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작가의 유품인 노트북과 안경, 그리고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펴낸 두 권의 저서. ⓒ시사IN 신선영

지난해 11월, 온라인 공간에 글 한 편이 돌았다. 제목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글은 내가 62세에서 65세까지 겪은 취업 분투기다.” 환갑 나이를 넘어 취업 전선에 뛰어든 이순자 작가(69)는 세탁공장 수건 접기, 백화점·건물 공사장·병원 청소, 어린이집 주방 업무, 가정집 아기 돌보미, 요양보호사 등의 일을 하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적었다. 이 글은 ‘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이라는, 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이 매년 주최하는 문학 공모전에서 논픽션 부문 수상작 5편 중 하나로 당선되었다. 당선작들은 지난해 여름, 7월21일부터 〈매일신문〉 온라인 홈페이지에 글 전문이 게재되어 있었다.

입소문을 타고 작품이 널리 알려진 때는 그해 가을이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2021년 11월의 어느 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온통 ‘이순자 작가’ 이야기였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읽은 20~40대 젊은 독자들의 독후감과 감상평이 며칠 내내 커뮤니티 게시판과 SNS 타임라인을 뒤덮었다. 어떤 이는 ‘여성 노인판 〈임계장 이야기〉’를 떠올렸고 어떤 이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언급했다. 하지만 가장 많이 공감을 받은 감상평은 이 한 문장이었다. “이 글 전문을 읽으세요(2021년 11월16일 ‘dahyeh lee’의 트윗).”

많은 사람들이 이순자 작가를 수소문했다. 출판사 편집자들은 책 출간을 제안하기 위해, 언론사 기자들은 인터뷰를 하고 칼럼 필자로 모시기 위해 작가를 찾았다. 하지만 닿지 못했다. 작가는 이미 세상에 없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발표되고 한 달여 뒤, 작가는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여름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그해 겨울, 고 이순자 작가에 대한 뒤늦은 기사가 몇 개 나왔다. 여러 출판사들이 기획안과 목차를 짜서 작가 대신 유족에게 출간 제안을 건넸다. “살아 계셨다면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향한 독자들의 관심에 가슴 벅차셨을” 게 분명하고 “늘 타인과의 소통을 갈망하던” 이순자 작가의 생전 마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가족들은 이 관심과 기회가 선뜻 기쁘지만은 않았다. “어머니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자칫 조각조각 자극적으로 편집되고 왜곡될까 봐,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이용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아픈 개인사와 가족사가 에누리 없이 담긴 글이었기에 더 두렵기도 했다. 어느 종편 방송사는 뉴스 말미 ‘앵커의 시선’에서 유족의 허락도 없이 작가의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 속 몇 가지 자극적인 키워드 조각을 꿰어 ‘참담한 노년’의 사례로 활용했다. 유족은 가슴이 할퀴어졌다. 방송을 보고 놀란 친지와 이웃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라며 연락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고민과 가족회의 끝에 유족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 밑에 달린 수많은 댓글의 덕이 컸다. “힘든 삶에도 어머니가 지켜낸 곧은 심성과 따뜻한 시선, 특유의 위트와 희망을 읽어내주고” “어머니의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이웃에게 시선을 돌리며, 삶과 사람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을 수 있었다며 진심 어린 추모를 전해준” 독자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이순자 작가가 생전 그토록 원하고 좋아하던 타인과의 소통, 글을 통한 대화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 기회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남은 가족들은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딸은 어머니의 노트북을 펼쳤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어머니의 작품 파일을 하나둘 끌어다 모았다. 수필 32편, 논픽션 1편, 동화 1편, 단편소설 2편, 시 215편이 폴더 하나 안에 가지런히 정렬되었다. 유족은 “어머니가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잘 이해해주시고, 이를 세상에 소중하게 내놓아주실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는 당부의 말을 붙여 출판사에 전달했다. 작가와 그를 먼저 만난 독자들, 유족과 편집자의 진심이 모인 끝에 이듬해 봄, 글들은 파스텔톤 표지의 책 두 권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와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이다(왼쪽 사진). 이순자 작가의 첫 책이자 유고집이다.

황혼이혼 뒤 본격적인 글쓰기

이순자 작가는 집필 활동을 통해 존엄하고 고귀한 삶과 글을 완성해냈다. ⓒ휴머니스트 제공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산문집이다. 출간 계기가 된 ‘실버 취준생 분투기’는 책의 3부, 중반 너머에 실렸다. 제목에 본문 문장이 인용된 ‘은행나무 그루터기에 깨꽃 피었네’를 비롯한 산문 21편이 앞서 배치돼 있다. 요양보호사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단편소설 ‘돌봄’도 함께 실렸다. 동시 출간된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는 시집이다. ‘사랑 1~6’ ‘독거노인의 자화상 1~10’ ‘요양보호일기 1~6’ 등 시 75편이 묶였다. 책장을 넘기며 다음 목차로 넘어갈 때마다 이순자 작가가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더욱 촘촘히 연결되고 선명해진다. ‘실버 취준생 이야기’도 그 속에서 하나의 조각이다.

작가는 이 글들을 모두 2006년, 나이 쉰넷 이후에 썼다. 2006년은 작가가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던 해다. 문학 수업은 주로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다가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 스터디 모임으로 열렸다. 이순자 작가는 대학 내 ‘서지(西池)’라는 문학 동아리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서지’ 회원들은 한 편씩 쓴 글을 미리 나눠 읽고 토요일 오후 3시쯤 만났다. 6시간이고 7시간이고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서지’ 회원들의 스승이던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은 ‘매우 열성적인 문청(文靑)’이었던 06학번 이순자 학생을 기억했다. “오프라인 수업 때 다른 학생들은 대개 책상 쪽이나 글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순자 학생은 언제나 제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청력장애가 있어 귀가 아니라 눈으로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자 작가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선천성 감각신경성 난청을 앓았다. 그는 평생을 아프고 약한 사람의 처지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전사했다. 가난한 살림에 5남매와 어린 시동생 둘을 혼자 건사하는 어머니 밑에서(산문 ‘우리 막둥이 삼촌’) “너는 왜 태어났니” 모진 말을 듣고 자랐다(2021년 4월27일 팟캐스트 ‘신광숙의 들려주는 아름드리:우리 세상 이야기’ 인터뷰). 청각장애와 급성 폐결핵 등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다가(산문 ‘나는 경계인이다’) “푸른 꿈 대신 아침이슬을 먹고 사는(시 ‘훈장’)” 여공이 되었다. 결혼 후 25년 동안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동생을 ‘모셨다’. 친구 집 화장실에서 도둑 독서를 하던 ‘문학소녀’는 혼자 300인분 손님상을 차려내던 종갓집 며느리가 된 뒤 책 한 줄, 문장 하나 읽고 쓸 여유가 없었다(산문 ‘나의 삶 나의 문학’). 남편과 황혼이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내내 생활고와 지병(심장병과 청각장애)으로 고통을 겪었다(산문 ‘고통, 그 인간적인 것’).

작가는 다만 약한 처지에 있었을 뿐, 약하지 않았다. 평생을 아팠지만 자기 고통 속에 갇히지 않았다. 강하고 가진 게 많은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깊게,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약한 사람들의 처지를 근심하고 대변했다. 부당한 일에는 화를 내고 싸웠고, 지거나 실패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물을 떠다 놓으면 한 시간이면 어는 이화동 산9번지 적산가옥에 살던 어린 시절, “누군가 음식을 줄 때까지 굶어야 했던” 다락방 장님 할아버지의 죽음을 오래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고(산문 ‘마지막 구걸’), 20대 청년 시절에는 명동성당에서 운동권 대학생들과 밤이면 유인물을 찍고 낮이면 데모에 가담했다(산문 ‘1970년대 명동성당 젊은이들’). 시티즌주식회사 근무 시절 여공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목격하곤 노동조합 설립을 도와주다가 사복경찰들에게 잡혀 성동경찰서 지하에서 취조를 받기도 했다(산문 ‘빗나간 오지랖’).

50대 이후 가정과 자녀 양육의 굴레에서 벗어난 뒤에는 인천 강화, 강원도 평창, 경기 성남 등지에서 요양보호사나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했다. 독거노인, 장애인, 산재 노동자들을 보살폈다. 생계 전선에 뛰어들면서 이주노동자, 비정규 노인 노동자, 치매 노인 등도 만났다. 그 과정에서 가정 내 여성 착취, 노동 현장에서의 성추행, 데이트 폭력, 아동학대 등을 목격하면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복지정책의 모순도 정면 비판했다. 스스로가 그 집단 일부에 속한 작가는 그들 속에 있다가도 이따금 그들과 거리를 두었다. 반대로 그들 밖에 있다가도 성큼 그들 속에 들어갔다. 그렇게 약자들을 관찰하고 상황에 개입하고 전말을 기록했다. 얄팍한 시혜와 동정이 아닌 두터운 경청과 연대의 자세로.

장애인, 이혼녀, 노인 비정규직, 독거노인, 기초수급자…. 세상이 이순자 작가의 삶에 차례차례 붙인 ‘딱지’에 작가는 구애받지 않았다. 그리고 작가는 시와 산문 속에 등장시킨 실제 혹은 허구의 인물들에게도 똑같이 그런 힘을 부여해줬다. ‘기구한 인생’이나 ‘신세 한탄’ 같은 말로 형체를 뭉그러뜨려만 왔던 작고 약한 사람들의 삶의 경로를, 작가는 문학 속 에피소드를 넘어 ‘우리가 함께 돌아보아야 할 사회적 목소리’로 길어 올렸다. 작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집필 활동을 통해 가장 존엄하고 고귀한 삶과 글을 완성해냈다.

‘이것은 유고 시집이 아닙니다’

이순자 작가(왼쪽)는 2021년 4월23일 산문 ‘순분할매 바람났네’로 제16회 전국장애인문학제 대상을 수상했다. ⓒ고양장복(아름드리TV)-유튜브 갈무리

이문재 시인은 이순자 작가의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의 서문을 썼다. 제목은 ‘이것은 유고 시집이 아닙니다’이다. 이문재 시인은 서문에서 말했다. “시인(작가)은 지난해 여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유고 시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 발표된 시는 독자의 몫입니다. 발표된 좋은 시는 스스로, 오직 자기 힘으로 독자와 만납니다. 그런 시는 결과적으로 그 시를 쓴 시인도 다시 태어나게 할 겁니다.”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이순자 작가의 작품들은 이미 그 스스로가 생명력을 지닌 채, 작가의 생존 여부와 별도로 독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실버 취준생 분투기’ 전문이 실린 〈매일신문〉 웹페이지에는 현재(2022년 5월3일)까지 댓글 156개가 달렸다. “읽으면서 눈물도 나고 웃기도 했어요. 저희 엄마 생각도 나고 취업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나의 모습 같기도 하고(아이디 ‘hem’)” “딸이 기사를 보내줘서 읽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보이고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도 보이고, 고생하는 언니도 보여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뭐가 잘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살아내는 것이 잘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아이디 ‘Sunny Lee’)”….

이다혜 〈씨네21〉 기자는 지난해 11월 트위터를 통해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입소문 낸 독자 중 한 사람이다. 그 인연으로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의 추천사를 쓰게 되었다. 이 기자는 이순자 작가의 나머지 글을 다 읽은 뒤 ‘지금도 어디선가 분투하고 계실 또 다른 이순자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이순자 작가님의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참 좋았다. 나이 먹은 현자로서 과거를 되돌아보며 후세대를 가르치려 드는 입장이 아니라,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입장으로 쓴 글들이었다. 이런 분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글을 쓰게 될까 궁금했고 한 템포 늦게 발견한 만시지탄에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생전 이순자 작가님과 비슷한 환경에서 지금 살아가고 계신 다른 이순자 선생님들이 분명 어딘가 또 계실 텐데,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책임을 안았다.”

이순자 작가는 ‘실버 취준생 분투기’에 붙인 에필로그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기초수급자가 되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기초생활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 작가는 떠났지만 작가의 문학은 이제 시작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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