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의 소설
정세랑 지음, 안온북스 펴냄

“그의 책은 친절한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을까?”

정세랑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엽편소설집이다. 2011년부터 발표한 짧은 소설을 엮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인데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밝히길, ‘아라’는 “가장 과감한 주인공에게 자주 붙이는 이름”이다. 어떤 이는 매일 먹는 커피 한 잔에서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현지인들의 식량 주권을 침해하는 현실을 떠올린다. 또 어떤 이는 절망 속에서도 “친절함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것 중 최고의 자질”이라는 책 속의 구절을 읽으며 희망을 생각한다. 부조리한 현실에 지지 않으려는 과감한 ‘아라’들의 이야기는 짧지만 힘이 있다. 작가는 “다정한 이야기들은 더 다정하고 신랄한 이야기들은 더 신랄하다”라고 말했다.

 

 

 

 

 

학교 가는 길
김정인, 발달장애인 부모, 7인 지음, 책폴 펴냄

“말과 말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2017년 서울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신설을 위한 주민토론회에 참석한 서울장애인부모회 이은자 부대표는 쏟아지는 비난과 고함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지나가다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단지 배움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와 연결될 권리, 직장을 구하고 경제적 자립을 할 권리와 직결된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학교 가는 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서진학교 개교를 향한 여정을 찍은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의 제작 과정을 풀어낸 책이다.

 

 

 

 

 

재수사 1·2
장강명 지음, 은행나무 펴냄

“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세기말, 이 문장에 끌렸던 연세대생 7명이 모였다. 도스토옙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첫 문장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을 읽기 시작한다.
2022년, 미제로 끝난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해 경찰관 3명이 모였다. 2000년 8월 용의자의 CCTV와 정액까지 검출되었지만 잡지 못했다. 두려움에 떨던 범죄자는 어느새 경찰차와 구급차 소리를 구분하는 여유를 가진다. 그뿐 아니라 형사사법 시스템을 비판한다. 챕터마다 범인과 경찰관의 목소리가 교차된다.
당신은 누구의 말을 좇으며 이 소설을 읽고 있나.

 

 

 

 

 

송환, 끝나지 않은 이야기
민병래 지음, 원더박스 펴냄

“그들의 죽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비전향 장기수 송환에 합의했지만 ‘강제전향 당했다’는 이유로 송환 명단에서 제외된 이들이 있었다. 20년 넘게 2차 송환을 요구한 배경이다. 이제 10여 명 안팎이 남았다. 송환되지 못한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를 우연히 알게 된 저자는 그들을 찾아가 삶을 기록했다. 당사자 11명을 인터뷰했다. 혹독한 강제전향 고문을 당한 이들은 20~30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출소 후에도 보호처분을 받아 기본권을 빼앗긴 채 살아야 했다. 강제전향은 고문에 의한 것이고 헌법에 반하는 것이라 무효다. 올해가 가기 전 2차 송환을 바라는 저자와 당사자들의 절박함이 담겼다.

 

 

 

 

 

쇳밥일지
천현우 지음, 문학동네 펴냄

“그래서 좀 행복하게 해달라는 게 그리 거창한 부탁인가?”

지역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청년은 거의 죽음으로만 뉴스에 오르내린다. 혹은 ‘짠한’ 대상으로 그려진다. 동등하게 존엄한 인간이 아니라. “쇳밥 얘기를 먹물들 알아먹게” 쓴 책이 나왔다. 1990년생 천현우.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전문대를 졸업하고 여러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넌 흙수저 주제에 노력도 하지 않았잖아?”라는 세상의 물음에 그는 답한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행복하게 해달라는 게 그리 거창한 부탁인가?” 발군의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삶의 형태에 고하 따윈 없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했다.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김성우 지음, 생각의힘 펴냄

“말은 세계를 반영함과 동시에 생산합니다.”

교과서와 문제집과 시험 속에 갇혀 있는 영어를 ‘구하고’ 싶었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인 동시에 생각과 삶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사전과 번역기는 ‘independence’를 ‘독립’이라고 풀이하지만, 한국인의 독립과 미국인의 독립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말의 의미는 언제나 사전 바깥에서 새롭게 구성된다. 외국어는 단지 ‘도구’일 수 없다. 저자는 외국어를 정복하려는 욕망을 ‘새로운 생각과 감정의 생태계에 대한 희망’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570여 쪽에 걸쳐 경어체로 쓰인 문장은 곡진하다. 이 책을 읽는 일은 학문과 삶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저자의 자세와 마음을 읽는 일이기도 하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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