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모바일 앱스토어에 등록된 민간업체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앱이 20개가 넘는다.ⓒ시사IN 조남진

병원 갈 일이 생겼다. 스마트폰을 켠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연다. 진료 과목이나 의사를 선택한다. 증상 입력란에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적는다. 환부가 있으면 사진도 찍어 첨부한다. ‘진료 접수’ 버튼을 누르고 잠시 뒤 의사와 연결된다. 음성 혹은 영상 통화로 의사와 문답을 나눈다. 전화를 끊자 전자처방전이 발행된다. 약 받을 주소를 입력하고 ‘새벽 배송’을 신청한다. 진료비와 약값, 배송료는 미리 등록해놓은 신용카드로 결제된다.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놓인 약 봉투를 수령한다.

비대면 진료가 우리 삶 속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갑론을박에 머물러 있던 의료의 새 풍경이 어느새 현실로 구현되었다. 의사와 약사 다수가 한사코 저항해온 미래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약사회는 수십 년간 비대면 진료에 ‘결사반대’를 외쳐왔다. 대형 자본과 대형 병원에 의한 독과점으로 의료시장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이유였다. 정부나 산업계가 비대면 진료 육성 방안을 짜고 내놓을 때마다 파업 등 집단행동으로 막아섰다. 비교적 오랫동안 방어에 성공했다.

틈새를 만든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2월24일 보건복지부는 ‘전화상담·처방 및 대리처방 한시적 허용방안’을 공고했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이 공포에 휩싸여 있던 시기였다. 다른 질환으로 병원과 약국 방문이 필요한 환자들이 코로나19 감염 우려 때문에 치료의 적기를 놓치다 더 큰 건강 위협으로 이어지는 일을 막아야 했다. 비대면 진료·처방이 처음으로 전면 도입되었다. 물론 ‘한시적 허용’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제도의 종료 시점은 ‘코로나19 전파 양상을 보아가며 결정’될 예정이었다.

틈은 금세 벌어졌다. 새 시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비대면 진료를 중개하는 IT 플랫폼 스타트업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들 플랫폼은 처음에는 코로나19 재택치료자를 위한 선택지 중 하나로 부각되었다. 보건소나 전담병원과의 직통 연결에 실패한 확진자들은 스마트폰 앱스토어에 접속해 ‘닥터나우’ ‘굿닥’ ‘바로필’ 같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앱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전신영 닥터나우 홍보팀장은 “오미크론 환자가 폭증하던 지난 2~3월 제휴기관과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은 처음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잠시 열려 있을 줄 알았던 규제 완화(비대면 진료 한시적 허용)의 문도 아직까지 닫히지 않았다. 그사이 시장은 코로나19 외 다른 영역으로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현재 모바일 앱스토어에 등록된 민간업체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앱은 20개가 넘는다. 코로나19나 감기뿐 아니라 여드름·피부질환, 고혈압·당뇨, 발기부전, 비만, 탈모, 수면장애, 우울증 환자도 이런 앱을 통해 의사를 만나고 있다.

“처방전 몇 건 이상, 월 매출 얼마 보장”

어떤 업체는 환자로 하여금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게 하고 어떤 곳은 둘을 ‘자동 매칭’시킨다. 어떤 앱은 ‘탈모 발기부전 등 남성질환 특화’를 내세우고 또 다른 앱은 ‘사후피임약 등 산부인과’ ‘여드름약 비만주사제 등 미용 특화’를 광고한다. 환자를 더 끌어가기 위해 약 배달 무료 이벤트를 벌이고 네이버페이·배민상품권 등을 후기 인증 선물로 뿌리는 등, 그 시장 안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시장 선두그룹 업체 중 하나인 닥터나우는 최근 제휴 의료기관 1500여 곳, 누적 이용자 수 600만명을 기록했다. 총 투자유치액도 520억원에 이른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2년 반 동안 (민간업체 플랫폼 이용을 포함한) 비대면 진료 누적 건수는 3000만 건이 넘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의 광고. 의료법과 약사법 위반 소지가 크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아직까지 정식 제도에 기댄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한시적’으로만 허용된, 위태로운 합법의 기반 위에 서 있다. 보건복지부 공고 하나만 종료되면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들은 모두 의료법과 약사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불법 업체가 되어버린다. 그런데도 이 시장은 왜 이렇게 벌써 팽창했을까? 업체들은 왜 투자를 아끼지 않을까?

길은진 굿닥 대외협력실장은 말했다. “규제 불확실성이라는 큰 리스크에도, 우리는 비대면 진료의 사회적 필요성과 가치를 확신한다. 코로나19 기간에 몸이 아픈 환자가 IT 기술을 활용해 집에서 편리하게 진료받는 서비스를 이미 많은 이용자가 경험했고 이에 호응하고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호소해서 혁신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지난 3월23일 한 스타트업 포럼 발표에서 “우리나라는 한 해 100조원 넘는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굉장히 큰 민간의료 시장을 갖고 있고, 이 가운데 순수 모바일 진료 시장으로만 12조원 규모를 전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 새로운 먹거리를 키우고 싶어 한다. 지난 2월24일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그 청사진에서 정부는 비대면 진료를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을 ‘성장 가능성이 큰 고부가가치 신산업’으로 규정했다. 투자 확대와 규제 완화 등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포함했다.

의사와 약사 사회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1차 의료기관 개원의와 동네 약국 약사들에게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취하기도 내치기도 힘든 ‘계륵’이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최근 개원가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플랫폼에 종속돼서 줄 세우기 당하는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슬금슬금 참여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당장 ‘하루에 환자 본인부담금으로만 1000만원 수익을 올렸다더라’ 유의 이야기를 들으면 경영 위기를 겪고 있거나 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젊은 개원의들이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약국도 마찬가지다. 지역 약사회가 ‘공동전선 이탈자’를 열심히 감시하고 압박하지만, “‘우리와 제휴를 맺으면 처방전 몇 건 이상, 월 매출 얼마 이상을 보장한다’는 플랫폼 업체의 낯 뜨거운 제안을 받고 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라고 한 약국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의협과 대한약사회는 지금과 같은 ‘의료계 주도가 아닌’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플랫폼 업체들이 공공의 이익이 아닌 상업성만으로 굴러가고 있다. 전문의약품을 남용하도록 환자들을 부추기고 부작용과 개인정보 유출 등 문제가 생겨도 책임질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 이미 선을 넘었다”라고 말했다. 실제 자신들의 앱을 통해 발기부전제, 사후피임약, 다이어트약 같은 전문의약품을 처방받으라고 광고하는 플랫폼 업체가 적지 않았다(현행 약사법상 전문의약품 광고는 불법이다). 진료 없이 처방전만 발행하거나 무자격자가 약을 조제해 적발된 사례도 있다.

정부는 다시 규제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11월2일부터 보건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시 마약류 및 오남용 우려 의약품은 처방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7월28일에는 ‘한시적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가이드라인’안을 만들어 발표했다. 의약품 오남용 조장 금지, 환자의 병원·약국 선택권 보장 등 플랫폼의 의무와 준수 사항을 규정했다. 하지만 정부는 원래 있던 진짜 규제, ‘비대면 진료 원천 금지’ 카드는 집어 들지 않았다. 한시적 허용 기한을 종료하는 방식 대신 ‘네거티브 규제(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규제 방식)’로 플랫폼의 활동 반경을 정해준 것이다.

7월28일 보건복지부는 닥터나우 본사에서 ‘한시적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가이드라인’안을 발표했다.ⓒ닥터나우 제공

이 때문에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정이 자칫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에 대한 일종의 ‘존재 인정’, 나아가 IT 산업계가 주도하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첫걸음이 되어버릴까 봐 의료계는 잔뜩 경계하고 있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비대면 진료) 한시적 허용 방안과 마찬가지로 이 가이드라인 역시 한시적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나중에 다 같이 철회되어야 한다. 제로 베이스에서 의료계 주도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의협은 예전처럼 비대면 진료 자체에 ‘결사반대’할 생각은 없다.

‘새판 짜기’에 끼지 못한 이해관계자

약사들은 좀 더 강경하다. 어떤 방식이든 비대면 진료가 정식 제도화되면 ‘약국이라는 공간 안에서 행해지는 조제와 복약 지도’라는 기존 원칙이 흔들린다. 그에 따라 독립적인 약사와 지역 약국의 존립 기반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대한약사회는 8월2일 입장문을 통해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중단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엔데믹 이후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와 조제약 배송 허용에 대해서도 적극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숱한 산업이 IT 플랫폼 경제 속에 편입되면서 시장이 급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뉴스(포털·유튜브), 택시(카카오·타다), 요식업(배달의민족·쿠팡이츠), 부동산(직방·호갱노노), 법률(로톡)…. 같은 직군 내 누군가는 시장의 승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었다. 강력한 전문가 집단의 힘으로 방어해내던 의료 시장도 이제 이 격랑 속에 휩쓸리게 될까? 이 질문에 대비하기 위해 이미 산업계와 의료계 모든 이해관계자는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전략을 짜고 있다.

딱 한 주체, 의료 시장의 변화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테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이해관계자가 있다. 바로 환자(소비자·이용자)들이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병원과 약국 방문이 대체되는 편의성은 잠시 제쳐두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한번 상상해보자. ‘(대리수술도 있는 마당인데) 전화 진료를 해주는 이 목소리가 진짜 의사라는 걸 어떻게 믿지? 약사 얼굴도, 약국 위치도 모른 채 배달받은 이 조제약을 믿고 먹을 수 있을까? 진료 의뢰나 상담 시 적어낸 내 개인정보와 건강정보가 유출된다면? 그리고 거기에 아무도 법적 책임을 안 진다면….’

아직까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순수하게 환자(이용자) 처지에서 따져주는 대변자는 공론장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산업 육성 전략’ 문건 속 국민(이용자)을 표현하는 단어는 ‘지불 주체’이다. 지금 비대면 진료를 놓고 갈등을 빚는 산업계와 의료계 참여자들도 언젠가는 공동 룰을 정하고 각자의 몫을 배분할 것이다. 그렇게 판이 다 짜이고 나서야 일반 국민은 ‘지불 주체’로서 시장 참여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국민 건강권과 의료 공공성이 설 자리는 아마 없거나 매우 좁을 것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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