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0일 경남 거창군에 있는 감악산 풍력단지의 모습.ⓒ연합뉴스

지난 기사(〈시사IN〉 제747호 ‘2022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의 마지막 질문으로부터 글을 시작해보자. 우리는 기후위기 이슈를 중시하는 유권자 집단의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두 가지 문항을 제시했다. 첫째, ‘나는 대선에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하겠다(기후위기 후보 지지).’ 둘째, ‘나에게는 이번 대선에서 다른 어떤 공약보다 기후위기 공약이 중요하다(제1의 공약).’ 응답자의 각각 38.8%, 36.8%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이 넘는다.

이 질문은 어쩌면 무리한 것이었다. 여야, 진보 대 보수로 확연히 갈린 한국 정치 지형에서 너무 앞서가는 문항이었을 수도 있다. 기후위기 공약을 자신의 ‘정치 성향’까지 뛰어넘는 ‘제1의 공약’으로 여길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30%는커녕 10%를 넘길지도 알 수 없었다. 웹조사 특성상 많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응답자가 기후위기를 실제보다 중시하는 편향적 답변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결과는 놀랍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숫자이기도 하다.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기후위기 후보 지지’층에서 성별·세대별로 뚜렷한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소득이나 직업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농/임/어업 종사자들이 각별히 높은 응답률을 보였으나, 이들은 표본이 너무 적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라고 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기후위기 관심도가 10년 전에 비해 ‘매우 높아졌다’라고 답변한 응답자 가운데서 절반(50%)이 기후위기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또한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진보-보수 성향별로 보면 어떨까. 주로 진보 진영에서 이슈를 제기해온 만큼 기후위기 대응은 ‘진보 의제’라는 선입견이 있다. 진보 성향의 응답자들이 보수 성향 측보다 기후위기 후보를 훨씬 더 많이 지지할 것으로 짐작했다. 조사 결과는 달랐다. 기후위기 후보 지지층(38.8%)을 정치 성향별로 나눠보니, 중도(42.3%), 진보(41.2%), 보수(34.5%) 순으로 나타났다. 진보와 보수 간의 기후위기 후보 지지 격차가 예측에 비해 크지 않았다. ‘제1의 공약’층은 더했다. 진보(38.9%), 중도(38.3%), 보수(36.2%)의 응답이 거의 비슷했다(〈그림 1〉 참조).

정당 지지층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자 중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44.7%)이 국민의힘 지지층(37.4%)보다 많긴 했지만 그 차이가 짐작만큼 크진 않다. 심상정 후보가 ‘기후위기 정부’를 천명한 정의당 지지층에서 기후위기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45.2%였다. 그런데 ‘제1의 공약’층에서는 정의당 지지층(36.0%)이 더불어민주당(44.4%)은 물론 국민의힘(37.6%)보다도 낮게 나타났다. 기후위기 정치에 민감한 유권자층을 진보와 보수의 잣대로 나누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제 전체 응답자로 확대해서 살펴보자. 응답자들은 어떤 정당과 정치인이 기후위기에 잘 대처할 것이라고 생각할까. 우리는 응답자들에게 ‘기후위기를 잘 해결할 것으로 보는 정당과 정치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결과는 심각했다. 기후위기 정책을 잘 추진하는 정당에 대해 ‘없다/모름’이 90%에 달했다. ‘있다’는 10%였다.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정치인에 대해서도 ‘없다/모름’이 91.2%였다. ‘있다’는 8.8%에 불과했다. 기후위기에 관한 한 현실 정치가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그림 2〉 〈그림 3〉 참조).

기후위기를 잘 해결할 정당이 있다고 응답한 10%에게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다시 물었다. 더불어민주당(52.3%), 녹색당(15.8%), 국민의힘(14.2%), 정의당(9.8%) 순이었다. 기존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잘 잡히지 않던 녹색당이 국민의힘을 앞선 결과가 눈에 띄었다. 현실 정치에서의 영향력과 별개로 ‘녹색당’ 이름 세 글자에 반응하는 이들이 소수라도 있다는 이야기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질문을 바꿔봤다. 기후위기 공약을 가장 잘 준비한 후보가 누구인지 물었다. 역시 ‘없다/모름’이 60.9%로 가장 많았지만 이번에는 응답률이 올라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16.4%),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10.9%), 심상정 정의당 후보(5.1%),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4.7%),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1.1%) 순이었다. 그러나 기존 여론조사 흐름과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기후위기를 자신에게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받아들이는 유권자는 늘고 있는데, 정작 그들이 찍고 싶은 후보는 없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각 당 대선후보들이 역대 다른 선거들에 비해 활발하게 기후위기 공약을 내놓고 있다.

어느 후보 공약인지 숨기고 ‘지지’ 물었더니

이재명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첫 일성으로 ‘기후위기에 따른 에너지 대전환’을 말했다. 윤석열 후보는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파리협정’ 정신을 본받겠다고 했다. 심상정 후보의 슬로건은 ‘첫 번째 기후 대통령’이다. 안철수 후보는 ‘기후위기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지당하신 말씀’이다.

후보들 간의 차별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원자력발전(원전), 재생에너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등에서 후보마다 확연히 갈린다. 크게 보면 심상정 후보가 가장 진보적인 공약을 제시한 가운데 이재명 후보가 발을 맞추고, 윤석열·안철수 후보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구도다(공약 비교 〈그림 7〉 참조).

원전이 대표적이다. 저마다 입장이 다르다. 심상정 후보가 2040년까지 완전한 탈원전 국가를 선언한다는 공약을 내놓았고, 이재명 후보는 탈원전이 아닌 ‘감(減)원전’을 말하고 있다. 이미 가동하고 있거나 건설 중인 원전은 계속 진행해서 가동연한까지 사용하되 신규 원전은 짓지 않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탈원전 정책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안철수 후보 역시 탈원전에 회의적 견해를 내놓은 가운데 ‘소형모듈 원자로(SMR) 집중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SMR의 경우 안전성과 경제성 등에서 기존 대형 원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논란이 무성한 이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마찬가지다. 심상정 후보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50% 감축하겠다고 밝혔고, 애초 40% 감축 공약을 내놓았던 이재명 후보도 50%로 상향 조정했다. 윤석열·안철수 후보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오히려 내리거나 재조정한다는 입장이다.

〈시사IN〉 여론조사 결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각 후보의 기후위기 대표 공약을 제시하고 지지 여부를 물었다. 정치적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어느 후보의 공약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 결과 심상정 후보의 공약에 대한 지지가 69.2%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윤석열(67.8%), 이재명(62.3%), 안철수(59.7%) 순이었다(14쪽 〈그림 4〉 참조).

우리가 제시한 심 후보의 공약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 50% 감축’ ‘재생에너지 비율 50% 수준으로 확대’ 등이었다. 네 후보 중 가장 진보적인 공약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심상정 후보의 공약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진보(88.2%)와 보수(61.5%)로 확연히 갈렸다. 약 27%포인트 차이가 났다.

지난해 5월6일 문재인 대통령이 ‘울산 부유식 해상풍력 전략 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탈탄소 시대에 걸맞은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이재명 후보의 공약에 대한 지지도에서도 20%포인트 가까운 진보-보수 격차가 나타났다. 앞서 ‘기후위기 후보 지지’층이나 ‘제1의 공약’층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진보-보수 간 격차가 이 응답에서 두드러진 것이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태양광·풍력 발전이 가능한 전국 각지에서 주민참여가 가능한 작은 규모로 대규모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해서 도시로 판매하는 전력망을 구축하겠다는 아이디어다. 이 후보는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참여 주민들에게 연금 형태로 배분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윤석열·안철수 두 후보의 공약에 대한 지지도에서는 진보-보수 간 차이가 없었다. 윤석열 후보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원전과 재생에너지 믹스 전략’에 대해서는 진보 74.6%, 보수 72.6%였다. ‘안전한 소형모듈 원자료(SMR) 개발’을 내세운 안철수 후보의 공약도 진보 63.4%. 보수 63.1%로 거의 비슷했다. 이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사IN〉은 응답자에게 어느 후보의 공약인지 밝히지 않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우선 기후위기를 ‘제1강령’으로 내세운 정의당은 현실 정치의 벽에 가려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기후위기 공약을 잘 알고 있다. 진보 지지층의 경우 정확하게 ‘진보적인 기후위기 공약’을 선택했다. 앞으로 사안별로 구체적인 논쟁이 펼쳐질 경우 기후위기가 이념적으로 격돌하는 의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위기 공약은 ‘진보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다고 단정할 수 없다. 유럽 같은 기후위기 대응 선진국 수준을 따라가야 한다는 요구가 기후위기 운동 진영에서 빗발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매우 비대칭적이다. 이를테면 녹색당이나 기후위기 활동가들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7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업계에서는 40%도 버겁다고 아우성이다. 원전 역시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는 한동안 반대 여론이 높았지만 최근 대다수 여론조사에서는 ‘원전 계속 가동’이 ‘탈원전’보다 우세하게 나타날 정도로 여론이 크게 출렁였다.

정치권에서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는 있다. 〈시사IN〉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원전 계속 가동에 동의한다’라는 응답(64.8%)만큼이나 ‘원전보다 재생에너지를 확충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라는 응답(68.5%)이 높았다. ‘탈원전이냐, 계속 가동이냐’ 이분법으로 논의를 이끌지 말고, 재생에너지 도입을 현실화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당장 재생에너지 도입으로 전기료가 오를 것인지, 오른다면 얼마나 오를 것인지조차 정치권과 유관기관에서 명확한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시사IN〉 제747호 ‘2050년 탄소중립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 기사 참조). 지금 우리 사회 시민들에게 각 후보의 기후위기 공약은 어렴풋이 보이는 무지개나 다름없다.

그래서 물었다.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생각을 살펴봤다. 오는 5월 출범하는 차기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어떤 것들을 ‘법제화’해야 하는지 물었다. ‘기업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가 81.9%로 가장 높았다. 동시에 ‘ESG 경영(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환경 등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추진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라는 응답(80.7%)도 높았다.

‘기후위기 이슈 중시’ 유권자 집단이 있다

‘플라스틱 용기와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자’(79.0%)라는 의견도 높았다. 지금도 일회용품에 대한 여러 규제 장치가 작동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강력한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재명·심상정 후보가 내세운 ‘탄소세 신설’에도 64.0%가 동의했다. 탄소세로 걷은 재원을 국민에게 배분하겠다는 탄소배당금에 대해서는 57.8%가 동의했다(〈그림 5〉 참조).

동의 여부와 별개로 기후위기 주요 정책에 대한 ‘현실성’도 물었다. 그러자 법제화 질문 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온도차가 나타났다. 탄소세에 대해서는 56.4%가 현실성 있다고 답했지만, 탄소배당금에 대해서는 41.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시혜성으로 여겨질 수 있는 정책(탄소배당금)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의식해 답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 이제 마무리할 때다. 우리는 이번 조사의 마지막 질문으로 ‘기후위기 관련 공약을 지금보다 더 강조하는 후보가 나온다면 그 후보를 지지하거나, 지지 후보를 바꿀 의향이 있나?’라고 물었다. ‘지지하거나 바꿀 의향이 있다’라는 응답이 30.8%, ‘없다’가 34.9%, ‘모름’이 34.3%였다(〈그림 6〉 참조).

맨 앞에서 언급한 ‘기후위기 후보 지지’ ‘제1의 공약’ 질문 때보다는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30% 넘는 수치가 나타났다. 더욱이 유권자에게 지지 후보를 ‘교체’할 수 있느냐는 선택지까지 던졌음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결코 낮지 않다. 아니, 매우 높다. 그러므로 ‘2022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 사회에는 기후위기 이슈를 매우 중시하는 유권자 집단이 확실히 존재한다.

남겨두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들 유권자 집단이 한국 사회에서 최초의 ‘기후정치 세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기후위기 연구자이자, 과거 녹색당 정치인이었던 한재각 기후정의 활동가는 〈시사IN〉 조사 결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환경(기후) 투표 집단이 존재할 가능성이 처음으로 포착되었다. 그러나 잠재적인 환경 투표 집단이 그 성향을 드러내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기 위해 응결핵이 필요하듯, 그들이 자신들의 투표를 의미 있는 일로 여기게끔 할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에,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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