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

요즘은 거의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 됐지만 한때 성냥은 불을 피우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냥은 붉은 꼭지가 달린 ‘적린(赤燐)’이야. 이 적린이 개발되기 전 세상의 성냥 공장 노동자들은 ‘백린(白燐)’ 성냥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백린 성냥은 그야말로 노동자들에게 악마 같은 존재였어. “백린 성냥은 제조 과정에서 독가스를 내뿜는 데다 피부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등 인체에 치명적인 위험을 지닌 것이었다(〈한겨레〉 ‘최우성의 동화경제사’).” 오늘 들려줄 이야기의 주인공은 백린에 맞선,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다치든 말든 백린으로 돈을 벌었던 골리앗 같은 자본에 맞서 싸운 다윗들이다.

19세기 영국 성냥 공장의 노동 현실은 확실히 지옥에 가까웠다. “4~16세 소녀들은 공장에 출근하면 두 번의 짧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작업 중에 동료들과 잡담을 하거나 바닥에 앉아서 쉴 수 없었다. 규칙을 위반하면 무거운 벌금이 매겨졌고, 매를 맞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지각을 하거나 감독관 허락 없이 화장실에 다녀오다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 했다(〈경향신문〉 ‘강진구의 고전으로 보는 노동이야기’).” 이런 살인적인 노동강도 속에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나무막대기를 유독성 인(P) 화합물에 담갔다가 뺀 후 일정하게 썰어 성냥갑에 넣었다. “백린(白燐)은 뼈에 쉽게 침착되는 성질이 강해 성냥 공장에서 오랜 기간 일하면 아래턱 부근에서 고약한 냄새와 함께 고름이 나오고 뼈 조직에 괴사가 일어난다. 결국 아래턱이 주저앉는 ‘인턱(phossy jaw)’ 증상으로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면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위 〈경향신문〉 기사).”

백린의 위험성이 알려지고 인체에 훨씬 덜 해로운 적린 성냥도 발명되면서 일부 나라에서는 백린 성냥이 금지됐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백린 성냥을 버젓이 생산하고 있었어. “(백린 금지 조치로) 자유로운 거래가 제한될 수 있다”라는 것이 정부의 핑계였지만 결국은 생산 단가 문제였다. 적린 성냥 단가가 조금 더 비쌌거든. 수많은 노동자들의 얼굴이 망가졌지만 백린은 꾸준히 생산되고 불티나게 팔렸다.

1887년 〈더 링크〉라는 잡지가 창간된다. 이 주간지를 창간한 사람은 애니 베전트(1847~1933)라는 여성이었어. 베전트는 1888년 어느 모임에서 영국 유수의 성냥 공장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접한다.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공장의 노동자 취재에 나선 베전트는 참혹한 노동강도와 경영진의 탐욕에 더하여 노동자들의 생명을 갉아먹는 백린의 위험성을 절감하게 돼. 1888년 6월23일 베전트는 〈더 링크〉에 ‘런던의 백인 노예들’이라는 고발 기사를 싣는다. 기사 끝머리에서 그녀는 이렇게 절규했단다. “이 불행을 이용해 돈을 벌고, 의지할 곳 없는 소녀들의 굶주림에 빨대를 꽂아 재산을 늘리는 이들을 위해 특별한 지옥을 창조할 민중의 단테가 있다면!”

이후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공장의 경영진은 실로 유치한 대응에 나선다. 베전트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베전트의 기사는 거짓이며 노동자들은 회사의 처우와 작업 조건에 만족한다는 내용의 각서에 노동자들의 서명을 강요한 거야. 성냥 공장 노동자들은 이 기막힌 요구를 거부한다. 하지만 회사는 눈엣가시였던 노동자 세 명을 골라 잘라버렸어.

“우리는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 더미로 쌓인 화약에 성냥불을 갖다 댄 격이었다. 애니 베전트는 부르짖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 하고, 안락한 집에 돌아가 아내와 아이를 대하겠는가? 당신들의 딸을 당신 닮은 사람의 손아귀에 들도록 하겠는가?” 그 대답은 노동자들로부터 먼저 나왔다. 베전트는 이런 익명의 편지를 받았어. “우리가 무엇을 견뎌야 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서명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도우려는 당신이 곤경에 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888년 7월5일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여성 노동자 1400여 명은 일손을 놓고 거리로 나선다. 영국 역사에 유명한 ‘매치 걸스 스트라이크(Match Girls’ Strike)’ 즉 성냥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어진 거야.

여성 노동자들은 그 앙상한 팔뚝을 흔들며 거리에 나선다. 영국 여성운동의 대모라 할 에멀린 팽크허스트, 작가 조지 버나드 쇼, 그리고 구세군 지도자 캐서린 부스 등 여러 명망가들도 파업을 지지하고 나섰어. ‘매치 걸’들의 절규는 시민들 마음을 뒤흔들었다.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성냥 구입을 거부하고 파업 기금을 쾌척했다. 파업 2주일 만에 여성 노동자들은 의미 있는 양보를 받아내고 파업을 끝내게 된다. 역사적인 승리였지.

전등이 없던 시절 성냥은 생필품이었고, 영국의 성냥 제조사들은 정부의 세금 인상안을 철회시킬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어. 그들은 ‘돈 벌 자유’를 위해 사람의 목숨과 건강을 썩은 성냥개비 버리듯 했지. 〈더타임스〉를 비롯한 주류 언론들 역시 베전트 등 파업 지지자들을 ‘현대 산업사회의 해충들’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이 세상을 위태롭게 한다고 격렬히 비난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세상은 ‘매치 걸들의 지옥’ 그 자체였지만 말이다.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무시했던 역사는 19세기에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우리는 스물세 살의 여성 노동자가 밤샘 노동 중 기계에 빨려 들어가 숨지는 참사와 마주했다. 회사는 한 생명이 죽어간 현장을 천으로 덮고, 동료 노동자들에게 작업 속행을 지시했다지. 그들의 돈 벌 자유는 19세기 영국의 성냥 회사의 자유만큼이나 잔인했다. 유족들에게 조문객 나눠주라고 빵 몇 박스를 갖다 안기는 무신경함 역시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의 경영자들에 뒤지지 않는다. 성냥 회사와 한패였던 영국의 정치인들처럼, 2021년 828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나라의 대통령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벌 규정을 개선하라”고 지시했어. 보수언론은 기업주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을 19세기 영국 언론처럼 ‘현대 산업사회의 해충’으로 몰아붙일 기세가 드높다.

이런 상황에서 아빠는 다시금 1888년 영국을 뒤흔든 매치 걸스 스트라이크의 승리를 돌아보게 된다. 애니 베전트를 비롯한 의로운 사람들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막강한 자본에 맞서 싸웠던 10대 노동자들의 용기는 여전히 빛나지만 그 빛을 밝히고 퍼뜨렸던 것은 런던 시민과 노동자들의 연대였어.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애니 베전트가 연신 고발의 글을 발표하며 매치 걸들을 도왔듯, 구세군 조직은 적린 공장을 세우고 노동자들에게 후한 임금을 주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냈지. 공장을 세운 이유 중 하나는 백린 성냥 공장 경영자들이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부려먹지 못하게 되자 이를 가내수공업 형태로 외주화했고 외주를 받은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이 피해를 당하는 비극이 벌어졌기 때문이야.

영국에서 백린 성냥 생산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1908년이었다. 매치 걸들의 파업 이후로도 20년이 흐른 뒤였지. 하지만 애니 베전트가 없었다면, 캐서린 부스 등 구세군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다윗 같은 노동자와 그들을 응원한 시민들의 박수가 없었다면 백린이라는 골리앗은 더욱 오랫동안 영국인들의 곁에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턱뼈를 분쇄하지 않았을까. 아빠는 27년 차 방송 노동자이고, 너 역시 앞으로 노동자가 될 거야. 우리 같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줄이고 나아가 없애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함께 고민해보자꾸나.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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