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카페 문 앞. 어린이와 반려동물의 출입을 금지한다. ⓒ시사IN 조남진

다시, 노키즈존(no kids zone)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주기적으로 거론되는 주제 중 하나다. 최근엔 아이와 카페를 찾았다가 노키즈존이라는 걸 뒤늦게 알고 곤란을 겪은 사례가 화제가 됐다. 지인이 이미 자리를 잡고 음료를 마시는 중이었고 뒤늦게 도착해 주문하려는 순간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한다. “입구, 간판, 메뉴판 어디에도 노키즈존이란 표시는 없었다”라는 글쓴이의 글에 각자가 겪은 비슷한 사례가 공유됐다. 제대로 명시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영유아 및 어린이의 입장을 금지하는 업소를 의미하는 노키즈존이 입길에 오른 것은 2015년 무렵이었다. 종업원과 부딪혀 화상을 입은 어린이에게 식당 측이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개념 없는 부모’, 특히 특정 성별을 향한 성토가 ‘맘충’이라는 호명과 결합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판단했지만 법적 효력은 없었다. 그사이 노키즈존이 확산되었고 어린이를 환영하는 (예스)키즈존도 생겼다. 매장의 일부 구역만 아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도 드물지 않다.

2017년부터 노키즈존과 키즈존 리스트를 지도로 공유하는 웹페이지(yesnokids.net)가 있다. 2017년 처음 만들 당시 제보를 통해 4주 만에 260개 지점을 구글 지도에 등록했다. 현재는 500여 개로 늘었다. 이 중 키즈존은 60여 개로 절대다수가 노키즈존이다. ‘아이들과의 외출에 헛걸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개 글이 달려 있다. 아이를 가진 부모뿐 아니라 노키즈존을 차별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이들도 지도의 리스트를 눈여겨본다. 지난 4월부터 노키즈존 지도를 만들어 공유하는 SNS 계정이 하나 더 생겼다(트위터 아이디 gosanzaa). 아직 숫자는 적지만 제보가 밀려들고 있다. 노키즈존 이외에도 반려동물 동반 공간, 친환경 공간 등을 지도로 제작할 계획이다. 각각 회사원, 사진 프리랜서로서 본업 외에 번거로운 가욋일을 자청해서 하는 두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노키즈존은 왜 차별인가.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린이날 100주년을 앞두고 두 명의 ‘지도 제작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실명 대신 아이디를 빌려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각각 지도 제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예스노:과거에 대한 반성이었다. 예전엔 나도 은연중에 ‘울거나 시끄러운’ 아이를 피하고 싶었고 노키즈존을 원한 적도 있다. 이후 그런 것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 없는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이 논쟁을 펼치기보다 노키즈존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다른 방법을 선택하고 싶었다. 궁리 끝에 노키즈존 지도를 만들게 되었다. 노키즈존이 얼마나 많은지 보고 문제로 인식하기를 바랐다. 모르고 갔다가 노키즈존이라는 불편함을 겪는 일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만들었다. 근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당장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산자:해외에 10년간 거주하며 여행 관련 콘텐츠 만드는 일을 했다. 직업 특성상 어떤 도시를 가더라도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곳이나 반대의 경우를 지도에 저장하는 습관이 있다. 실제로 여행자를 위한 종이 지도를 만들어본 경험도 있고 온라인 지도를 제작해보기도 했다. 노키즈존 정보를 지도로 정리하는 것도 그래서 더 쉽게 마음먹을 수 있었다. 큰 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고 이런 지도가 있다면 하나의 필터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물리적인 시간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가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고받는 경험도 줄이며 일종의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노키즈존 구글 지도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 더 익숙한 네이버 지도를 통해 만들기로 했다. 기존 지도의 제작자(예스노)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고산자(twitter. com/gosanzaa)는 노키즈존 리스트를 지도로 만들어 공유한다.

지도 만들 때 어떤 과정을 거치나?

고산자:트위터에서 제보를 받는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 하루에 한 번 메시지를 보며 지도에 등록한다. 네이버 지도에 업주가 등록한 정보를 확인하고 공식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 등의 채널에 들어가 공지를 확인한다. 공식적으로 노키즈존임을 표기해두었을 때 등록한다. 그리고 업소에서 작성한 문장을 복사해 정보란에 붙여둔다. 오타나 띄어쓰기도 수정하지 않는다. 제보는 있지만 공식 채널 어디에도 노키즈존 표기가 없는 경우에는 블로그 리뷰를 검색해 다수의 정보를 확인하고 등록한다. 이때는 제보를 받았고 리뷰를 통해 확인했다는 코멘트를 정보란에 붙여둔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도 확인이 안 되는 경우는 제보가 있어도 등록하지 않는다.

예스노:대부분의 경우 간접적으로 확인한다. 제보해준 정보를 교차검증하는 방법으로도 대부분 확인이 가능하다.

예스노키즈 (yesnokids.net)는 노키즈존 리스트를 지도로 만들어 공유한다.

최근에는 노키즈존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매장들이 있는데.

예스노:정말 떳떳한 행동이라면 그렇게 숨기고 싶을까? 묻고 싶다. 노키즈존으로 운영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미리 알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동이다.

고산자:지도를 만들면서 생각보다 많은 곳이 명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표기를 하지 않는 건 정말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고, ‘드러내고 알릴 만한 일은 아니라고’ 여겨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은 사소하지 않다. 드러내 알릴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지도를 만들면서 겪은 인상적인 경험이 있다면?

고산자:노키즈존을 선호하는 분들의 피드백이 있었다. 착잡하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분들이 노키즈 공간에 가고 싶을 때 이용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꼬는 말이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건 이 지도의 정보를 이용하는 방식은 이용자가 스스로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보 주는 분들이 빠짐없이 정중하고 예의를 갖춰 메시지를 준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배려는 배제의 반대편에 있는 말이기도 하다.

예스노:지도를 만들던 초창기,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는 디저트 가게가 그 정책을 철회한 일이 있었다. 온라인에서 여러 사람들을 통해 알려진 일이 결정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추측한다. 어느 계기에 의해서건,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던 사람들이 마음을 바꿀 수 있고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이벤트였다.

노키즈존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영업 방해라는 주장이 있다.

예스노:개인적으로 노키즈존에 대한 논쟁에서 나온 말들 중에 가장 형편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노키즈존을 실행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널리 알려지기는 싫지만, 노키즈존은 유지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억지 주장이다.

고산자:노키즈존을 불매하자는 목적으로 지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보 없이 찾아간 노키즈존에서 입장을 거절당하는 유쾌하지 않은 순간을 우리가 경험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데서 시작한 일이다. 설사 이것이 소비자 개개인의 자발적인 불매로 이어지더라도 그 책임을 고객에게 돌리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정 계층을 배제하지 않는 공간을 찾을 권리는 고객에게 있고, 그건 어떤 사람에게는 삶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안내견 입장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공간의 정보를 알고 찾아가지 않는 것, 비건이 관련 메뉴가 없는 곳의 정보를 공유하고 찾아가지 않는 것. 키오스크만 있어서 주문하기 어렵다는 정보를 공유하고 가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특정 계층을 배제해서 생기는 일이고 (정보 공유는) 그런 일에서 우리의 일상을 지키자는 노력이다. 아이들을 일상에서 배제하지 않는 사람들이 노키즈존 정보를 공유하고 그곳을 방문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일이다.

처음 지도가 제작된 5년 전에 비해 노키즈존이 상당히 늘었다. 그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스노:2022년에도 많은 사람들이 노키즈존이 부끄러운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많이 아쉽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인식 개선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노키즈존을 철회하는 곳도 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노키즈존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다. 아직 적은 비율이지만, 노키즈존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노키즈존을 ‘힙하다’고 인식하기보다 ‘부끄러운 반칙’이라 여기는 인식이 조금은 더 생긴 것 같다. 타협 방안으로 공간의 일부만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는 등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는 곳도 있다.

실제로 노키즈존 매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나?

예스노:종종 있다. 대부분 입장할 때까지는 알지 못한다. 심한 경우 주문하고 매장을 이용할 때까지도 알지 못하다가, 별관은 노키즈존이라고 알게 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복잡하다. 혹시나 아이와 방문했다면 나도 더 당황했을 것이고, 아이가 그 이유를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을 것 같다.

고산자:노키즈존은 방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노키즈존 운영이 차별이라고 생각하나?

예스노:그렇다. 더 정확하게는 명확하고 불가피한 이유 없이 업주의 관리 편의만을 위해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것은 차별이라 생각한다. 이미 청소년에게 유해한 시설은 별도로 관리되고 있다. 단순히 가게에서 뜨거운 음식을 나를 때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라면 따뜻한 커피를 판매하는 모든 카페나 찌개를 파는 음식점은 노키즈존이 되어야 맞지 않을까?

고산자:어떤 식으로든 특정 집단이 배제되는 것은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머물던 스페인에서는 흔히들 ‘핫하다’고 하는 카페나 식당에 가도 할머니, 할아버지 고객이 많았다. 거리에 노인이 많아 방문한 여행객들이 이 나라는 평균수명이 기냐고 질문할 정도였다. 그곳의 어른들이 더 건강해서가 아니라 어떤 공간에서도 나이에 따른 차별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수많은 나라의 여행자가 모이는 도시였지만 유독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만 ‘노키즈’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위험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일반 투어 프로그램과 같았으니까. 노키즈존은 어른의 편의를 위해 어린이를 배제하는 일이며 그것은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안전을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은데 위험한 요소가 있다면 제거하고, 어쩔 수 없다면 잘 운영하고 관리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상업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추구해야 할 일 아닐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을 반기지 않는 ‘노키즈존’ 상점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연합뉴스

노키즈존 이후에 등장한 노시니어존, 노중년존 같은 명칭을 지켜보는 심경이 남다를 것 같다.

고산자:의식했든 아니든 우리가 가장 노골적으로 배제해온 것이 어린이와 노인이다. 한 지역 복지관에서 어르신을 상대로 키오스크 사용법 모형을 만들어 강의하고 현장에 체험학습 가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촬영을 의뢰받고 참여한 적이 있다. 열심히 강의를 듣고 주문에 성공한 뒤 행복해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니 즐거웠지만, 편의를 위해 소외되는 그룹에 대해 씁쓸함을 느꼈다.

나 역시 작은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휠체어나 유모차 출입을 위한 경사로도 설치했는데 어느 날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이동이 힘든 고객이 방문했다. 내 기준으로 공간의 동선을 배치했지만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엔 좁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너무 부끄러웠고 그날 바로 구조를 바꿔 운영을 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의도하지 않거나 악의 없이 ‘대다수 고객’의 편의를 위해 운영 방침을 정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식의 변화가 이어져 모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예스노:사회현상으로 보기에는 매우 초기 단계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차별의 상징인 노키즈존에 이어 또 다른 차별의 개념이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쉽다. 그런 현상을 개인의 의지만으로 변화시키기는 어렵고 더 확산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사람들이 노키즈존 지도를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나?

고산자: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상처받는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데서 시작한 일이다.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에 갔는데 한글 메뉴판이 없었던 경험이 있다. 별 어려움 없이 음료를 주문했는데 기다리는 동안 그 사실을 깨달았고 엄마가 오면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맛은 훌륭했지만 다시 갈 수 없었다. 엄마에게 불편한 공간이니까. 어린이나 어린이를 동반한 보호자가 그런 불편함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지도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고산자: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이전과 달라진 것들을 체감할 때마다 이만큼 나아진 세상에 ‘무임승차’를 하는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 모른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닐 터이다. 하지만 문제를 마주했을 때 ‘나아지겠지’ 하는 것과 ‘나아져야지’ 마음먹는 것은 다르다.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행동하면 좋겠다.

예스노:노키즈존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계속하려 한다. 제보해주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떻게든 개선하려고 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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