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교육을 받지 못한 사회 초년생들은 은행의 문턱이 높다고 생각해 대부업체를 찾는다. ⓒ시사IN 조남진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임재관씨(가명·20)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곧바로 취업했다. 첫 직장을 퇴사한 지난해 7월, 임씨는 급히 200만원이 필요해 대출을 알아보았다. 당시만 해도 임씨는 “은행은 문턱이 높고 나같이 젊은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대출’을 입력하자 대부중개 사이트가 나왔고, 임씨는 이곳 ‘실시간 대출 문의’ 게시판에 대출이 필요하다는 글을 남겼다.

대부중개 사이트에서 연결된 대부업자는 임씨의 사정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정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 ‘햇살론유스’란 게 있다. 일단 햇살론 받을 ○○은행 계좌가 필요하니 개설비 10만원을 나중에 달라.” 당시 임씨에게 필요한 돈은 200만원 수준이었지만, 브로커 역할을 하던 대부업자는 ‘받을 수 있을 때 다 받아두어야 한다’며 500만원을 빌리도록 유도했다. 대출 절차가 마무리될 즈음, 대부업자는 수고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요구했다. 브로커 역할을 한 대부업자는 수고비 80만원에 계좌개설비 10만원(물론 이것도 낼 필요가 없는 돈이었다)을 합쳐 총 90만원을 가져갔다.

3개월 뒤, 임씨는 100만~150만원 정도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대부중개 사이트에서 본 다른 업체에 전화했다. 연락을 받은 대부업자는 ‘휴대전화 개통’을 권했다. 임씨는 이 관계자와 함께 휴대전화 대리점을 돌며 신규 개통 세 건, 번호이동 개통 한 건을 했다. 핸드폰을 개통하는 조건으로 임씨가 받은 돈은 240만원, 지불 방법은 토스(toss)였다. 대부업체 측은 임씨에게 “돈을 갚을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 뒤 떠났다. 돈을 빌려준 건 대부업자였지만, 돈을 갚아야 할 대상은 통신사였다. 그리고 몇 달 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

임씨는 핸드폰 기계값과 월정액 비용만 납부하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요금계산서에는 낯선 금액이 찍혀 있었다. 임씨가 2022년 1월에 받아든 명세서에는 총 65만6300원이 찍혀 있었다. 단말기 할부금과 월정액 요금으로는 나올 수 없는 금액이었다. 명세서에는 ‘휴대전화 소액결제 요금’ 30만원과 ‘원스토어 결제 요금’ 24만9700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임씨 명의로 대부업자들이 약 55만원어치 현물과 서비스를 가져간 셈이다. 함께 개통한 나머지 번호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도를 꽉 채워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통신사 소액결제 내역과 원스토어 결제 내역을 조회한 임씨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원스토어(OneStore)는 통신 3사와 네이버가 함께 운영하는 스마트폰 앱스토어다. ‘스마트폰 개통’을 알선한 대부업자는 임씨 명의로 원스토어에서 아프리카TV 별풍선을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별풍선을 아프리카TV BJ 계정에 보내면,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고 현금으로 환급할 수 있다. 대부업자는 이 밖에도 컬쳐랜드 모바일 문화상품권과 스팀(게임 퍼블리싱 회사) 쿠폰 등을 구입했다. 심지어 구매 목록에는 카카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치킨 쿠폰도 포함되어 있었다.

임 아무개씨에게 청구된 휴대전화 명세서. 소액결제 내역이 나와 있다. ⓒ시사IN 조남진

‘내구제 대출’ 실상은 사기에 가까워

개통한 스마트폰을 해지하더라도 임씨의 손해는 상당했다. 소액결제 지출금뿐 아니라 기계값도 물어내야 했다. 개당 기계값만 200만원이 넘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임씨는 “업자들은 다른 생각을 못하게 연락이 닿은 뒤 바로 찾아와 대출 작업을 처리했다. 이게 사기인지 뭔지 차분히 생각해볼 만한 시간을 주지 않더라. 처음에는 이들이 은행보다 문턱이 낮아 보였다. 은행은 돈을 빌릴 때 한 번에 몇천만 원, 몇억 원씩 빌리는 곳인 줄 알았다. 금융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라고 말했다.

임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온라인에서는 임씨가 겪은 대출 사기를 이른바 ‘내구제 대출’이라고 부른다.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실상은 임씨 사례처럼 사기에 가깝다. 임씨는 억울한 마음에 경찰을 찾았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도와주고 싶지만 도와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개통하는 과정에서 임씨가 함께 동행하고 협조했기 때문에 임씨까지 함께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과거에도 이른바 ‘핸드폰깡’으로 불리던 대출은 만연했다. 달라진 점은 소액결제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이 전보다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기본 통신사 소액결제 외에도 원스토어를 통한 ‘각종 쿠폰 쇼핑’도 결국 돈이 된다. 스마트폰으로, 개인 명의로 할 수 있는 결제의 폭이 넓어지며 생겨난 부작용이다. 임씨의 ‘내구제 대출’ 사기 과정에서 동원된 테크 기업만 해도 토스, 원스토어, LG유플러스, SKT, 아프리카TV, 카카오 등이다. 세상은 더 편리해졌지만, 범죄는 편리함 속에서 ‘빈틈’을 발견해 노린다. 돈은 대부업자가 빌려주지만, 채권 추심은 테크 기업이 대신해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최근에는 각종 ‘후불 결제’ 시스템이 경제적 취약층 사이에서 활용되고 있다. 쿠팡, 네이버쇼핑, 토스 등이 속속 도입하고 있는 후불 결제 시스템은 특정 금액만큼 미리 쇼핑하고 나중에 갚는 서비스다. 일종의 ‘외상 결제’인데, 본질은 쇼핑몰을 운영하는 테크 기업이 신용카드 회사 대신 거대한 채권자가 되는 구조다. 테크 기업의 후불 결제는 신용카드사에 비해 상대적 소액(쿠팡 130만원, 네이버 30만원)을 열어둔다는 특징이 있다.

편리하고 지속적인 쇼핑을 유도하기 위한 방책이지만, 막상 이런 기능은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빚을 낼 수 있는 창구’로 작동한다.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내 아이디로) 대신 구매해드립니다”라는 게시글이 종종 올라온다. 가령 쿠팡에서 (자신의 아이디로) 10만원어치 물건을 후불 결제로 ‘대신’ 구매해서 물건은 요청한 사람에게 보내고 대신, 나에게 금액의 80%인 8만원을 현금으로 보내달라는 것이다. 나중에 10만원을 내야 하지만 당장 8만원을 빌리게 되는 셈이다. 이런 거래 게시물은 특히 ‘번개장터’ 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부 금융 취약계층은 ‘쿠팡깡’ ‘네이버깡’으로 불리는 후불 결제를 이용해 급한 생활비를 해결하기도 한다. 실제 금융 취약층을 위한 상담 현장에서는 올해 상반기부터 ‘쿠팡깡’ ‘네이버깡’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돈이 충분한 사람에게 쿠팡·네이버·토스의 ‘후불 결제’는 있어도 쓰지 않는 기능에 가깝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신용도를 보지 않는 대출’로 통용되고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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