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당 100원 내기 고스톱이나 치자,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TV를 안 보기 시작한 지 19일째. 명절에 이따금 가족들과 화투를 치고 있자면 패를 보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경로당 화투’라고 지청구를 듣는 내가 거실을 ‘헤매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서.

‘TV 끊기’의 또 다른 키워드는 ‘시간 활용’과 ‘관계 맺기’다. 언뜻 생각해도 멍하니 브라운관을 쳐다보던 시간을 달리 활용할 수 있다. TV 끊기를 시작하면서 가입한 ‘TV 안보기 시민모임’이라는 커뮤니티에도 ‘TV는 순간, 독서는 한평생’이라는 슬로건이 올라와 있다. 3주 동안 TV를 볼 시간에 대신 다른 일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다섯 권짜리 소설을 금세 다 읽었고, 이어 다른 장편소설과 장르문학 단편집을 번갈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을 좀 더 오밀조밀 써보자는 애초 목적은 충족된 셈이다.

‘시간 활용’ vs ‘관계 맺기’의 성적표는?

ⓒ차형석TV를 안 보기 시작하니, 다섯 살 먹은 아들(위)이 책을 보는 시간이 더 늘었다.
그런데 ‘관계 맺기’는? 다섯 살 먹은 아이와 어떻게 지냈고, 처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묻는다면, 기사를 쓰기가 ‘대략 난감’하다. ‘가족끼리 아무 말 없이 TV를 보면서 밥을 먹는 장면’은 TV가 가족 관계를 얼마나 단절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TV를 끊었다고 노상 책만 들여다보는 것은 나의 ‘삼촌형 육아’와 얼마나 거리가 있을까? 자신이 없어진다. 그러고 보면 며칠을 빼놓고는 저녁 시간에 나는 회사나 술집에 있었거나, 아니면 거실을 서성였다. 나는 뭔가 당황하고 있었다.

TV를 끊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 중간 점검을 하는 ‘가족 인터뷰’를 했다. 아들에게 물었다. “TV를 안 보니까 좋아?” “좋아.” 왜 좋은지 물어보기에는 아들이 아직 어리다.

아내에게 물었다. 대답이 길다. “나는 원래 TV 보는 게 싫었다. 시끄럽고, 시간만 가고. 특히 TV 보면서 밥을 먹는 게 싫었다. TV를 안 보니 밥 먹을 때 얘기를 많이 하게 되지 않았나. 게다가 TV를 그만 보라고 잔소리를 안 하게 된 게 가장 좋다. 또 라디오를 많이 들으니 옛날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다. 저녁 시간에 CBS 라디오에서 예전에 듣던 노래를 그렇게 많이 방송하는 줄 몰랐다. ○○(아들 이름)도 이전보다는 책을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공감할 만하다. 아들도 두세 차례 나에게 다가와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호비와 예니가 나오는 그림책. 꽃 뒤에 숨은 무당벌레와 풀숲에 숨은 달팽이와 하얀 거미줄에 붙은 거미를 찾는 ‘책읽기 놀이’를 두세 번은 했으니까. 주인공 캐릭터 이름을 나도 외웠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아내는 TV를 안 보기로 하고서 소파에서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TV를 보면서 혼자 있거나, 독서를 하면서 혼자 있거나. 함께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는 좋지 않다는 거다. 여기에 결정적 한 방이 이어진다. “게다가 TV와 상관없이, 늦게 집에 들어오는 것은 똑같다. 차라리 이참에 술이나 끊지 그랬어.” “…….”  

3주차, 대체 프로그램 마련에는 ‘실패’

TV 끊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3주 정도 시간이 흐르면 ‘내가 뭔가 대체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래서 이 주의 기사 계획도 ‘대체 프로그램’이라 적었다. 하지만 습관은 고치기 쉽지 않다. 첫 번째 주말을 빼고는 3주 동안 ‘TV만’ 안 볼 뿐이었다. TV 끊기 3주차인 나는 ‘관계’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외 소득이 있기는 있다. 장모와 인터뷰를 했다. 별달리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비가 많이 오는데, TV 뉴스를 못 보니 답답했다고 한다. 인근 전파사 아주머니에게 TV 끊기를 한다고 얘기했더니 그 아주머니도 ‘날도 덥고, 시끄럽고, 골치 아프다’고 TV 보기를 확 줄였다고 한다. 연남동 청아전기 아주머니 파이팅.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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