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겨울은 굴이다. 찬바람이 불면 맛이 들기 시작해서 날이 추워질수록 절정으로 치닫는 통영의 굴 맛은 겨우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굴 생산국이며, 1인당으로 따지면 압도적인 최대 생산국이다. 그리고 국내 굴 70~80%가 통영 바다에서 자란다. 겨울의 통영은 굴 천지다.
굴은 한 쌍의 두꺼운 껍데기를 가진 수생생물이다. 굴을 먹는다는 건 곧 껍데기라는 쓰레기를 배출하는 행위다. 그럼 그 많은 굴 껍데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굴 알맹이만 우리 식탁에 올랐을 뿐, 껍데기는 통영 바닷가에 그대로 쌓인다. 2020년 전국 굴 생산량이 약 35만t인데, 굴 껍데기 발생량이 31만t쯤 된다. 굴에서 껍데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알굴 무게에 비해 껍데기 무게가 9배쯤 더 나간다는 게 통설이다. 통영시가 올해 전수조사한 결과로는 알굴 1㎏당 굴 껍데기 6.9㎏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는 차이가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겨울의 통영은 굴 껍데기 천지다.
굴 껍데기가 겨울에만 반짝 쌓이는 것은 아니다. 굴 수확철인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발생한 껍데기는 1년 내내 바닷가에 방치돼 악취와 해양오염을 일으킨다. 일부가 패화석 비료로 탈바꿈해 재활용되기도 하지만, 그 쓰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통영의 경우 매년 굴 껍데기 15만t이 발생하는데, 비료·사료 제조에 10만t, 양식장 재활용에 1만5000t이 쓰이고 나머지는 처치 곤란이다. 통영뿐 아니라 굴 양식장이 있는 지역 어디든 ‘굴 쓰레기’ 천지다. 해양수산부 추산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전국에 쌓여 있는 굴 껍데기는 100만t에 이른다.
패화석 비료로 변신한 굴 껍데기 역시 처치 곤란이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통영 바닷가에서는 정체불명의 모래더미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모래가 아니라 잘게 부서진 굴 껍데기다. 잘게 부서진 뒤 공장에서 비료로 탈바꿈됐어야 할 굴 껍데기가 방치된 채 바닷가에 부려진 것이다.
수산 부산물은 폐기물 아닌 순환자원
굴 쓰레기 문제는 2015년 무렵부터 심각해졌다. 굴 껍데기로 만드는 패화석 비료를 농민들이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염분으로 인한 토양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 그리고 비료 속 석회질 성분이 땅을 단단하게 만들어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염려였다. 올바른 사용법을 지키면 토양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유관기관의 분석 결과가 있지만, 선입견을 바꾸지는 못했다. 패화석 비료가 남아돌면서 2019년부터 굴 껍데기가 곳곳에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 굴 껍데기 문제는 굴 양식 지역의 최대 골칫거리다.
굴 껍데기가 외면당하는 배경에는 제도의 한계가 있다. 굴 껍데기는 법적으로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된다.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관리 및 재활용에 엄격한 제약이 따른다. 현실적으로 비료, 사료, 매립지 성토재 등으로만 재활용 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비료의 경우처럼 세간의 인식 탓에 널리 쓰이지 못했다. 보관기간이 90일로 제한된다는 점도 문제다. 기한 내 재활용되지 못한 굴 껍데기는 해양에 배출하거나, 불법으로 버려 방치된다.
알고 보면 굴 껍데기는 그저 쓰레기가 아니다. 쓰임새가 많은 ‘자원’이다. 굴 껍데기가 중금속을 흡착하거나, 바다 밑바닥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는 연구가 전부터 있었다. 미국은 동부의 체서피크만(Chesapeake Bay)에 굴 껍데기 25억 개를 살포해 해양을 정화했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수질필터제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재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탈황제’다. 탈황제는 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물질로, 굴 껍데기의 석회성분이 원료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해법이 될 수 있지만, 폐기물관리법에 막혀 재활용되지 못했다.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지난 6월 ‘수산부산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굴 껍데기 같은 ‘수산 부산물’을 폐기물이 아닌 ‘순환자원’으로 인식하고 재활용 범위를 확대한 것이 법률안의 골자다. 탈황제나 제설제 같은 활용 방안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느냐가 남은 숙제다.
굴 요리를 즐기는 유럽인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굴 값이다. 유럽에서 1개에 5유로(약 6600원)까지 줘야 맛볼 수 있는 굴을 우리는 훨씬 싸게 먹어왔다. 한국을 ‘굴의 천국’으로 만든 것은 천혜의 개펄과 조수간만의 차였다. 누군가 천국을 맛보는 동안 누군가는 지옥 같은 악취와 오염에 시달려야 했다. 올겨울 굴 맛은 유난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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