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나서야 세상이 바뀐다”
  • 김은남 기자
  • 호수 91
  • 승인 2009.06.0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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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⑧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옵니다-송인수
마지막 강좌는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인 5월26일 열렸다. 이날 강사로 나선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 대표는 “상중이라 이런 강의를 많은 분이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렇지만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권위주의·남북갈등 같은 시대적 모순에 직면해 자기 몸을 던지며 살아왔듯 우리 또한 입시·사교육 문제라는 우리 시대 모순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문제에 직면해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 고민해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 같았다”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송인수 공동대표(위)는 입시·사교육 문제야말로 우리 시대의 핵심적 모순이라고 말했다.
오늘 주제는 ‘입시와 사교육 문제 원인과 해법-누가 풀 수 없는 문제라 했는가’이다. 다시 말해서 풀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문제를 갖고 오늘 얘기하겠다.

현재 우리 교육은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교육이 입시 위주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그래도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이 가능했다. 내가 어릴 적 집안 형편이 무척 어려웠는데 가끔 성적이 떨어지면 어머니가 “너 계속 이러면 고아원 보낼 거야” 하셨다. 그 말 들으면 벌벌 떨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나와 남동생을 미국에 보내려 했던 일이 있다. 나더러 당시 우리를 후원하던 미국인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저를 입양해주시면 뉴욕에 가서 열심히 살아 은혜를 갚겠습니다.” 이 문구를 불러주시며 어머니가 우셨다. 다행히 그쪽 사정으로 입양이 틀어졌는데, 그런 일이 있었던지라 어머니 말씀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해외 입양 보내려 했던 분이 고아원 못 보내시겠나(웃음). 그래서 쉴 틈 없이 공부했다. 덕분에 국립대 가고 대학원도 가고 지금은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산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은 거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게 어렵다. 2009년 3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산하 영어사교육포럼에서 어린이 영어 전문학원 실태를 조사했는데, 영어 유치원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강남 어린이가 24.6%, 비강남 어린이가 1%였다. 이렇게 영어 능력과 관련해서 출발점이 현격하게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하면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2권을 보면 로마제국이 어떻게 쇠락하게 되는지 나온다. 초창기만 해도 로마에는 계급 구조가 열려 있었다. 노예라도 열심히 일하면 시민이 될 수 있었고, 시민이 열심히 일하면 또 기사-원로원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런데 카라칼라 황제 이후 이것이 닫혔다. 곧 사회가 통풍이 안 되는 환경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동기를 상실했고, 이것이 국력의 쇠퇴로 나타난 것이다. 이전에는 거대한 제국이 다양한 민족을 통합할 수 있었다면 이때부터는 통합이 불가능해졌다. 나는 지금 로마가 쇠락한 것과 유사한 징후가 한국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입시 사교육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지난 일곱 차례 강의에서 들으신 그대로다. 입시 경쟁의 틀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학부모도 그렇지만 교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교사이던 시절 야간 자율학습, 보충학습 거부하고 버티다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

그렇다면 손 놓고 있어야 할까? 나는 대안이 없어서 이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이라고 본다. 대안은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사교육비의 획기적 경감을 위한 3단계 종합대책을 제시하고 있다(홈페이지 www.noworry.kr 참조). 문제는 대안 세력이 없다는 거다. 다시 말해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안 세력이 없어 이 문제를 풀기가 어려운 거다.

   
사교육에 관한 한 온 국민이 피해자이다. 위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좌 수강생 모습.
인종차별 문제와 평생을 싸우다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처음부터 이 문제에 자신의 삶을 던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1955년 로자 파크 사건이 터졌다. 당시만 해도 미국 버스에는 백인석과 흑인석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로자 파크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백인석에 그대로 앉아 있다가 감옥에 가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에게 동조하는 흑인들이 버스 인종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양심적인 백인 또한 이를 돕고 나섰다. 모두가 감옥 갈 결심으로 의연하게 행동했다. 이렇게 수많은 흑인이 고통받는 것을 보며 킹 목사도 나선 것이다. 그 뒤 미국에서 흑백 차별과 관련한 수많은 관행이 깨지고 법률이 바뀌기 시작했다.

흔히 법과 제도가 바뀌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법과 제도가 바뀌는 일은 없다. 기존에 있는 법의 부당성을 누군가가 인식하고, 용기 있는 실천을 통해 그 법에 대항하면 그게 1단계다. 그 단계에서 법은 그 사람을 불법자라 부른다. 2단계에서는 이런 불법자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법은 이들을 예외라고 말한다. 그런데 예외가 너무 많아지면 할 수 없이 법을 바꾸게 된다. 그것이 3단계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아무리 개혁적 정치가라 해도 3단계에 이르지 않는 한 나서지 않는다.

“대안은 있다. 대안 세력이 없을 뿐”

누군가 나서야 한다. 보행 신호가 꺼질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점멸등으로 보여주는 녹색 신호등은, 신호등 때문에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발명했다고 한다. 이렇게 불합리한 법·제도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먼저 나서는 거다. 입시 사교육 문제로 피해를 보는 게 공부 못하는 아이, 못사는 아이만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공부 잘하는 아이, 잘사는 아이 중 자살자는 더 많이 나온다. 온 국민이 피해자다.

내가 13년간 ‘좋은 교사 운동’에서 교원 운동을 했다. 회장 임기를 마칠 즈음 학부모 운동을 하던 윤지희 선생님이 사교육 문제를 갖고 운동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해오셨다. 두려웠다. 입시 사교육 문제라니…. 이 문제가 핵심인 줄은 알지만 절대로 풀 수 없다 생각하고 도망만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목사님 한 분이 중학생들을 앞에 놓고 설교하는 걸 보게 됐다. “너희들 입시 때문에 너무 힘들지? 너네가 왜 힘든지 아니?” 그분 말씀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당신이 뭘 알아’ 싶었다. 그런데 그분 답이 이랬다. “그걸 자기 문제로 끌어안고 자기 인생을 바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야.” 순간 전율했다. 그렇다. 누군가는 자기 인생을 걸고 나서야 한다. 피해자가 나서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법·제도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반드시 온다. 먼저 깨달은 우리가 노력하면 10년 내에 입시 고통의 문제를 현저하게 해소할 수 있다.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냉정하게 보죠. 지금 특목고, SKY대 졸업하면 별 볼일 있나요? 이 아이들이 애를 낳으면 교육에 투자하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해도 별 볼일 없거든요. 미래 사회는 오히려 개인의 창의성, 변화 감지력, 부모 재산 이런 것이 변수가 되겠죠. 그럼 대학도 중요도가 떨어지고 메가스터디 산업도 10년 내에 약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교수가 이런 말 하면 안 믿겠지만 사교육 대표주자가 이런 말을 하니, 더더욱 되겠구나 싶더라(웃음).

좋은 대학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싸구려 유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가 나중에 인생의 기로에서 홀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무엇이 버팀목이 될까? ‘아, 나는 SKY를 나왔으니 인생을 값지게 살아야지’ 할 아이는 없을 거다. 그 순간 아이에게 힘이 되는 건 부모가 보여준 삶의 모습이다. ‘엄마 아빠라면 이 힘든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분은 그간의 강좌에 참여하신 것만으로도 자녀에게 물려줄 매우 소중한 유산을 얻으셨다. 여기서 머물지 말고 함께 싸워주셨으면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듯 우리 시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섬으로써 행복한 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면 생을 훨씬 보람 있게 마감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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