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로 허덕이는 청년들 가운데 상당수가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경험한다. 빚이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 채, 돈을 아껴야 해서 대면 활동을 줄인다. 그러다 보면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이하 디딤)’을 이끌고 있는 최유리 대표(35)는 이 ‘고립’에 주목했다. 대구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던 최 대표는 청년의 노동과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빈곤과 함께 따르는 부채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청년 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2018년 11월에 설립한 디딤은 지역 대안 금융이자 공동체 역할을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디딤은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자조 금융’이다. 2019년 6월부터 부채 문제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긴급 대출을 내어주며 각종 금융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청년 부채 문제를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과 각종 사회적 연대 활동도 병행 중이다.
디딤은 이른바 ‘관계신용’을 중시한다.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디딤에서 진행하는 각종 행사나 연대 프로그램에 다섯 번 이상 참석하며 조합원들과 관계를 맺어야 최대 5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식이다. 지금까지 30여 명에게 3600만원을 빌려주며 경제적 회복을 돕고 있다.
대출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관계’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은 부채의 문제가 곧 고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고립된 청년일수록 불법 사금융 피해를 당하기 쉽다. 출자금 규모가 크진 않지만, 지역에서 상당수 조합원들이 디딤을 통해 부채의 늪에서 벗어나 경제적 선순환(취업 후 부채 해결)을 이뤘다.
최유리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지역 청년이 더욱 늘어났다고 설명한다. 최 대표는 “예전에는 주거비나 교육비 때문에 빚을 진 청년이 많았지만, 팬데믹 이후로는 생활비 때문에 대출이 필요한 경우가 늘었다. 코로나로 인해 해고되거나 무급휴직을 하는 이들이 많아서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정책금융의 맹점 때문에 디딤을 찾아오는 경우도 늘었다. ‘햇살론 유스’ 같은 청년 대상 정책금융은 이율이 싸다는 장점이 있지만, 상환 기간과 월별 상환액을 중간에 조정하기가 어렵다. 가령 300만원을 빌릴 때, 10개월간 30만원씩 갚겠다고 설정할 경우 무조건 이 상환 일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취업이 생각보다 늦어지거나 어려울 경우, 제때 상환할 수 없어 독촉 연락에 시달리게 된다.
성인이 되어 보육원을 나온 자립 준비 청년도 디딤이 주목하는 대상이다. 최 대표는 “집안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런 친구들일수록 불법 사금융으로 빠질 위험이 커진다. 지역이나 직장 단위로 디딤 같은 ‘자조 금융’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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