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7월26일 수사관들이 문도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에서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어둠의 자식들〉 등 문제작을 남긴 이장호 감독은 1980년대 초반, 사정상 영화 두 개를 동시에 찍어야 했던 적이 있어. 고민 끝에 이장호 감독은 ‘선택과 집중’을 한다. 영화 하나를 거의 버리다시피 한 거야. 흥행 결과 역시 정직하게 나왔어. 〈어둠의 자식들〉은 빅히트를 쳤지만 감독이 ‘버린’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흥행에서 참패했으니까.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1970년대 중반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2인조 총기 강도를 영화화한 것이었어. 이름은 이종대와 문도석.

이종대는 어릴 때 계모의 학대를 받았고 글자 그대로 전문 범죄꾼으로 자라났다. 갖가지 죄목으로 전과를 쌓던 그는 강도죄로 10년 징역을 받고 복역하다가 작업 중 재소자 동료 두 명과 함께 교도관의 눈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탈출을 감행했어. 권총을 탈취해 추격하는 경찰과 총격전까지 벌였지. 이종대를 비롯한 3인이 탈옥에 성공할 경우 재소자 100여 명이 무기고를 습격해 탈옥할 계획이 짜여 있었다고 하니 우리 현대사에 보기 드문 ‘빌런’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총알이 떨어지고 체포된 그는 탈옥죄로 3년을 더 썩고서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종대는 미술에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고 해. 군대에서도 상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환심을 샀고, 감옥 내 미술 전시회에서도 여러 번 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지. 소질을 살려 극장 간판공도 하고 페인트 가게에서도 일했다. 그 와중에 한 여자와 살림을 차렸지. 아이들도 태어났어. 예술가적 기질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었어. 태양 그리고 큰별.

그가 13년 징역을 치르던 중 만난 재소자 가운데 문도석이라는 이가 있었어. 이 사람도 폭행부터 횡령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별’을 단 천생 범죄꾼이었지. 공교롭게도 문도석은 음악에 비범한 소질이 있어서 바이올린부터 트럼펫까지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었다지.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주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꾸렸어. 문도석은 이 결혼을 계기로 어두운 세계로부터 탈출할 결심을 했다고 해.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낱낱이 아내에게 고백했고 부부는 부둥켜안고 울면서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한 거야.

그러나 착하게 살아보겠다는 결심은 한탕의 유혹에 쉽게 뭉개졌단다. 그들의 전과는 정상적인 삶을 방해했고 지긋지긋한 가난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종대는 적극적으로 문도석을 꼬드겼어. 처음에는 뜨악해하던 문도석도 마침내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어. 의기투합한 그들에게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총을 훔치자.”

최인호의 〈지구인〉 역시 이 2인조 ‘카빈’ 강도를 소재로 한 소설이야. 이 책에서 최인호는 이렇게 쓰고 있어. “총을 쥐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타인의 생과 사를 주관하는 신 그 자체가 돼버리는 것이다.” 한번 권총을 들고 탈옥해봤던 이종대에게 총을 쥔 순간의 경험은 살갑고도 생생했겠지. 이종대와 문도석은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총 3정과 실탄 수백 발을 훔쳐내는 데 성공했어. 대한민국 범죄사에 드문 2인조 총기 무장 강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지.

할리우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부치와 키드처럼, 둘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지른다. 돈을 턴 뒤 차를 타고 도망가다가 피해자들이 강도야 하고 소리를 지르자 차를 후진시켜서 내린 뒤 총을 휘두르며 “목숨이 둘인 줄 알아?”라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있고, 범행에 사용된 차를 버리면서 “지문 실컷 찾아보슈” 하는 쪽지를 남겨 경찰의 약을 바짝바짝 올리기도 했어. 문도석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범죄에 가담했다지만 이미 범죄의 늪에 빠진 사람에게 그것은 거미줄만큼의 장애물도 되지 못했지. 강도 피해자 한 명이 거세게 저항하자 목숨을 빼앗았고, 지방으로 강도 원정을 가기 위해 대절한 차 운전사가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자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골 강변에 파묻어버렸다. 강도 나부랭이에 불과하던 그들은 인정사정없는 살인마로 변신했지.

그저 흥분만으로 치워버릴 일인가

1974년 7월26일 수사 관계자들이 이종대가 있는 방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자수를 설득했다.ⓒ연합뉴스

문도석은 성미가 급하고 행동이 격정적이었는데 결국 경찰에 꼬리를 밟혔다. 궁지에 몰린 이종대와 문도석은 자신들의 말로를 직감했고,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또 하나의 살인을 감행했어. 문도석은 아들을 쏘아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남편의 살기를 느낀 순간 몸을 피했던 아내는 목숨을 건졌지만 아빠에게 오라는 말에 아빠 팔에 덥석 매달린 아들은 아빠와 함께 죽은 거야.

이종대는 더 끔찍했어. 경찰에 포위된 몇 시간 뒤 그는 아내와 태양이·큰별이를 죽였어. 아이들은 장난감을 안고 죽었고 아내는 그 아이들을 향해 팔을 벌린 상태로 쓰러져 있었지.

그로부터 17시간이 넘도록 이종대는 경찰과 대치하며 자신의 죄상과 과정을 전부 공개한다. 당시 경찰과의 대화를 보면 경찰은 인질이 된 가족의 생사 여부보다는 범죄의 물증 확보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게 보여. 문도석이 자살한 마당에 이종대로부터 범죄 윤곽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긴 했지만 잘못된 판단이 아닐 수 없었지. 결국 이종대 역시 자신을 악마로 변신하게 만든 카빈총으로 목숨을 끊어.

가족들까지 죽인 그들의 잔인함에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하지만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흥분만으로 치워버릴 일인가. 그 흉악의 성품에만 침을 뱉고 돌아서버릴 일인가(〈동아일보〉 1974년 7월29일)”라는 질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할 거야. 어떻게 인간이 제 자식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지. 우리는 알지 않니. 가난이라는 괴물과 싸우다 제 자식들을 아파트 옥상에서 던져버리고 자신도 죽음을 택한 숱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들은 예외 없는 살인자야. 왜 자식 목숨을 자기가 좌지우지한단 말이냐. 하지만 왠지 그들을 향해 부르쥔 분노의 주먹에 힘이 빠지는 느낌은 피하기 어렵구나.

이종대와 문도석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였어. 그렇게 치부하면 당장은 속이 편하다. 그러나 악마는 계속해서 출몰한다는 것이 문제야. “법이 물러서 문제다. 범죄자를 엄벌에 처하면 된다”라고 규정하면 그 속은 가래침을 내뱉은 듯 편안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사람 사는 곳’에 관심을 먼저 기울이지 않고 ‘엄벌’에만 목청을 높일 때 그 시끄러움 속에서 또 다른 독뱀들이 누군가의 발목을 휘감아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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