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기지촌 운영에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원고 중 한 명인 김숙자씨.ⓒ시사IN 신선영

김숙자씨(76)가 이불을 꺼냈다. 50년이 지났지만 보풀 하나 일지 않은 푸른색 담요였다. 끝자락에 110V 플러그가 달려 있었다. “어제 산 거 같지? 내가 잘 모셨어. 우리 철수(가명)가 보내준 거. 예전에는 도란스(변압기) 꽂아서 썼어요. 이제는 오래됐으니까 불날까 봐 전기는 안 켜. 그래도 덮으면 따뜻해.”

1945년, 해방둥이 닭띠로 태어난 김숙자씨는 가난과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서울로 도망쳤다. 초등학교도 미처 마치지 못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모살이뿐이었다. 열여덟 살, 아는 언니를 따라간 곳이 미군 기지촌이었다. 송탄, 진천, 성환, 태안, 평택 등 여러 곳을 전전했다. ‘철수’를 만난 건 진천에서였다. “쿠바 사람이야. 발음이 어려워서 내가 철수라고 한국 이름을 지어줬어. 김철수, 김은 내 성을 따다 붙이고.”

결혼을 약속하고 6년을 만났다. 철수가 미국에 돌아간 뒤 그도 기지촌을 나왔다. 편지는 이어졌지만 어느 날 도착한 엽서 한 장에 마음을 접었다. “철수 어머니가 보냈어. 내 아들이 한국 여자하고 결혼하는 거 싫으니까 앞으로 편지하지 마라, 그런 말. 아주 냉정하게 썼더라고. 그게 마지막이지.” 연락 한번 없이 50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여전히 ‘철수’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방문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며칠 전에 10월6일이 생일이었거든. 이제 일흔하나겠네.”

지난 9월29일 아침, 김숙자씨는 밤새 덮고 잔 푸른 담요를 가지런히 개켰다. 일찍 집을 나선 그는 대법원으로 향했다. 기지촌 여성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는 날이었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국가가 성매매를 조장하면서 기지촌을 운영했다는 2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확정했다. 판결문을 듣던 김숙자씨는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재판정을 나온 뒤에야 작은 탄성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

“평생을 우리 죄인 줄 알고 살았지. 여기에 내 발로 들어왔으니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던 거야. 빠져나갈 수가 없었던 건데. 주위에서도 손가락질 많이 했잖아요. 앞에서도 아니고 뒤에서 수군수군. 사실 우리가 낸 방 한 칸짜리 월세들로 먹고살았으면서. 그래도 이제는 국가 잘못도 있었다고 인정을 했으니까, 옛날처럼 막 대하지는 않겠죠. ‘그래 봤자 양순이’라고 말할 사람은 할 테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성병 검진”

지난날 그에게 국가란 순경 한 명 한 명의 얼굴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나라가 우리를 팔아서 장사한 거잖아요. 그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한테 뭘 바라겠어. 제발 우리를 건들지만 말고 내버려두라는 마음이었지. ‘똥파리(당시 순경을 이르던 은어)’들이 맨날 반말하고, 괴롭히고, 술도 공짜로 먹으려고 하고, 토벌하러 오고, 젊은 애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여기가 다른 곳이었으면 그랬겠어요?”

무력으로 없앤다는 뜻인 ‘토벌’은 기지촌에서 미군·경찰·보건소의 합동 단속을 의미했다. 미군과 한국 정부는 여성들에게 주기적으로 성병 검진을 실시하고 감염된 여성들은 강제로 치료를 받도록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성병 검진하고, 3개월마다 한 번씩 혈액검사 하고, 6개월마다 한 번씩 결핵검사 하고. 말이 몇 번 몇 번이지 정말 무지하게 괴로워.” 김숙자씨가 몸서리를 쳤다.

‘치료’는 장애 혹은 사망으로 끝나기도 했다. “진천에 있었을 때야. 친구라면 친구고 남이라면 남이지. 여기서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친구가 될 수 없으니까. 다 같이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화요일이었나 금요일이었나. 그애가 매독 기운이 있었나 봐요. 페니실린을 한 대 맞더니 30분 뒤에 몸을 막 떨다가 죽어버렸어. 내가 서 있는 바로 앞에서. 그게 우유처럼 하얀데 아주 독한 약이거든.”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라고는 기지촌 여성들밖에 없었다. 스무 살 김숙자씨는 ‘친구라면 친구고 남이라면 남’인 이의 유해를 거뒀다.

9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기지촌 여성 단체와 원고, 공동 변호인단 등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강제적인 성병 검진과 치료 기록은 국가가 기지촌 운영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됐다. 기지촌 여성들의 소송대리인 중 한 명인 하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10년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기지촌 여성인권연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에 자문을 했어요. 할머니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고 하시는데 가능하겠느냐고요. 처음에는 다들 될까, 반신반의했어요. 성매매 재판 자체가 어렵거든요.”

원래 기지촌여성인권연대에서 목표로 한 소송 대상은 미군이었다. “성매매라고 할 때 성을 판 사람이 있다면 산 사람도 있잖아요. 여기서 성 구매자는 미군이고요. 미군 장교가 여러 기지촌을 돌아다니면서 위생 상태를 점검했던 문서도 있어요. 여기에 한국 정부가 공모한 거죠. 우선 국가배상 소송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을 검토하던 하주희 변호사의 눈에 띈 건 성병 검진과 강제 치료에 대한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이었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돼요. 코로나19만 봐도 모든 검사나 격리는 반드시 법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1977년 8월19일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국가 주도의 성병 검진과 강제 치료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었어요. 정부가 여성들을 잡아가서 강제로 구속한 거죠. 이 불법성만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여전히 승소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해볼 수는 있다’는 말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지촌 할머니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판을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어요. 만약 재판 중에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소송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고 가족이 있더라도 연락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기지촌 생활로 여러 가족을 부양했어도 혼자 사는 분들이 많아요.”

원고 122명을 대리하는 변호인 23명이 소장을 작성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소장에 적힌 대한민국 정부의 혐의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국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운영한 점, 둘째, 성매매업소 단속을 면제해주고 불법행위를 방치한 점, 셋째, 조직적이고 폭력적으로 성병을 관리한 점, 넷째,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한 점.

2017년 1월20일, 1심을 맡은 서울지방법원 제22민사부(재판장 전지원)는 1977년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이 시행되기 이전까지 ‘조직적이고 폭력적으로 성병을 관리한 점’만 국가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며 당시 강제로 격리됐던 여성들에게만 500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공동 대리인단은 즉시 항소했다.

2심에서 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더 폭넓게 인정했다. 2018년 2월28일 서울고등법원 제22민사부(재판장 이범균)는 ‘국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운영한 점’과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한 점’까지 인정하며 소송에 참여한 원고 전원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중 강제격리 경험이 있는 원고에게는 위자료 700만원을, 나머지 원고에게는 300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피고는 기지촌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 적극적으로 외국군을 상대하는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함으로써, 원고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나아가 성(性)으로 표상되는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미군기지 주위에 여전히 기지촌 운영

9월29일 대법원 판결(2심 판결 확정) 때는 원고가 122명에서 95명으로 줄었다. 스스로 소를 취하한 사람은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4명은 그사이 세상을 떠났다. 하주희 변호사는 권리를 구제하는 재판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숙자씨도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릴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 여든이 다 되어가는데 뭘 하겠어. 몸이 안 아픈 거, 남한테 부담 안 주는 거 말고는 이제 바라는 게 없어.”

1982년 경기 동두천 기지촌의 미군 전용 클럽 모습.ⓒ연합뉴스

기지촌 여성 노인들을 돕는 햇살사회복지회의 우순덕 대표는 이제 국가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국가의 책임이 명확히 인정된 만큼, 각 지자체에서 지원 조례를 통과시켜서 도움을 드려야 해요. 솔직히 앞으로 길어야 10년이거든요. 해마다 몸이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에요.” 2020년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경기도에 거주하는 기지촌 여성 1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생활 실태 및 지원정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기지촌 여성의 평균연령은 67.7세다. 60대 이상의 고령자 비율이 83.1%(70대 42.3%, 60대 32.8%, 80대 8.0%)에 달한다. 이 중 56.9%가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2020년 경기도의회에서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지만, 실질적 지원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경기도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앞으로 관련 상위법이 만들어지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군기지 주위에는 여전히 기지촌이 운영되고 있다. 이제는 예술흥행비자(E-6 비자)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2019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성매매 실태 및 대응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지촌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잇는 여성은 749명으로 추정된다. 하주희 변호사는 “이분들은 우리나라 여성도 아닌 데다 한국말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관심을 덜 받고 구제받기도 더 힘들죠. 이번 판결로 이분들이 놓인 환경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단순히 과거사를 매듭짓는 결정만은 아닌 셈이다. 

기자명 평택·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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