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24일(현지 시각) 그리스에 거주하는 한 이란 난민 여성이 지나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AFP PHOTO

9월28일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가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역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이란 쿠르드 정당 본부를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 ‘로즈힐랏(Rojhilat, 동쿠르디스탄)’ 출신의 쿠르드 정당들은 이란 현지에서 불법단체 혹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채 대부분 이라크 북부에 망명 중이다.

이번 공격으로 임신부 한 명을 포함해 총 18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최소 58명으로 집계됐다. 이란 쿠르드족 이슈를 집중 추적해온 헹고 인권기구에 따르면, 이란 쿠르디스탄 민주당(KDPI)과 쿠르디스탄 자유당(PAK)이 각각 대원 8명을 잃었다. 망명 쿠르드 정당들을 향한 이란의 공격은 이미 9월23일께부터 이란-이라크 국경 일대에서 계속돼왔다. 그러나 9월28일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아 등 이라크 북부의 주요 도심까지 미사일과 드론이 날아들면서 주권 침해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 되었다.

이번 공격의 심각성은 미국까지 군사적으로 응대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 중부사령부가 F15 제트기로 이란 드론을 격파했다”라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란이 국경을 넘어 공격하면서 자국 내 시민들의 정당한 분노와 시위, 내부 문제에서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면 오산이다”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대이란 비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동 일대 대리 세력들에 드론을 제공하는 이란의 행위는 전 세계가 비난해야 마땅하다”라고 말했다.

이란 시위 사태의 두 가지 역동성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이 암시하듯, 이란이 이번 공격에서 명분으로 내세운 건 ‘이란 시위 사태 배후에 이란 쿠르드 정당들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란 시위는 9월13일 수도 테헤란 거리에서 발생한 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란 서부 쿠르디스탄 출신인 지나 마흐사 아미니는 이날 자신의 오빠와 함께 테헤란을 방문하던 중 ‘히잡 불량 착용’으로 ‘도덕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통상 1시간 정도의 ‘재교육’을 받고 풀려나는 게 관례였지만, 지나는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9월16일 사망했다. 지병 없이 건강하던 20대 여성이 갑작스레 목숨을 잃었다는 건 그가 구금 중 죽을 만큼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나의 죽음은 국가폭력에 의한 살해로 의심되는 전형적인 의문사였다.

지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도덕경찰은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산물로 1983년부터 도입됐다. 여성의 머리카락 노출을 트집 잡으며 ‘올바른’ 히잡 착용 여부를 단속하는 그들은 ‘국가 가부장제’ 지킴이이자 ‘이슬람 신정체제의 폭압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나의 죽음이 바로 그 체제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한편 켜켜이 쌓여 있던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오랜 억압과 차별이 분노를 봉기 수준으로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이에 항의하는 첫 시위가 지나의 고향인 쿠르디스탄주 사케즈에서 시작됐다는 건 시위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이어 이란의 소수민족 지역들이 예외 없이 들고일어났다. 남서쪽 후지스탄주 아흐와지 아랍인을 비롯해 북서쪽 아제르바이잔주의 튀르키예계, 남동쪽 ‘시스탄과 발루치스탄’ 지역의 발루치족 등이다. 이들 소수민족 지역이 수도 테헤란이나 페르시안 문화의 중심 도시 이스파한과 함께 모두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이번 시위 사태는 두 가지 역동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란 여성들의 ‘히잡 의무 착용 반대’ 양상이다.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AP 통신 9월28일 보도에 따르면 이란 혁명 직후인 1979년 3월7일, 이슬람공화국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히잡령’을 발표하자 이튿날 여성의 날을 맞아 이란 여성 수만 명은 히잡을 쓰지 않고 행진했다. 혁명 직후 출범한 새로운 체제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명령에 대한 집단 불복이었다. 가깝게는 2014년 〈미국의 소리(VOA)〉 페르시아어 담당 기자이자 이란계 미국인 마시 알리네자드가 시작한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 캠페인이 있다. 마시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고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찍은 셀카를 올리도록 독려했다. 이 캠페인은 2017년 ‘하얀 수요일(White Wednesday)’이라는 유사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매주 수요일 흰색 스카프를 썼다가 벗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다.

2010년대의 히잡 반대 시위는 이벤트적이고, 다소 상징적·소극적 성격이었다. 반면 이번 지나의 죽음이 촉발한 히잡 반대 시위는 차원이 달라졌다. 스스로 머리를 싹둑싹둑 잘라내는 ‘단발 투쟁’, 히잡 불태우기 등 좀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며, 거칠고 직설적이다. 무엇보다 과거의 히잡 반대 활동가들이 ‘셀럽화’하면서 대중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면, 이번 히잡 반대 시위는 셀럽과 소영웅주의 대신 거칠게 분노한 대중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거리에는 히잡을 두른 여성들도 대거 동참 중인데, 국가가 개인의 신체와 표현 수단을 통제하고 처벌하는 제도를 거부하는 대의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마침내 “히잡 의무 착용을 강요한 법을 폐지하기 위한 법적 검토를 준비해야 한다”라든가 “도덕경찰의 활동을 공식 중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정당도 등장했다. 개혁 정당으로 통하는 이슬라믹 이란 인민당 연합(UIIPP)이 그들이다. UIIPP는 2015년 8월,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 진영 인물들이 ‘이슬람 민주주의’를 내걸고 출범한 정당이다. 이란 역사상 최초로 여성 사무총장 아자르 만수리를 선출해 주목받기도 했다. 아자르 만수리는 이번 시위 국면에 대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다른 역동성은 ‘봉기’ 수준의 쿠르드 지역 시위와 다국적 쿠르드들의 연대다. 쿠르드 여성 지나가 사실상 국가폭력에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자, 오랜 억압과 차별에 켜켜이 눌려 있던 쿠르드 지역의 분노가 폭발했다. 여성과 쿠르드, 이 두 가지는 시위 현장의 중심 구호 중 하나인 ‘여성, 생명, 그리고 자유(여성 Jin, 생명 Jiyan, 자유 Azadi)’를 만들어낸 동력이기도 하다. 이것은 여성해방을 운동의 중심 의제로 설정한 쿠르드 운동의 오랜 구호로, 그들의 전통과 현재가 담겨 있다. 여성이 저항의 주체가 된 이번 시위에서 적확히 적용되는 외침이다.

시위를 알리고 공유하는 과정에도 ‘쿠르드 변수’가 크게 작용했다. 이란의 쿠르드와 연대하는 튀르키예, 시리아 등 다국적 쿠르드 단체의 적극적 소셜미디어 활동과 연대 성명 역시 이란 시위에 동력을 제공하는 요소로서 시위를 외부로 알리는 데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예로, 튀르키예 쿠르드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의 대변인 에브루 구네이는 “이란 여성 동지들, 당신들의 저항은 곧 우리의 저항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시리아 북서부 쿠르드 자치구역인 로자바의 여성 조직 ‘콩그라 스타(Kongra Star)’도 9월26일 성명을 발표하고 “동쿠르디스탄(이란 쿠르드 지역)과 이란에서 계속되는 시위는 지나 아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여성혐오(misogyny) 시스템과 억압적인 이란 정권을 겨냥한 항쟁으로 발현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뿐 아니라 로자바의 뮤지션 그룹 ‘후네르게하 월랏(Hunergeha Welat)’은 이란 여성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노래 ‘세르헬단(Serheldan·항쟁)’을 발표했다.

9월28일(현지 시각)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의 드론 공격으로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역 술라이마니아 인근 마을이 폐허가 된 모습. ⓒAFP PHOTO

“개혁을 넘어 체제 전복을 원한다”

현재 이란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 절대다수는 지나의 이름을 ‘마흐사 아미니’로 표기하고 있다. 그가 쿠르드 이름 ‘지나’가 아닌 페르시아어 이름 ‘마흐사’로 표기되는 건 지나의 모국어 쿠르드어가 공식어나 교육 언어로 허용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와 연관된 좋은 본보기가 있다.

노진 사회문화협회(Nozhin Socio-Cultural Association)라는 쿠르드 사회문화단체에서 활동하던 자흐라 모하마디는 쿠르드 아이들에게 쿠르드어와 쿠르드 문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2019년 5월23일 이란 당국에 체포됐다. 이듬해 2월 그는 쿠르디스탄 주도인 사난다지 이슬람 혁명법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이후 5년으로 감형되었다. 자흐라의 변호사가 항소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올해 1월3일 재심 청구는 기각되고, 항소법원은 5년 형을 확정했다.

독일에 거주하는 헹고 인권기구 자원활동가 나린 알삭스는 네덜란드 출신 쿠르드 전문기자 프레데리케 기어딩크가 진행하는 〈메디야 뉴스〉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 모든 차별이 쿠르드인들을 시위 현장으로 불러들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인들이 단지 히잡에 대해서만 시위하는 게 아니다. 여성에 대한 여러 형태의 차별, 악화되는 경제 상황,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 등이 모두 이번 시위 사태의 배경이다”라고 말했다. “이란 거리의 구호는 단지 ‘개혁’을 요구하는 걸 넘어 체제 전복을 원한다”라는 점도 강조했다. 9월29일 ‘이란 페미니스트 혁명의 목소리’ 명의로 발표된 성명 역시 같은 톤의 주장이다. “이란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은 단지 마흐사 아미니에 대한 잔혹한 살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이란) 이슬람 레짐(체제)의 본질에 대한 저항이다.”

이슬람공화국 체제 전복의 정서는 나린 알삭스가 암시했듯 ‘독재자(이란 신정체제 최고지도자를 가리킴)에게 죽음을’ 같은 구호로 시위 현장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10월1일 이란 쿠르디스탄 데골란 지역에서는 ‘바시즈(Basij)’ 기념 동상이 불타올랐다. 바시즈 역시 이슬람 혁명의 산물이다. 이슬람 혁명수비대가 체제 수호 엘리트 부대라면 바시즈는 체제 수호 민병대원들이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군의 지상 공격로를 터주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던져 지뢰밭을 제거했던 그들의 자살 공격 전술은 유명하다. 그들의 동상이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은 이슬람공화국 체제가 불타오르는 듯한 연상작용을 일으켰다. 

기자명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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