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는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살아남은 여성 200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4개월에 접어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여성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러시아 침공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여성을 기록하고 전하는 작업을 해온 나스차 크라실니코바 러시아 기자가 〈시사IN〉에 보내온 글을 싣는다. 이 글은 러시아의 독립언론 ‘메두사(Meduza)’의 뉴스레터 ‘KIT’에도 실렸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나스차 크라실니코바입니다.

저는 여성 기자이자 블로거이고 페미니즘 운동가입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저는 제 텔레그램 채널 ‘도츠 라즈보이니카(산적의 딸, t.me/unsudden)’를 통해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위기에는 리스크가 따르지만 특히 여성들에게는 더합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여성의 권리와 자유 분야의 발전은 멈췄을 뿐 아니라 퇴화했습니다. 격리 상황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정폭력 발생률이 상승했습니다. 무역, 고객 응대 분야에서 일하던 수많은 여성들은 수입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자신의 직업과 자기개발에는 더 적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4월18일 키이우 외각 부차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적십자사의 음식 보급을 기다리는 모습. ⓒAP Photo

사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속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주 멀고 심지어 무해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전쟁은 남자의 일이라는 생각에 익숙합니다. 이번 군사적 충돌 상황에서 여성들이 어떤 일들을 겪는지에 대해서는 몇 안 되는 증언만을 알 뿐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전쟁의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전쟁의 참가자입니다.

이 글은 전쟁이 여성들의 삶은 어떻게 바꾸는지, 또는 여성 권리에 어떠한 피해를 가져다줄 것인지(혹은 이미 가했는지)를 평가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 ) 안 글은 번역가 주석입니다

*(편집자 주)로 표기된 부분은 원고가 출간된 러시아 언론사 ‘메두사’의 편집자가 쓴 보충 설명입니다.

저자:나스차 크라실니코바

보조:비카 로바노바

편집:안나 체소바

출처: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사’의 프로젝트 KIT(getkit.news/)

우크라이나 여성들, 전쟁에 참가하다

3월 상반기 CNN 기자들은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크라이나 여성 수십 명이 아이들과 노인들을 국경 검문소까지 데려다준 뒤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군(Armed Forces of Ukraine)의 여성 비율은 15~17%였다. 그리고 전쟁 발발 이후 그 수는 증가했다.

‘여성 참전용사 운동(Жіночий ветеранський рух)’ 부국장인 카테리나 프리이막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군인 중 여성의 수는 어느 누구도 정확히 알려줄 수 없다. 기밀이다. 2월24일 전까지 (국내에) 여성 전투원은 약 3만명이었지만, (현재) 군대에는 더 많은 여성이 있다. 군 종사자 중 약 15%가 여성이며, 그들은 실전에 나서는 군인과 장교다. 그리고 국방부 공무원을 포함한 군사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여성의 비중은 25%이다. 아주 높은 수치다.”

‘여성 참전용사 운동’은 (이번 전쟁에 앞서) 2014년 전쟁 당시 여성들의 참가를 연구하기 위해 탄생했다. ‘여성 참전용사 운동’의 또 한 가지 목적이 있다. 여군들의 권리를 지켜주려는 것이다. 2018년 우크라이나는 군대 내 성평등에 대한 법률을 채택했다. 프리이막은 “우리는 군대에서 여성을 위한 63가지 전투 포지션을 열었고, 그들이 공식 복무를 할 수 있게 했다”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의 여성 군인들. 2018년 8월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행사 리허설을 하고 있다. ⓒAP Photo

프리이막의 말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여성들의 군복무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높아졌다. “여성들이 지역 방어군에 지원하는 건 사실이다. 군 입대 사무소든, 지역방어군 지원소든 지원하려는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만약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싶다면 최전선까지 나갈 길은 열려 있다. 지원할 수 있는 도브로바트(우크라이나 자원부대)와 의무대가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등 동원 대상이 되는 직업 목록도 있다.”

프리이막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군대에 복무하는 여성 중 자녀가 있는 이들이 있으며 그 수가 적지 않다. 그녀는 “두 부류의 여성들이 있다”라고 말한다. “한 부류는 아이들을 직접 돌보며 안전한 곳까지 인솔한다. 그리고 다른 부류의 여성은 바로 자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이들이다. 바로 그런 여자들이 전쟁터에 나간다. 내가 아이를 계획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큰 사랑에는 아주 큰 책임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프리이막은 자신의 여군 동료들이 종종 비난에 직면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를 버리고 싸우러 갔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동기는 자신의 아이의 생명과 (그들이 우리로부터) 빼앗고자 하는 미래를 지키기 위함,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한 여성이 자신의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수개월 동안 떠난다고, 그것도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상상해보라. 나는 그 생각을 할 때 턱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한 선택을 하는 여성들은 어떠한 비극을 겪고 있는 걸까? 사회는 그녀들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자신의 아이를 버렸다’고 한마디하는 이웃은 늘 있는 법이다.”

“현재의 우리들의 저항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여성들은 전쟁터에서 싸울 뿐 아니라, 모든 곳에 있다. 페미니스트 단체 ‘Voice Amplified’의 비상 대응 책임자 켈리 조세프의 말로는 이건 전형적인 상황이라고 한다. “도움을 주는 단체의 직원으로서, 자원봉사자로서, 어머니로서–그 어떠한 역할로서도.” 위험한 순간 바로 여성들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고 켈리는 말한다. 우크라이나 젠더 전문가 마르타 추말로 또한 “구호식품 지원은 대부분 여성들이 주도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원봉사 운동이 급증한 것은 주로 여성들 덕분이다. 사실 (전쟁) 전에도 자원봉사 운동은 강력했다. 우크라이나 군대를 돕는 기관은 국내에 약 2500개로(회원 수 1만4500명 이상), 2021년 12월 조사 결과 자원봉사자에 대한 신뢰수준은 68%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군사에 대한 신뢰 다음 순위였다. 2월24일 이후 자원봉사 운동은 더욱 눈에 띄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자원봉사단’ 한 기관에만 해도 4만3500명이 지원했고, 10만명 이상이 온라인상으로 돕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피란민을 돕고, 국경지역에서 의약품과 식료품을 배달해주며, 군대와 민간인에게 필요한 기금을 마련한다.

6월14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에서 한 여성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AP Photo

우크라이나 여성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인권운동가인 올가 코트루스는 전쟁 중인 나라임에도 다방면에서 이렇게도 활발한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참여를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 방어군에서 기관총을 멘 여성이나 군복을 입은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깜짝 놀라거나 감탄하지 않는다. 나는 이 여성들과 오랜 시간 한 나라에서 살았고, 이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정당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모두의 인내심은 바닥났고, 더 이상 이러한 폭력을 참지 않고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거다.”

민간인 또한 각자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싸우고 있다. 지난 3월 러시아 드론을 오이 단지로 격추한 사건이 언론에 떠돌았다(실제 사건 주인공인 키이우 여성 엘레나에 따르면, 오이 단지가 아니고 토마토 단지였다). 코노토프의 시민이 러시아 군인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여자 두 명 중 하나가 마녀야. 너 내일 아침부터 발기가 안 될 거야.” 68세 연금수령자 이리나 프론첸코는 자신의 집 거실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위한 방탄복을 바느질해 만들고 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아내 올레나 젤렌스카야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포스팅했다. “현재의 우리들의 저항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성폭력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

우크라이나 작가이자 인권운동가 올가 코트루스는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겪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바로 러시아 군인의 성폭력이라고 한다. 인권보호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성폭력) 사례를 처음으로 기록한 건 3월 초였다. 이러한 사례는 수십, 아니 수백 건이 될 것이다. 노인을 포함한 어린 소녀와 여성이 당한 강간 사례, 집단 강간 및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저지른 강간, 소년들과 남자들이 당한 강간에 대한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감독관인 류드밀라 데니소바는 다음 정보를 제공했다. 4월 첫 2주간 심리상담 핫라인에 강간 신고 약 400건이 접수되었다. 모든 여성이 도움을 청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자 수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작가이자 인권운동가 올가 코트루스는 “전쟁 전 가정폭력 또는 강간을 당했을 시 어디로 연락하면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배포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강간을 당하는 동안 어떻게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가는지’(트라우마를 축소하기 위한 현실도피를 말함:편집자 주)와 아무런 의학적 도움이 제공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 응급처치를 하는지에 대해 알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이리나 베네딕토바는 전시 성폭력은 공소시효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EPA

전시 성폭력은 전쟁범죄로 제네바 협약 제27조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베네딕토바는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범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독립적인 국제기관들 또한 이 일에 참여하고 있다. 인권보호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가 2월27일부터 3월14일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범죄에 대해 작성한 첫 번째 보고에는 집단 강간을 포함한 강간이 언급된다.

특히 집단 강간(가해자 수 최대 5명)에 대한 정보는 서로 연관이 없는 출처, 예컨대 심리상담자로부터 제공된다. 강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비공개 텔레그램 채널을 설립한 임상심리학자 카테리나 갈랸트는 “러시아 군인에게 집단 강간을 당한 16~20세 소녀 3명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다”라고 말한다. 그중 한 명은 구타로 인해 치아를 여러 개 잃었고, 다른 한 명은 타박상을 입었다.

후퇴 직전에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강간 사건이 일어난다

다른 사건들도 있다. 헤르손에 사는 올레나의 이야기를 보자. 상점에서 동네 주민이 올레나를 가리키며 “이 자가 반데로브카(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나치와 협력하면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을 이끈 스테판 반데라를 지칭하는 용어)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러시아 군인 두 명이 여자가 집으로 가는 내내 쫓아가 권총으로 협박하며 강간했다.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감독관 류드밀라 데니소바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또 하나의 사건을 기록했다. ‘이르펜 지역의 20세 소녀가 러시아 군인 3명에게 강간당했다.’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후퇴 직전에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강간 사건들이 일어났다. 류드밀라 데니소바에 따르면, 부차에서는 러시아 군인들이 14~24세 여성 25명을 지하실에 가두고 정기적으로 강간했다. 그들 중 9명은 임신했다.

“모든 전쟁은 강간을 동반한다.” 1997년부터 성폭력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러시아 기관 ‘시스터스’의 코디네이터 나탈리야 티모페예바의 말이다. 그녀는 “강간은 성적 끌림과 관련 없음”을 강조한다. 바로 그 이유로 전문가들은 ‘성폭력(sexual violence)’이라는 용어를 ‘성화된 폭력(sexualized violence)’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폭력에는 성적인(섹시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강간 가해자는 성적으로 흥분할 수 있지만 그의 주요 동기는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한 권력 행사와 통제”라고 티모페예바는 설명한다. 그녀는 ‘러시아 군인들이 하는 일들은 폭력이 사회생활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폭력을 장려하며 정상화해온 장기 정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난 2월 초 민스크 협정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불만을 언급하며 블라디미르 푸틴이 읊은 (욕설이 포함된) 국민 속요 ‘좋든 싫든 참아, 예쁜이’는 이러한 정책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재 영국 대사 멜린다 시몬스는 강간이 의식적 복종 행위일 뿐 아니라 전쟁의 무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시몬스 대사는, 강간은 특정 러시아 군인들의 개인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인권보호단체 ‘라 스트라다(La Strada)’의 카테리나 체레파하 또한 그 견해에 동의한다. 미국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은 현 전쟁에서 강간은 ‘고의적인 캠페인’이라고 말한다.

강간은 평시에도 수사하기 어려운 범죄다. 첫째, 피해자 여성들이 거의 법 집행기관을 찾지 않는다. 이유는 기관에서 이러한 사건들을 열정적으로 수사하는 경우가 드물고, 사회는 대체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수사 측면에서 의료 자문의 중요성이다. 가급적이면 피해를 당한 날, 가능하면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4월20일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여성들이 러시아군의 강간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전쟁 중 수사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피해자가 신고를 하더라도 가해자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많은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강간 중 러시아 군인들은 ‘발라클라바(눈이나 입을 제외한 머리 전체를 덮는 방한 의류)’를 벗지 않았다. 또한 피해자의 거주지에서 전투가 진행 중이거나 점령된 상황이라면 법의학 검사를 받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주재 유엔 인권감시팀장 마틸다 보그너는 “전쟁 중 일어난 강간의 대부분은 처벌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보편 관할권 법칙이 적용되어 언제, 어디서나 가해자를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탈리야 티모페예바는 “강간 자체는 증오를 바탕으로 한 범죄이고, 전쟁 중 증오의 동기는 확산된다. 여성, 아이들, 남성들은 각각 증오하는 민족의 일원이 된다. 강간 가해자는 한 민족의 대표로서 다른 민족의 대표인 한 사람에게 최대의 피해를 주고자 한다. 전쟁 강간이 종종 집단으로 실행되는 이유는 개개인의 책임감을 덜려는 시도이다”라고 말한다. “모두가 한다면 나는 잘못이 없다”라는 식이다.

때때로 피해자의 친척이나 이웃들이 강간을 목격하도록 한다. “목격자가 두려워하도록, 저항하지 못하도록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다.” 티모페예바는 “목격자로서 강간을 맞닥뜨린 이들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결국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힘을 쓰게 될 것이고 저항하기 위한 에너지가 부족할 수도 있다”라고 한다. 티모페예바는 “강간으로 발생하는 임신에 대해 가해자는 ‘여성이 올바른 아이, 우리의 아이를 낳게 하는 방법’이라고 여긴다”라고 말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간이 특히 폭력적으로 진행되면 불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특정한 소녀나 여성이 아닌 민족 전체로부터 미래를 앗아가는 방법이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강간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티모페예바는 “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바로 문제가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말한다”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쟁에서는 수년이 지난 후 피해자들이 용기 내어 정의를 실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체첸 전쟁 당시 발생했던 강간 폭력은 처벌되지 않았다. 그 사회에서는 희생자들이 사실을 말하게 될 경우 겪게 될 피해가 더 컸을 것이기 때문에 범죄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

전쟁 강간 수사 결과 피해자들이 정신적으로 회복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들이 겪은 일 때문만은 아니다. “트라우마는 사회가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사회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성폭력 피해자가 겪은 일로 인해 더러워지거나 나빠지지 않고, ‘부역자’(2차 세계대전 당시 강간당한 여성들을 이렇게 불렀다. 그녀들이 낳은 아이는 차별을 당했다:편집자 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그들은 강간당했고, 오직 도움과 지지만이 필요하다.”

낙태도 의료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폴란드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기구 ‘국경 없는 낙태(Abortion Without Borders)’는 3월1일부터 4월12일까지 강간으로 인한 임신 200건 이상을 보고했다. ‘위기상황 시 재생산보건기관’ 실무팀(IAWG)은 임신중지(낙태)와 그 후 간호를 인도주의적 도움 중 우선순위에 올렸다. IAWG에 임신중지 도움을 청하는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폴란드에 있다(유엔에 따르면 대부분의 난민이 현재 폴란드에 있다). 폴란드에서는 수술적 임신중지가 금지되어 있고, 약물 임신중지는 조건부로 허용된다. 응급 피임약 소지 및 사용은 처벌되지 않지만, 판매 또는 제3자에게 전달하는 경우 형사처벌된다. 따라서 강간 후 우크라이나 여성이 임신중지를 결심하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폴란드 이웃 국가도 상황이 비슷하다. 헝가리에는 의사 진단서가 있어야 응급 피임약을 구할 수 있고, 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루마니아나 슬로바키아에서는 피란민에게 금전적 지원이 되지 않고, 의약품은 전액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기관은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무료로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국가(라트비아, 체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로 이동하는 것을 돕는다. ‘국경 없는 낙태’에 속한 ‘낙태 지원 네트워크(Abortion Support Network)’가 그중 하나다.

또한 여성들에게 ‘프로라이프(낙태 반대운동)’ 회원들이 압력을 가한다. 여성인권 보호기관 ‘여성가족계획연합(Federa)’의 크리스티나 카츠푸라 대표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난민들에게 ‘낙태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린다고 전한다. 지난 4월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은 경고를 보냈다. 이 기관은 유럽연합(EU) 당국에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인도적 지원품(dignity kits)에 피임약 및 응급 피임약을 추가할 것’을 촉구했다. 강간 후 72시간 내로 피임약을 복용하는 경우 임신을 막을 수 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는 낙태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의료지원의 어려움이 있다.ⓒTASS

이러한 소포는 IPPF 자체 및 유니세프, 위민헬프위민(Women Help Women) 등 기타 비영리 조직들을 통해 전달된다. ‘여성 참전용사 운동’은 이런 의약품을 하르키우와 오데사주에 전달한다. ‘여성 참전용사 운동’의 카테리나 프리이막은 러시아군으로부터 해방된 지역에 비상 피임약을 전달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고 말한다. 사후 피임약 포스티노는 강간 이후 72시간 내로 복용해야만 원치 않는 임신을 막을 수 있다. “다른 방안으로는 5일 후까지 복용 가능한 엘로반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약들의 효과는 줄어들기 때문에 여성들은 약을 복용해야 하는 시기를 놓칠 수 있다”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또한 이러한 약품 복용은 의사의 관리 아래 진행되므로 요청 시 의사에게만 발급된다. 카테리나 프리이막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약들을 강간당한 모든 여성에게 헬기로 떨어트려 줄 수 없습니다. 출혈이 일어나 사망할 리스크가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군) 점령지역에는 전달할 방안이 없습니다.”

사실 강간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임신을 중단하는 유일한 사유가 아니다. 전쟁 중에 파트너와 헤어지게 된(의회가 채택한 일반동원법에 따라 만 18~60세 남성은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없음) 많은 여성들이 임신을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된다.

낙태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의료지원의 어려움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동우크라이나의 의료시스템은 거의 파괴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서는 우크라이나인 약 39%가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생식건강 유지 서비스 및 출산 전후 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유엔인구기금에 따르면 2월 말 당시 약 26만5000명의 우크라이나 여성이 임신 중이었다. 그리고 그중 8만명이 3개월 이내로 출산할 예정이었다. 임신부 전체의 15%는 높은 수준의 의료지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출산이 대피소와 지하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 그 도움을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키이우의 산부인과 의사 갈리나 마이스트룩에 따르면, 병원 내에서도 의약품과 장비 부족은 상황을 더욱더 어렵게 한다. 물류망은 파괴되었고, 약국은 텅텅 비어 있다. 창고 대부분이 키이우 근교에 위치했는데 대부분 파괴되었다.

피란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과 어린이들

우크라이나 난민 수를 파악하는 일은 주로 유엔이 한다. 그렇지만 그 또한 대략적인 데이터일 뿐이다. 엄격한 국경이 없는 한 정확한 통계 수집은 어려운 일이다. 통계 파악은 다음 방법으로 진행된다. 유엔 데이터센터는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지난 5월11일 기준 폴란드와 국경을 넘은 인원은 327만2943명이다. 그들이 폴란드에 남았는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인구통계연구소장 엘라 리바노바는 난민 수가 과대평가되었다고 확신한다. 보통 국경을 처음으로 넘을 때, 그리고 다음 국가에서 서류를 발급받을 때 집계된다. 리바노바는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의 데이터를 신뢰한다. 부서의 정보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인320만명이 피란민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포브스(Forbes)〉는 900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집을 떠났고, 그중 400만명은 외국에, 500만명은 국내에 있다고 파악한다.

러시아로 떠난 (혹은 강제로 이송된) 이들의 수를 파악하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들 중 일부는 지난 4월 돈바스에 대한 공격이 준비되는 동안 미승인 주권국가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에서 떠났을 확률이 높다. 러시아 미디어는 러시아로 떠난 우크라이나인의 수가 약 120만명이라고 추정한다. 유엔에 따르면 그들의 수는 74만명을 넘지 않는다.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바는 피란민 대다수가 여성과 어린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떠나가는 난민 중 그들의 정확한 비율을 파악하기 어렵다. 피란민 전체의 90%라는 의견이 있지만, 사실 현 우크라이나 인도적 위기 사태에 대해서는 특정 통계가 아닌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표준계산법이 적용된다. 유엔의 정보에 따르면 어떠한 무력 충돌에서도 여성과 어린아이가 전체 난민의 약 90%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에도 그러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6월18일 전쟁을 피해 열차에 탑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피란민들.ⓒREUTERS

여자들은 아이들만 데리고 도망치는 게 아니다. 나이 든 친척,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그 모든 이들에 대한 책임을 진다. 우크라이나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올가 코트루스는 그러한 상황에 처한 자기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외과의사인 그녀의 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전쟁터에 가니깐 너는 가족을 책임져. 너는 마음을 놓거나 울면 안 돼.” 친구는 서른 전후, 남동생은 열네 살. 그녀는 동생과 엄마를 폴란드로 피란시켰다.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해 이동시키고,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위로하고, 따뜻하게 달래주며 모두 각자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지금 어머니와 남동생은 어느 정도 적응했고, 아버지는 전쟁터에 있다. 오로지 친구만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 올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사랑하는 친구야, 어떻게 해야 살고 싶어질까? 나한테 알려줘.” 그녀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르키우에 살던 타티야나(본인 부탁으로 가명 사용)는 처음에는 자신이 떠날 것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딸이 ‘죽는 게 아프냐’고 물어봤을 때 피란길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결정하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현재 그녀의 가족은 스페인 발렌시아 근교 공영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나의 하루는 아침 7시에 시작된다.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에 데려다주는데, 각자 도시의 다른 끝에 위치한 학교에 다녀서 차례대로 데려다준다. 이후 반려견 산책을 시키면서 동네 쓰레기통을 뒤진다.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스페인에서는 쓰레기통에서 거의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다. 이 지역에는 적십자도 없고, ‘인문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도 더 큰 도시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교통비는 우리에게 너무 큰돈이다. 대학을 나오고 안정된 삶을 살았던 내가 지금은 누가 볼까 두리번거리면서 쓰레기통을 뒤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정말 힘들다”라고 타티야나는 말한다.

난민이 된 그녀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원래 키이우에 살던 니나는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반려동물들과 함께 테르노필로 피란 갔다. “내 숲, 내 늪에서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내가 수년간 버섯과 나물을 따던 곳에 그들이 땅을 오염시키고 짓밟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 이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힘들다.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비하면 하찮은 것 같지만 나에게는 아픔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Voice Amplified’의 켈리 조세프는 오늘의 이민자 위기는 여성의 위기라고 확신한다. “여성과 소녀들은 인도적 지원 대상으로 거론된다. 그렇지만 안전과 보호 제공 및 그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지원을 위한 예산과 자원은 거의 없다”라고 켈리는 설명한다. 그녀는 유럽 몇몇 국가에서 한 달을 보내며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도왔다. 그동안 여성 보호에 대한 체계적인 방안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난민 여성들은 어떠한 도움에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고, 그것은 그녀가 매우 걱정하는 부분이다. “이건 마치 우리가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어떠한 규모의 도움이 지원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함에서 오는 고마움이라고 생각한다.”

켈리에 따르면 현재 난민 여성들은 아이, 돈, 직장을 비롯해 수많은 것들, 즉 모든 것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돈이 떨어져서 가족을 돌볼 수 없을까 봐 걱정한다. 폭력을 마주했을 때 어디에 전화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 외에도 집에 돌아갈 걱정, 남편 걱정, 나라 걱정, 아이를 학교에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걱정 등을 한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이르핀에서 시민을 싣고 대피 중인 버스 안에서 한 어린이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AP Photo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바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피란길에 오르는 가장 큰 동기 중 하나다. 키이우에서 딸아이와 함께 독일로 떠난 나자는 말한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혹시 아이가 다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 내 아이가 죽거나 육체적인 트라우마를 겪는다면 나는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전한 곳에 도착해서도 여성들은 한숨 놓을 수 없다. 이제 지낼 곳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 ‘여성의 관점(Women’s perspectives)’의 공동 설립자 마르타 추말로에 따르면, 피란 여성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주거지’다. “프랑스 가정에서 함께 사는 한 여성은 ‘가능하면 방 밖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분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 이미 나로 인해 그분들이 불편한 게 보이는데, 갈 곳이 없다’고 말하더라”라고 마르타는 말한다.

‘Voice Amplified’의 켈리 조세프 또한 피란민들의 주거지 문제를 언급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집에서 당신을 한 달 혹은 두 달 동안 맞이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곳에 있을 수 있을까? 그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떻게 돈을 구할 수 있을까? 일부 국가들에서 지원되는 복지부조는 월 130유로인데 터무니없이 작은 금액이다. 여성들에게 일자리가 제공되는 경우가 있지만 사회의 ‘어두운 일’인 경우가 많다.”

많은 유럽 도시들에는 이미 난민이 넘쳐난다. 어떤 우크라이나인들은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직까지 안전하지 못한 곳으로. 어느 누구도 피란민들에게 체계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들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지원에 대한 질문에 켈리는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장기간의 안전한 주거지, 정당한 취업과 예산지원 프로그램, 그리고 양질의 정보 제공이다. 유럽 국가들이 난민 여성들을 돕기 위해 많은 걸 하고 있다. 하지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

이와 동시에 많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자신이 구조된 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낀다. 키이우의 소냐는 “내가 살아 있고, 내 가족들이 무사한 것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이들 앞에 지옥 같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 내 집에 로켓이 떨어졌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켈리 조세프는 ‘생존자의 죄책감은 실제적인 현상’이라고 확신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성들에게는 복지뿐만 아니라 심리적 도움도 필요하다.

노예가 될 위험에 노출되다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여성들이 마주하는 또 다른 위험은 노예나 성노예 신세로 전략하는 것이다. 인신매매는 유럽연합에서 특별협약(반인신매매협약)으로 금지되어 있다. 이 협약은 러시아를 제외한 우크라이나와 모든 인근 국가들이 서명했다. 노예 매매 문제는 우크라이나 지역을 떠나는 난민 수가 100만명을 초과한 전쟁 첫 주에 이미 거론되었다. 유럽 국가 국민들이 EU 지도자들에게 청원 및 항의를 하고, 비영리 기관인 유럽평의회 인신매매 전문가그룹 그레타(GRETA) 또한 같은 우려를 표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인신매매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비극이 아닌 기회다. 여성과 어린이들이 바로 그들의 타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성매매·노예매매 사례가 없다. 그렇지만 비공식적인 증거들은 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에서 일하던 우크라이나 자원봉사자 마르가리타 우스마노바는 난민 캠프에서 목격된 수상한 이탈리아 남자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우스마노바는 “나는 경찰에 신고했고, 내 의심이 맞았다”라고 말했다고 BBC가 전했다.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스카우트(노예 상인과 노예 소유자들을 위해 움직이는 소위 ‘모집인’)들의 전략이 바뀌었다. 전쟁 초반에는 피란민들이 모이는 장소에 대놓고 자체 제작한 판지 광고를 들고 서 있었다. ‘편안하고 매력적인 국가(이탈리아 등)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 후 모집인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인을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며 심지어 작업복을 입고 있기도 했다. 스카우트들은 거짓 일자리 제안(마사지숍 등)으로 난민들을 유인하는데, 이는 성매매의 직접적 경로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흔한 일이다.

지난 4월28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이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를 방문했다. ⓒAP Photo

‘Voice Amplified’의 켈리 조세프는 국경에서 일어난 몇몇 인신매매 사건을 안다고 한다. “어떤 남자들이 난민 숙소에 찾아와 아이와 임신부를 데려간 경우가 있다. 여성들에게 난자 제공자가 되라고 제안하는 페이스북 그룹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종류의 착취는 예전에도 흔한 일이었다. 난민 위기와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확인해줄 뿐이다.”

체계적 범죄단체만이 아니라 개인이 착취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거짓 자원봉사자들의 초청으로 독일과 영국으로 간 여성들의 증언(확인되지 않음)이 포스팅되었다. 그곳에서 난민 여성들에게 여권을 빼앗고, 성관계를 강요하고 강제로 가사노동을 시켰다(이러한 사례 중 하나가 BBC에 소개되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이러한 장소에 모집하기 위한 특수 그룹이 만들어진다.

2022년 3월부터 우크라이나 경찰과 함께 인터폴이 ‘트래피킹(인신매매) 방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터폴의 프로그램에 오스트리아·불가리아·스페인·독일·폴란드·슬로바키아·루마니아·헝가리의 공식기관들과 비정부기구들이 합류했다. 우크라이나 경찰은 EU 영토 내 인신매매 사업에 우크라이나인이 개입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중순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가 300만명을 넘을 무렵 비영리 기관들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성노예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전단지를 국경 지역에서 배포했다. ‘Fem Podmoga(여성 원조)’ 등 비영리단체 또한 이러한 전단지를 배포한다. 지난 5월 GRETA는 유럽 국가 대상 양질의 트래피킹 방지 매뉴얼(Guidance Note)을 발표했다. 저자들은 우크라이나인 인신매매 사례를 알고 있으며 현재 조사 중이라고 주장한다. 매뉴얼은 도움을 지원받고 제공하는 모든 사람이 등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절차는 환승 국가에서도, 목적지 국가에서도 끊임없이 기록되어야 한다. 이와 별도로 여성 국경수비대 대원 수를 늘리고, 여성 난민들을 돕는 여성 전문가 수를 전체적으로 증원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다

작가 올가 코트루스는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한 우크라이나 여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쟁 발발 이후 그녀는 집에 오빠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오빠는 그녀를 구타했지만, 현재 이런 일에 신경 쓸 수 없는 경찰에 신고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그녀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아파트에서 구조되었다.

1998년부터 가정폭력 상황을 연구해온 ‘Women’s Perspectives’ 센터의 젠더 전문가 마르타 추말로는 “전쟁 발발 이후 문제는 더욱더 심각해졌다”라고 말한다. 점령지에서 경찰이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도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점 또한 지적한다. 전쟁은 센터가 돕는 많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다. “어떤 여성들은 해외로 떠났고, 어떤 이들은 폭력 가해자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현재 아이와 함께 국경을 넘기 위해 양쪽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피해 유럽으로 도망친 이들은 지금 자신을 자유인으로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회의 창’이 모든 이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전쟁 초창기 ‘Women’s perspectives’는 우크라이나 내에 몇 개의 추가 대피소를 마련해 폭력 피해자와 난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숨을 장소를 제공했다. 마르타는 “몇 달간 열악한 환경에서 샤워시설도 없이 학교 및 대피소에서 보낸 여성들이 많다. 우리는 그런 여성들을 조금 더 편안한 환경으로 데려온다. 샤워시설, 화장실, 부엌이 있는 곳, 즉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해준다”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전쟁 자체만이 아니라 전쟁을 수반하는 사회의 군사화가 여성 권리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현재 남성성이 칭송되고 있다. 여성은 ‘베레기냐(슬라브 민족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숲의 요정. 가정, 악과 불행,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는 요정이다. 자작나무나 버들나무 형태를 띠었다고 한다)이고, 남성은 수호자다. 왜 이러한 추론이 필요한지 알고 있지만 장기간 이어질 경우 결국 여성 권리를 반대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에는 예전에 낙태방지법이 있었는데 전쟁 발발 이후 다시 의회에 제출되었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출산율 증가를 위해서라고 한다.” 2017년에 논의되었던 낙태금지법이 2022년 3월17일 다시 의회에 소환되려고 한다.

5월9일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 르비우 외곽에 마련한 이동식 주택 단지 안의 우크라이나 여성들. ⓒ연합뉴스

키아라 콘디가는 현재 우선순위는 생존이기 때문에 여성 권리 문제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위기를 겪을 시 우리의 사고는 편협해지고, 미래 건설에 대해 덜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는 일, 즉 나와 내 아이를 살리는 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위기상황 발생 시 사회의 모든 관심은 그곳을 향하기 때문에 젠더 이슈와 관련해, 아무리 중요한 주제이더라도 그걸 이야기할 여지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가 코트루스는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전쟁이 끝난 이후 여성 권리 면에서 긍정적 발전을 기대한다. “많은 여성들은 군사화로 인한 염려를 표하지만, 사실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전쟁은 2014년부터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이미 오래전부터 군대에 집중해왔다. 군대는 한 국가가 존립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여성 행진, 자부심, 여성 권리를 위한 공개적인 투쟁과 완벽하게 공존해왔다. 내 생각에 전쟁이 끝나면 이 문제는 너무나 명백해져서 (여성에 대한 폭력 퇴치에 관한) 이스탄불 협정과 동일한 협약을 우크라이나가 외면하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 분야에서 긍정적인 움직임을 기대한다. 물론 러시아에 대해선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그곳에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켈리 조세프는 여성들에게 특별한 인내력이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그러한 인내심이 있는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는가? 물론 우리에게는 인내심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얻게 된 기능이다. 여성들이 전쟁의 길을 떠나 더욱더 강해지고 고통받기를 원해서 인내심이 생기는 게 아니다. 다른 길이 없을 뿐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올가 코트루스에게 전쟁 기간 우크라이나 여성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이다.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희망을 품고, 일하고, 남을 돕고, 히스테리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숨막혀버리지 않기 위한 엄청난 지원이 있었다. 우리 여자들은 절대적으로 모든 걸 해낼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강인할 수 있는지 절대로 알고 싶지 않은 내 바람과 상관없이 말이다.”

기자명 나스차 크라실니코바(러시아 여성운동가·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