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습관을 점검하고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중소규모 식품회사에 다니는 김미자씨(27)는 올해 상반기(1월1일~6월30일) 181일 중 122일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날짜로만 계산하면 4개월을 ‘무지출’한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2년 차 사회 초년생이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꾸준히 돈을 모은 덕에 현재 자산이 5000만원이다. ‘30살 전에 1억 모으기’라는 목표의 50%를 달성했다. 그는 자신이 ‘여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부모와 함께 살고, 출퇴근 교통비가 들지 않는 데다 회사에서 점심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월급 250만원 중 김씨의 한 달 고정지출 금액은 6만6050원이 전부인데, 불규칙적으로 나가는 경조사비에 대비하는 특별지출비 6만원과 통신비 6050원을 합한 금액이다(〈그림 1〉 참조).

김씨는 1년에 한 번, 15만원 예산 안에서 옷을 산다. 색깔별로 옷을 사던 대학 시절은 옛말이 됐다. 스킨로션은 생일에 들어오는 선물로 해결한다. ‘통장 쪼개기’는 인터넷만 켜면 쏟아지는 소비의 유혹을 이겨내는 김씨의 ‘짠테크’ 제1원칙이다. 월급이 들어오면 계획된 예산 외의 금액은 바로 적금통장과 투자통장에 이체해 허튼돈이 새는 걸 막는다.

지난해 10월, 그는 자신의 무지출 일상과 재테크 방법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구독자는 512명(8월3일 기준)이지만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인 ‘짠순이 월급날 루틴’의 조회수가 약 8600회에 이른다. 김씨의 영상에 한 구독자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저는 자취생활을 하며 월급 210만원 중 160만원을 저축하네요ㅠ 다른 사람들보다 덜 저축하는 것 같아요.”

2030 청년들에게 ‘무지출 챌린지’가 화제다. 인스타그램에는 ‘무지출’ ‘무지출 챌린지’ ‘무지출 도전’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4000개 넘게 올라와 있다. 유튜브에서도 ‘짠내 나는’ 무지출 브이로그 콘텐츠를 쉽게 볼 수 있다. 한 ‘절약 유튜버’의 ‘일주일 무지출 챌린지’ 영상은 조회수가 66만 회에 이른다. 이 유튜버는 롤케이크를 하나 사먹는 바람에 무지출 도전에 실패하지만 영상에 달린 800여 개 댓글에는 응원과 격려,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는 반성과 따라 해보겠다는 다짐이 가득하다.

‘무지출 챌린지’란 생필품 외의 물건을 사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 날을 늘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생필품에 포함할지는 자신이 결정하면 된다. 누군가에겐 커피 한 잔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영화 한 편이 될 수 있다. ‘챌린지’라고는 하지만 미래를 대비해 자산을 쌓고, 자신의 소비 습관을 점검하려는 참가자가 많다. 얼마나 오래 돈을 쓰지 않았는지 남에게 증명하기보다는, 얼마나 지속적으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이 챌린지의 목적이다.

스포츠 강사인 문예지씨(26)도 그중 한 명이다. 두 달 전 무지출 챌린지를 알게 된 문씨는 “많은 사람들과 도전을 공유하면 힘을 얻을 것 같아서” 7월부터 SNS 계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문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자기 몫의 주거비(20만원)와 공동 생활비(15만원)를 낸다. 일터를 오가는 교통비를 포함한 고정지출 비용을 제외하고, 그가 7월 한 달 동안 쓴 돈은 15만원이 안 된다(〈그림 2〉 참조). 문씨의 제1원칙은 ‘평일엔 무지출, 주말엔 예산 내 지출’이다. 31일 중 24일 동안 돈을 쓰지 않은 비결이다.

돈이 몰리던 투자시장에 겨울이 오자 부채와 현실이 남았다. ‘갓성비(가성비 최상)’나 ‘혜자로운(가격 대비 구성이 풍성해 인기를 모은 편의점 도시락에서 나온 말)’ 상품을 찾던 청년들이 이제는 극단적인 소비 단식에 돌입했다. 경제적 곤란은 자산 기반이 없는 취약계층에 더 가혹하다. ‘푼돈’에도 타격이 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2030 세대의 휴대전화 요금 연체 건수는 전 세대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SNS상에 올라온 ‘무지출 챌린지’ 인증 장면. ⓒ유튜브·인스타그램 갈무리

‘가성비 찾기’에서 ‘소비 단식’으로

청년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고통 역시 역대 최고치에 이르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체감경제고통지수 분석에 따르면, 청년들(15~29세)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지수는 27.2로 2015년 집계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다른 연령대가 11.5~18.8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청년들은 모든 세대 가운데 가장 경제적 고통을 크게 느끼는 세대라 할 수 있다. 무지출 챌린지는 이런 현실을 담은 청년 세대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장은 무지출 챌린지가 자기계발에 익숙한 청년들의 놀이나 게임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미션을 달성하는 자신의 모습을 SNS에 인증하는 MZ세대의 놀이문화라는 것이다. 구 소장은 진짜 빈곤한 청년들은 이 챌린지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지출 챌린지는 ‘그들만의 놀이’라고 지적했다. “진짜 돈이 없어서 무지출을 하는 청년들은 이 챌린지를 하지 않아요. 누구도 자신의 가난을 SNS에 인증하지 않으니까요. 무지출 챌린지는 ‘돈이 있는데 안 쓰는 사람들’의 놀이입니다. 새로운 유행이 오면 곧 사라질 거라고 봅니다.”

무지출 챌린지가 뜨면서 ‘탕비실 도둑’ ‘탕파족’ 같은 신조어도 나타났다. 무지출 챌린지를 한다는 이유로 회사 탕비실의 간식이나 커피를 축낸다며 조롱하는 말이다. 무지출 챌린지는 (자기 돈은 쓰지 않고) 부모가 채워놓은 냉장고를 털어가는 일이라거나, 이기적인 민폐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무지성 챌린지’ ‘등쳐먹는 챌린지’ 같은 신조어는 이런 시각들이 반영된 표현이다.

사회적 협동조합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의 백승훈 사무국장은 ‘민폐’보다 ‘다행’이라는 말로 이런 행동을 해석했다. “무지출 챌린지를 할 때 부모, 혹은 회사 탕비실처럼 의지할 곳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겁니다. 이것마저 없는 상태에서 지출을 줄이면 건강을 해치거나 사회적 관계까지 줄여 고립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무지출 챌린지라는 말 앞에는 ‘오죽하면’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고 말했다. 무지출 챌린지의 진정성을 판단하거나 잠깐 유행하는 ‘놀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청년 세대에 무지출이 확산하는 이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 세대는 ‘고비용 저소득 세대’입니다. 아르바이트나 불안정 노동으로 절대적 소득은 낮지만 전월세 비용이나 학자금 대출 같은 고정비용이 높아요. 물가가 올라 생활비가 늘면 직격타가 되기도 합니다. 청년들은 대표적인 신파일러(Thin Filer·금융 이력 부족자)이기도 한데요. 소액이 필요해 제2·제3 금융권으로 쉽게 넘어가고 결국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합니다. 청년 세대가 처한 경제적 특수성 안에서 지금의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죽하면’ 무지출하는지 살펴야

자신을 ‘지잡대(지방 소재의 잡다한 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한 임지우씨(25)는 종종 무지출 챌린지 SNS 계정에 응원의 글을 남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해도 안정적으로 사는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2년 전부터 휴학하고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 한 달에 170만원을 벌면 165만원을 저금했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년이 되던 지난해 연말, 임씨는 드디어 1억원이라는 자산을 모았다.

기뻤을까? “그때가 스물네 살 된 12월이었는데요. 기쁘지도 않았고 그냥 별다를 것 없는 기분이었어요. 1억원을 모았지만 이걸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내 수준이 월급 170만원 받는 알바생이라는 현실은 여전했고, 그게 마냥 허탈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젊은 나이에 사업이나 투자로 큰돈을 번 사람들의 유튜브를 보면서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게 됐다. 질투와 시샘 때문에 괴로웠다. 어느 날부터 그는 한 푼 두 푼 적은 금액이라도 열심히 저축하는 다른 이들의 계정을 방문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본 적 없는 SNS 계정 속 청년들이었다. ‘안전한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무지출 챌린지 계정에 그는 “저도 남에게 베풀 때, 나 자신을 발전시킬 때 빼고는 절제하며 돈을 모으고 있어요. 같이 부자 됩시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8월2일 저녁 8시, 80여 명이 모인 무지출 오픈채팅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큰마음 먹고 좋아하는 아이돌 굿즈들을 중고 판매한다’는 인증 사진이었다. 그는 10년 안에 유학을 가는 게 꿈이라 지금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곧이어 저녁에 시작되는 오늘의 ‘무지출 인증’이 이어졌다. “저는 오늘 비누 두 개 샀어요” “저는 오늘 교통비만 썼습니다” “오늘의 무지출 인증”…. 글들이 빠르게 올라왔다. 간식을 살까 망설였다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 댓글이 달렸다. 소소한 다짐과 고민 상담도 이어졌다. 다음 날 아침, 누군가 채팅방에 아침 인사를 남겼다. “오늘도 스트레스 없이 ‘즐짠’ 하세요!” 이른 아침에도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들이 인사 대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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