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안톤 숄츠 기자는 우리 사회의 온갖 면모를 목격해온 이방인 관찰자다. ⓒ시사IN 윤무영

한국인들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SDSN)의 2021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0년 한국의 행복지수 평균은 세계 149개국 중 62위이다. OECD 국가로 비교 대상을 줄이면 ‘불행’에 가깝다. 37개국 중 35위. 그리스와 터키만 한국 아래에 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어떤 이들은 사회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개개인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독일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안톤 숄츠 기자는 ‘둘 다’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인의 불행은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의식 양쪽에서 비롯한다. 1990년대 중반 처음 내한한 그는 한국의 매력에 빠져 20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온갖 면모를 목격해온 이방인 관찰자인 셈이다. 숄츠 기자가 최근 펴낸 책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은 한국인의 불행에 대한 보고서다. 한국의 세계적 위상은 높아지고 있지만, 그는 이 나라 사람에게 “달콤한 미소에 감춰진 균열, 완벽한 웃음 속에 비친 얼룩”이 있다고 썼다. 광주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나?
첫 방문은 1994년 일이다. 어릴 때부터 동양 무술이나 사상에 관심이 많았다. 참선도 하고 동양철학도 가르치는 태권도장이 있어서 열심히 다녔다. 선불교 관련 워크숍에 다니던 중, 독일에 온 한국 스님이 “진정 관심이 있다면 한국에 와서 더 깊이 배워보라”고 제안했다. 원래는 1년만 있기로 했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너무 좋았다. 3년 정도 한국에 있다가 1년쯤 일본 사찰에 머문 뒤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 대학에서 한국학·일본학·비교종교학 세 가지를 동시에 공부했다. 졸업한 뒤 한국에 와 광주의 대학교 강단에 서게 됐다.

독일에서 상상한 한국의 모습과 직접 본 바가 달랐나?
마을 풍경에 좀 충격을 받았다. 한국 문화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실제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이국적이고 전통적인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에서 영화에 나오는 전통적인 마을은 찾기 어려웠다. 어느 날 (독일에서 만난) 스님과 함께 걷다가 아름다운 마을을 찾게 되었다. ‘역시 이런 마을이 남아 있었어요!’라고 말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민속촌이더라(웃음).

서울이 아니라 광주에 오래 살게 된 이유는?
아내는 서울 출신이고 광주에 친구도 없었다. 서울에 갈지, 광주에 남을지 고민하던 중 장단점 목록을 하나 만들었다. 벌이를 생각하면 서울이 나았다. 광주의 가장 큰 장점은 서울과 다른 라이프스타일이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단독주택에 살아서, 집을 나가면 정원이 있고 동네 친구들과 놀던 추억이 있다. 작은 텃밭을 가꿔 봄마다 싹이 트는 행복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20분쯤 가면 지리산도 있고 바닷가도 있다. 돈이나 친구보다 이런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결정했다.

책의 키워드가 행복이다. 20년 전과 지금을 견줘, 한국인들은 언제 더 행복한 것 같나?
내가 보기엔 예전이 더 행복했다. 그때의 삶은 지금보다 더 힘들었지만, 사회가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해보다 올해의 내가 조금 나은 느낌이 들었기에 힘들어도 계속 나아갔다. 그런데 전 세계 10위 안에 드는 강국이 되고 보니 한국은 더 올라가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비유하자면 자전거를 사고, 스쿠터를 사고, 경차를 사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대형차를 몰다가 스포츠카를 사는 게 어렵다. 나라 경제는 예전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 않는데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경쟁 때문에 불행하다?
경쟁의 강도가 너무 심하고, 그 방식도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 함께 방송에 출연한 교수가 이런 예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한국의 경쟁은 의자 5개를 놓고 10명이 앉으려는 게임이다. 신호에 맞춰 재빨리 의자에 앉으려고 눈치를 본다. 이 게임에서 불행한 사람은 10명이다. 자리를 못 잡은 5명은 당연히 행복하지 않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있는 나머지 5명도 두려움에 떤다. 자리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앉자마자 불안해하는 것이다.

해법이 있나?
그 교수는 ‘정부가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자리는 충분하다. 대기업·의사·공무원처럼 한국 사람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자리가 잘 살펴보면 있다. 한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사람에 따라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비정규직 일자리만 없어진다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까?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행복의 관점에서 볼 때, 피곤할 때 잘 곳이 있고, 배고프면 먹을 수 있고,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고, 입을 옷을 살 수 있다면, 나머지는 대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제도 문제는 없나? 한국은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약하기 때문에 낙오가 치명적인 게 아닐까?
물론 정부가 할 일도 많다. 우선 사회적 소수자 지원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여성이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동성애자들의 법적 권리도 제약이 많다. 이민정책도 새로 검토해야 한다. 2018년 예멘 난민 사태 때 더 전향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체 사회 구성원을 만족시킬 만한 일자리를 정부가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독일 정치인들도 이러저러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선거 때마다 약속하는데,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수자 정책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한국 교육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은 정부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이다. 독일 교육과 한국 교육은 180도 다르다. 독일은 잘 배우기 위해 시험을 보는데 한국은 시험을 잘 보려고 배운다. 이건 왜곡이다. 좋은 교육은 사람을 여유 있게,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한국 교육은 사람의 모든 걸 너무 미리 결정한다. 어린 시절부터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다. 사교육이라는 개념을 한국에 와서 처음 알게 됐다. 교육공무원인 우리 어머니가 OTT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한국 학교의 살벌한 경쟁 분위기에 충격을 받았다.

4월28일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은 입시 경쟁이 없나?
당연히 있다. 독일에서도 모든 사람이 의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서 1등이 아니었어도 정말 의사가 되고 싶다면 의대에 들어가는 게 가능하다. 점수가 좀 모자라더라도 시간을 들여 계속 도전하면 입학은 불가능하지 않다. 대신 독일 대학은 졸업하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내가 전공한 일본학과에 100명쯤 입학했는데, 5명이 졸업했다. 나머지 95명은 포기하고 다른 공부를 한다. 독일은 학비가 무료니까. 나는 이쪽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의사’ ‘좋은 변호사’인지 평가하려면 입학보다 졸업 성적을 봐야 하지 않을까? 입학 이전에는 전공 지식을 전혀 모르니까. 독일 시스템은 모든 사람에게 ‘너, 이 공부 하고 싶어? 해봐, 해봐!’라고 권장한다. 열정 있는 전문가를 배출하는 체계다. 한국 시스템은 투입 대비 산출이 저조하다. 주변에서 ‘내가 겪었던 교육 지옥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 정도면 해마다 노벨상을 받아야 하는 수준의 고역인데, 결과는 그에 못 미친다.

한국 방송에 출연해 비난 댓글을 받은 경험을 책에 썼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배제하는 ‘삭제 문화(cancel culture)’는 위험하다고 적었다.
삭제 문화 자체는 한국만의 문제도, 한국에서 시작된 문제도 아니다. 시작은 미국이고 독일에서도 문제가 된다. 다만 최근 한국 온라인에서는 좀 심해진 것 같다. 비난받은 유명인이 자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내 생각에 삭제 문화를 강화하는 건 나쁜 토론 방식이다. 독일 토론 프로그램은 항상 진보·보수를 동시에 초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시청자는 양쪽 이야기를 듣고 자기 생각을 만든다. 그런데 한국의 인기 있는 토크 프로그램은 패널 5명이 다른 사람 의견과 상관없이 전부 준비해온 말만 한다. 이 와중에 (시청자) 몇 사람은 ‘저 사람이 하는 말은 마음에 안 드니 없애야 한다’며 항의한다. 이런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만 하면 어떻게 민주주의가 될 수 있나. 마음에 안 드는 의견은 그냥 없애버리는 문화가 퍼져가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의견이 양극화되고 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건 최근 미국 사회의 방향인데, 내게 미국은 결코 좋은 모델이 아니다.

한국이 참고할 만한 좋은 모델은? 독일인가?
꼭 다른 나라를 보고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데도 반대한다. 최저임금 제도를 두고 내게 연락해오는 한국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독일은 최저임금 제도 잘되잖아요?’라고 물어오면 나는 늘 ‘네. 독일에서는 잘돼요. 그건 독일이니까’라고 답한다. 한국에 독일식 최저임금 제도를 무작정 도입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건 절대 아니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꼭 통일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식이 독일과 같다면 아마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한국인이 절대 원하지 않는 사회가 펼쳐질 수도 있다. 교육도 그렇다. 나는 독일에서 최고 등급 국가장학금을 받았는데, 4시간 동안 면접만 봤다. 내용도 암기나 논술식이 아니라 ‘이 장학금을 받으면 뭐 할 건가?’ 정도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큰 시험을 이 방식으로 치르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 아이가 탈락한 근거를 대라’는 항의가 빗발칠지 모른다. 그런데 독일에선 별다른 불만이 없다. 그냥 서로 믿는다.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 독일만큼 서로 믿는 사회가 아닌 곳에 독일식 교육제도를 도입하긴 어렵다.

20년 전에 비해 한국의 지위는 올라갔지만 한국인은 외롭고 공허해 보인다고 책에 적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인은 정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처음에는 정이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도 전 세계 사람에게 다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니 한국 사람들은 좀 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밤중에 길을 잃고 헤매다 민가에 들어가면 당연하다는 듯 반기고 밥을 주는 문화가 존재했다. 독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요새는 한국인의 사고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우리’보다 ‘나’를 더 생각하고, 돈에 너무 집착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행복해지기 어렵다. 구성원들이 믿을 수 있는 윤리적 가치가 깔려 있어야 한다. ‘같이 해보자’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보자’라는 의식이 요즘 한국에서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

기자명 광주·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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