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
주디스 그리셀 지음, 이한나 옮김, 심심 펴냄

“향정신성 물질을 즐기는 이들에게 정말 끔찍한 사실은 뇌가 적응한다는 점이다.”

중독은 15세 이상 인구 중 20%가 겪는 보편적이고 심각한 건강 문제다. 미국은 중독을 예방·진단·치료하기 위해 에이즈의 다섯 배에 달하는 보건비용을 쓴다.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경로는 중독자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경로가 무엇이든 모든 중독의 기저에는 뇌의 ‘신경적응’ 원리가 있다. 만성 약물중독자였던 저자가 뇌 과학자가 된 이유다. 책은 대마, 아편, 각성제 등 익숙하거나 낯선 각종 약물을 들여다본다. 결론은 ‘착한’ 약물은 없다는 것이다. 뇌의 적응력은 무한하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약물을 주입하더라도 결핍과 갈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약물중독만큼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것은 없다.

 

 

 

 

우리는 왜 억울한가
유영근 지음, 타커스 펴냄

“나는 감히 ‘억울함은 우리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그런데 억울함이란 게 정확히 뭘까?’ 한국 사회 쟁투의 마지막 장인 법정도 마찬가지다. 원고, 피고, 피고인 모두 각자의 억울함이 있다. 비슷한 질문을 마주한 판사는 직접 이를 분석하고 책을 썼다. 초판을 내놓은 2016년 이후 펼쳐진 촛불집회, 탄핵 등 일련의 대형 사건 등과 맞물려 언론과 학계가 ‘억울함’에 대해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5년 사이 달라진 통계와 사례를 보충했다. 한국은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억울함과 개인이 느끼는 억울함의 간극이 유난히 큰 나라다. 이성과 감정도 아닌 오묘한 영역의 이 억울함을 분석하고,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적었다.

 

 

 

 

벤저민 레이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갈무리 펴냄

“벤저민 레이는 역사에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영웅은 아닙니다.”

1682년 영국에서 태어난 벤저민 레이는 키가 1.2m에 불과한 장애인이었다. 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으며 12년 동안 런던 템스강에서 선원으로 일했다. 그는 도토리와 복숭아를 주로 먹는 채식주의자였고 동물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말을 타지 않았다. 노예제 반대 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앞장서서 노예제를 비난했고,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여성 신도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서로 다른 퀘이커교 회의는 그를 네 번이나 파문했다. 하지만 결국 퀘이커교는 노예제를 폐지한 최초의 집단이 됐다. 벤저민 레이의 삶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인상 깊다.

 

 

 

 

코즈믹
세이료인 류스이 지음, 이미나 옮김, 비고 펴냄

“오늘 밤도 사냥터에 먹잇감들이 찾아온다. 사냥감이 되는 줄도 모르고 반드시 찾아온다.”

‘오타쿠’라는 현상을 통해 현대를 분석해온 일본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의 책을 읽다 보면 작가 ‘세이료인 류스이’와 그의 소설인 〈코즈믹〉이 가끔 등장한다. 〈코즈믹〉은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출간될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추리(?)소설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일본 장르소설 팬들 사이에서도 지난 20여 년 동안 무수한 입소문만으로 돌아다니다가 이번에 드디어 번역되었다. 웬만한 벽돌 두께인 이 소설의 내용은 단순하지만 복잡하다. 일본에서도 1990년대 중반이란 시대의 징후를 담은 ‘괴작’으로 평가되었던 만큼 ‘가깝지만 먼 이웃나라’를 진지하게 분석하기 위한 텍스트로 읽힐 수도 있겠다.

 

 

 

 

금주 다이어리
클레어 풀리 지음, 허진 옮김, 복복서가 펴냄

“나 자신이 싫다. 무언가는 바뀌어야 한다.”

새해 결심을 생각하고 책을 펼쳤다가 저자를 응원하게 됐다. 직장에 있을 때는 아이들을, 아이들과 있을 때는 일 생각으로 가득하던 그는 어느 날 무의미한 경주를 끝내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나자 자신을 잃은 기분이 들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알코올에 깊이 의존하고 있었다. 매일 와인 한 병 이상을 마셨다. 삶이 쪼그라들었고 무엇보다 처음의 결심이었던 ‘좋은 엄마’와 멀어졌다. 신경을 무디게 만들 알코올이 필요했던 근본적인 이유다. 그가 블로그 ‘엄마는 남몰래 술을 마셨다’에 금주 일기를 남겼다. 저자가 소개하는 금주의 장점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머리카락마저 풍성해진다는 부분이 유독 끌린다.

 

 

 

 

태종처럼 승부하라
박홍규 지음, 푸른역사 펴냄

“한편으론 유교적 군주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다른 편에서 바라보면 한비자적 군주의 얼굴이 보였다.”

형제를 죽이고 처가와 사돈을 멸문시킨 태종 이방원의 행보는 기이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책은 ‘인간 이방원’의 야욕이나 분노보다는 ‘정치행위자’로서 그의 행보에 집중한다. 특히 흥미로운 시점은 1·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 이방원이 실권을 쥐게 되었을 때다. 정변은 이방원에게 사실상의 왕권을 보장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힘이 있다면 누구든 권력을 쥘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퍼지는 결과도 가져왔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태종이 단순히 힘으로 사회를 장악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지식인들을 이용해 유교적 ‘명분’을 쌓는 데에도 집중한 정치적 군주라고 평한다. 시대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