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서거와 한 개비의 유혹
  • 정희상 기자
  • 호수 92
  • 승인 2009.06.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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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체험 ‘끊고 살아보기’ 6탄 -엘리베이터와 담배 금단현상과 허리병
   
담배를 피우는 동료 옆에서 전화 취재를 하는 기자의 표정에 괴로움이 가득하다.
엘리베이터를 끊고 계단으로 다니기 시작한 지 사흘 뒤인 5월22일부터 금연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금연 이틀째인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 서거했다는 믿을 수 없는 비보가 날아든 것이다. 크나큰 충격과 스트레스로 흡연 욕구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생애 마지막 길을 떠나기 전 수행 경호원에게 ‘담배 한 대 있느냐’고 물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아유~ 죽겠다”라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서거 충격에 니코틴 금단 증상까지 겹쳐 첫날은 미친 사람처럼 쏘다녔다. 분수처럼 솟아나는 ‘담배 한 개비의 유혹’은 죽을 맛이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지막 순간에 담배 한 대를 갈구하다 저세상으로 떠나면서 사실상 영구 금연에 들어간 것 아닌가. 그분의 영구 금연 길에 나도 동참하자.” 아전인수라는 말은 이럴 때 어울릴 듯싶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만큼 간신히 서거일을 보냈다.

며칠 흡연을 ‘중지’하니 폐활량도  늘고 아침 기상 시간이 빨라지는 등 신체 컨디션은 한결 가뿐해졌다. 거주지 보건소를 찾아 금연클리닉에 등록하고 여러 수치를 측정했다. 몸무게는 70kg.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는 거의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보건소에서는 매주 들러 건강을 체크하도록 안내하고 금연패치·금연껌 등을 무료로 나눠줬다. 하지만 기자는 이런 금연 보조제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금연 초기 1주일에 해당한 노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은 금단 증상으로 가장 힘든 나날이었다. 초기 니코틴 금단 증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힘든 것이 집중력 저하와 기억력 감퇴다.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면 기획, 취재, 기사 작성을 순환하는 기자로서의 일상 활동을 제대로 해내기가 곤란하다. 골초 취재기자들이 금연하기 힘들어하는 것도 그래서다. 또 각종 편집국 회의에도 집중하기 어렵고, 매사에 신경을 집중해 기억해내려고 하면 괜히 짜증만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듯한 불쾌감을 느끼곤 했다. 금단 현상에 시달리는 이런 모습이 주변 동료 선후배 기자에게도 불편을 끼쳤을 것이다. 한 번은 편집국장이 “당신의 금단 증상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글을 한번 실어야겠어”라고 농을 건넬 정도였다.

초기 금단 증상이 금연 성패 좌우

금단 현상 중 하나로 꼽히는 우울증은 노 전 대통령 추모 기간에 더 심하게 몰려왔다. 비통한 상념에 젖지 않기 위해 일부러 곳곳의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서 오르내렸다. 사는 집 계단만 해도 오르내리면 462개에 회사 계단도 190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렇게 날마다 계단을 급히 오르내리는 행동은 미련한 짓이었다. 무리가 갔는지 숨을 내쉬기 힘들 만큼 허리 부위가 아팠다. 결국 계단으로 다니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허리 방사선 촬영을 한 담당 의사가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근육에 무리가 간 듯하다”라며 2주일치 약을 처방해줬다.

의사는 계단 오르내리기를 계속하려면 허리를 약간 숙이는 올바른 자세로 천천히 발걸음을 규칙적으로 옮기되 수백 개나 되는 긴 계단을 내려갈 때는 무릎 관절에 무리가 오니 가급적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끊기에 도전한 마당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허리 통증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계단 난간을 잡고 천천히 오르내리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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