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10일 광화문 네거리에는 이른바 명박산성이라 불리는 컨테이너 박스가 설치됐다(위).

‘태극기 열사’ 황도연

 

 

직장인 황도연씨(44)는 학창시절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부 언론이 말하는 친북 좌파, 경찰이 말하는 전문 시위꾼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참석한 한 모임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지난해 8월25일 서울광장에서는 누리꾼 퍼포먼스가 예정돼 있었다. 황씨는 “태극기를 거꾸로 들고 광장에 나갔다. 집회나 시위를 벌이는 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실수를 따라잡는 일종의 퍼포먼스였다”라고 말했다. 시민 100여 명이 서울광장 모퉁이 분수대 근처에서 국기를 거꾸로 들고 있었다. 경찰이 시민들의 서울광장 진입을 막고 채증을 하면서 참가자들과 승강이가 벌어졌다.

앞쪽에 서 있던 황씨는 채증하는 경찰의 카메라를 살짝 쳤다고 한다. 이때 “검거해!” 소리와 함께 연행이 시작되었다. 황씨는 “디지털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손목에 매달려 있었다. 경찰이 손목을 꺾고 머리를 눌러서 호흡이 곤란했다. 그래서 경찰의 손목을 물었다”라고 말했다. 황씨는 48시간 동안 경찰서에 구금된 후, 특수공무집행방해와 특수상해치상 혐의로 구속됐다. 30일간 구치소 생활을 했고,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감옥살이로 직장을 잃은 황씨는 촛불집회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관망파가 됐다고 한다. 황씨는 “구속 이후 직장도 잃고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21일 용산 참사 문제로 시민들이 모인다는 글을 보고 황씨는 남대문 한국은행 앞에 나갔다. 황씨는 시위대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인도에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인도를 가로막자 한 시민이 차도로 돌아가려다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황씨는 “이분은 시위에 가담하지 않았다. 연행하지 말라”고 했다가 다시 경찰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6월10일 도로교통방해죄로 벌금이 부과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황씨는 “경찰에 연행된 사람 가운데 나 같은 사람이 있을 텐데 경찰이 해도 너무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계사 테러 피해자 김덕철

 

 

 

 

철거 사업을 하던 김덕철씨(41)는 사회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대운하 문제와 광우병 파동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뉴라이트 등 이명박 정부 주변 인사들이 역사 왜곡을 일삼고 매국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매국노 저격수’라는 이름을 짓고, 촛불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9일 김씨는 서울 조계사에서 한 30대 남성이 휘두른 칼에 맞아 크게 다쳤다. 사업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돈 안 벌고, 매일 밤 촛불집회에 나가고, 몸까지 다쳐서 들어오는 가장을 좋아할 부인은 없었다. 가정도 불안해졌다. 하지만 김씨는 촛불을 드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고 했다. 김씨는 “이명박 정부는 친일파·매국노 집단이다. 가정이 잘못되고 내 삶이 망가지더라도 친일파·매국노 집단이 사라질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이길준

지난해 5월31일 밤 의경 이길준씨(24)는 안국역에서 촛불시민들을 막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촛불집회를 막았다. 촛불을 든 시민의 길을 막고 헬멧 속에서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양심이 하얗게 타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진압의 도구가 될 수 없다고 결심했다. 지난해 7월 이길준 의경은 휴가를 나왔다가 양심선언을 했다. 이씨는 “현행법은 어겼을지라도 인간의 도리는 어기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택한 이씨는 1심에서 1년6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검사는 형량이 부족하다며 항소했고, 결국 2심에서 2년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길준 이경의 행위가 공권력 행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통상 내려지는 1년6개월의 형량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라고 판결했다.

수형번호 ‘서울2467’ 이길준씨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이씨는 지인을 통해 “촛불집회 이후에 원하는 삶을 살 용기를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경찰과 싸우는 전경 이계덕

 

 

 

 

서울경찰청 제4기동대 이계덕 상경(23).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12일, 그는 전투경찰 대신 육군으로 복무하게 해달라며 ‘전환복무 해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씨는 “전·의경은 본인의 정치적 견해와 양심에 반하는 정치 상황에 개입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행정심판을 낸 후 이 상경의 삶은 다른 궤도로 접어들었다. 이 상경은 근무태만과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15일 영창’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이 기간에 경찰은 이 상경이 동료 전경 13명을 성추행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성추행당했다는 사람 가운데는 이 상경의 상급자 4명이 포함돼 있었다.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이씨는 직위해제됐다. 이씨는 경찰을 비판하는 〈신노병가〉라는 노래를 발표하고, 경찰청장에게 토론을 요구했다. 그러자 경찰이 이씨를 고소한 것만도 네 건. 검찰은 지난 5월 동료 부대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이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선고 공판은 6월18일 열린다.

‘고대녀’ 김지윤

 

 

 

 

지난 5월28일 저녁, 과외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김지윤씨(24)는 집 앞에서 서대문경찰서 소속 형사들에게 긴급 체포됐다. 경찰은 용산 참사 추모 집회에서 불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4차례 소환 통보했다. 김씨는 소환 요구가 부당한 겁주기 수사라고 판단해 소환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누리꾼에게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씨는 ‘고려대 출교생’이었다. 법원 판결로 복교한 이후에도 꾸준히 사회활동을 해왔던 그녀는 한승수 총리를 논리정연하게 비판하면서 누리꾼에게 ‘고대녀’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경찰에 체포되자 누리꾼이 불같이 일어났다. 예상외의 반응에 경찰은 하루 만에 김씨를 훈방 조처했다.

그녀는 “경찰은 법을 지키라면서 체포 영장도 보여주지 않았고 변호사 선임 고지도 해주지 않았다. 경찰에서 3차례 조사를 받았는데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것까지 시비를 걸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을 지켜봤는데, 정말 슬펐다”라고 말했다.   

광우병대책회의 공동 상황실장 박원석

 

 

 

 

지난해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원석씨(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는 지난 6월1일 참여연대에 복귀했다. 수배(2008년 6월 말)→조계사 117일 천막 농성→잠행→체포(11월6일)→구속·수감→보석(2009년 4월17일)으로 이어진 숨가빴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1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권혜진(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김동규(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백성균(미친소닷넷 대표)·한용진(한국진보연대 대외협력위원장)씨 등도 박씨와 함께 체포됐다. 같은 날 보석으로 풀려난 시민단체 활동가 4명 또한 일상으로 복귀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박원석씨는 이 정부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1990년 학생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경험이 있는 박씨는 “5·6공 때만 해도 감옥에 가는 사람은 이른바 운동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현 정권은 평범한 생활인에게까지 ‘전문 시위꾼’ 따위 딱지를 붙여 마구잡이 구속을 일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올 들어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철거민, 해고 노동자처럼 생존권 문제로 벼랑에 내몰린 이들이 급속히 늘어갔다. “용산 참사 관련자들이 구치소에 들어왔을 때는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거의 질식사 직전이다. 지난해 1~12월 경찰청이 금지를 통보한 집회는 146건. 반면 2009년 1~4월 금지를 통보한 집회는 164건이었다. 곧 올해 들어 4개월간 경찰이 못하게 막은 집회가 지난 1년간 막은 집회보다 많은 셈이다. 한국진보연대 김동규 정책국장은 “올 들어 시민단체가 집회 신고를 내 받아들여진 경우가 거의 없다. 민주노총이나 진보연대처럼 좌파로 정권에 ‘찍힌’ 단체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시민단체가 고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여러 합법 투쟁을 벌이는 중이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박원석씨 등 기소된 시민단체 활동가 5명 또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자신들에게 적용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 중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 등에 위헌 요소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들에 대한 재판은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기자명 주진우·김은남·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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