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유스티나 바르기엘스카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고운 옮김, 오후의소묘 펴냄
“이제 얘기해줄게.”
제목이 ‘엄마와 딸’이 아니라 ‘두 여자’인 이유를 곱씹을수록 그림이 달리 보이고, 내용도 선명해진다(원제인 OBIE는 둘 다, 양쪽이라는 뜻의 폴란드어다). 은유 작가는 추천사에서 “내가 딸일 때는 사랑이 모자랐고 엄마일 때는 사랑이 지나쳤다”라고 적는다. 여자의 ‘심장을 나눠 가진’ 딸이 가능한 한 집에서 멀어짐으로써 마음에서도 멀어지고자 할 때, 여자의 내면 풍경이 꼭 이러할까. 오묘한 푸른빛으로 채워진 그림은 서늘하면서도 따뜻하다. 장면을 잇는 붉은 실은 마치 길처럼 보인다. 앞선 여성이 뒤에 오는 존재를 위해 마련해둔 길이다. 하지만 여자로부터 출발한 또 다른 여자는 새로운 길을 내며 성장하려 할지도 모른다.
근력운동의 과학
오스틴 커런트 지음, 권기호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근력운동을 지속하면 건강과 삶의 질이 개선되고 평생 질병에 걸릴 위험이 낮아진다.”
책의 효용이 쇠락한 분야 중 하나가 운동이다. 피트니스 트레이너가 유튜브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며 말로 설명하는 걸 능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운동 초보를 막 벗어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이해’ 없는 운동은 효능감이 커지지 않더라는 걸. 이 책은 유튜버들이 시끌벅적 떠드는 동작 하나하나가 우리 인체에 어떤 원리로 영향을 미치는지 쉽게 이해시켜준다. 각종 근육·뼈 그림을 통해 각 운동의 자극이 인체의 어떤 부위로 전달되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운동 동작을 익히는 데에는 영상이 더 효율적일지 몰라도, 우리 몸에 흩어져 있는 600여 개 근육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책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팝나무 가지마다 흰 새들이
노태맹 지음, 한티재 펴냄
“바람을 따라간 이에게 바람의 안식을 주십시오,”
책을 여는 장에 ‘시집 사용 설명서’가 적혀 있다. 시인은 처음부터 밝힌다. 이 시집은 ‘레퀴엠’이라고, 떠난 이의 넋을 달래어 고이 잠들게 하는 ‘진혼(鎭魂)’이라고. 때문에 이렇게 기도한다. “그대 별들이여,/ 우리는 이제 이것밖에 노래할 수 없으니” “그대 별들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감염된 이들과 그 가운데 위독해진 이들과 그 가운데 죽은 이들을 매일 아침 숫자로 받아본 지도 2년 가까이 되었다. 무기력에도, 무감각에도 맞서고 싶어 ‘시집 사용 설명서’가 시키는 대로 소리 내 읽는다. “우리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이 노래와 눈물이 새기는 기도를 생각하시어/ 서로의 뜨거움을 견디게 해주소서.”
우아한 루저의 나라
고혜련 지음, 정은문고 펴냄
“조선은 개항 이후 대한제국을 거치면서 그저 제국주의 국가의 희생양 노릇만 했을까?”
한국에서 점차 쇠락하며 경술국치에 이르는 대한제국에 흥미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조선 초기의 일은 줄줄 외면서 더 근래인 구한말 역사는 잘 알지 못하는 이도 있다. 책은 타자의 눈에 비친 대한제국을 다룬다. 처음 한반도에 들어선 독일인들의 기행기이다. ‘불순한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도 있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 러시아와 일본 중 누구의 영향력 아래 놓이는 게 독일에 유리한지 같은 내용도 있다. 고종을 비롯한 당대 지배세력들의 정치적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시대 민중의 모습이다. 갓을 쓰는 방식, 멸시받는 도축업자(백정), 독일 곡주를 좋아하는 사람들 등 그간 접하지 못했던 민중사가 보인다.
결제의 희열
한재동 지음, 눌와 펴냄
“살까 말까 고민될 때는 사세요.”
백화점에서 10년 넘게 일한 저자는 쇼핑을 즐겼다. 청재킷, 면도기, 시계 등을 소재로 쓴 짧은 글을 모았다. 물건을 사면서 겪은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갈색으로 염색한 지 하루 만에 검정색으로 되돌렸던 직장생활의 애환도 있고, 스마트 시계를 사기 위해 아내를 설득하는 귀여운 구차함도 있다. 실용적 조언도 적었다. 해충 박멸법이나 구두 고르는 팁 등은 유념할 법하다. 특히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다. “홈쇼핑에서 파는 청바지에 대한 리뷰는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대부분 리뷰가 ‘사주니 남편이 참 잘 입어요’ 식이었다. 정작 바지를 입는 남편의 리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그들이 실제로 만족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번역하는 마음
서라미 지음, 정재혁 사진, 제철소 펴냄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지만, 언어만 옮기는 일은 아니다.”
나는 외서를 고를 때 번역가의 이름을 더 중요하게 볼 때가 많다. 내가 알 수 없었던 세계에 먼저 도착해 나도 알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주는 사람. 우리의 세계는 번역가들 덕분에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 당연히 번역은 종이 위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세상은 수많은 번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자니?”라는 누군가의 문자를 덮어두지 못하는 이유도, “비가 오려나”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무릎을 걱정하는 이유도 우리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번역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출판뿐만 아니라 영화·스포츠·법률·군사 분야에 걸친 통번역의 다양하고 다정한 필요와 쓸모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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