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을 만났다. 그는 김종철 전 발행인의 딸이자 ‘동지’다. ⓒ시사IN 신선영

격월간 인문 잡지 〈녹색평론〉이 1년간 휴간한다. 11월2일 발행된 제181호 권두언에서 김정현 발행인은 “편집실 역량을 보강하면서 재정적 기반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이유로 들었다. 창간 30주년에 어렵사리 밝힌 비보였다. 휴간에 들어간 시사잡지가 끝내 복간되지 못하고 ‘폐간’에 이르는 일이 근래에는 흔히 벌어진다. 〈녹색평론〉은 한때 발행부수 1만 부에 달할 정도로 충성도 높은 독자층을 자랑해왔다. 격월간 시사지로서 훌륭한 지표다. 생태주의, 탈핵, 대안적 삶 등 이 잡지가 다뤄온 주제를 살피면 더 의미 있는 지표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두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종철 전 〈녹색평론〉 발행인의 빈자리 탓이라고 유추하는 이들도 있다.

11월16일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인을 만났다. 그는 김종철 전 발행인의 딸이다. 대학 시절부터 영문 원고 번역을 도왔고 100호 발행 즈음부터는 본격적으로 편집 일에 뛰어든 ‘동지’이기도 하다. 부친의 작고 후 지난 1년간 발행인을 맡아왔다. 김정현 발행인은 〈녹색평론〉이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휴간을 결정하게 된 배경이 눈앞의 경영난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시간을 두고 ‘김종철 이후’를 모색하는 게 본 목적이다. “돌아가신 분의 후광만으로 매체가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 달라진 〈녹색평론〉을 들고 와 한국 사회에 ‘재신임’을 묻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휴간 발표가 사실상 폐간이 아닌지 우려가 나온다.

국내 여러 잡지들이 휴간이라는 말로 무기한 쉬고 있으니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되도록 명료하게 ‘1년 후 복간’ 단서를 달았다. 우리도 휴간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휴간을 하지 않고 새 출발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100%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일단 1년 후 복간하는 게 우리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내린 결정인가?

물질적으로 볼 땐 편집실 인력도 확충해야 하고 재정상으로도 지금 상태 그대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인력과 재정 양쪽 다 아주 기초적 기반이라도 갖춰놓고 그 위에서 굴려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으론 30년 된 〈녹색평론〉이 독자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지 고민이 있다. 독자 수가 꾸준히 줄어든다. 우리는 중요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수용이 안 된다는 의미다. 하루 이틀 고민한다고 해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니 시간이 필요하더라. 또 하나 중요한 건 밀린 단행본 작업이다. 생전 (김종철) 선생님이 책 내는 것을 참 싫어했다.

어떤 이유로?

나무를 베어서 책을 내는 게(웃음)…. 꼭 해야 할 중요한 말은 〈녹색평론〉을 통해서 한다고 생각했고, 책은 가능하면 안 내려 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정기간행물과 단행본의 무게는 달리 다뤄지는 면이 있다. 선생님 글을 모아놓았을 때 갖는 힘, 그 책을 읽어가면서 사람들이 갖는 생각도 정기간행물로 볼 때와 다르다. 책으로 묶이지 않은 원고를 모아서 급히 단행본 작업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1순위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일인데 잡지에 몰두하다 보니 단행본 낼 여력이 안 됐다.

〈녹색평론〉 경영 상황은 어떤가?

독자 수는 4000명쯤이다. 우리 생각에도 한국 인문 잡지로서 나쁜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매체와 달리 우리는 오로지 구독료로 운영된다. (김종철 선생은) ‘다수 독자가 아니라 어느 큰손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고 걱정하셨던 것 같다. 사실 돈은 벌고 싶지도 않고, 단행본은 단행본대로 잡지는 잡지대로 근근이 굴러만 가는 게 우리 바람인데(웃음) 이게 잘 안 된다. 그래서 비용을 줄여야 했다. 원고료는 김종철 선생님이 원칙을 갖고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 원고료로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 중 원고료를 안 받겠다는 분도 꽤 있는데 우리는 깎지 않았다. 결국 편집실 인력을 줄였다. 정말 소수의 인력이 지속 가능하지 않게 여러 해 동안 잡지를 만들어왔다.

독자 수 감소 추세는 김종철 선생 작고와 연관이 있나?

상관이 없다. 편집실에서는 작고 후 뚝뚝 떨어지지 않을지 우려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정말 더도 덜도 아니고, 선생님 계실 때 떨어지던 추세가 한결같이 유지되어왔다. 2008년께부터 이미 독자 수는 감소 추세였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 구독을 중단한다’는 전화가 많이 왔다. 선생님 살아계실 때도 (독자 추이를 보면) 자꾸 스트레스니까, 우리끼리 “이런저런 것 걱정하지 말고 일단 은행 빚 내지 않는 상황이라면 30주년까진 무조건 책 내고, 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라고 얘기했다. 일단 멈추는 것까지는 계획대로 된 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서울 종로구 〈녹색평론〉 사무실. 고 김종철 발행인이 앉았던 자리. ⓒ시사IN 신선영

30주년 이후 〈녹색평론〉 진로에 대해 김종철 선생은 어떻게 생각했나?

사실 (독자 감소) 추세에 변동은 없었으니, 선생님이 계셨다면 여기서 멈췄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체력적으로도 버티기 힘들어하셨고 재정상으로도 그렇고…. 내가 먼저 이제 그만하시라고 말렸을 것 같다. 나한테는 아버지니까. 〈녹색평론〉보다 아버지가 중요하다 나한테는. 내가 “아버지, 그만하시죠”라고 기를 쓰고 말렸을 것 같다. 아버지도 나보고 더 하지 말라고 하실 것 같다. 저승에서. 그런데 그건 아버지 뜻이고, 나는 또 내가 생각하는 대로 지금의 독자들을 살펴야 하니까.

가장 큰 문제는 독자 수 감소였나?

수도 수인데 체감하는 독자들의 반응이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책 한 호, 한 호가 나갔을 때 호응이 너무 저조했다. 잡지에 실린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편집실에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하는 사람도 없고, 어딘가 글을 쓸 때에 〈녹색평론〉을 언급하는 이도 점점 사라져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일을 하면서 정말 힘든 건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만드는 책에 반응이 없으면 힘이 빠진다. 30주년 이후 더 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였다.

1년 후 돌아오기로 한 까닭은? ‘추세’가 바뀌었나?

(김종철 선생) 돌아가신 후에 독자 분들이 애정을 보여줬다. 편지나 전화를 주고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필자들도 뭘 도울 수 있을지 물어왔다. 비록 독자 수가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이런 반응이 나오니 생각이 바뀌었다. ‘아, 〈녹색평론〉이라는 매체가 이만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구나’라는 걸 실감했다. 계속할 수 있다,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계기이다. ‘독자 수를 늘리려는 게 우리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지금 있는 독자와 교감해 뜻이 맞는 매체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겠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발판을 마련해서 매체를 생산해야겠다’라고도 생각하게 됐다.

복간 후 어떤 매체를 만들어가려 하나? 그간의 방식 중 바꿔야겠다고 여긴 지점은?

조금 동문서답일 수 있는데, 〈녹색평론〉을 만들고 읽으면서 나는 (김종철) 선생님을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매호 어떤 글을 선택하실지, 어떤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실지 늘 염두에 뒀다. 휴간 이후 새로 잡지를 펴낼 때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데에 좀 더 비중을 두려 한다. ‘내가 잘났고, 어떤 비전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잘해도 결국 흉내 내기는 흉내 내기다. 내 판단에 따라 정직한 책을 내는 게 낫다는 뜻이다. 사실 지난 1년간 해온 이 방식대로, 관성에 따라 2년도 할 수 있고 3년도 못할 것 없다. 하지만 30주년 이후는 선생님의 후광, 카리스마에 기대선 안 된다. 좀 독립해서, 새로운 매체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이 잡지’에도 동의해주시는 분들은 계속 남아주시고,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겐 떠날 기회도 드려야 한다(웃음). 〈녹색평론〉이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에 해온 역할 때문에 무조건 구독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종철의 〈녹색평론〉’이 던져온 화두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기본적으로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선 되풀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되풀이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이번 호(제181호) 〈녹색평론〉 서문에도 썼지만 사람들이 기후변화라는 말에 코웃음 치던 30년 전이나 모두가 기후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지금이나, 〈녹색평론〉의 이야기는 다르지 않다. 환경운동 잡지라면 30년 전 하던 말과 지금 할 말이 다를 수 있다. 너무 급박한 상황이 되었으니 우선순위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녹색평론〉은 환경운동 잡지가 아니다. 30년간 〈녹색평론〉이 얘기해온 것은 문명적 전환, 문화적 전환이었다. ‘우리가 산다는 게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게 맞게 사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진 잡지다. 공동체적 위기를 맞았을 때 치고 나아갈 힘을 가지고, 더불어 살아가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보자고 제안했다. 이건 내일 지구가 망해도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무게중심이 조금 달라지는 정도의 변화는 있겠지만 이전에 해왔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나갈 것이다.

〈녹색평론〉은 20~30대에 인지도가 떨어진다. ‘글이 어렵다’는 평도 있다.

글이 어렵다기보다는 젊은 층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본다. 주류 매체의 글과는 전제도, 가려는 방향도 너무 다르다. 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녹색평론〉에만 젖어 있는 사람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외부의 독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책을 펼치기 어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답을 아직 못 찾고 있다.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이 난점을 수정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 잡지를 낼 때는 많이 읽히려고 하는 거니까. 다만 우리는 꼭 젊은 독자들이 〈녹색평론〉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그들도 많이 읽으면 좋지만, 40~50대가 더 읽으면 좋겠다. 이 지경까지 오게 한 책임이 더 무겁기 때문이다.

〈녹색평론〉의 사회적 구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녹색평론〉은 왜 존속해야 하는가?

그게 내게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여기 답을 못하면 근본적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1차원적으로는 〈녹색평론〉을 기다리는 독자들과, 〈녹색평론〉에서만 자기 진심을 충분히 피력할 수 있는 필자들이다. 이 수천 명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녹색평론〉은 존재 의의가 있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힘만으로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간 〈녹색평론〉의 사회적 역할은, 가늠하긴 어렵지만 알게 모르게 사회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 역할이 결코 작지는 않은 성과라고 보는데, 그렇다고 ‘앞으로도 존속해야 할 의의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녹색평론〉의 사회적 구실은 내가 답할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질 잡지를 보며 독자들이 판단해줄 듯하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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