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상응하는 제재와 조처가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동안 응징의 일환으로 선택된 어떤 조처도 효과적이지 못했다. 2006년 북한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는 북한에 대한 포괄적이고 강도 높은 제재를 규정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협상 국면이 조성되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후에도 논란 끝에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었으나 성명 채택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오랫동안 고립되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적대 관계(적성국)에 부합하는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달리 어떠한 형식이나 내용의 제재도 북한에 주는 영향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이 차지한 지정학적 위치, 주변 국가 사이의 역학구도 등으로 볼 때 북한에 대한 일치된 제재나 봉쇄는 애당초 어렵게 되어 있다. 유엔 제재 결의 채택에 많은 논란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북한이 유엔 결의나 6자회담 합의 사항에 위배되는 강경한 행동을 계속하는 배경과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국내외 전문가는 공통적으로 김정일 체제의 안정과 대미 협상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1차 핵실험 때처럼 유엔의 제재 논의가 끝나면 조만간 다시 협상 분위기가 조성되리라 전망하는 것이다.

제재·응징에 매달리면 미래 없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종일관 제재와 응징에 매달리는 대응은 지혜롭지 못하다. 미국도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협상의 문은 열려 있음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나아가 지난주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핵 문제와 억류 여기자 문제가 별개라고 하면서 특사 파견 의향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 이후 상황을 협상 모드로 전환시키기 위해 억류 여기자 문제를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차 핵실험을 통해 또다시 공을 미국과 중국에 넘긴 것이다. 미·중 모두 일면 강경, 일면 협상 유도의 이중적 태도를 견지해나갈 것이다. 미·중 간에는 앞으로 새로운 협상의 틀로 북·미·중 3자 간의 양자 또는 3자 대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응징 일변도로만 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지금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 중심의 체제 안정과 이를 위한 내부 동원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 지도부는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기 위해 시간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초조감이 높아가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8월 김정일 위원장 건강 이상이라는 미증유의 위기가 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제 위기가 외부의 전복 세력이나 내부의 반혁명 세력이 아닌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온 것이다. 즉, 금이 간 수령 영도체제를 다시 튼튼히 세우는 것이 급선무이다. 국방위원회의 권한과 역할 강화 등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선군정치를 강화하고, 150일 전투 실시 등 일련의 위기대응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한번 흔들리기 시작한 수령 영도체제는 만성적인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이 한층 심해질 경우 안정도와 내구력이 전과 달리 급격히 떨어질 염려가 있다. 

북한 내부 정세의 불안정성이 현저히 증대되는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응징 그 이상을 내다보는 종합적 안목의 대북정책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 이후의 협상 국면에 대비한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현재 추세로 본다면 당장 6자회담 재개는 어렵기 때문에 북·중, 북·미 대화로 북한 핵문제 해결을 비롯한 현안 해결의 모멘텀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아무런 대안도 갖지 않고 기존 방침만 고수한다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 위상과 권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최선의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상국면 조성 과정에서부터 창의적·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우리의 국익, 주변국의 처지, 북한 상황,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한 북핵 문제 해결 구상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미·중의 동의와 협력을 얻어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원하는 발전된 남북관계의 정립이 가능해진다. 응징만 되뇌지 말고 ‘현명한 개입정책(smart engagement)’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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