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옥션 강남센터의 ‘경매 미술품’ 프리뷰 전시. 이우환 작가의 ‘선으로부터’가 걸려 있다. ⓒ시사IN 신선영

12월14일 서울옥션의 2021년 마지막 메이저 경매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었다.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입찰을 하면 직원들이 대리로 호가하는 방식이었다. 경매 하이라이트는 이우환 작가의 ‘선으로부터’였다. 시작 가격은 18억원, 가격은 1억원씩 올랐다. 작품 가격이 23억원에 이르자 한 응찰자가 5000만원만 올릴 수 있는지 문의해왔다. 경매사가 이를 수락해 23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장내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최근 미술품 시장은 역대 최고 수준의 호황이다. 2021년 11월까지 국내 주요 경매사 10곳의 낙찰총액은 약 3000억원이다. 전년도 총액(약 1140억원)의 3배이며, 2018년 기록한 기존 최고액보다도 1000억원 높다. 이번 경매에서 화제를 모은 이우환 작가는 2021년 낙찰 총액 1위를 차지했다.

미술품 경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새로운 현상이다. 오랜 기간 미술품은 ‘벽’이 높은 시장으로 알려졌다. 부동산이나 주식과 달리 미술품은 사는 데도 파는 데도 비용이 든다. 아무나 메이저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매해 수십만 원을 내고 경매업체 정회원으로 등록해야 입찰할 수 있다. 낙찰을 받으면 작품 값 15%를 경매사에 수수료로 내야 한다. 회원비와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화랑에서 직접 작품을 구매하려다가는 도리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미술계에서는 경매의 장점이 ‘가격의 투명성’이라고 말한다. 호가를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을 공개하며, 작품 값어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경매를 통하지 않고 판매자에게 직접 작품을 사는 경우, 구매자가 안목이 없다면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예술품의 특성 탓이다. 공산품과 달리 유일하고, 원가 측정이 불가능하기에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미술품 매매는 일정 수준의 자본에 더해 미술 지식까지 갖춘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특수한 영역이었다.

‘그들만의 리그’였던 미술품 시장이 점차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 고객층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력과 관심을 가지고 미술시장에 뛰어든 이들은 주로 중년, 노년층이었다. 최근 경매장 풍경은 사뭇 다르다. 명품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이른바 ‘MZ 세대(1980년에서 2000년대 초 태어난 젊은 층)’가 미술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품을 구매하는 20~30대가 늘어난 것일까? 불확실하다. 경매업체는 낙찰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며, 내부에서도 공유가 금지되어 있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현장 경매나 프리뷰 전시에 온 사람들을 보고 젊은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짐작할 따름이다. 서울옥션 대외협력팀 김서영 선임은 “특히 프리뷰 전시에 오는 사람들 중 젊은이들이 많이 늘었다. 정장이 아니라 편한 옷차림으로, 커플로 오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경매 현장에서의 눈대중에 바탕을 둔 억측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사실 미술시장을 향한 젊은 층의 열기는 경매장 밖에서 더 잘 보인다. MZ 세대가 대상인 미술 투자 유튜브 방송과 도서가 쏟아져 나오고 투자 중개업체도 우후죽순이다. 근래 ‘미술시장 붐’에 MZ 세대가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김 선임은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미술품 경매는 주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서울옥션 유튜브 갈무리

한국 미술시장 붐 뒤에 ‘홍콩 민주화운동’

다만 그는 ‘미술품 구매 총액’에 젊은 층의 참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는 단정하지 않는다. 국내 경매 낙찰액이 몇 년 사이 갑작스레 늘어난 데에는 다른 변인이 있다. 2019년부터 점화된 홍콩 민주화운동이다. 당국의 탄압으로 정치 상황이 불안정해지자 아시아 미술시장 중 수위였던 홍콩 시장이 주저앉았다. 홍콩 미술시장으로 향하던 국제적 자금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김 선임은 MZ 세대의 역할이 ‘구매량’보다는 ‘입소문’에 있다고 본다. “장벽이 높았을 뿐 미술품 수요는 한국에서도 꾸준했다. 단지 MZ 세대는 자신의 경험을 SNS에 공유하는 빈도가 높다. 윗세대 고객은 미술품을 눈으로 보고, 구매해서 집에 놓으면 그걸로 끝인데, 젊은 고객들은 사진을 찍고 공유하며 뽐낸다.” 젊은이들이 미술품 구매라는 경험을 SNS로 공유하면서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젊은 층의 미술시장 참여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의 예술 크라우드펀딩 기업인 아트피크(Artpiq)는 2019년 8월26일 ‘밀레니얼 세대’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기사는 미술시장에 온 밀레니얼 세대(1980~90년대 출생자)의 첫 번째 특징으로 ‘윗세대의 젊은 시절에 비해 금융자산이 적다’는 점을 꼽았다. 교육수준이 높아 경쟁이 치열하기에 일자리를 늦게 구하기 때문이다. 예술품 수집가 집안의 후손이 아닌 이상, 밀레니얼 세대는 시장 최상위층에 있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사려 들지 않는다고 기사는 적었다.

젊은 미술 수집가에게 SNS는 단순한 놀이 문화를 넘어 ‘자금의 벽’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여러 출처에서 정보를 수집해 가장 유망한 예술가를 찾는다”. ‘유망주’를 찾아내는 과정에 쓰이는 게 SNS이다. 작가와 미술 전문가, 수집가의 글을 보면서 미술 지식을 쌓고, 자신의 취향을 고르는 것이다. 영국 특수보험업체 히스콕스(Hiscox)가 발간한 〈2019 히스콕스 온라인 미술 거래 보고서〉에 따르면, 35세 이하 미술품 구매자 80%가 새로운 예술가를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 보고서는 인스타그램이 부상하는 데에 더 근본적 이유도 있다고 봤다. “설명보다 시각에 의존하는 미술품의 특성”이다.

업계도 경제력이 부족한 대신 취향과 지식을 갖춘 젊은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서울옥션은 ‘제로베이스 경매’를 도입했다. 메이저 경매는 일정 금액(최소 수백만 원대)에서 경매를 시작하고, 낙찰가가 외부 전문가들이 정한 ‘추정가’에 미치지 못하면 유찰된다. 제로베이스 경매는 0원에서 입찰을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신진 작가의 작품들이 주로 나온다. 메이저 경매에 비해 금전 부담이 덜해 젊은 층 참여가 활발하다.

그런데 감정적 의미를 배제하고, ‘순수 투자’ 측면에서도 미술품이 좋은 선택일까? 고개를 젓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현화 숙명여대 교수(미술사학)는 ‘미술사에 남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는 향후의 작품 가치가 천차만별이라고 말한다. 김 교수의 말이다. “23억5000만원에 낙찰된 이우환 작가 작품은 사실 그렇게 비싼 게 아니다. 한국은 물론 일본 현대미술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세계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명해지는 게 아니다. 미술사적 가치는 얼마나 앞장서서 시대정신을 제시했는지로 결정된다.” 그런데 미술사적 가치를 가진, ‘불멸의 작가’들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작품 값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사두면 가격이 오를 것은 자명하지만, 웬만큼 자본을 갖추지 않은 이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아직 작품 가격은 폭등하지 않았지만 유망한 작가는? 일반인이 감별해내기 쉽지 않다. 심지어 꽤 주목받아온 작가라고 해서 미래에 이름을 떨친다는 보장도 없다. ‘미술작품 가격은 오르기만 할 뿐, 떨어지는 작가는 없다’는 속설이 거짓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10여 년 전쯤 유행한 국내 작가가 있다. 재벌가에서 작품을 사 세간의 유명세를 얻었는데,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예인처럼 미술계에도 ‘반짝스타’가 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은 가격 상승이 보장되어 있다면, 여러 사람이 목돈을 모아 ‘공동구매’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서 나온 아트테크(art+재테크)가 ‘미술품 분할 소유권’이다.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하지만 자금은 부족한 MZ 세대가 주 고객이다. 투자자들이 실제로 작품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미술시장에 밝은 플랫폼 사업자가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작품을 사고, 더 높은 값에 되판 후 차익을 나눠주는 것이다. 미술품 수집가인 이지혜씨는 지난해 펴낸 책 〈나는 미술관에서 투자를 배웠다〉에서, 이 투자 방식의 단점을 몇 가지 꼽았다. 우선 미술품은 환금성이 약하다. 미술시장이 침체되면 작품을 매각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미술시장이 활황이었던 근래에도 작품을 팔지 못해 폐업한 분할 소유 플랫폼이 있다. 위험 대비 수익성도 다른 상품에 비해 월등하지 않다. 이씨는 한 분할 소유 플랫폼이 구매 후 되판 판화 작품과 삼성전자 주식의 같은 기간 수익성을 비교하며, 작품이나 플랫폼에 따라 주식 등 다른 상품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적었다.

미술시장 ‘전통적 참여자’의 관심은…

미술시장은 ‘공부’만 좀 하면 누구나 뛰어들 수 있는, ‘세금 없는 블루오션’이라고 보기 어렵다. MZ 세대를 비롯한 신규 참여자들의 관심은, 수백 년간 미술품 시장을 지탱해온 본질적 원리와 상충한다. 공동구매로 메울 수 있는 자금력이나, SNS로 채우면 되는 지식의 차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근래 미술품에 주목하게 된 이들은 주로 수익성, 즉 ‘차익’을 보고 뛰어드는데, 이 시장의 전통적 참여자들은 여기에 관심이 낮다. 오히려 ‘미술품으로 차익 얻는 상황’을 불행하게 여긴다.

〈이코노미스트〉의 2012년 ‘아트바젤’ 취재 기사는 전통적 미술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을 드러낸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은 유명 작가들의 고가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행사이다. 주된 고객 역시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갑부들이다. 매체에 따르면 아트바젤 참석자들은 미술품 구입으로 “승리의 감정, 문화적 우월감, 사회적 구별을 얻는다. 정신적 공허함을 채워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일반적으로 사는 건 즐겁지만, 파는 건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한 수집가는 아트바젤 기간 “5년 만에 작품이 10배 가까이 올랐으나, 이 ‘기쁜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 가격이 ‘피크’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리적 요인이 있다. “돈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작품 판매는 빚이나 죽음, 이혼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군의 사람들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세일, 떨이에 끌리는 것과 전혀 다른 심리로 고가 미술품을 산다. 오로지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캔버스에 점 하나 찍은 단색화에 수십억 원을 쾌척하는 거부들이 미술시장에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미술시장의 과시적 소비를 두고 “경제력은 무엇보다 경제적 필요를 등한시할 수 있는 힘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에 매료돼서가 아니라 ‘경제적 필요’에 따라 미술품을 사려는 이들은 몹시 실험적인 길에 들어선 셈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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