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번지는 금연 바이러스
  • 정희상 기자
  • 호수 93
  • 승인 2009.06.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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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수
종로구 보건소 금연클리닉을 찾아 폐활량과 일산화탄소 수치를 측정했다.
반복적으로 사람을 빨아들이고 토해내는 양쪽의 에스컬레이터에 견줘 중앙에 설치된 60개의 긴 계단은 하릴없이 무료하다. 매일 출퇴근과 취재를오가는 시간에 그 계단의 무료함을 깨는 이는 거의 나 혼자다. 양옆 에스컬레이터를 빽빽이 채운 인파가 보내는 뜨악한 시선 때문에라도 늘 잽싸게 계단을 오르내린다. 끊고 살기에 도전한 이후 내가 서대문역과 올림픽공원역을 통과하는 일과다.

게다가 집과 사무실 계단 수가 330여 개. 16층 우리 집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3주일 내내 사람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각 층 계단마다 자전거들이 이리저리 버티고 있어서 통행에 지장을 받는다. 고층 아파트에서 계단이라는 것은 비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입주자의 허드레 물건이나 쌓아놓는 먼지 낀 수납 공간으로 전락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다만 복도식이라 계단의 시야가 외부로 트여 있어서 층마다 달라지는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일은 엘리베이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다.

엘리베이터를 끊은 지 3주일쯤 지나니 하체 근육이 단련되는지 허벅지와 종아리가 제법 딴딴해졌다. 하지만 무릎관절에는 이상 신호가 오는 듯하다. 계단을 오를 때는 평지보다 자기 체중의 2~4배의 하중이 무릎에 전달된다고 한다. 처음 내 몸무게가 70kg이었으니 한 계단 오를 때마다 250kg안팎의 압력이다. 내려갈 때는 오를 때보다 하중이 7~10배 더 나간다. 중력에다가 70kg의 몸무게까지 고스란히 무릎이 감당해야 한다. 무릎 손상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금연의 경제 효과’ 실험하는 동료

정형외과를 찾았더니 담당 의사는 극구 계단 내려가기를 만류한다. “40대 이후는 관절의 퇴행이 시작되므로 연골이 약해져서 무릎 관절이 쉽게 파손됩니다. 3~4층 이상 되는 계단은 억지로 걸어서 내려가지 마세요.” 끊고 살기 4주째부터는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금연까지 겸하는 바람에 엘리베이터 끊기만 했을 때의 ‘감량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는 탓이다. 대체로 한 달 가까이 계단만 이용하면 2~3kg의 체중 감량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담배를 끊으면서 군것질과 음식 섭취가 늘어나 2~3kg 체중 증가 요인이 겹쳤다. 대다수 금연자는 담배를 끊고나서 하루이틀 지나면 입과 혀를 두껍게 감싼 독한 화학물질이 사라지면서 미각이 살아난다. 모든 음식이 제맛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엘리베이터 끊기와 금연을 동시에 시작한 3주 후 잰 체중은 처음 70kg에서 변화가 없다.

금연 3주일이 지나니 불면증과 변비 증상을 제외한 다른 니코틴 금단현상은 차츰 엷어졌다. 하지만 문득문득 솟아나는 ‘한 개비의 유혹’만은 아직도 여전하다.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회의시간이나 기사 마감시간, 그리고 일상에서 큰 스트레스가 스칠 때면 특히 그렇다. 아, 그래서 누군가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는 것’이라고 했던가.

내가 금연 선언을 한 뒤 다행히 <시사IN> 편집국 내에 동참자가 하나 둘 생겨났다. 경제팀 이종태 팀장과 사진팀 이진수 후배다. 두 사람 다 내로라하는 사내 골초인데 뜻밖에 과단성을 발휘했다. 특히 사진팀 이진수씨는 매일 담뱃값 2500원을 다른 통장에 자동이체 하는 방식으로 ‘금연의 경제적 효과’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나는 금연 동지가 생긴 것이 너무 기쁘고 대견했다. 그래서 세 사람이 수시로 만나 ‘끝까지 배신하지 말자’고 서로 격려하며 금연 보조식품 따위를 형제처럼 나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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