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4일 러시아가 군사작전을 개시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인근 군 공항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AFP PHOTO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월24일 오전(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의 위협을 용납할 수 없다’며 돈바스 지역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전격 선언했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역이다. 이 나라의 영토이지만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세력들이 득세하고 있다. 최근엔 분리주의 세력들이 돈바스 일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된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다. 푸틴이 2월24일 선언에서 “우크라이나(전역)를 점령할 계획은 없으며” “돈바스 지역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말한 것은 이 분리주의 세력을 우크라이나 정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2월24일 현재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동부인 돈바스는 물론 수도 키예프와 남부의 주요 도시들도 러시아의 로켓 공격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돈바스뿐 아니라 사실상 ‘우크라이나 침공’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이미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됐다”라고 선언했다. 푸틴의 작전 개시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단호히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푸틴은 “외국이 간섭할 경우 러시아는 즉각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해 결코 물러날 뜻이 없음을 천명했다.

러시아의 2월24일 침공은 예견된 바였다. 사흘 전인 2월21일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국영 TV에서 비장한 어조로 연설하면서 선언한 조치들 때문이다.

위에 짧게 언급했듯이, 최근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돈바스 지역의 두 곳에서 각각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을 선포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한 뒤 러시아연방으로 편입하겠다는 의미다. 푸틴은 2월21일의 격정에 넘친 연설에서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러시아 군을 두 공화국(?)에 ‘평화유지군’이란 명목으로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 공화국들과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만약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돈바스 분리주의 세력 간의 교전이 격화되는 경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점령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날 연설에서 푸틴의 발언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주권국가가 아닌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선 미국의 식민지”라고 격렬히 비난하면서 이 나라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단순한 이웃 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정신적 공간의 필수 불가결한 일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 몸’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러시아 군을 돈바스 내 친러 공화국들로 파견하겠다는 푸틴의 이날 결정에 대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우크라이나 침략의 전주곡’이라며 즉각 1차 제재를 단행했다. 미국은 러시아 국책 개발은행인 VEB와 방위산업 지원용 특수은행인 PSB 등 금융기관 2곳을 제재했다. 러시아 국채가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푸틴과 가까운 러시아 지도층과 가족들도 제재 대상에 올렸다. EU와 미국의 우방인 오스트레일리아, 일본도 제재에 동참했다. 특히 유럽연합의 핵심국인 독일 정부는 ‘노르트스트림 2(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1230㎞ 길이의 천연가스 송유관)’ 사업을 중단시켰다. 서방국가들은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공할 경우 더 강도 높은 전면적 경제제재를 단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푸틴은 “우리가 현재 협박당하고, 제재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권과 국익, 가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미국과 EU에 맞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예비군 소집령에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하면서 러시아와 전면전 대비 태세로 돌입했다. 유럽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도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2월21일부터 23일까지의 상황이다. 푸틴의 24일 선언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사실상 전면적 공격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는 한 단계 더 위험한 국면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푸틴의 궁극적 목표는 ‘옛 소련의 영예 회복’과 ‘나토 중심의 유럽 안보구조 변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우크라이나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 러시아의 일부다. 푸틴은 지난해 7월 공표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하나의 민족이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는 모든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와 전쟁의 본질적 원인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 가능성에 대한 러시아의 근본적인 안보 불안감 때문이다. 러시아가 주축이었던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1991년 해체되었다. 소속 공화국들은 독립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옛 소련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이런 나라들 중 상당수는 나토에 가입했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동진(東進)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기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푸틴은 미국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를 국제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나토에 가입하고 말고는 해당국의 자유’라는 미국의 공식 입장 때문에 번번이 좌절감을 겪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희극 배우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서방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이 나라 개정 헌법에 ‘나토 가입을 추구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게다가 지난 몇 년 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 국민의 대다수가 러시아에 부속되기보다는 나토 가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들이 푸틴의 위기감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2월2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영 TV를 통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AP Photo

‘나토의 동진 금지’ 약속했었지만…

서방국가 일각에선 사태의 근본 해결을 위해 미국과 EU가 푸틴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1990년 독일 통일에 앞서 미국과 서유럽은 소련에 ‘나토의 동진 금지’를 약속한 바 있다. 1997년에도 나토는 러시아에 ‘동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약속들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2월24일 감행된 푸틴의 특별 군사작전으로 상황은 어떻게 변화될까? 미국과 EU는 푸틴의 조치를 침공으로 간주한 만큼 강력한 추가 제재를 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뒤 미국과 EU의 경제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제재가 러시아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힌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만약 러시아를 겨냥한 ‘전면적 경제제재’가 이루어진다면, 무엇보다 러시아 금융기관들이 전 세계 1만100여 금융기관들과 연계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증시와 연계된 러시아 주식시장 붕괴, 채권 거래 중단, 루블화 가치 폭락 등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파탄에 빠질 수 있다. 생필품 품귀 및 가격인상은 물론 연금 및 저축액의 가치가 줄어들어 러시아 국민들은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2024년 재선을 노리는 푸틴에게도 정치적 치명상이 될 수 있다.

최근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밀월관계를 과시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러시아에 원조의 손길을 내밀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중국은 향후 30년간 러시아산 천연가스 구매를 계약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의 전면 제재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에까지 미칠 것이다. 중국 역시 러시아 원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2월22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를 겨냥한 첫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EPA

서방 측의 전면 제재 카드에 대항해서 러시아도 보복에 나설 것이다. 러시아는 EU에 천연가스와 석탄, 원유 등을 대거 공급하는 주요 수출국이다. EU의 연간 액화천연가스 수입 가운데 약 40%가 러시아산이다. 설상가상 전 세계 천연가스 공급의 3분의 2는 일찌감치 계약된 상태여서 EU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들여오지 못하면 대체 수입원을 찾기도 힘들어 에너지 가격의 급등이 불가피하다. 미국 역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이는 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푸틴은 최근 미국에 제시한 문서에서 우크라이나의 항구적인 나토 가입 금지, 나토의 추가 확장 중단, 러시아 국경지역에 대한 공격무기 시스템 배치 중단 및 유럽 내 병력 배치를 나토가 동진하기 전인 1997년 상태로 복귀시킬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건 가운데 미국이 쉽게 받아들일 만한 것은 없다. 현재의 유럽 안보 지형을 30년 전으로 되돌리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과 EU는 전면 제재 카드를 일단 유보한 채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며 푸틴이 우크라이나 공격이라는 레드라인을 넘지 않길 잔뜩 기대해왔다. 그러나 푸틴의 2월24일 특별 군사작전은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어버렸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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