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이 8월24일 자택에서 교정기를 착용한 채 마감을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지난 7월23일 유명 웹툰 작가가 사망했다. 판타지 장르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나혼렙)의 작화를 담당한 장성락 작가다. 향년 37세. 고인이 설립한 제작 스튜디오 ‘레드아이스 스튜디오’는 7월25일 “고인께서는 평소 지병이 있었고, 이로 인해 생긴 뇌출혈로 타계하셨다”라고 밝혔다.

젊은 작가의 비보에 웹툰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나혼렙〉은 연재 종료 당시 글로벌 조회수 142억 회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끈 작품이다. 동명의 웹소설을 장성락 작가가 웹툰으로 제작했다. 2021년 11월 미국 만화책 판매량 7위에 오르며 ‘카카오페이지 최고 흥행작’이라 불렸다. 인기 웹소설을 웹툰화하는 시도는 많이 있었지만, 〈나혼렙〉의 세계적 성공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시사IN〉이 만난 웹툰 작가들은 고인과 그의 작품에 대해 “판타지 장르 웹툰에서 기념비적인 작품” “업계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젊은 작가”라며 안타까워했다.

웹툰 작가 사망 이후 그들의 고강도 노동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8월8일 현업 웹툰 작가들로 구성된 웹툰협회는 성명서를 냈다. “업계가 형성해온 살인적인 고강도 업무 환경은 엄연한 현실이다. 과도한 작업량을 멈추지 않는 한 이 순간에도 웹툰 작가는 죽어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710명을 대상으로 한 ‘2021 웹툰 작가 실태조사’를 보면 웹툰 작가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10.5시간, 일주일에 5.9일 일한다. 12시간 이상 일하거나(40.9%), 주 7일 일하는 경우(36.6%)도 적지 않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법정 근로시간은 1일 최대 8시간, 1주 최대 52시간이다. 대다수 웹툰 작가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그러나 레드아이스 스튜디오는 장성락 작가의 사인이 과로와 연관되는 것을 경계했다. 레드아이스 스튜디오 한 관계자는 〈시사IN〉에 “(고인의 사인과 업무 환경 사이에) 큰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재가 종료된 지 6개월이 지났고 작품 활동을 쉬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고인은 평소 고혈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튜디오에서는 콘티(그림 구성), 선화(선으로 그림), 채색 등 웹툰 제작 단계별로 꽤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 웹툰 작가 한 명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과 직접 계약을 맺는 1인 창작자도 있지만, 웹툰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작품 계약과 기획, 작가 관리를 도맡는 에이전시가 늘어났다. 장 작가가 2018년 설립한 레드아이스 스튜디오도 그런 형태다.

단순히 개인적 불행으로만 비추기에, 만화가들의 질환은 ‘보편적인’ 현실에 가깝다. 많은 웹툰 작가들이 손목 터널 증후군, 허리 디스크, 시력 감소, 암과 같은 크고 작은 직업병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 사이에서는 “연재하다가 응급실 한번 다녀오지 않으면 진정한 작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간혹 휴재에 들어간다는 공지가 갑자기 떠서 알고 보니 투병 중인 경우도 있었다. 2017년 레진코믹스에 〈월한강천록〉을 연재하던 회색 작가는 갑상선암 진단 사실을 공개했다. 2021년 5월6일 만화 〈베르세르크〉 작가로 알려진 일본 만화가 미우라 겐타로가 54세 일기로 사망해 충격을 안겼다. 사인은 급성 대동맥 박리였다.

“디지털 기계로 하는 가내수공업”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웹툰 작가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해마다 있었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웹툰 세 편의 콘티 작가로 일한다. 8월24일 오전에 만난 그는 밤샘 작업을 한 후 쪽잠을 잤다고 말했다. ‘컨베이어벨트’처럼 작업 공정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쉬기가 어려웠다. “제가 콘티를 제출해야 다음 작업자가 선화, 채색을 이어갈 수 있다. 컨베이어벨트 노동자들은 그래도 옆에서 얼굴을 보며 일하는데 우리는 각방에서 쓰러지고 죽어간다.” 그의 작업실에는 드로잉 패드 외에도 척추뼈가 손상되었을 때 쓰는 플라스틱 재질의 허리보호대와 거북목을 교정하는 일자목 교정기가 있었다. 4년 전, 몸 이곳저곳에 적신호가 켜진 후 “이러다 죽겠다 싶어” 마련했다.

웹툰 작가들은 왜 쉬지 못할까? 웹툰 작가들은 현재 웹툰 시장을 ‘풀컬러 70컷 시대’라 표현했다. 회차당 채색까지 완료된 만화 70컷이 업계 표준이 되었다는 의미다. 10년 전만 해도 평균 50컷 정도였다. 그사이 플랫폼이 늘어나고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70컷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독자의 시선을 오래, 많이 붙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신아 사무국장은 “65컷 이상을 채우지 않으면 애초에 팔리지 않는 상황이다. 흑백이거나 적은 분량은 발붙일 데가 없다”라고 말했다. 격주 마감을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주간 마감을 선택하는 이유도 경쟁력 혹은 수입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작가들의 노동시간과 강도도 ‘상향평준화’되었다. 〈나혼렙〉의 경우 회차마다 100컷을 넘기며 팬들 사이에선 ‘괴물 분량’으로 불렸다. 2018년 3월4일부터 2021년 12월29일까지 총 179화로 완결되었는데, 2019년 8월에는 한 달을 쉬었다. 작가의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 웹툰 작가는 회차당 70컷이 “일주일에 하루 휴가 내기도 힘든 분량”이라고 말했다. 1인 창작자가 아니라, 여러 웹툰 어시스턴트를 둔 스튜디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디지털 기계로 하는 가내수공업이라 보면 된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려 해도 주간 연재를 하면,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올인’해야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밤샘은 기본이고 끼니를 놓칠 때도 많다.” 그는 갑상선에 혹이 생겨 예후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웹툰 작가들은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겨도 선뜻 휴재를 원치 않았다. 작품 흐름이 끊기면 독자들의 연독률이 낮아지는 데다,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신아 작가(콘티 담당)의 경우 작품당 매주 고료 20만원을 받는다. “작품 세 개를 동시에 해야 한 달 생활이 가능하다. 갑자기 일이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에 평소 무리해서라도 작업해둬야 한다.” 예술가들이 실업급여를 수급할 수 있도록 2020년 말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었지만, 웹툰 작가의 가입률은 11.4% 수준이다(2021 웹툰 작가 실태조사).

웹툰 작가의 수입은 편차가 크다. 2020년 8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조사한 디지털콘텐츠 창작 노동자 노동실태에 따르면(만 15~39세 285명 대상), 웹툰·웹소설 등 디지털콘텐츠 창작자의 1년 수입 중간값은 1700만원에 불과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알려진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한 셈이다. 여러 웹툰 작가는 이를 ‘압정 구조’라고 비판한다. 압정 구조란, 다수의 무명작가와 소수 스타 작가로 이루어진 비대칭적 웹툰 시장을 빗댄 표현이다. 서울여성노조 산하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이수경 지회장은 “원청(웹툰 플랫폼)이 하청(스튜디오나 에이전시)을 주고, 또 하청(어시스턴트)을 주는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정보와 수익의 비대칭적 구조에서 젊은 디지털콘텐츠 창작자들은 몸과 마음이 갈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압정 구조’, 비대칭적 웹툰 시장 빗댄 말

신인 작가든 ‘네임드’ 작가든 “잠도 못 자고 손목 나가고 허리 나간다”라고 호소하지만 웹툰 작가들끼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웹툰 업계 내 다층적인 현실이 존재해서다. 한국웹툰산업협회는 플랫폼과 에이전시가 회원인 단체다. 서범강 회장은 작가들의 유급 강제 휴재권이나 컷 수 제한 요구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어떤 작가들에겐 마지막 연재 기회라서 놓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독자를 모으려는 작가들에게 “이만큼만 하십시오”라고 하기 어렵다. 식당 중에서도 잘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하루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 식당이 있는데 무조건 강제로 쉬자고 하기 어렵지 않겠나.” 매주 ‘풀컬러 70컷’을 만들어내야 하는 환경도, 플랫폼이 강제했다기보다는 창작자가 독자의 반응을 신경 쓴 결과라고 말했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은 플랫폼이 나서서 작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장성락 작가 사망을 바라보는 시선은 현업 작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렸다. 공룡 플랫폼에 종속된 노동자로만 보기에는 ‘A급 작가’였던 데다, 다른 디지털콘텐츠 창작자가 겪는 현실과 단순 비교하기가 어려워서다. 권창호 웹툰협회 사무국장은 웹툰 작가들의 자기 착취적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한다. “컷 수를 늘리는 것도 작화 완성도를 높이려 하는 것도 자기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조회수 경쟁도 심해졌다. 중요한 것은 창작자를 자기 착취의 수렁에 빠지게 하는 구조가 있는데, 누구도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3년 1500억원에 불과했던 웹툰 시장이 2020년 1조원을 넘어섰다. 웹툰이 게임, 드라마, 영화로 확장하는 ‘원소스 멀티유스’의 중추가 되면서다. 〈지금 우리 학교는〉 〈경이로운 소문〉 등 웹툰 원작의 드라마와 영화가 국내외 OTT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인기가 입증된 웹툰의 IP(지식재산권)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산업을 떠받치는 과로를 외면한 채 웹툰 산업이 지속 가능할지 묻는다. 그는 2020년 8월 디지털콘텐츠 창작 노동자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연구자다. “장성락 작가의 경우 개인 지병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현실은 디지털콘텐츠 창작업계에 비슷한 형태의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체로 젊은 나이인데 오랫동안 앉아서 일하다 보니 뇌심혈관,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앓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채로, 1년 내내 작품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생산 과정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하겠나.”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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