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말들
오수경 지음, 유유 펴냄

“드라마는 ‘퇴행’과 ‘지향’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충격받은 표정의 남성이 주르륵 오렌지주스를 흘리는 장면은 〈아무튼, 아침 드라마〉라는 책 표지일 정도로 유명한 ‘밈’이다. 출처가 MBC 아침 드라마 〈사랑했나 봐〉(2012)라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 터. 저자는 “이 장면을 무려 실시간으로 본 영광을 누렸다는 게 드라마 덕후로서 내가 가진 은근한 자부심이다”라고 쓴다. 어느 장르든 작품이 다 말하지 않았거나 못한 것까지 섬세히 살피는 덕후의 존재가 결국 작품을 완성한다. 책에 실린 드라마 대사와 작품 목록을 일별하다 보면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드라마가 있었나 하는 점이 새삼 놀랍고, 그 안에서 쓸모와 의미를 발굴하는 저자의 다정과 정성에 끝내 감탄하게 된다.

 

 

 

 

 

말을 거는 건축
정태종·안대환·엄준식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은 그 이름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서울 은평구 증산로 17길. 2차선 도로 양쪽이 근린생활 건물로 빼곡하다. 그 사이, 삼각 패턴으로 뒤편 비단산의 형상을 곳곳에 담은 건축물이 눈에 띈다.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에서 이름을 따온 도서관이다.
건축가 3인이 저마다 시각으로 일상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전국 30개 건축물을 소개한다. 건축문화가 꽃피기 시작하면서 이제 우리도 해외여행에서나 볼 수 있는 건축물을 마을버스 타고 찾아간다. 전문가의 시각이 담겼지만 이해하기 쉽게 썼다. 저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 찍은 150컷 사진도 담겼다. 여름 휴가철에 챙겨 갈 만한 책이다.

 

 

 

 

 

서평의 언어
메리케이 윌머스 지음, 송섬별 옮김, 돌베개 펴냄

“클리셰를 피해보려 애쓴 것이 가상하기는 하지만 그 결과 혼란스러운 표현이 탄생할 때도 있다.”

책은 협업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독보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를 발견하고 북돋아 ‘상품’으로 만들어내기까지 무수한 손이 필요하다. 서평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RB)를 만들고 성장시킨 저자는 그러한 그림자 노동의 총지휘자였다. 드문 여성 편집자이기도 했다. 타인의 글을 돌보는 와중에 틈틈이 써내려간 자신의 ‘단편’(LRB에서는 기사나 리뷰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을 묶은 책이다. 표제작인 ‘서평의 언어’는 서평가가 써서는 안 되는 단어들을 알려준다. “근사한, 재미있는, 대단한 같은 형용사다.” 하지만 그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그런 단어들을 생각하지 않기란 어렵다.

 

 

 

 

 

핵전쟁 위기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삼인 펴냄

“오늘날의 모스크바-워싱턴 관계는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역사학, 정치학, 국제관계학 등에서 수많은 책을 쏟아내게 한 사건이다. ‘케네디가 움츠러들지 않았고, 최측근 참모들이 관여한 의사결정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다는 게 기존 담론이다. 우크라이나 출신 하버드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이 담론에 도전한다. 저자는 새롭게 발굴된 옛 소련(러시아) 문서고 자료, 우크라이나에 보관된 KGB 자료를 활용했다. 1962년 당시 케네디(미국), 흐루쇼프(소련), 카스트로(쿠바)의 오해와 착각과 오판의 순간들을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려냈다.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 위기 국면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이돌이 된 국가
류하이룽 편저, 김태연·이현정·홍주연 옮김, 갈무리 펴냄

“아이돌을 사랑하듯 네 나라를 사랑하라.”

2015년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국내 방송에 출연해 타이완과 한국 국기를 함께 흔들었다. 분노한 중국 누리꾼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바’를 중심으로 뭉쳤다. ‘디바가 출정하면 풀 한 포기도 안 남는다’는 구호 아래 독립을 지지하는 타이완 언론사와 정치인 등의 페이스북을 습격했다. ‘디바 출정’이라 불린 이 사건은 중국 누리꾼의 민족주의 성향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중국 사이버 민족주의의 새로운 경향을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이다. 증오, 분노, 현실세계에서의 행동을 특징으로 하던 중국의 전통적 민족주의가 왜 ‘디바 출정’과 같은 팬덤 민족주의로 진화했는지 설명한다.

 

 

 

 

 

프로필 사회
한스 게오로크 묄러 외 지음, 김한슬기 옮김, 생각이음 펴냄

“프로필은 단순히 보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자아 이미지다.”

메신저 프로필에 아무 사진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순간 그마저 ‘메시지’가 됐다. 고양이 사진을 올린 사람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사람은? 온라인으로 더 많이 연결되면 될수록 작은 프로필 사진 속 암시와 상징이 중요해졌다.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 거듭 표현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기분’은 현대인 공통의 것이 됐다. 타인을 이해하는 작은 파편인 ‘프로필’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할까? 책은 진정성과 성실성보다 중요해진 ‘프로필 큐레이팅’의 기묘한 의미와 의도를 곱씹는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메신저 사진을 바꾸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지 모른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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