 받는 대로 앞뒤 재지 않고 운행을 한다. 그러다 보면 한 달 내내 24시간 내내 화물차 안에서 ‘쪼개기’ 수면으로 버티며 일을 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한 물류센터 인근 도로에서 컨테이너 화물칸을 연결 중인 김원식씨. ⓒ시사IN 이명익

김씨 같은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은 마치 벌칙 게임과도 같다. 빡빡하게 제한된 시간과 공간의 범위 속에서 조금이라도 이탈되면 바로 벌을 받는다. 10월18일 오전 10시, 밤을 새우고 도착한 네 번째 하차지 인근에서 김씨는 안절부절못하고 주위를 살피며 운전석에 탔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물류센터 주차장이 꽉 차 인근 국도변에서 하차 대기를 하던 중이었다. 주정차 단속 차량이 김씨 차를 비롯한 화물차 사이를 지나다녔다.

김씨는 주차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트럭을 급히 여기저기로 옮기다가, 단속 차가 길가 한 컨테이너 샤시 쪽으로 향하는 걸 보고 허겁지겁 자신의 ‘꽁지(차량 후미)’를 끊어내고 그 샤시를 연결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같은 주선업체에 등록된 동료 몇몇과 공유하는 컨테이너 샤시다. 주차 공간이 없어 할 수 없이 밖에 대놓았지만 주차 단속에 걸려도 화주나 주선업체는 아무 책임을 안 진다. 기사들이 모든 범칙금을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딱지 몇 번 떼이면 오늘 일한 거 다 개털 돼요.” 벌칙을 피하려면 쉬지 않고 부단히 화물차를 움직일 수밖에 없다.

4시간 뒤, 김씨는 전날 첫 출발지인 군포복합물류센터에 차를 댔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일의 한 주기는 끝냈다. 다시 김씨 스마트폰의 배차 앱에 다음 일감들이 뜨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잠시 쪽잠을 잔 뒤 다시 운행은 반복될 것이다. “일을 해도 손해이지만 안 하면 더 손해”인 이 기기묘묘한 쳇바퀴 안에서, 화물차 기사들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잡은 채, 일단은 멈추지 못하고 달리고 있다.

* 시사IN x VWL 특별기획 화물차를 쉬게 하라 - DTG 데이터로 본 365일 24시간의 노동https://truck.sisain.co.kr/

기자명 글 변진경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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