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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는 대외 활동과는 거리를 두었다. 경쟁 후보의 배우자들과 달리 지지자들과 만나거나 공개 활동은 물론 언론 접촉도 최대한 피했다. 공개 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2월26일 허위 이력 의혹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이었다.

김건희씨의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최근 공개됐다.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가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를 통해 공개한 녹취 파일에서다. 김씨는 이 채널 소속 이명수 기자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총 53차례에 걸쳐 7시간45분간 이뤄진 통화에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정치인, 선거캠프에 대한 의견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악질적 정치 공세”로 규정하고 〈스트레이트〉 제작진 등을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의소리’ 측에 대해서도 “불법 녹음을 했다”라는 취지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공개된 김씨의 발언은 사실과 달라 논란이 되거나 또 다른 의혹의 불씨가 되고 있다. 〈시사IN〉은 ‘서울의소리’로부터 일부 녹취 파일을 입수했다. 김씨의 주요 발언과 실제 사실관계를 비교해, 녹취록만 떼어보면 알 수 없는 발언의 배경과 맥락을 짚었다.

“저 진짜 자신 있어요. 우리 엄마가 진짜 억울하거든요. 저희 엄마 진짜 불쌍해요. 사위가 (검찰)총장이라 무슨 말도 못하고. 고소도 못하고. 이해충돌 때문에 고소도 못하고 그러고 있었거든요. 아무 말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게 해서. 다 우리가 다 뒤집어쓴 거죠.”(2021년 7월12일)

김건희씨 모친이자 윤석열 후보의 장모 최은순씨는 부동산 투자 및 각종 사업 과정에서 동업자들과 갈등을 빚고 소송전을 벌여왔다. 김씨는 모친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결백을 자신했다. 그러나 전화 통화 열흘 전인 2021년 7월2일, 최은순씨는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요양급여 불법 수급 혐의가 인정돼 법정구속됐다. 같은 해 12월23일에는 350억여 원대 통장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거 우리 다 패키지여행으로 놀러간 거야. 오히려 더 좋지. 사람들하고 다 찍은 건데. 사모님도 다 알아. 원래 (양 아무개 전 검사) 사모님이 가려고 했다가 미국 일정 때문에 못 간 거야. 괜찮아 상관없어. 오히려 (양 전 검사와 함께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 내놓으면 더 좋아. 무슨 밀월여행 간 줄 알아. 그거 패키지여행으로 다 같이 간 거야.”(2021년 12월11일)

요양병원을 운영하며 요양급여를 불법 수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후보의 장모 최은순씨가 2021년 10월2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3차 공판에 출석한 후 법정을 나오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김씨가 2004년 양 전 검사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의혹은 모친 최은순씨와 17년간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정대택씨가 제기했다. 김씨 일가가 유부남 현직 검사와의 가까운 관계를 자신과의 소송전에서 활용했다는 게 정씨 주장의 골자다. 정씨는 2011년 재판 과정에서 김씨와 모친 최씨, 양 검사가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실, 동거설 등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당시 재판부는 정씨 주장 검증을 위해 세 사람의 출입국 기록을 확인했다. 최씨는 당시 유럽을 방문한 기록이 있었지만 김씨와 양 전 검사는 유럽 방문 기록을 포함한 출입국 기록이 없어서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번 전화 통화 과정에서 김씨가 당시 양 전 검사와 여행을 갔던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다만 김씨는 양 전 검사와의 동거설에 대해선 “어떤 엄마가 자기 딸을 팔겠나, 유부남에게. 내가 어디 왔다 갔다 굴러다니는 애도 아니고”라고 분개하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미투도 문재인 정권에서 먼저 그걸 터뜨리면서 잡자 했거든. 왜 잡자고 하냐고, 미투도. 사람이 살아가는 게 너무 삭막해. 난 안희정이 불쌍하더만. 솔직히 난 안희정 편이었거든? 아니 둘이 좋아서 한 걸 갖다가 완전히 무슨 얘가 무슨 강간한 것도 아니고… 나랑 우리 아저씨(윤석열 후보)는 되게 안희정 편이야. 지금도.”(2021년 11월15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네 차례 성폭행하고 여섯 차례에 걸쳐 업무상 위력 등으로 추행한 혐의로 2018년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2019년 9월9일 2심 선고를 확정했다. 안 전 지사에 대한 김씨의 의견은 전형적인 ‘가해자 시선’에서 나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씨 녹취 파일이 공개된 다음 날인 1월17일, 김지은씨는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입장문을 냈다. 김씨는 “김건희씨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 미투 운동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며 법의 판단도, 피해자의 분투도 부정하는 인식과 주장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건희씨는 국민의힘이 낸 입장문을 통해 “성을 착취한 일부 여권 진보 인사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매우 부적절한 말을 하게 됐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게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우리 캠프가 엉망이에요. 지금 그래서 다시 재정비를 해. 엉망인 거 알잖아. 얘네들이 총장은 혼자만 다니고, 모든 걸 알아서 딱딱 해줘야 하거든? 우린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잖아. 그러면 머리를 쓸 줄 모른다고. 우리가 아직 당에 입당한 것도 아니잖아요. 국민의힘이 좋은 당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게 너무 아마추어인 거야. 총장이란 이 상품은 좋은데, 너무 안 따라주는 거지.”(2021년 7월21일)

“예를 들어 우리 오빠라든가, 몇 명 있어요. 여기서 지시하면 다 캠프를 조직하니까. 헤드들한테 설명해줘야지 밑에 애들한테 해봤자 의미가 없잖아요. 밑에 애들은 나중에 해주시고, 시스템화 조직화 이런 거 강의를 좀 해줘.”(2021년 7월21일)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부터 지금까지 김씨가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맡은 공식 직함은 없다. 그러나 김건희씨가 윤 후보 선거 활동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관측은 정치권 안팎에서 여러 차례 나왔다.
전화 통화가 이뤄진 지난해 7월21일은 윤 후보가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열흘 전이다. 당시 윤 후보 측은 소수로 움직이던 캠프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측에선 캠프가 언급된 전화 통화 내용에 대해 ‘당시 경선 후보의 배우자로서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통화 내용에 따르면 김씨는 물론이고 그의 오빠도 선거캠프 운영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다. 김건희씨는 윤 후보 입당 이후에도 “캠프에서 조직으로 좀 뛰어봐”(9월3일 통화), “몰래 우리 캠프에 선거전략본부장으로 와. 나한테 가르쳐줘. 우리 애들은 잘 못하잖아”(9월19일 통화) 등 지속적으로 캠프 내 영향력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보수 진영의 아킬레스건인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연결 짓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나는 나이트클럽도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야. 내가 되게 영적인 사람이라 그런 시간에 차라리 책 읽고 도사들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삶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지.”(2021년 7월21일)

전화 통화에서 김씨의 이 발언은 과거 예명을 쓰고 유흥업소를 출입했다는 이른바 ‘쥴리’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러나 녹취 파일 공개 이후 쥴리 의혹에 대한 해명 대신 다른 지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무속’ 논란이다.

1월1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 사무실에서 무속인 전 아무개씨(왼쪽)가 윤석열 후보를 관계자들에게 인사시키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무속인’의 그림자는 경선 과정부터 윤석열 후보를 따라다니고 있다. 2021년 10월 국민의힘 경선 TV 토론 당시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온 데 이어 ‘천공스님’과의 인연이 논란이 되었다. 당내 경쟁자들조차 무속인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정치권에선 윤 후보를 둘러싼 ‘무속’ 논란을 김씨와 연관 짓는다. 윤 후보에게 천공스님을 소개한 인물이 김건희씨였다. 김씨가 전화 통화에서 ‘영적인 사람’ ‘도사’ 등을 언급한 사실이 드러나며 무속 논란 불씨에 또다시 불이 붙었다. 최순실씨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당시 ‘오방낭’을 등장시켜 무속신앙을 국가 주요 행사에 동원했던 일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나온다.

1월17일엔 ‘건진법사’로 알려진 무속인 전 아무개씨가 윤 후보의 일정, 메시지 관리, 인사 등의 결정 과정 전반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국민의힘은 김건희씨 녹취 파일에 이어 또 다른 무속 논란이 확산되자, 전씨가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는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네트워크본부는 윤 후보가 정치 입문 무렵부터 함께한 조직이다. 해산 결정은 윤 후보가 직접 내렸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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