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 의창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김영선 전 의원. ⓒ연합뉴스

KT 채용 비리 사건에 경남 창원 의창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김영선 후보도 관련된 사실이 〈시사IN〉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2019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부정 채용 청탁자 리스트에 김영선 후보의 이름이 포함됐다는 의혹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22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나온 KT 채용 비리 사건은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최근 다시 입길에 올랐다.

KT 채용 비리 사건은 2018년 말 불거진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딸의 ‘특혜 채용’ 의혹에서 시작됐다. 이석채 전 KT 회장과 일부 임원들이 2012년 김 전 의원을 비롯한 사회 유력 인사들로부터 채용 청탁을 받고 점수를 조작해 특정 지원자를 합격시키는 등, 회사 공개채용에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검찰 수사와 1심, 항소심 재판을 거쳐 2022년 2월17일 대법원은 이석채 전 회장(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과 임원들(집행유예 또는 벌금), 김성태 전 의원(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확정했다.

이석채 전 회장 등의 1심, 항소심 판결문에 김영선 후보의 이름이 등장한다. 6·1 지방선거에서 경남 창원 의창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김영선 후보는 4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과거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소속 제15·16대 비례대표, 제17·18대 경기도 고양시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면 국민의힘 계열 정당 최초의 여성 5선 국회의원이 된다.

판결문에 따르면, KT는 2012년 대졸 신입 공개채용과 별개로 KT 홈고객서비스 부문 공개채용을 진행했다. 당시 통신서비스 개통 및 AS 업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해오던 KT는 2011년부터 정부의 외주업무 정규직화 정책에 맞춰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회사는 2012년 6월 3600명으로부터 지원서를 받고, 두 달 뒤인 8월 320명을 채용했다.

전체 지원자 가운데 4명이 채용 과정에서 KT의 ‘관심 지원자’로 분류됐다. 1심과 항소심 법원이 판결문에 표로 정리된 관심 지원자 명단을 보면, 비고란에 김영선 후보, 김희정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 ‘노조위원장’이 적혀 있다. 재판부는 ‘관심 지원자’에 대해 “이석채 전 회장이 직접 청탁받아 관리를 지시한 지원자를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관심 지원자 명단은 회장과 비서실, KT 인재경영실, 홈서비스부문 사장 및 채용 실무자가 공유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가 5월24일 의정부역 앞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면접 D, D, C, D 등급인데 채용

당시 홈서비스부문 공개채용 절차는 서류심사와 인적성 검사, 면접으로 이뤄졌다. 판결문에 첨부된 검찰의 증거자료를 보면, 비고란에 김영선 후보자의 이름이 적힌 지원자 A씨는 서류심사부터 불합격했다. 그러나 KT 채용 실무자로부터 관심 지원자들의 현황을 보고받은 이석채 전 회장의 지시로 합격 처리됐다. A씨는 인적성 검사, 면접 등 이어진 다른 절차에서도 불합격했다. 인성검사는 불합격, 적성검사는 47점이었다. 면접에서는 4명의 면접관에게 각각 D, D, C, D 등급을 받았다(면접 등급은 A, B, C, D 순으로 채점되는 방식이었다). 관심 지원자 4명 가운데서도 모든 채용 절차에서 불합격을 받은 지원자는 A씨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단계마다 이 전 회장의 “합격 처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A씨는 KT에 채용됐다.

이석채 전 회장과 2012년 KT 홈서비스부문 공개채용에 관여한 회사 임직원들은 2019년 검찰 조사에서 부정 채용 과정을 상세히 진술했다. 판결문에 담긴 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석채 전 회장이 청탁을 받아 ‘누가 지원했다는데 알아보라’고 쪽지나 이름을 비서실에 전달했다. 비서실 관계자는 이를 인재경영실에 전했고, 인사 실무 부서가 다시 넘겨받았다. 인사 실무 부서는 이름과 쪽지를 종합해 관심 지원자 명단을 만들어 전형마다 결과를 비서실에 보고했다. 보고받은 이석채 전 회장이 “그 사람 합격시켜서 면접까지 보게 해줘라”고 지시하면, 비서실을 거쳐 다시 순차적으로 지시 내용이 전달됐다. 이석채 전 회장은 인재경영실 및 인사 실무 부서에 직접 지시하지 않았으나 회사 관계자들은 비서실의 전달 사항에 이 전 회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김영선 후보는 채용 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당시 KT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던 사촌 동생이 현장에서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다가 정규직으로 채용된 것으로만 알고 있다”라며 “당시 추천한 적도 없고, 채용에 관여한 적도 없으며 다른 어떠한 사유로도 KT와 접촉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 대상도 아니었으며 참고인 조사도 받은 적 없다. 2012년에는 국회의원도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앞서 의혹이 제기된 김은혜 후보의 이름도 이석채 전 회장 등의 1심과 항소심 판결문에서 확인된다. 2012년 KT는 대졸 공채 과정에서 청탁받은 지원자의 명단을 별도로 관리했다. 명단에 포함된 1982년생 지원자 김 아무개씨 이름 옆 비고란에는 김은혜 후보 이름이 적혀 있다. 김씨는 1차 면접 절차에서 탈락 대상자로 분류됐지만 합격 처리됐다. 그는 이후 최종 면접 절차에서 불합격을 받아 채용은 불발됐다. 김은혜 후보는 2012년 KT 전무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2008년 2월부터 2년6개월간 청와대 대변인으로 근무하다가 2010년 KT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혹이 불거진 직후 김 후보는 관훈토론회(5월19일) 등에서 “부정 채용에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2019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며 “남편의 친척을 추천한 적 있다”라고 진술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거짓 해명 논란으로 번졌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당시 채용 관련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김 후보는 수사 대상도 아니었고, 지원자는 당시 채용도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2012년 KT 채용 과정에서 벌어진 채용 비리는 총 12건. 청탁을 받고 특정 지원자 채용에 관여한 이석채 전 회장 등 KT 임원은 모두 처벌받았다. 그러나 청탁자로 지목돼 형사처벌을 받은 ‘사회 유력 인사’는 김성태 전 의원이 유일하다.

채용 비리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이석채 전 KT 회장의 항소심 판결문 중 일부.

청탁자 지목된 ‘유력 인사’ 수사도 안 받아

현행법 가운데 채용 비리만을 겨냥해 만들어진 법은 없다. 검찰과 법원은 현행법 가운데 판례로 업무방해죄 법리를 확장해 판단하고 있다. 이석채 전 회장 등 회사 임원도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를 받았다. ‘위계(僞計)’란 상대방을 오인·착각하게 만든 행위를 말한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 전 회장과 임원들이 부적격자들을 채용 단계마다 통과시키면서, 이를 면접에 들어간 면접관에게 알리지 않고 속이는 등 ‘면접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이 경우 사건의 피해자가 다른 입사 지원자들이 아닌 KT 또는 면접관들이 된다는 점이다. 회사 임직원들은 가해자로 처벌할 수 있지만, 업무방해죄에는 채용 비리 청탁자·수혜자에 대한 조치 관련 명시적 규정이 없다. 채용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거나 면접관을 속였다고 보기 어려운 채용 청탁자와 청탁 수혜자는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청탁자로 지목된 ‘사회 유력 인사’들이 대부분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은 이유다.

업무방해죄 적용은 채용 비리에 가담한 회사 관계자들의 처벌 수위를 낮추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1심과 항소심 법원은 피고인들의 행위로 업무를 직접 방해받은 각 전형별 면접위원과 KT가 별다른 처벌 의사를 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 청탁자 또는 부정 합격자가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이석채 전 회장 등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꼽았다.

유죄가 확정된 김성태 전 의원도 업무방해 혐의를 받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의원이 직접 면접위원들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무혐의 처분했다. 대신 김 전 의원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김 전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던 2012년 국정감사 기간에 이석채 당시 KT 회장의 증인 채택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딸의 정규직 채용을 보장받아 뇌물수수죄가 성립된다는 논리였다. 검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해 김 전 의원 딸의 채용을 지시하는 방식으로 뇌물을 줬다는 혐의(뇌물 공여)를 함께 적용했다. 대법원도 국정감사 증인 채택에 관한 국회의원의 직무와 자녀 채용 기회 사이 대가성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확정했다.

2017년 강원랜드·금융권 채용 비리 사건 이후 여러 부정 채용 사건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채용 비리에 가담한 의혹을 받는 관계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무혐의를 받거나 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채용 비리를 정조준한 법안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채용비리처벌 특별법’이 계류돼 있다. 청탁자와 구인자(회사) 모두 처벌하도록 하고, 부정 채용자에 대한 채용 취소, 피해자 구제 절차 등의 내용을 담았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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