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함께 시작된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언제라도 숙주로 전락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난 2010년대를 돌아보며 각종 사건 및 그에 따른 사유와 반성을 담아낸 윤여일의 〈물음을 위한 물음〉(갈무리 펴냄·사진)이 도착했다. 윤여일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사건들의 한복판에서 그 흐름을 진단하고 흐름 아래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맥락과 모른 척했던 여러 폭력(우리 자신의 폭력적인 생각까지)을 짚어내는 동시에, 이 모든 연루와 반성을 기반으로 미래를 전망한다.

이 책에서 윤여일은 폭로한다. 게임이나 드라마와 다를 것 없는 담론으로 민주주의를 자살로 이끄는 정치평론가, 물신화된 돈벌이를 ‘진리의 전조등’으로 둔갑시키는 증시 전문가 등의 만행을. 그 만행을 부추기는 미디어의 천박함을! 그는 또한 돌아본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세월호 이후 우리의 무뎌진 통각을, 촛불로 가능했던 정권교체는 사실 그 이전에 압도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부탁도 한다. 자신을 응시하는 능력을 상실하지 말기를, 재난과 재생의 새로운 관계식을 찾기를, ‘증오와 혐오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공익을 지키는 불가피한 말로 착각할 수 있는 곳’에 도사리는 반(反)지성주의와 제노포비아를 확산시키는 가짜뉴스를 경계하기를.

역사, 철학, 사회학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결국 기후위기와 연결된 것임을 환기시키며 우리에게 회복의 기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고 각성하기를 그는 부탁한다.

〈물음을 위한 물음〉은 역사와 철학, 그리고 사회학이라는 렌즈로 바라본 지난 시대의 기록이자 증언이며, 저자의 예리한 감각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는 저자의 문장에 매료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아 여러 곳에 밑줄을 쳤는데, 그중 특히 기억나는 문장은 이것이다. “한 사회의 진보 정도는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타살을 최소화하는지로, 한 사회의 성숙 정도는 사회적 희생이 발생할 경우 그 희생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고 희생의 하중을 사회구성원에게 세분해 이식하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

전혀 과장되지 않은 표현으로 우리 사회가 더 진보해야 하고 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걸 서늘하게 일깨우는 이런 문장을 독자는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더 많이 읽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독자인데,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그 해박한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명징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과거는 지금을 위한 물음’이라고 윤여일은 썼다. 다시 말해 지금은 과거의 수많은 물음 끝에 당도한 세계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대선을 백여 일 앞둔 시점으로 모든 미디어에서는 날마다 대선후보들과 관련된 뉴스를 내보내는 중이다. 내년에 치르게 될 대선은 과거의 희생과 광장에서의 싸움을 통과하며 얻은 것이기에 미래에는 의미 있는 물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미래를 위한 지금의 물음….

지금의 대선 판도는 이 물음 자체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진보와 성숙에서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는 제20대 대통령 후보들과 그들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며 또 다른 문장을 쓰고 있을 윤여일의 새로운 진단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명 조해진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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