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국 정부가 소수자들의 인권 증진을 위해 ‘큰일’을 한 건 했다며 ‘대단하다!’고 말했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노르웨이가 동성애자들의 성 정체성 등을 무시하는 인권 유린에 대해 구두 성명을 발표할 예정인데, 한국 정부가 여기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인권이사국에 선임된 아시아 나라 중 유일해서 ‘아시아의 체면을 세웠다’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기록을 살펴보니 한국 정부가 소수자들의 인권에 이런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5년에도 브라질이 제출하려고 준비한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위한 결의안’에 서명을 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한국이었다. 성 소수자들에게 무척 관용적인 태국은 물론 일본도 외면한 사안이다.
더욱이 이 무렵은 몇몇 무슬림 국가들이 성 소수자의 ‘성’자만 나와도 자신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이라고 공공연히 협박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사회 약자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의견을 표명한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었다. 스스로가 무슬림 국가의 성 소수자인 카이로서는 그 감회가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뒤 ‘돌아갈 고향’마저 멀어져버린 그에게 한국의 이런 전향적인 태도는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인권 신장의 잣대
그런데 그게 다 바깥에서 ‘쇼’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번에 준비 중인 차별금지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차별금지법은 인권 신장의 방법 중에서 가장 앞서 있는 법이다. 차별에 노출되기 쉬운 사회 약자들이 고용이나 교육, 법 집행 과정에서 차별을 당할 경우 구제받을 수 있는 적극적인 인권 보호 조처이다. 차별 자체를 금지함으로써 소수자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차별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역할도 한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다.
이 야심만만한 차별금지법이 별 문제 없이 통과되는 것 같더니 개신교 등 몇몇 극우주의자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성적 지향과 가족 형태, 학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등 7개 항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징벌적 손해배상’ 따위 핵심 규제 방안도 삭제됐다.
문제의 심각성은 성 소수자, 이혼한 가정의 구성원 등 사회적 약자가 차별금지법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오히려 차별이 정당화될 수 있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법이 우리 사회 구성원을 ‘차별을 받아도 되는 사람’과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나눠버린 것이다. 결국 차별을 조장하는 법을 만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차별 금지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이 법을 도대체 왜 만드는 것일까. 이 법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보여준 모습과 배치될 뿐 아니라, ‘성적 지향’을 명문화한 국가인권위 법과도 맞지 않는다. 소수자들의 인권을 조심스럽게 다루기는커녕 외부의 힘에 의해 조변석개하는 법무부의 모습을 보면, 차라리 이 법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야 카이와 같은 아시아 활동가들을 볼 낯이 생기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