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대상아동에 대한 자립지원제도가 강화되어도 거듭 부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아동양육시설과 청소년 쉼터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청년 당사자들을 통해 제도의 빈틈을 살펴보았다.

18년간 보육원에서 생활한 윤도현씨(20)는 보호대상아동들의 자립을 어렵게 하는 중요한 이유로 폐쇄적인 시설 환경을 짚었다. “보호 종료 시기가 되면 시설에서는 급하게 자립을 준비시킨다. 벼락치기로 숙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스로 선택하고 실수하며 배우는 경험적 교육이 부재한 시설 생활은 개인을 미성숙한 사람으로 키운다. ‘시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사회적 논의가 너무 부족하다.”

자립지원시설을 통해 청년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된 정명석씨(24·가명) 역시 “내가 죽은 이들처럼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라고 말한다. 정씨는 가족들의 지속적 학대로 16세에 집을 나와 청소년 단기 쉼터에 입소했다. 행정 분류체계에 따르면 청소년 쉼터는 아동복지시설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쉼터는 가정 밖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이 머무르는 거주 시설이라는 점에서 시설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그는 쉼터 안의 위계적 관계와 일상적인 퇴소 위협을 ‘또 다른 학대’라고 표현했다. 왜 이들은 시설이 바뀌지 않으면 보호아동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걸까? 윤도현씨와 정명석씨를 인터뷰한 뒤 재구성했다.

18년간 보육원에서 생활한 윤도현씨는 “시설 입소자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언제, 어떻게 시설과 쉼터에 입소했나?

윤도현(윤): 태어난 지 3일 만에 보육원에 맡겨졌다. 한 보육원에서 18년간 쭉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만 18세가 된 후에 퇴소를 해야 했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이기도 했고 시설에서도 보호 연장을 권유해서 6개월 정도 더 머물다 퇴소했다. 그때도 시설에선 나가는 걸 반대했다. 위험하니까 자립을 못할 거라고 했다. 내가 고집을 부려서 나왔다.

정명석(정): 학대를 피해 집을 나왔다. 비교적 접근이 쉬운 쉼터에 가게 됐다. 처음에는 여덟 명이 머무르는 단기 쉼터(3개월 이내 보호, 2회 연장 가능하며 최장 9개월간 머물 수 있음)에서 생활했다. 이 중 정해진 인원만 중장기 쉼터(3년 이내 보호, 1회 1년에 한하여 연장 가능하며 최장 4년간 머물 수 있음)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입소자가 중장기 쉼터로 가는 걸 막기 위해 입소자 간 협박과 폭력이 있기도 했다. 그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쉼터와 학교에서 자살 시도를 했다가 “너 때문에 쉼터 문 닫을 뻔했다”라는 말을 들으며 강제 퇴소를 당했다. 이때 고등학교도 자퇴했다. 밤에는 하염없이 걸어 다니고 낮엔 화장실이나 찜질방에서 잤다. 잠잘 곳을 핑계로 도와주겠다던 형들에게 성추행을 당한 이후로는 혼자 주거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다. 기술을 배우면서 머물 수 있는 쉼터를 찾아 18세에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까지 단기 쉼터 다섯 곳, 중장기 쉼터 한 곳을 거쳤다.

시설·쉼터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 일반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경험하는 게 있다. 친척이나 이웃, 부모님 친구처럼 낯선 어른들을 만나 관계도 맺어보고, 새로운 곳도 가보고. 내가 있던 시설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주로 태안으로 여름캠프를 갔다. 그게 유일한 여행이었다.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항상 정해져 있었다. 봉사활동을 오는 외부 사람들이 있어도 우리가 상처받는다고 만나지 못하게 했다. 핸드폰 사용 제한은 당연하고 주중엔 외출을 금지했다. 정말 작은 세상에서 자랐다.

: 쉬는 시간이나 씻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밥을 느리게 먹어도 안 됐다. 어떤 쉼터에서는 밥이 너무 적어서 다들 배를 주리며 자기도 했다. 병원을 자주 가면 “너 입소할 때 면접에서는 아픈 곳 없다더니 왜 이렇게 의료비가 많이 드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지?

: 중학생 때 강원도 캠프장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애들을 1~5단계로 나누고 상벌을 다르게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보육원에 돌아와서도 그 시스템을 계속 유지했다. 단계별로 외출 시간과 휴대전화 사용시간, 용돈 금액이 달랐다. 선생님들에게 아부하지 않으면 (최고 단계인) 5단계는 받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특수한 치료가 필요한 아동들을 위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더라. 그걸 보육원에 있는 300여 명 전부에게 똑같이 적용한 것이다.

16세에 집을 나와 청소년 단기 쉼터에 입소한 정명석씨(가명). ⓒ김흥구

그래도 시설에서는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나?

: 물론 쉼터에서 의지하던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있었다. 마음을 의지하게 된 친구들도 있었고. 쉼터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거기에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희는 여기밖에 없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더니, 6개월 지나니 “이제 다른 데로 가” “말 안 들었으니까 나가” 하는 거다. 어떤 친구는 선생님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늘 참았다.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야 중장기 쉼터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보호해주는 게 맞나? 또 다른 학대 아닌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 시설이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시설은 집이 아니다. 말 안 들으면 퇴소당하는 집, 정해진 시간에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집이다. 이런 집도 있나? 코로나19로 방역 조치가 강화됐을 때 시설은 폐쇄병동과 같았다. 나는 그때 외부에서 진행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보육원이 방역을 이유로 모든 활동을 끊어버렸다. 집에서 사는 아이들에겐 미래를 준비하는 게 허락됐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보육원을 나갈 수가 없었다. 시설의 가장 큰 문제는 입소자들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는 거다.

퇴소 전 자립을 돕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는데.

: ‘8대 자립 준비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 일상생활 기술, 자기 보호 기술, 돈 관리 기술 등을 가르치는데 너무 형식적이다. 기억나는 게 성장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던 거? 인터넷으로 검색한 글을 그냥 베껴 냈다. 퇴소 직전에 급하게 하는 자립 교육은 사회에 나갔을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퇴소한 지 6개월 정도 된 친구들에게 연락이 가장 많이 온다. “남은 돈(자립지원금)이 하나도 없다.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라고. 퇴소한 뒤에야 비로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내가 공과금도 낼 줄 모르고, 주민센터에도 갈 줄 모르고, 스스로 미래를 계획할 줄 모르는 사람인 걸 그제야 아는 거다. 지원 금액이나 보호 종료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 쉼터는 속칭 ‘위기 청소년’을 집에 돌려보내기 전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게 목적인 곳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쉼터를 나올 때는 시설 아동들처럼 자립지원금이나 디딤씨앗통장, 자립수당 등을 받을 수 없었다. 지난해부터 여성가족부에서 자립수당 지원 제도를 도입하긴 했는데, 실제 지원을 받은 사람은 여전히 소수라고 알고 있다(편집자주: 2021년 5월 해당 제도 시행 이후 2022년 3월까지 실제 지원을 받은 인원은 전국 기준 40명이다. 지원 대상자 2418명 가운데 1.7% 수준이다). 나는 쉼터에 있는 동안 틈틈이 주차요원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게 내 자립 후 생활비였다.

퇴소 후에는 어떻게 지냈나?

: 처음엔 자립지원시설을 통해 고시원을 얻어 생활했다. 쿠팡 같은 데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는데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그만뒀다. 돈이 부족해졌다. 너무 배가 고파 마트에서 라면을 훔칠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러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안내를 받은 덕분이었다. 임대주택에 들어가서 살 때 이웃 분들이 나를 ‘창고에 사는 애’라고 불렀다. 집에 아무 가구도 없이 그냥 텅 빈 곳에서 살아서. 가구 살 돈도 없었고, 뭘 준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세탁기 없이 큰 대야와 빨래비누를 사서 손빨래하며 지냈던 게 기억난다.

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보호아동을 위한 지원은 미흡하다. 위는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청소년 쉼터의 모습. ⓒ연합뉴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없었나?

: 예전에 친구에게 내가 시설에서 생활한다고 솔직히 말했다가 소문이 나서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내 이야기 하는 걸 조심했다. 그런 시간과 경험들이 쌓이면 정말 괴롭고, 도움이 간절해도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 보호기간을 늘린다고 자립 준비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기간에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외부 단체와 연계해서 셰어하우스 체험 프로그램을 한 친구가 있었다. 시설에 돌아온 뒤 그 친구는 퇴소 후 어떻게 살지를 훨씬 열심히 계획했다. ‘좋은 시설’이 아니라, ‘시설이 아닌 곳’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

: 우리 모두 공동체 안에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일평생 그렇다. 나 역시 함께 유대감을 쌓고 장기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미래 계획을 세워도 그걸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보호아동·청소년을 위한 지원 역시 제도로 정착되길 바란다. 불쌍해서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존중받으며 함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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