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고통 끝에 자살한 고 윤현석씨 사건 이후 4년이 흘렀지만 동성애자의 ‘인권’은 나아진 것이 없다.
지난해 이맘때 인터넷 메신저로 카이가 ‘멋진 일이 있다’라며 호들갑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카이는 제네바에 있는 국제 인권단체에서 일을 하면서 나처럼 일이 있을 때만 유엔인권이사회에 오는 아시아 활동가들을 열심히 도와주는 인도네시아 친구이다.

그는 한국 정부가 소수자들의 인권 증진을 위해 ‘큰일’을 한 건 했다며 ‘대단하다!’고 말했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노르웨이가 동성애자들의 성 정체성 등을 무시하는 인권 유린에 대해 구두 성명을 발표할 예정인데, 한국 정부가 여기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인권이사국에 선임된 아시아 나라 중 유일해서 ‘아시아의 체면을 세웠다’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기록을 살펴보니 한국 정부가 소수자들의 인권에 이런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5년에도 브라질이 제출하려고 준비한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한 결의안’에 서명을 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한국이었다. 성 소수자들에게 무척 관용적인 태국은 물론 일본도 외면한 사안이다.

더욱이 이 무렵은 몇몇 무슬림 국가들이 성 소수자의 ‘성’자만 나와도 자신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라고 공공연히 협박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사회 약자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의견을 표명한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었다. 스스로가 무슬림 국가의 성 소수자인 카이로서는 그 감회가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뒤 ‘돌아갈 고향’마저 멀어져버린 그에게 한국의 이런 전향적인 태도는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인권 신장의 잣대

그런데 그게 다 바깥에서 ‘쇼’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번에 준비 중인 차별금지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차별금지법은 인권 신장의 방법 중에서 가장 앞서 있는 법이다. 차별에 노출되기 쉬운 사회 약자들이 고용이나 교육, 법 집행 과정에서 차별을 당할 경우 구제받을 수 있는 적극적인 인권 보호 조처이다. 차별 자체를 금지함으로써 소수자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차별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역할도 한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다.

이 야심만만한 차별금지법이 별 문제 없이 통과되는 것 같더니 개신교 등 몇몇 극우주의자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성적 지향과 가족 형태, 학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등 7개 항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징벌적 손해배상’ 따위 핵심 규제 방안도 삭제됐다.

문제의 심각성은 성 소수자, 이혼한 가정의 구성원 등 사회적 약자가 차별금지법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오히려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법이 우리 사회 구성원을 ‘차별을 받아도 되는 사람’과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나눠버린 것이다. 결국 차별을 조장하는 법을 만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차별 금지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이 법을 도대체 왜 만드는 것일까. 이 법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보여준 모습과 배치될 뿐 아니라, ‘성적 지향’을 명문화한 국가인권위 법과도 맞지 않는다. 소수자들의 인권을 조심스럽게 다루기는커녕 외부의 힘에 의해 조변석개하는 법무부의 모습을 보면, 차라리 이 법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야 카이와 같은 아시아 활동가들을 볼 낯이 생기지 않겠는가.

 

 

기자명 엄기호 (‘팍스로마나’ 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동아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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