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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양심 지키려다 법복 벗다

지난해 촛불정국 이후 검·경의 무차별 공안몰이가 극성을 부렸다. 효율만 앞세우는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곳은 사법부다. 그러나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파문으로 사법부도 불신 대상이 됐다. 이런 어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2009년 06월 15일 월요일 제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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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개입 파문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으로 승진해 용퇴 압력을 받는 신영철 대법관(왼쪽 사진 가운데).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소신을 지키려다 상부의 압력 또는 정권의 직접 탄압으로 법조계를 떠나야 했던 양심 있는 법조인도 여럿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7단독 박재영 판사와 서울중앙지검 형사 2부 임수빈 부장검사, 그리고 국방부 검찰부에 재직하던 지영준·박지웅 군법무관이 그들이다.

이들 중 최근까지 신영철 대법관 사퇴 파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재판 독립의 숨은 주역이라 할 박재영 판사는 지난해 촛불집회 연행자 재판 과정에서 법관의 양심에 따라 상식적인 결정을 내렸다가 끝내 법복을 벗어야 했다. 당시 박 판사는 촛불집회 구속자였던 안진걸 광우병대책위 조직팀장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현행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아울러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안진걸 팀장에 대한 선고를 연기했다. 촛불 현장에서 붙잡혀 이 혐의로 기소된 연행자 수백명에 대한 선고도 헌재 판결 이후로 넘어갔다. 결국 이런 사태에 딴죽을 걸고 나온 쪽은 조선일보였다. 사설까지 동원해 박 판사에게 법복을 벗고 차라리 시위에 나가라고 인격모독성 힐난을 퍼부어댄 것이다. 하지만 보수 언론의 이런 무도한 사법부 흔들기에 대해 대법원 수뇌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사법부 독립의 작은 ‘촛불’

이런 상황에서 박재영 판사는 지난 2월1일 “현 정권의 방향과 내 생각이 달라서 공직에 있는게 힘들고 부담스러웠다”라는 짤막한 사직의 변을 남긴 채 끝내 법복을 벗었다. 소신을 지키려던 박 판사의 사직은, 지난해 촛불 재판에 노골적으로 개입해 국민은 물론 사법부 내에서 지탄 대상이 됐던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이 같은 시기에 보란 듯이 대법관으로 영전한 처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지난 5월 각급 법원 판사회의가 개최돼 사실상 신영철 대법관의 용퇴를 압박하고 나선 것은 현 정권 들어 재판 독립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데 대한 판사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법부 굴욕의 상징인 신 대법관은 승승장구하고, 사법 독립을 상징했던 박재영 판사는 법원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수많은 동료 법관의 자괴감도 작용했다고 한다.

   
오른쪽은 지난해 7월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항의해 ‘불온 서적’을 파는 모습.
지난 2월 사직한 박재영 판사는 이후 조그만 로펌인 법무법인 동명에 들어가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법부를 나왔으니 자유인으로 재판 개입 문제 취재에 응해달라’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그는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내가 <시사IN>에 입을 열면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과 관련한 매우 구체적이고 심각한 내용을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 신 대법관은 마지막 명예로운 용퇴 절차를 고려하고 있는 국면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그의 용퇴에 장애가 될지도 모를 상세한 이야기는 보류하고 싶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뒤늦게야 신 대법관의 용퇴를 종용하고 나섰고, 전국의 법학교수 750여 명도 신영철 대법관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성명을 낸 국면이어서 그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박재영 변호사는 이후 계획에 대해 “앞으로 헌법을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다룬 MBC <PD 수첩>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 2부 임수빈 부장검사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버티다 검찰 상부와 마찰 끝에 1월8일 검찰을 떠나야 했다.  임 전 부장검사는 농식품부가 수사 의뢰한 ‘PD수첩 명예훼손 사건’ 전담 수사팀의 주임검사였다. 그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도중 영문을 의역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는 있었지만 의도적이거나 전체 내용에 본질적 영향을 줄 만한 것은 아니라서 기소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 수뇌부에서는 <PD 수첩> 제작진에 대한 강도 높은 소환조사를 주문했다. 결국 명예훼손이 성
   
박재영 전 판사
립하지 않아 기소할 수 없다는 소신을 가진 임수빈 수사팀장으로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자기 소신을 지키기 위해 24년간 몸담았던 검찰 조직을 떠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임 부장검사가 사직하자 검찰에서는 이 사건을 특수부에 재배당해 최근까지 <PD 수첩> 제작진 6명을 무리하게 체포해 수사를 벌이면서 무도한 언론 탄압을 벌인다는 비난을 샀다.

검찰을 떠난 임수빈 전 부장검사는 친정이 있는 서초동 검찰청사 부근에 ‘변호사임수빈 법률사무소’를 개업해 활동 중이다. 그는 당분간 가급적 언론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변론 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파면된 군법무관 돕는 현역 군법무관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는 활동 때문에 파면 징계를 받은 법조인으로는 군법무관이던 지영준 소령과 박지웅 대위가 있다. 두 사람은 다른 현역 군법무관 5명과 함께 지난해 7월 국방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교양도서 23종을 불온서적으로 분류하고 영내 반입을 차단하자 헌법소원을 냈다. 국방부의 무차별적이고 자의적인 불온서적 지정이 헌법이 보장한 장병들의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되자 국방부는 군법무관 7인을 갖은 방법으로 회유 협박했다. 이 과정에서 육군과 공군에서 각 한 사람씩 군법무관 2명이 헌법소원을 취하했다. 국방부는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감봉 등 징계 처분을 내렸다. 끝까지 헌법소원을 취하하지 않은 지영준 소령과 박지웅 대위에 대해서는 파면 결정을 내렸다. 군기강 문란과 복종의무 위반 등이 징계 사유였다. 이들은 파면징계 효력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을 내서 대응하고 있다.

   
임수빈 전 부장검사
파면 후 박지웅 대위는 연수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떠났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두 자녀까지 키우는 지영준 소령은 파면 후 의료보험 혜택이 끊기고 살던 군인 아파트도 비워줘야 할 딱한 처지에 놓였다. 그는 기자에게 “파면되니 가장으로서 경제적 고통이 가장 심했지만 군법무관 14기 동기생이 십시일반으로 월급에서 후원금을 보내줘 버티며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일부 법무관의 삐딱한 생각으로 헌법소원을 냈다면 지금이라도 취하하면 그만이지만 군법무관 대다수는 물론 국민도 우리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고 보기에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군인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회 일각의 인식에 따라 군법무관도 군인으로 대하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군인의 기본권을 어떻게 취급하기를 바라는지 이번에 헌법적 판단을 받아보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는 게 ‘파면당한’ 그의 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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