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날은 2007년 7월1일, 15년 전이다. 이기지 못하는 술자리가 잦아서인지 체중이 불어 있었다. 달리기와 음식 조절로 1주일에 1㎏씩 뺐고, 가을에 목표 체중이 됐다. 음식 조절은 그만뒀지만 달리기는 그만두지 못했다. 오히려 내 삶과 무관하던 마라톤을 완주했고, 더 먼 거리를 달렸다. 지금은 매일 10㎞씩 한 해 3000~4000㎞를 뛴다. 수영이나 테니스 같은 운동도 배웠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달리기는 영적 체험이라고 의사이자 마라토너인 조지 쉬언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달리기를 얘기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달릴 수 있는지 말하려 한다. 이제 얘기하는 다섯 가지만 기억하면 가을쯤에는 모두 마라토너가 되어 있을 테다.

첫째, 페이스와 기록을 재지 않는다. 달리기를 시작하는 계기는 저마다 다양하지만 실패하는 이유는 대부분 속력을 내려 하기 때문이다. 10㎞ 달리기에 성공하면 이후 10㎞ 기록을 10초라도 단축하려 한다. 하지만 5분을 단축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동네 순위에도 못 들고 자신과 싸움도 못 된다. 그냥 힘이 들고 숨만 찰 뿐이다. 성급한 사람들은 5㎞나 3㎞에서 개인 기록을 내려고도 한다. 결과는 마찬가지다. 달리기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마침내 떠나게 된다.

달리기가 즐거운 건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 본능은 오래 달리려는 것이다. 200만 년 전 기후변화로 삼림지대가 초원으로 바뀌면서 인간의 조상이 달리기 시작했다. 며칠이고 사슴을 쫓아 달려가 도망치다 탈진한 사슴을 맨손으로 잡았다. 사람은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 치타는 시속 110㎞로 달려 시속 80㎞인 톰슨가젤을 잡아먹는다. 가장 빠른 사람인 우사인 볼트도 시속 37.6㎞이고 이렇게 100m 넘게는 못 달린다. 하지만 사람처럼 오래 달릴 수 있는 포유류는 거의 없다. 시속 50㎞ 정도로 달리는 말은 15분쯤 지나면 속력이 절반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사람과 말이 숲길 등 35㎞를 달리는 대회에서 사람이 종종 이긴다.

둘째, 트레드밀에서 내려와야 한다. 마라톤 세계에서 올림픽은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다. 메달 경쟁 즉 순위 경쟁이어서 기록이 좋지 않다. 최근 100년 마라톤 세계기록이 수없이 바뀌었어도 올림픽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중계를 통한 도시 홍보를 우선해서 루트도 좋지 않다. 이 가운데서도 나쁜 루트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이다. 런던 명소를 훑는 12.875㎞ 구간을 세 번 돌고 버킹엄궁 앞에서 마치는 루트였다. 같은 구간을 세 차례 돌아야 하는 선수들은 피로감을 호소했다.

런던 올림픽 루트와 비교할 수 없는 정신적 피로감을, 풍경이 바뀌지 않는 트레드밀 달리기가 준다. 트레드밀 달리기보다는 근처 운동장 400m 트랙을 뛰는 게 훨씬 낫다. 그리고 트랙보다는 앞으로 절반을 갔다가 뒤돌아오는 반환 루트가 좋고, 반환 루트보다는 겹치는 구간 없이 크게 한 바퀴를 도는 원형 루트가 좋다. 21세기 들어 세계기록이 여덟 번 바뀌었는데 일곱 번이 베를린 마라톤에서 나왔다. 이 대회 루트는 뭐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구불구불한 모양이다. 트레드밀은 정신력을 고갈시킨다.

셋째, 무릎은 쉽게 망가지지 않는다. 처음 달리기 시작하면 발바닥이나 무릎에 통증이 생긴다. 한 달에 100㎞도 달리지 않는데 몸이 아픈 원인은, 과도한 달리기가 아니라 무너진 신체에 있다. 물고기가 지느러미가 아파서 헤엄치지 못하거나, 새가 날갯죽지에 통증이 와서 주저앉는 일은 없다. 전설의 마라토너 에밀 자토펙은 썼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인간은 달린다(The bird is flying, the fish are swimming, the man is running). 사람은 달리도록 만들어졌다. 달려서 병나는 존재가 아니다.

이어폰 없이 달리자 새로운 세계가…

족저근막 염증이나 무릎인대 통증 때문에 병원에 가면, 뛰지 말라는 얘기를 듣는다. 의사 말대로 일단 쉬고, 조금씩 다시 달리면서 허벅지에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달리면서 생기는 충격 정도는 관절이 아닌 하반신 근육이 받아내야 한다. 달리는 정도로 통증이 생기는 근육 없는 신체를 방치하면 안 된다.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 해도 금세 피로해져 업무도 공부도 잘하기 어렵다. 금메달을 따려고 달리는 게 아니다. 건강하고 즐겁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넷째, 땀복을 버려야 한다. 달리기를 시작하는 가장 많은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서다. 땀을 흘려 몸에서 수분이 빠지면 몸무게가 준다. 하지만 체수분은 보충되고 체중은 돌아온다. 몸무게가 줄려면 지방이 타야 한다. 우리 몸은 움직이기 시작해 30분이 지나야 지방을 연소한다. 천천히 오래 달려야 한다. 사람이 달리는 메커니즘은 자동차가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자동차 기술의 핵심은 엔진 과열을 막는 것이다. 체온을 상승시키는 땀복은 다이어트에도 달리기에도 적이다.

가능한 한 가벼운 옷차림으로 달려야 한다. 세계 모든 프로 마라토너는 러닝셔츠를 입는다. 겨드랑이에서 열이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모자를 쓰는 경우 위쪽이 열린 선바이저나 얇은 소재로 만들어진 것을 택한다.

올림픽 마라톤이 부진한 이유로 여름에 열린다는 점도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마라톤은 기온이 낮은 삿포로에서 열렸다. 이 때문에 올림픽 마라톤을 동계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마라톤이 하계의 상징이어서 실현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다섯째, 결국 혼자 달려야 한다. 달리기 모임에서는 서로 격려도 되고 ‘맛집 달리기’ 같은 이벤트도 참가할 수 있다. 나 역시 모임에서 정보도 얻고 주법도 배웠다. 2시간20분대 기록을 가진 메이저 마라톤대회 마스터스 우승자와도 오래 교류했다. 그런데 꾸준히 달리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혼자 달렸다. 모임에는 달리기 위해서라기보다 달리기 이야기를 나누러 나왔다. 여럿이서는 그렇게 열심히 달리지도 않았다. 퇴근하고 만나서 술만 마시는 날도 많았다.

요즘은 러닝크루라는 걸 만들어 달리는 사람이 많다. 함께 달리기도 하고 혼자 달리기도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서만 달린다고 한다. 달리기가 단체운동인 셈이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거나 다른 일을 하면 이른바 영적 체험을 하기 어렵다. 나도 처음에는 이어폰을 끼고 달렸다. 외국어 공부를 하다가, 뉴스를 듣는 걸로 바뀌었고, 마지막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이때만 해도 매일 달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어폰 없이 달리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달리기는 고독해서 행복한 드라마이다. 

기자명 이범준 (아마추어 마라토너·논픽션 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