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린 8월8일 저녁 서울 강남역 인근 도로가 물에 잠겼다. ⓒ독자 제공

서울이 충격을 받았다. 2022년 여름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서울과 수도권을 강타한 수해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웠다. 기후위기에 무관심했거나 또는 부정했던 이들도 이번 사태로 문제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8월11일 참여연대는 “우리 삶, 우리 일상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이 바로 곁에 있다. 한반도 역시 기후위기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아니었다”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8월8일 서울의 강수량은 381.5㎜였다. 서울에 하루 동안 내린 비로는 기상관측 사상 최대치였다. 이전 기록은 1920년 8월2일 354.7㎜였다. 여기에 배수 관리 미비 등 행정 결함이 더해지면서 서울은 극심한 호우 피해를 입었다. 올여름 장마가 7월27일쯤 끝날 거라는 기상청의 전망도 완전히 빗나갔다. ‘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온다’라는 오랜 날씨 법칙도 깨졌다. 예측 불가의 날씨 변동이 우리 일상을 습격했다.

그런데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는 오래전부터 전국을 덮치고 있었다. 오히려 서울은 그 피해를 비껴간 편이었다. 환경부가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 2020〉에 따르면, 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역대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해는 2002년 8월이다(재산 피해액 기준). 246명이 사망·실종되고 재산 피해액은 5조원이 넘었다(〈그림 1〉 참조). 피해는 전국에 걸쳐 일어났지만 강원도 지역이 유독 심했다.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 강릉 지역에 하루 동안 비가 870.5㎜ 내렸다.

두 번째로 피해가 심각했던 시기는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다.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전국에 피해를 끼쳤는데 사망·실종 131명, 재산 피해액은 4조원대였다. 당시 하루 동안 비가 경남 남해에 453㎜, 강원 대관령에 397㎜, 전남 고흥에 304㎜ 내렸다. 2002년과 2003년 모두 6만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20년 전만 해도 기후위기는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당시 한반도를 휩쓸고 간 태풍 루사와 매미는 기후위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말해준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따뜻해진 바닷물이 태풍에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그 파괴력이 무시무시해진다는 것을 절감하게끔 했다.

이 보고서는 2020년 7월 발간됐다. 그다음 달인 8월에 발생한 ‘2020년 폭우’ 기록은 빠져 있다. 6월부터 시작된 2020년 장마는 크고 작은 피해를 낳다가 8월 들어 전국에 물 폭탄을 퍼부었다. 8월2일 충북 충주 316㎜, 8월4일 강원 철원 269.5㎜, 8월7일 광주광역시 313㎜, 8월8일 전남 담양 413㎜ 등 전국 곳곳에서 일주일 이상 폭우가 쏟아졌다.

2020년은 ‘날씨가 증명한 기후위기’의 해

특히 전라, 충청, 경상 지역의 피해가 심각했다. 당시 수자원공사가 댐 방류 조절에 실패하면서 전남 구례군의 경우 읍내 전체가 어른 키 이상 물에 잠기는 초유의 피해를 겪었다. 인구 약 2만5000명인 구례군에서만 1000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시사IN〉 제762호 ‘참혹했던 2020년 수해 그 후, 국가는 대체 뭘 했나’ 기사 참조 ).

이처럼 2020년은 기후와 관련한 ‘기록’들이 쏟아진 해였다. 겨울철 평균기온이 3.1℃로 전국 단위 기상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높았고, 장마철 기간(중부 54일, 제주 49일)은 역대 가장 길었다. 6월에는 이른 폭염이 한 달간 지속되면서 평균기온과 폭염일수가 역대 1위를 기록한 반면, 7월에는 선선했던 날이 많아 관측 이래 처음으로 6월 평균기온(22.8℃)이 7월(22.7℃)보다 높은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이듬해인 2021년 1월 기상청은 ‘2020년 기후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날씨가 증명한 기후위기’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

기후과학자 김백민 교수(부경대 대기환경과학)는 이렇게 말한다. 다가올 기후변화의 피해를 기후과학자들로 하여금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비가 많이 내리던 지역에는 비가 더 많이 오고, 가물었던 지역은 가뭄이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라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아열대화가 진행되면서 강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2020년의 역대 최장 장마는 그 상징적인 사례였다.

올해 2022년은 기후과학자들의 ‘요약’이 한반도에 기이하게 적용된 해다. 대다수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놀랍게도 올해는 ‘극심한 가뭄’의 해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 초반까지만 해도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에 불과했다. 특히 5월에는 평년 강수량의 6%인 5.8㎜가 내리는 데 그쳤다. 1973년 이후 최저치다. 전국 곳곳은 이미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가뭄으로 인한 대형 산불도 잇따랐다. 수도권 물난리 기사를 쓰고 있는 8월18일 현재에도 남부지방은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이상기후 보고서’라는 게 있다. 2010년부터 정부가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해 나타났던 각종 기상이변 현상에 대한 기록, 원인 분석과 함께 총 8개 분야(농업, 국토해양, 산업·에너지, 방재, 산림, 수산, 환경, 보건)에 대한 사회경제적 영향과 정책 제언을 담고 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보았다. 〈그림 2〉다. 발간되는 보고서를 매년 확인할 때와는 다르다. 이처럼 몇 년 치를 한꺼번에 모아놓고 보면 명확해진다. 지금 한반도에 어떤 섬뜩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해마다 ‘역사상’ ‘가장’ ‘최고’ ‘기록’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2015년에는 12월 평균기온과 평균 최저기온이 1973년 이래 가장 높았다.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2016년에는 여름철 폭염과 열대야 현상도 심각했다. 10월에는 비가 내린 날이 역대 가장 많았다. 2017년 겨울에는 한파가 몰아치더니 4~5월에는 역대 가장 따뜻한 달 1~2위를 기록했다. 장마가 시작되는 6월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역대 최소 강수량 3위였다.

눈여겨볼 대목은 ‘5월의 고온 현상’이다. 〈그림 2〉에는 2014년이 빠졌지만 그해부터 5월 평균기온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한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이다. 2019년에도 평균기온 2위를 기록했다. 여름철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 이미 한반도에 극심한 고온 현상이 고착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봄철 가뭄과 산불을 악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2018년은 최악의 여름철 폭염으로 기억된 해다. 그런데 그해 초에 매서운 겨울 추위가 이어졌음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한강이 71년 만에 가장 일찍 얼어붙었고, 곳곳에서 최저기온 기록이 경신됐다. 한랭질환자가 급증하고, 동파 사고가 계속됐다. 폭염이 물러간 10월에는 상층 기압골 영향으로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2019년은 태풍의 해였다. 1904년 근대 기상업무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태풍 수(7개)를 기록했다. 루사와 매미 같은 심각한 피해는 아니었지만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이어졌다. 필리핀 동쪽 해상의 높은 해수면 온도에 따른 기류의 상승 등이 태풍 발생의 원인이라고 기상청은 분석했다.

2020년에는 지난 몇 해 동안 계속된 겨울철 한파가 무색해졌다. 기상관측 사상 가장 따뜻했던 1월로 기록됐다. 그리고 앞서 설명했듯 역대 최장기간 장마가 이어졌고 많은 비가 쏟아졌다.

2021년은 ‘널뛰는 날씨’로 요약된다. 1월의 기온 변동 폭이 역대 가장 컸고, 4월에는 한파와 초여름 날씨가 동시에 나타났다. 10월 날씨 역시 ‘고온과 저온, 극과 극을 달렸다’라고 이상기후 보고서는 설명했다.

한반도의 이런 이상기후 현상은, 실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서울 수해가 발생하기 20여 일 전인 7월12일 주목할 만한 결과가 발표됐다. 2021년 한반도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은 ‘2021 지구대기감시 보고서’를 통해 충남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소에서 관측된 이산화탄소 농도가 역대 최대치인 423.1PPM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 농도 역대 최대치 기록한 해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전년보다 2.3PPM 늘어난 414.7PPM을 기록했다.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인간 활동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핵심 원인이다.

올여름 유럽을 덮친 폭염 사태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영국이나 독일 같은 선진국의 가정 에어컨 보급률이 5% 미만이었다는 점이다. 반면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연교차(가장 더운 달과 가장 추운 달의 평균기온 차이)가 가장 큰 지역에 속한다. 한국인이 기후위기에 둔감한 이유를 설명할 때 종종 언급되는 이야기다.

지난 몇 년간의 이상기후 기록은, 한반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심각한 기후 재난이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2022년 서울 수해의 기억을 다가올 해일을 막는 방파제로 만들 수 있을까. 내년에 발간될 ‘이상기후 보고서 2022’는 ‘남부지방의 극심한 가뭄과 중부지방의 폭우’로 요약될 가능성이 크다. 8월 현재까지는.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