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하사의 아버지(위)는 8개월 동안 딸의 사건에 매달려야 했다. 군에 거듭 자료와 면담을 요청해 사건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시사IN 신선영

지난해 5월11일 공군 제8전투비행단(8비) 소속 ㄱ 하사(27·여)가 부대 밖 자택에서 사망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ㄱ 하사의 죽음을 가장 먼저 목격한 사람은 부대 상관 이 아무개 준위(55·남)였다. 같은 날 오전 7시57분, 이 준위는 평소 7시10분에서 20분쯤 출근하던 ㄱ 하사가 연락이 닿지 않자 근무지에서 ㄱ 하사의 집으로 출발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8비 출근 시간은 오전 8시다. 이 준위는 지휘계통에 보고도 하지 않고 직접 후임 여군의 숙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8시9분, 집 앞에 도착한 이 준위는 문을 열기 위해 몇 차례 시도했다. 이후 그는 주임원사인 박 아무개 원사(46·남)를 불렀다. 집 안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데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찰이나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오전 8시45분, 박 원사가 도착하자 이 준위는 복도 창문 방범창을 뜯고 집 안에 들어가 숨진 ㄱ 하사를 발견했다. ㄱ 하사에게 23차례나 전화를 건 뒤였다.

ㄱ 하사의 죽음 한 달 후인 6월10일, 공군은 ㄱ 하사 변사 사건 수사를 마치며 ‘스트레스성 자살’로 결론지었다. “변사자는 업무 과다, 코로나19로 인해 민간보다 더 통제되는 군대에서의 제한된 삶, 보직 변경의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스스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ㄱ 하사는 정말 스트레스 때문에 숨졌을까? 〈시사IN〉이 입수한 8비 군사경찰의 사건 수사기록 3000여 쪽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ㄱ 하사가 숨진 지 열흘 후인 지난해 5월21일, 군사경찰 수사에서 이 준위는 ㄱ 하사를 강제추행했다고 진술했다. ㄱ 하사의 집 방범창까지 뜯고 들어간 이 준위를 수상하게 여긴 군사경찰이 추궁한 결과였다. 이날은 공군 제20전투비행단(20비) 이예람 중사가 상관의 성추행과 2차 가해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었다. 3000쪽의 수사기록과 공판 취재, 유족 인터뷰 등으로 ‘ㄱ 하사 변사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 기록들은 군내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방관하게 만드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사건이 단순 변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준위는 휴무일이나 일과 후에도 자주 ㄱ 하사에게 전화했다.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카카오톡이나 문자 메시지도 수시로 보냈다. ‘친밀한’ 연락의 방향은 일방적이었다. 이 준위의 기억에도 ㄱ 하사가 업무 외 시간에 이 준위에게 먼저 연락한 적은 없다.

이 준위는 차를 마시자며 ㄱ 하사를 자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이 준위가 일과시간에 ㄱ 하사를 ‘○○(ㄱ 하사의 이름)’라고 부르며 보낸 메시지는 “어디 있냐, 뭐 하냐, 방으로 와서 커피 한잔하자는 의미(수사기록상 이 준위의 진술)”다. 이 준위는 다른 부대 동료들이 보는 자리에서도 ㄱ 하사를 불렀다.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한 병사의 진술에 따르면, 이 준위는 매주 두세 번 오후 3시쯤이면 ㄱ 하사를 찾아와 “안 바쁘면 차나 한잔하자”라고 말했다. ㄱ 하사는 ‘네’라고 답하고 감독관(이 준위)의 방으로 들어갔다. 병사는 “이 준위가 다른 부서원에게 방에서 차를 마시자고 한 적도, 다른 부서원들이 업무 외에 이 준위 방에 가는 일도 잘 없다”라고 말했다.

이 준위가 ㄱ 하사를 ‘챙길수록’, 과한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당시 ㄱ 하사는 상관 4명, 병사 3명과 함께 근무했다. ㄱ 하사를 제외하곤 모두 남성이었다. ㄱ 하사와 함께 일했던 한 군 간부는 “이 준위가 자칫 잘못하면 오해할 소지가 있을 정도로 ㄱ 하사를 챙겼다”라고 진술했다. ㄱ 하사의 어머니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딸의 마음을 곱씹었다. “감독관 입장에서는 잘해준다고 하지만 밑에 있는 딸 처지에서는 온전히 편치 않았을 거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와 함께 일했던 다른 장교의 증언

이 준위는 2020년에도 “성인지력이 떨어진다”라며 준사관 근무평정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성추행이라고 지적당할 만한 전력이 수사기록상 남아 있다. 이후 상관은 이 준위를 포함한 부대 감독관들을 불러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했다고 군검찰에 진술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추가 조사나 징계는 없었다.

ㄱ 하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의 방을 둘러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ㄱ 하사가 눈에 띄게 이 준위의 연락을 피한 건 지난해 4월21일 이후이다. 이날, 이 준위는 ㄱ 하사에게 ‘볼 자르기(볼을 한쪽 손으로 잡고 손날로 치는 행위)’를 시도했다. 이 준위는 3월 말과 4월 초 사이 한 차례 ㄱ 하사의 볼을 꼬집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4월21일엔 ㄱ 하사가 “정말 싫습니다”라고 말해서 시도에 그쳤다고 진술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다른 병사도 “4월 중순 이후 사망자(ㄱ 하사)가 감독관을 피하는 것 같았다”라고 수사관에게 말했다.

군 검경(군검찰과 군사경찰) 조사에서 이 준위의 부대 동료들은 입을 모아 이 준위가 후임들을 잘 챙겨주고 편하게 해주는 상관이었다고 답했다. 현재 이 준위는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 주거수색,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혐의 가운데 ‘폭력행위’와 ‘주거수색’은, 이 준위가 ㄱ 하사의 집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물건들에 손을 댄 행위를 가리킨다. ‘군인 등 강제추행’은, 현역 군인이 다른 현역 군인을 강제추행할 때 적용되는 군형법상의 혐의다. 민간인들에게 적용되는 형법상 강제추행죄보다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지난해 12월2일 공군보통군사법원 재판2부 심리로 열린 4차 공판에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온 강 아무개 상사(남)도 이 준위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 “이 준위는 권위를 표출하지 않아 형님 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장난처럼 하급자에게 볼 자르기를 했고, 나도 당했다. 내가 피해자 입장이었다면 전혀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12월23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준위도 무죄를 주장했다. 볼을 만졌지만 “장난이며 성적인 행위가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이 준위는 ㄱ 하사가 사망 전 마지막으로 만난 부대원이다. 사망하기 나흘 전인 지난해 5월7일 이 준위와 대화하던 중 ㄱ 하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준위는 퇴근하려는 ㄱ 하사를 붙잡고 “차 한잔 마실까?”라고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ㄱ 하사는 이 준위가 퇴근길에 건 전화도 받지 않았다. 같은 날 밤 ㄱ 하사는 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검색어를 입력했다. ㄱ 하사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이전에도 ‘부사관 퇴직, 전역, 심리상담’ 등을 검색한 적이 있지만 극단적 선택과 연관된 검색을 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준위는 군사경찰에게 5월7일 당시 “ㄱ 하사에게 ‘목소리를 밝고 크게 해라’라고 이야기했는데, ㄱ 하사가 삐졌다”라고 설명했다. 대답을 들은 수사관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 내용만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준위의 대답도, ㄱ 하사의 대답도 이상하고 무언가 사유가 분명하지 않다.” 이 준위는 “저도 그렇다.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는데 화를 내니 답답했다”라고 답했다.

ㄱ 하사의 가족은 현장 사진과 자료를 모았다.ⓒ시사IN 신선영

이 준위는 이틀 후인 지난해 5월9일(일요일) 출근길에 ㄱ 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 얼굴 보자(이 준위).” “쉬겠습니다(ㄱ 하사).” “시간 많이 안 뺏어. 음료수 하나 마실 정도면 돼(이 준위).” “알겠습니다(ㄱ 하사).” 이 준위는 이후 “아내에게 괜한 오해를 사기 싫다”라는 이유로 이날의 통화 기록을 삭제했다.

ㄱ 하사는 같은 날 12시19분 집 근처로 찾아온 이 준위와 차에서 14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ㄱ 하사가 사망 전 마지막으로 만난 부대원과 나눈 대화이지만, 이 준위의 진술 외엔 내용을 알 수 없다. 군사경찰은 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를 하지 않았다. 사망 이틀 뒤인 5월13일에야 이 준위 차량의 블랙박스를 임의제출 받으려고 했으나 이조차도 시간이 지나 기록이 삭제되어 있었다.

‘군사경찰과 군검찰은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 ㄱ 하사의 죽음 이후 유가족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딸의 집엔 의아한 점투성이였다(34쪽 그림 참조). 유가족은 사건 당일인 지난해 5월11일 낮 12시3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방범창은 뜯겨 있었고 베란다 쪽 방충망은 열려 있었다. 집안은 평소보다 심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무엇보다 유서가 없었다. 현관문 외시경에는 평소와 달리 화장지가 꽂혀 있었다. 군사경찰 수사 결과, ㄱ 하사 집에서 발견된 세 종류의 휴지와 다른 휴지였다. 유가족은 “누군가 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볼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외시경을 가렸다”라고 주장하며 유전자 감식을 요구했다. 국방부 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 감식 결과, 휴지에선 누구의 유전자도 확인되지 않았다. 최초 침입자인 이 준위와 박 원사에 대한 몸수색, 차량 수색, 블랙박스 확인은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정황투성이였지만, 당시엔 경황이 없었다. 서둘러 현장 감식을 마치고 딸을 잘 보내주는 일이 가장 급했다.

8비 조사관들은 유가족에게 장례를 종용했다. 지난해 5월13일 부검이 끝나자마자 유가족에게 장례 절차를 안내했다. 유가족 측은 조사관의 말대로 곧바로 장례를 치르려다가 이 결정을 번복했다. 딸에게 입힐 군복을 가지러 가는 길에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유가족 측은 딸의 사망 열흘 뒤인 지난해 5월21일 수사관 기피 신청을 냈다. 수사관들이 수사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

“이 집에 이 준위가 왔다 갔지?” 2021년 5월26일 교체된 수사관들이 ㄱ 하사 집을 찾아 자기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이 준위가 먹을거리를 주러 종종 ㄱ 하사 집 근처에 왔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ㄱ 하사의 어머니는 당혹스럽고 놀랐다. 딸과 이 준위가 친밀한 관계라는 식으로 이해될 만한 말이었다.

ㄱ 하사의 어머니는 수사관이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냈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유가족의 말문을 막으려고 한 것 같다.” ㄱ 하사의 어머니는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다른 유가족이 떠올랐다. “우리는 일을 접어가며 이 사건에 매달렸지만, 생계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유족들이 많다. 조사관들이 던지는 이야기대로 받아들이고 따를 수밖에 없다.”

왜 거실 안쪽까지 가 A4 용지 만졌을까

유가족은 유서의 행방을 의심한다. 유가족 대리인 강석민 변호사는 “응급 구호를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다 지났는데도 왜 굳이 방범창까지 뜯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침범했는지, 침범하고도 현장을 보존하지 않고 수색했는지 여기서 의문이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사망 당일인 5월11일 수사관은 딸의 스프링 노트를 ㄱ 하사의 아버지에게 건넸다. 노트 종이가 뜯겨 나간 흔적을 보여주며 딸의 주머니에 유서가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결국 유서는 찾지 못했다. ㄱ 하사의 어머니는 “만약 현장에서 최초 침입자 몸수색, 차량 수색 등을 했다면 양측이 신뢰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놓쳤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유족으로서 (군사경찰이) 원망스럽다”라고 말했다.

유가족의 의심을 더하는 정황이 수사기록에도 담겨 있다. ㄱ 하사 사망 닷새 후인 지난해 5월16일 오전 11시7분, 이 준위는 박 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이거 참 큰일이다. 잠깐 (ㄱ 하사 집의) 거실 들어갔을 때 내가 종이 몇 개를 만졌어. … 나가면서 까먹은 거야.” ㄱ 하사의 집에서 A4 용지를 만진 게 생각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내용이었다. 이 준위가 “순간적으로” 만졌다는 A4 용지는 거실 가장 깊숙이 위치한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복도 창문을 통해 집에 들어간 이 준위가 A4 용지를 만지려면, 숨진 ㄱ 하사를 지나 방에서 나온 뒤 거실 안쪽까지 이동해야 했다(앞의 그림 참조).

박 원사는 “인터넷에 (지문이 남는지) 찾아봐라. … (수사관들이) 지금부터는 ‘걔를 위해서 한 거라고 얘기해라’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라고 이 준위에게 말했다. 이 준위는 15분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아 그냥 (A4 종이 만진 거) 생각 안 나는 걸로 할게”라고 답했다.

실제로 이 준위는 지난해 6월11일 현장검증 자리에서, ‘(발견 당시) ㄱ 하사의 거실에 들어가 2~3번 두리번거리고 나왔다’고만 인정했다. A4 용지를 만졌다는 사실은 감췄다. 현장검증 자리에 있었던 ㄱ 하사의 아버지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이 준위가 ‘내가 어디까지 들어갔지? 여기서 왔다 갔다 했나?’라며 박 원사에게 물으면 박 원사가 ‘저쯤까지’라고 답하는 등 마치 기억이 안 난다는 듯 서로 물어보면서 현장검증을 했다.”

군은 폐쇄적인 공간이다. 부대 밖에선 군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렵다. ㄱ 하사의 아버지는 딸의 사망 이후 두 달간 일을 접었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관에게 수시로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다. 직접 딸의 동료들에게 연락하고 전역한 동료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수사를 대신 한다고 할 정도였다. 정보공개 요청 8회, 이의신청 2회, 민원 신청 5회, 8비 단장 면담 3회, 수사지도과장 면담 2회. 그는 답변 없는 군에 거듭 자료와 면담을 요청하며 딸과 사건의 흔적 찾기에 매달렸다.

지난해 12월1일 군인권센터가 ㄱ 하사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사경찰의 부실 수사를 지적했다.ⓒ시사IN 신선영

ㄱ 하사의 아버지는 딸이 사망한 지 넉 달 후인 지난해 9월15일에야, 6월10일 종결된 수사기록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처음 이 준위의 강제추행 사실을 알게 됐다. 강 변호사는 “수사기록 정보공개 청구를 비공개 처리해서 거기에 대한 이의신청만 두 번 했다. 자료 공개가 늦춰지면서 유족들이 강제추행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ㄱ 하사의 아버지는 “수사기록 양이 많고, 뒤편에 강제추행 진술이 있어서 한참 읽고 나서야 내용을 알게 됐다. 딸의 사망 소식에 비하면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다만 군 수사기관이 ‘볼 자르기’ 이외의 사실을 확인해내지 못한 게 많이 실망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유가족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준위는 ‘강제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동료들의 진술을 활용했다. 유가족 측은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들의 진술이 ‘정리된다’고 느꼈다. 지난해 6월7일 ㄱ 하사의 한 상관은 “이 준위가 ㄱ 하사의 볼을 꼬집는 걸 직접 보았고, 이를 보며 과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한 달 후 진술을 번복한다. 같은 해 7월21일 그는 “지금은 이 준위가 ㄱ 하사에게 그런 스킨십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라고 말을 바꿨다. 6월17일 ㄱ 하사의 또 다른 동기는 이 준위가 ㄱ 하사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 신체접촉 한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두 달 이후인 8월25일에는 “그렇게 진술한 적 없다. 이 준위가 워낙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아서 ㄱ 하사에게 (신체접촉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을 흐렸다. 해당 진술을 한 이들은 모두 현역 군인이다.

유가족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군 수사에 이어 재판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지난해 7월26일 8비 검찰은 이 준위를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주거침입 등), 주거수색 등의 혐의로만 기소했다.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는 문제 삼지 않았다. 공군본부 보통검찰부가 이 준위를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추가 기소한 것은 같은 해 10월14일이다. ㄱ 하사가 사망한 지 다섯 달, 유가족이 수사기록을 받은 지 한 달 뒤였다. 유가족 측은 자신들이 애써 증거를 찾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지 않았으면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의 ‘군인 등 강제추행’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 11월15일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본부 법무실과 8비 군검찰, 군사경찰이 작당해 수사 과정에서 강제추행 사실을 인지하였음을 숨겼다. 사건을 축소·은폐해 주거침입 등만 기소했다가 뒤늦게 슬그머니 강제추행 건을 입건했다”라고 지적했다.

의아한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8비 군검사가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등으로 기소한 사건(이 준위의 ㄱ 하사 자택 침입)과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의 ‘군인 등 강제추행’ 기소는 법률상 다른 사건이다. 그런데 8비 군검사 측은 자신들의 기소로 진행 중인 재판에 보통검찰부의 추가 기소 건을 합쳐서 심리하자(병합)고 신청했다. 재판부는 8비 군검사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하나의 재판에서 이 준위의 폭력행위처벌법 위반은 물론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까지 모두 처리하겠다(재판 병합)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유가족 측은 ‘(검사와 재판부 측이) 제대로 된 심리도 없이 사건을 종결하려는 것 아니냐’며 반발했다. 이에 군검사 측이 다시 병합 분리를 신청하긴 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징역 4년 구형, 1월18일에 선고

또한 군검사 측은 피해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려 했다. 군 재판부는 증거목록에서 앞서 언급된 ‘2021년 5월16일 이 준위와 박 원사의 통화기록’을 확인했다. 이에 군 검사에게 해당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군검사는 ‘피해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어 전문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계속해서 요청한 끝에야 해당 녹취록이 증거로 제출되었다.

해당 녹취록을 확인해본 결과, 군검찰의 거짓 주장이 드러났다. ‘피해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피고인들(이 준위와 박 원사)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군사경찰의 피고인 비호, 피고인들의 ‘위증 공모’ 정황 등이다.

군사경찰과 군검찰은 공군 20비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당시,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2개월 가까이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군사경찰·군검찰·군사법원은 모두 국방부 소속이다. 군 지휘관이 군 내의 수사·기소·재판 전 과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군사경찰과 군검찰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는 방향으로 수사해도 이를 견제할 만한 장치가 없다.

ㄱ 하사의 아버지가 보여준, ㄱ 하사가 고교 시절 그린 항공기체 모형도.ⓒ시사IN 신선영

그동안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결과로 오는 7월1일부터 ‘개정 군사법원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성범죄, 군인 사망사건, 입대 전 발생한 사건 등 일부 혐의에 한해 민간법원이 1심부터 재판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위의 혐의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국방부 장관이 군사기밀보호 등을 이유로 군사법원에 기소할 수 있도록 해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피해자가 이에 불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그동안 피해자가 고스란히 2차 피해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지난해 결심공판에서 군검찰은 이 준위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이 준위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이 준위의 변호인은 “현행법은 사자(死者)를 주거침입 범죄의 객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공소장에는 피고인이 피해자 숙소에서 책상 위 A4 용지와 노트를 집어들어 올렸다는 사실만 적혀 있을 뿐 무엇을 찾으려고 했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라면서 공동재물손괴·공동주거침입·주거수색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추행의 고의가 없었고,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라며 강제추행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유가족을 대리하는 강 변호사는 결심공판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구형 양형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 피고인 측 변호인이 상세하게 의견서를 냈는데도 군검사의 반론 의견서는 짧다”라고 말했다. ㄱ 하사의 아버지는 “추가 증거를 제시하고 싶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여 주지 않아 (1월18일에) 선고가 나게 됐다. 검찰에서 (이 준위에게) 4년 형을 구형했지만 증거를 재판부에 다 제시했을지 의문이 든다”라고 우려했다.

ㄱ 하사 아버지는 딸의 사건 해결에 매달렸던 8개월 동안, 이런다고 딸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좌절과 방황을 반복했다. 하지만 군이 ㄱ 하사 사건을 소극적으로 다루고 은폐하는 건 ㄱ 하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 다른 여군을 놓치는 일이라는 걸 안다. 공군은 ㄱ 하사가 인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하고 선택한 곳이었다. “자정작용을 상실한 조직은 국민의 희망이 될 수 없다. 딸처럼 군인이 되고 싶은 또 다른 여학생에게 군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줘야 한다. 저희 부부는 일단 저희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

기자명 이은기 기자 다른기사 보기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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